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브레인은 기억 저장소가 아니다 | 백서 1장
지난 프롤로그에서 여러 AI 에이전트가 서로 다른 나를 기억하는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기억을 모아 둔 저장소와, 지난 사건을 새 맥락으로 다시 연결하는 세컨드브레인을 구분해 보겠습니다.
기억하는 AI에서, 스스로 다시 엮는 AI로
세컨드브레인이라는 말은 새롭지 않다. 노트 앱에 메모를 쌓고, 태그를 달고, 필요할 때 검색해서 꺼내 쓰는 습관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불렀다.
나도 그렇게 시작했다.
그 방식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넣는 것도 사람이고, 찾는 것도 사람이다. AI가 붙은 뒤에도 달라진 것은 마지막 한 칸뿐이었다. 사람이 저장하고, 사람이 검색하고, AI가 그 결과를 읽는다. 내가 넣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내가 찾지 않은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서랍이 아무리 커져도 서랍은 서랍이다.
그림 4. 위쪽이 우리가 알던 세컨드브레인, 아래쪽이 지금 등장하고 있는 세컨드브레인이다.
서랍이 스스로 정리를 시작할 때
생각이 바뀐 것은 Hindsight 같은 에이전트 메모리 구조를 들여다보면서였다.
기술적인 설명은 길게 하지 않겠다. 이 계열의 시스템이 하는 일은 세 단어로 줄일 수 있다. 담아 두고(retain), 떠올리고(recall), 되새긴다(reflect). 들어온 정보를 사실과 경험과 시간이 지나며 바뀌는 믿음으로 나누어 담고, 지금 상황에 필요한 기억을 스스로 불러오고, 쌓인 기억을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이해를 만든다.
내가 주목한 것은 세 번째였다.
되새기는 기억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석 달 전의 회의록이 어제의 메일과 이어지고, 그 연결이 “이 사람은 약속을 미룰 때 이런 표현을 쓴다”는 관찰이 된다. 누구도 그 문장을 입력한 적이 없다. 기억이 기억을 읽고 만들어낸 문장이다.
사람의 기억도 그렇게 일한다. 우리는 과거를 꺼낼 때마다 조금씩 다시 쓴다. 같은 사건이 스무 살 때와 마흔 살 때 다른 의미로 떠오르는 이유다. 기억은 창고에 놓인 물건보다 계속 고쳐 쓰는 원고에 가깝다.
AI의 기억이 그 성질을 갖기 시작했다.
한 문장으로
AI가 과거를 저장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과거를 계속 다시 엮어 지금의 판단에 쓰는 구조가 등장했다.
에이전트가 수십 개가 되자
에이전트가 하나일 때는 이런 고민이 필요 없었다. 그 에이전트가 기억할 맥락만 잘 관리하면 됐다.
수십 개가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프롤로그에서 말한 그 문제다. 비서가 아는 나와 사업 담당이 아는 내가 다르고, 새 에이전트는 매번 백지에서 출발한다. 직원마다 대표를 다르게 알고 있는 회사는 오래가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 모든 에이전트가 함께 쓰는 하나의 장기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서랍이어서는 곤란했다. 수십 개의 에이전트가 매일 쏟아내는 기록을 내가 일일이 정리할 수는 없다. 스스로 잇고, 스스로 정리하고, 스스로 고쳐 쓰는 기억이어야 했다.
그때부터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은 더 이상 메모장의 연장선에 있지 않았다.
세컨드브레인은 기억을 대신 맡아 두는 저장소에서, 나를 계속 다시 구성하는 뇌로 진화하고 있다.
《슈퍼 세컨드브레인》 백서 1장을 나눕니다. 원문: https://hanulssb.tistory.com/2 . 도표는 백서 원본입니다. 여러분의 에이전트는 저장한 기록을 찾아주는 데 머무르나요, 아니면 서로 다른 사건을 연결해 새로운 판단을 제안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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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저장하는 AI가 나의 판단까지 닮아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같은 질문을 이야기로 풀어낸 《슈퍼 세컨드브레인》 웹툰 1화를 네이버웹툰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bit.ly/ssb-dq-wp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