대중예술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로우브로 (Lowbrow)' 아트의 정의와 개념에 대해 알아봅시다.
1875년, 독일의 의사이자 생리학자인 요한 프리드리히 블루멘바흐 (Johann Friedrich Blumenbach)는 사람의 두개골 모양에 따라서 지적, 문화적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마가 크고 높은 사람들이 더 똑똑하다는 것이었는데, 그 근거로 (어이없게도) 이마 높낮이에 따른 인종 간 우월성 차이를 들었습니다. '코카서스 인종 (백인)'의 경우 이마 위치가 높고 '몽골 인종 (아시안)'과 '에티오피아 인종 (흑인)'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백인이 지적, 문화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유사과학 중 하나로 잘 알려진 골상학의 개념을 나타낸 삽화
그 이후 하이브로 (Highbrow)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됩니다. '지식인 또는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이 단어는 '눈썹 (Brow) 위치가 높은 (High) 백인'을 지칭하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뒤에 아트 (Art)를 붙여 주로 상류층이 향유하는 고급 문화예술 장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곤 합니다.
하이브로, 미들브로, 그리고 로우브로의 문화적 취향 차이를 나타낸 삽화 'LIFE 매거진' (1949)
마침내 1979년, 하이브로 아트 (Highbrow Art)에 반하여 로우브로 아트 (Lowbrow Art)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만화 씬에서 입지전적 인물이었던 로버트 윌리엄스 (Robert Williams)가 자신의 일러스트레이션 북에 자조적인 제목, 'The Lowbrow Art Of Robt'를 붙인 것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처음부터 책 제목에 로우브로라는 단어를 포함할 의도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미국 내 공식 예술 기관 또는 단체 중 그 어떤 곳에서도 인정해 주지 않자 홧김에 자기 비하적인 제목을 붙이게 된 것이라고 한참 뒤에 밝혔습니다.
로우브로 아트의 개념을 정립한 로버트 윌리엄스 (Robert Williams)
로버트 윌리엄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Snuff Fink' (1990)
엄밀히 말하면 로우브로 아트의 기원은 196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 특히 LA 지역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합니다. 이 장르는 당시 전통 예술계의 엘리트 주의와 배타성에 저항하는 아티스트들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앞서 언급했던 로버트 윌리엄스가 있었고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 아티스트들이 합심해서 일명 '로우브로 아트 운동 (Lowbrow Art Movement)'을 전개했습니다. 그들은 당시 지배적인 미술 사조였던 추상 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을 추앙하는 주류 예술계로부터 강한 단절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시선을 언더그라운드 만화, 핫로드 (Hot Rod), 펑크 (Punk) 등 기타 소수문화, 비주류 문화 쪽으로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핫로드 (Hot Rod)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 캐릭터 랫 핑크 (Rat Fink), 닉네임 'Big Daddy'로 잘 알려진 에드워드 로스 (Edward Roth)에 의해 1963년 탄생했다.
오늘날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로우브로 아티스트 중 한 명인 알렉스 그로스 (Alex Gross)의 대표작 'Mona Lisa Joker' (2020)
로우브로 아트 운동은 각종 서브컬처 요소를 시각적인 어휘로 통합해서 하이브로 아트의 엘리트 주의에 끊임없이 도전했습니다. 예술이 고상한 개념이나 전통적인 테크닉에만 초점을 맞춰야한다는 고정관념을 거부한 채 키치 (Kitsch)하고 기괴하며 소외된 모든 것들을 소재로 활용함으로써 개성강한 작품들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로우브로 아트의 대표적 특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대중문화 및 서브컬처의 영향
순수 예술의 정신은 받아들이되 전통적 규범은 과감히 배제함으로써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융합을 이끌어냅니다. 특히 대중문화와 서브컬처의 다채로운 이미지 차용과 재해석은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 세르니글리아 (Joe Cerniglia)가 2007년 디자인한 The Besmirchers의 음반 [Besmirch And Destroy] 커버 아트
2. 위트있고 기발한 작품 성향
로우브로 아트는 종종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특징으로 합니다. 아티스트들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영감의 대상을 자유롭게 탐색하며 때론 유머러스한 요소를 작품에 주입함으로써 청중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러한 작품 성향은 청중이 현실에서 벗어나 환상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끔 안내합니다.
초현실주의 로우브로 아티스트 중 한 명인 마크 라이든 (Mark Ryden)의 작품 'Just The Girls' (1998)
3. 스토리텔링 중심
로우브로 아트는 청중에게 복잡한 내러티브 (Narrative)를 제시하고 작품 내 시각적 문맥을 해석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개인적, 사회적 또는 문화적인 이슈일 수 있으며 작품 주제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깊은 대화 및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서구의 문화적 지배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필립 슬랙터 (Philip Slagter)의 작품 'Drowning' (2017)
오늘날 로우브로 아트 운동은 서브컬처, 대중문화뿐 아니라 순수 예술계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포퓰리즘' 또는 '대중 친화적'인 장르 성향은 이마의 크기와 높이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관심 갖고 공감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대상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로우브로 아트의 영향력은 문화예술산업 곳곳에 스며들어 오늘날 시각적 미학의 기준을 형성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스트릿 아트,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 디자인, 패션, 심지어 영화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 영향력의 산물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습니다. 로우브로 아트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탐구함으로써 예술적 표현의 무한한 가능성을 입증한 대표 사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로우브로 아트가 오늘날 어떤 방식과 형태로 진화해 왔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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