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의 우주와 저주
1.
NASA가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의 첫 관측 사진들을 공개했다. 저번 주에는 단색사진으로 이번 주에는 컬러사진으로 공개하였다. 지구에서 약 46억 광년 떨어진 장소를 한 이미지에 담았을 때 죽어가는 별, 탄생하는 별, 찬란하게 빛을 내는 수 많은 은하들이 함께 보인다는 것은 기이하고 아름답다.
위 사진은 SMACS 0723 은하단을 '허블 우주 망원경'과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이 각각 촬영한 사진이다. 약 30년간의 기술력 차이로 인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래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우주의 깊이와 넓이의 간극은 매우 커서 우리가 정말 같은 우주에 살고 있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될 정도다.
우주 곳곳을 직접 가지 못 하는 과학자들에게 이미지는 연구의 정확도와 이해의 깊이에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제임스웹을 통해 볼 수 있는 우주가 허블로 볼 수 있었던 우주보다 100배 더 선명하다는 것은 1.1 ->1.3의 개선이 아닌 0 -> 1 수준의 발견이다.
2.
관측이 가능하고 측정이 가능해서 보지 못 하던 것을 보게 됨은 과학과 기술의 관심사만이 아니다. 제품을 만들고 사업을 하는 창업가에게도 관측과 측정 이를 통한 개선과 발견의 가능성은 중요하다.
우리 제품을 알게 되고, 쓰게 되고, 계속해서 쓰게 되는 고객의 수와 행동을 관측하고 측정하고 있는가? 우리 제품이 더 많은 고객에게 알려지고, 더 많이 쓰게 되고, 더 오래 쓰도록 우리는 무엇을 시도하여 개선하는가?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였는가?
이 지난하고 진부한 과정의 지속은 창업가를 그리고 사실은 함께하는 팀원을 내가 쏟아 부은 시간과 노력의 양에 매달리게 한다. 하지만 사업의 성공은 이분법의 세계이고 따라서 양이 아닌 질, 과정이 아닌 결과로 우리는 성공과 실패를 논하게 된다. 엄청난 양과 나쁜 질, 훌륭한 과정과 나쁜 결과가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창업가들에게는 저주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제품을 만들고, 사업을 시작한다. 실패가 두려워 시작하지 못 한다면 과정이 없고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저주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맞서는 창업가들의 모습은 결국 저주에 굴복하는 그리스 영웅들을 뛰어넘는다.
3.
개선과 발견을 위한 관측과 측정을 수치로 표현된 지표들의 모임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목표를 정하고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관측과 측정이라는 활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팀이 지금 이 순간, 주, 달, 분기, 올해의 목표가 무엇인지 바로 말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창업가의 잘못이다. 만약 팀이 말하는 목표가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 이 기능을 만드는 것' 이라는 대답을 한다면, 그것은 창업가의 잘못이다. 프로덕트-마켓 핏을 찾고 있는 초기 창업팀이 각각 다른 목표를 말한다면 그것은 창업가의 잘못이다. 정확한 목표, 그 목표가 표현된 수치, 팀원의 활동이 그 수치에 어떻게 연결 되는지 모른다면 저주는 다가오고 있다.
4.
결국 팀은 객관성을 잃고 통계는 거짓말이 될 수 있다. 이럴 때 창업가에게 필요한 건 객관적인 외부의 시선과 가감 없는 표현이다. 그래서 VC는 창업가에게 '토론 파트너'가 되어 현재의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질문하고 반대하고 싸울 수 있다. 애정이 없으면 싸움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C도 객관성을 잃게 된다. 투자 과정을 거치며 쌓게 된 창업가와의 연대감, 내가 투자한 곳이 실패하는 따라서 내 선택이 틀렸다는 자기부정의 가능성 회피 등 이유는 많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뿐만 아니라 창업가들을 연결하고 함께 이야기한다. 더벤처스는 이를 'KPI 부스터'라고 한다. 다른 팀의 KPI와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했던 이번 달의 활동 그리고 그 결과를 5~6명씩의 창업가가 모여서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공유한다. 창업가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피드백에서 인사이트를 얻는 게 아니라는 점이 놀랍다. 창업가는 다른 창업가의 생각과 활동을 분석하고 비판하며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뒤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를 팀에게 공유하고 감상에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창업가는 저주를 풀어낸다.
5.
제임스웹이 보여주는 우주는 긴장되고, 광대하고, 아름답다. 이 우주에서 이렇게 만나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창업가 분들이 더벤처스는 항상 반갑다.
우리는 작지만, 우리의 연대는 깊고 거대하다.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며 이 책을 씁니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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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팀은 객관성을 잃고 통계는 거짓말이 될 수 있다. 이럴 때 창업가에게 필요한 건 객관적인 외부의 시선과 가감 없는 표현이다." 정말 공감합니다!
"엄청난 양과 나쁜 질, 훌륭한 과정과 나쁜 결과가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창업가들에게는 저주와 같다." 글이 너무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