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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늘
이하늘 ·

현실을 자동으로 먹는 뇌 | 백서 2장

지난 글에서는 기록을 보관하는 서랍과, 기억을 다시 엮어 판단에 쓰는 세컨드브레인을 구분했습니다. 이번에는 기록을 꾸준히 입력하지 못하는 날에도 현실의 맥락이 이어지게 만드는 구조를 살펴봅니다. 핵심은 원본 기록과 지금의 판단을 같은 곳에 섞지 않는 것입니다.

밤에 도시 앞에 정장을 입은 남자가 서 있다

현실이 기록이 되고, 기록이 의미가 되고, 의미가 하나의 원본이 되기까지

세컨드브레인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대개 부지런한 사람을 떠올린다. 매일 밤 일기를 쓰고, 읽은 책마다 메모를 남기고, 폴더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그리고 그런 부지런함에 기대는 세컨드브레인은 오래 못 간다고 생각한다. 바쁜 주에 기록이 끊기고, 힘든 달에는 통째로 빈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던 시기의 기록이 가장 빈약하다. 기록할 여유가 없을 때가 기록이 가장 필요한 때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내가 적는 대신, 현실이 알아서 들어오게 한다.

REAL, 현실이 곧 입력이다

나는 이 입력의 원천을 REAL이라고 부른다. 내 하루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회의가 열리면 회의록이 남는다. 메일과 메신저는 그 자체로 기록이다. 일정, 통화, 현장에서의 녹취, 오간 문서, 내가 내린 결정과 그 결정의 결과, 누군가와의 관계가 가까워지거나 멀어진 흔적. 이것들이 내 손을 거치지 않고 클라우드로 흘러 들어간다.

한국 TV ��프로그램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다이어그램

한국 TV 프로그램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다이어그램

그림 5. 현실은 위에서 넓게 들어오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지금 유효한 의미만 남는다.

증거와 판결문은 다른 서류다

이 구조에서 내가 가장 공들여 지키는 구분이 하나 있다. 날것의 기록과 SSOT는 같은 것이 아니다.

현실을 전부 SSOT에 쏟아 넣으면 SSOT는 다시 거대한 서랍이 된다. 3년 전의 내 생각과 지난주의 내 생각이 같은 무게로 섞여 있는 곳에서는 에이전트도 길을 잃는다.

그래서 역할을 나눴다. 현실은 최대한 많이, 가리지 않고 모은다. SSOT에는 지금 유효한 의미만 남긴다. “이 사람과는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대한다.” “이 원칙은 그 사건 이후로 바뀌었다.”

법정에 비유하면 REAL은 증거 보관실이고 SSOT는 판결문이다. 판결문은 짧다. 대신 언제든 증거로 돌아가 다시 따져 볼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판결은 바뀐다.

REAL
증거
많을수록 좋다. 가리지 않고 모은다. 편집하지 않는다.

SSOT
그 증거로 계속 고쳐 쓰는 자기 모델
지금 유효한 것만 남긴다. 증거가 바뀌면 함께 바뀐다.

적지 않아도 기억되는 삶

이렇게 해 두고 나서 달라진 것은 기록의 양보다 기록의 정직함이었다.

내가 직접 쓰는 기록에는 편집이 들어간다. 나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방식으로 적는다. 잘한 결정은 길게, 부끄러운 장면은 짧게. 자동으로 들어온 기록에는 그 편집이 없다. 회의에서 내가 실제로 한 말, 내가 실제로 미룬 답장, 내가 실제로 화를 낸 시각이 그대로 남는다.

내가 말하는 나와 기록이 보여 주는 나 사이에는 틈이 있었다. 그 틈은 5장에서 다시 다룬다.

좋은 세컨드브레인은 사람이 기억을 입력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현실이 저절로 기억이 되는 시스템이다.

《슈퍼 세컨드브레인》 백서 2장을 나눕니다. 원문: https://hanulssb.tistory.com/3 . 도표는 백서 원본입니다. 여러분은 에이전트가 참고하는 원본 기록과 현재 유효한 판단을 어떻게 구분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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