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원

김도원님의 아티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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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통해 깨달은 PMF보다 중요한 요소

저녁 9시, 농업에 종사하시는 5~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농산물 직거래 앱의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구글밋에 접속하신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전율을 느꼈다.


‘와 이 서비스를 얼마나 사용하고 싶으시길래 이렇게 자발적으로 교육을 들으러 참여하실까? 심지어 익숙하지 않은 구글밋을 사용하면서까지…’ 교육을 진행해주시는 분 또한 불과 몇 달 전 같은 방식으로 서비스 사용법을 교육받은 뒤, 너무 편해졌다며 자발적으로 주변분들께 강의를 진행해주고 계셨다.


서비스의 PMF를 온 몸으로 체감하다.

일전에 참여했던 스타트업 데모데이 행사를 통해 알게되었던 대표님이 입대를 앞두고 있던 나에게 남는 기간동안이라도 잠시 같이 일하며 도와주지않겠냐는 제안을 주셨는데, 그렇게 합류한 농산물 직거래 주문처리 스타트업의 서비스는 텍스트로 이루어진 비정형 주문 데이터를 자동으로 분석해 송장을 처리하고, 재고 및 고객관리까지 해주는 서비스였다.


가볍게 도와드린다는 마음으로 회사에 발을 들인 회사의 환경은 열약했다. 창업 후 3년차였지만 인력은 나와 대표님을 포함한 4명이 전부였고, 운영 측면에서 바라본 회사 내부 프로세스가 전혀 없었으며, 서비스도 외주를 통해 필요한 기능만 급하게 만들었던 상황이라 성능이나 UX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열약한 상황에 비해 서비스는 꽤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커가고 있었다. 플랫폼을 통해 거래되는 직거래 주문건은 n억원을 넘기고 있었고, 이를 통해 확보된 직거래 raw 데이터 또한 수백만건에 달했다.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농업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많은 사람들이 사용중이였고 매일같이 등록되는 주문건과 상품수 또한 서비스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지표가 됐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대표님이 2010년도부터 농산물 직거래 쇼핑몰을 운영하며 만난 수많은 농업인들의 고충과 사고방식을 토대로 정말 필요한 기능만 담아 서비스로 만들었기 때문이였다. 대표님은 ‘대한민국 농업인들이 이런 어려움들을 겪고있는데, 이거 하나로 그들에게 여유와 쉬는 시간을 선사할 수 있다’ 라는 점을 항상 내세우셨고, 그렇게 사회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셨던 점도 너무 본받고싶었다.


PAIN POINT와 SOLUTION이 너무나도 명확했고, 그런 상황에서 직접 청강하며 마주한 어르신들과의 구글밋은 나에게 엄청난 wow moment를 선사했다.


군 입대를 1년 더 미루다.

회사의 아이템을 사용자들이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점이 데이터를 통해 증명되고 있었고, 많은 VC분들 또한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컨택주시고 있었다. 하지만 IT 관련 경험이 적은 대표님과 기획 및 운영 관련 전문성이 없는 상황에서 회사는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한 달간 일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기존에 없던 유형의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매력적이고, 나중에 활용할 수 있는 수많은 사용자 데이터들이 있는게 내가 많은것을 도전해볼 수 있을것같아.’
‘그동안 PM으로서 쌓아온 내 능력을 활용해 이 조직과 서비스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A시리즈 투자유치, 굳이 투자 유치가 아니더라도 내 힘으로 이 조직을 궤도 위로 올려놓으면 전역 후에도 다시 이 팀으로 돌아와 의미있는 일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레버리지를 일으키다.

정확히 재작년 이맘때쯤이였다. 병역특례를 포기하고 21년 입대를 결심했던 내가 입대를 1년 더 늦추게되는 순간이였다. 병역의무를 담보로 했던 의사결정이였기에 엄청나게 동기부여가 된 상태였고, 느슨해질수가 없었다.


최우선적으로 이슈관리 툴을 만들고, 문서화 등을 통해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정의하고 기록하는 등 기본적인 회사 내부 프로세스들을 정립했고, 직거래를 담당하는 안드로이드 앱의 각종 추가기능과 플로우를 만들어 기획, 디자인했다. 또 핵심기능이였던 비정형 주문 데이터의 자동처리를 위한 문자 데이터 분석의 고도화도 개발자분과 함께 진행하며 회사의 내실을 다졌다.


또 외부적으로도 회사를 알리고 좋은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해 회사 및 팀 홍보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진행했고, 이를 기반으로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한 분씩 채용했다. 마지막으로 이 회사를 키워보기 위해 능력있는 인재를 모아야겠다 마음먹었고, 개인 인맥을 활용해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능력있는 개발자 두 분과 ‘멋쟁이사자들’에서 대학팀 운영을 총괄하던 매니저분도 모셔오게 되었다.


내가 그랬듯, 앞선 구글밋 강의를 함께 청강하고나니 다들 눈이 돌아가 신기하다며 이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보자고 흔쾌히 합류해주었다. (물론 쉽지않은 결정이였겠지만 그만큼 다들 진정성 있게 회사의 Mission에 공감해주었다.) 그렇게 팀은 어느새 9명까지 늘어났고, 우리는 많은것을 함께 이룰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늦은시간까지 일하는 경우가 잦아 간접조명으로 이쁘게 꾸며두었던 우리 사무실


야심차게 사람들을 모으고 단계별로 나아가려 노력했지만, 결국 나는 입사 5달만에 대표님으로부터 회사를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게되었다. 그 원인은 나와 대표님 사이의 일하는 방식, 더 나아가 사고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식이 너무 달라 그 간격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정확히는 나와 팀원들, 그리고 대표님과의 차이로 인해 그랬다.


회사의 아이템과 PMF, 그리고 함께 나아갈 능력있는 팀원들이 있다면 탄탄대로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였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떠나 우리가 함께 이룬 조직의 Fit, 추구하는 문화가 하나의 같은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 팀원들은 우리가 정한 기한에 맞춰 일단 기능을 준비, 출시하고 추후 사용자들의 반응에 따라 수정해가자는 방향을 추구했지만 대표님은 사용성을 위해 완벽한 출시를 원했고, 이로 인해 일정이 계속 밀리고 무한한 수정이 반복되는 일이 잦았다.


또 서비스의 기획안이나 디자인, 교육 커리큘럼 등 각 인원들이 담당한 모든 일들에 대해 디테일하게 교정해주곤했는데, 그런 의사결정들의 기준이 ‘인생을 살아보니까 내가 나이를 많이 먹은만큼 경험이 많잖아. 농업쪽에서도 경험이 내가 제일 많으니 일단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 였다. 그렇게 나와 팀원들의 주장이 빈번히 묵살되었다.


그 외 대표님의 팀원들에 대한 평가 및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있어서도 문제가 지속되었고, 결국 갈등이 심화되어 해소되지 않다가 회사 내부 분위기가 대표님과 나머지 팀원의 대립구도로 어느순간 바뀌게 되버린것이 큰 문제였다. 높은 목표를 가지고 합류했고, 하나씩 해결해가야 할 외부의 문제들이 정말 많았는데, 이를 위해 다같이 으쌰으쌰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분쟁이 지속되는것이 너무 마음아팠다.


‘내가 이상적으로 추구했던 높은 목표를 이루기에는 대표님과 나의 성향이 너무나도 다르구나…’ 생각했고, 그렇게 나가달라는 요청에 망설임 없이 퇴사를 하게 되었다.


실패를 통해 배우다.

원래 스스로 멘탈이 강하다고 믿는 편이기에 당시에도 애써 괜찮은척 하려 했지만 굉장히 우울하고 슬펐었다. 큰 결심을 통해 입대까지 미루고 합류한 회사였는데, 보다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짧은 시간 안에 성급히 결정을 내린것에 대해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마음먹을 수 있었다. 또 무엇보다 내가 누구와 함께 일하는지, 또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무엇을 위해 왜 일하는지를 알아야 이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지 않겠구나 교훈을 얻어갈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마음이 아픈건 당시 회사로 끌어들였던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다. 당시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내가 데려온 팀원들도 모두 퇴사했었는데, 말로는 ‘도원이 너 하나만 보고 이런 선택을 한게 아니니까 괜찮다.’ 라고 위로해주었지만 멀쩡히 회사 잘 다니다가 큰 마음먹고 이직했는데, 또 다시 이직준비를 하게되버린 상황이 나로 인해 발생했던거같아 정말 미안했다. (시간 지나 정말 괜찮다고 진정으로 나를 위로해주고, 또 토스와 카카오라는 좋은 회사에서 멋있게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내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전역이 다가오면서 슬슬 사회로 돌아가면 어떤 회사에 어떤 포지션으로 협업에 복귀할지를 고민중이다. 앞선 실패를 바탕으로 Building In Public 같은 조직과 팀의 스토리텔링을 열심히 찾아보고있고, 또 나 스스로도 나라는 사람을 알리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회사 합류를 고민중일때, 특히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어떤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고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또 그 문화를 실천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있는지 등과 같은 정보를 꼭 확인해보고 서로를 잘 이해하는것이 회사의 사업을 이해하고 서비스의 PMF를 찾는것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임을 잘 기억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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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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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영하 10도. 정말 감사하다.


누군가가 텐트 안으로 들어와서 날 흔들며 깨웠다. 분명 저녁 9시에 누웠는데, 너무 추워서 30분 자고 10분 깨어있고를 반복하던 중이였다. 옷을 다섯 겹 껴입고 두 개의 침낭 속에 핫팩도 다섯개씩 깔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얼음같은 군화를 신고 텐트 바깥으로 나와 날 깨운사람과 교대를 했는데, 텐트에 걸려있는 온도계는 영하 1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겨울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2박 3일간 진행되는 혹한기 훈련, 그리고 밤에 경계근무를 서야하는 불침번. 제일 안좋은 새벽 두 시 부터 네시까지의 두시간이 내가 맡게된 시간대였다.


20KG 배낭을 매고 20KM를 걷는것도 견딜만했고, 매 끼니 물로 끓여먹는 똑같은 전투식량도 먹을만 했으며, 생리현상을 참아야하고 씻지 못하는것도 괜찮았다.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 바람이 몰아치는 바깥에 그냥 서있는건 정말 죽을 맛이였다. 시간이 흐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기 싫다.’ ‘너무 춥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해야하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찼다.


가만히 서있자니 너무 춥고 발가락의 감각이 사라져서 텐트가 쳐진 평야를 빙글빙글 돌았다. ‘이 시간에 내 친구들은 따뜻한 집에서 자고 있을텐데…’ ‘아니 애초에 군대도 안가고 회사에서 일하는 애들도 많고. 너무 부럽다.’ ‘나도 그럴 수 있었는데. 왜 그 때 그런 선택을 해서 지금 이 고생을 해야하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이어가다가, 문득 이 시간대에 깨어있는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서울이니까 영하 10도에서 끝나지, 누군가는 최전방 강원도에서 영하 20도에서 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군대의 누군가는 이 짓을 매일같이 하고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군대에서 하기 싫은것을 억지로 해야하는것이 너무 싫었는데, 그 ‘싫음’의 정도가 절대적으로 나보다 더 한 사람들이 많겠다는 생각을 하니 ‘내가 이 정도 환경에서 힘들 수 있는것에 감사해야하지 않나…?’ 되뇌었다.


사실 군생활을 하며 ‘사회에서의 삶이 정말 감사했던거구나’ 를 정말 많이 느꼈었다. 뭐만 하면 블루스크린 뜨면서 꺼지는 PC를 사용하면서 사회에서는 당연하게 사용했던 맥북이 너무 그리웠다. 애초에 맥북을 사용하는게 당연한거라고 여기게 된 점도 내가 IT 업계에 관심사를 가지고 비교적 일찍 발을 들여놓으며 많은것을 배울 수 있었기에 그렇다는 점도 알게되었다.


그렇게 내 삶의 배경과 내가 속한 분야, 그리고 나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나와 관계를 맺은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감사한 환경에서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더욱 진정성 있게 살아야겠구나. 라는 다짐을 추위 속에서 했었다.


너무나도 하기 싫었던 혹한기 훈련과 불침번이였지만, 이를 통해 감사함을 느끼고 남은 6개월의 군 생활도 전역 후 더욱 성숙해져있을 나를 떠올리며 잘 마무리해보려 한다. 군대에 끌려왔지만 많은것을 배워갈 수 있음에 만족하고, 역시 뭐든간에 다양한 경험들은 깨달음과 교훈을 주는것같다.


각자의 환경에서 살아가며 지금 주어진것에 감사해하고 있는지 한 번씩 스스로 물어보면 좋을것같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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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PM이 입대한 뒤 어떤 일을 겪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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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원

김도원

안 가도 됐던 군대를 온 나. 후회 안 해? 🤔

‘미쳤냐 진짜 남들은 군대 안가려고 별 짓 다하는데 도대체 왜???‘


박재욱 쏘카 대표, 김동신 sendbird 대표, 카카오를 창업한 김범수 의장 등. 이들의 공통점은 ‘병역특례(병특)’ 제도를 통해 18개월의 군 복무 대신 4~5주의 기초 군사훈련만 받고 현업에서 각자의 삶에 열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박재욱 대표의 경우 병특을 통해 만난 지인들과 비트윈을 창업했었다.


복무 기간이 34개월로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업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이점으로 인해 수많은 IT 인재들이 병특제도를 통해 실력과 꿈, 비전을 쌓아가고 있으며 내 주변에도 토스나 헬로우봇 등 유망한 스타트업에서 대체복무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무한 외출 및 외박이 보장되는 강남 생활관 …😮 월급도 n배…)


나 또한 이 병특 제도를 통해 군 부대에서 복무하지 않고 현업에서의 삶을 이어갈 기회가 있었다. 저번 글에서 언급한, 당시 재직중이였던 스타트업이 병역특례 지정 업체였고, 특성화고 졸업 등 각종 자격요건이 우연히 딱딱 맞아떨어졌었다. 이번년도부터는 대학생의 병특이 제도적으로 금지되었는데, 당시엔 이런 규정이 변경되기 이전이였다. 그렇게 나도 절차에 맞게 지원했고, 6개월간의 기다림 끝에 내 이름으로 된 병특 TO를 받을 수 있었다.


병특. 하기로 했는데, 안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병특 TO를 포기하고 medium에 기고했던 글의 타이틀


그런데 두둥탁! 스스로 군대가겠다고 마음먹고 병특을 포기함과 동시에 당시 다녔던 스타트업을 나오기로 결정했다. 당시 회사 구성원들과 문제가 있었던것도 아니였고, 병특에 실패한것도 아니였다.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은 무수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미쳤냐 진짜 남들은 군대 안가려고 별 짓 다하는데 도대체 왜???'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성장’ 과 '창업'을 위해서였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뚜렷한 목적은 아니긴했지만, ‘언젠간 창업해보고싶다’는 바램이 있었다. 창업을 위해서는 ‘객관적인 역량’과 ‘시장의 상황 (타이밍)을 캐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병특을 하게되면 이 두가지를 모두 놓치게 될것같아 걱정됐다.


당시 재직하던 스타트업에서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지금 내가 여기서 해볼 수 있는건 다 해본거같은데?’ 라는 생각이 컸다. 병특을 전환점으로 삼기에는 내가 맡은 Role이 모호했고, 다른 Role을 맡기에는 전문지식이 부족해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물론 병특 시작 이후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방법 등이 있었지만 6개월이라는 기간이 지나야 가능했기에 그 기간동안 억지로 뭐라도 하기엔 나와 회사 모두에게 마이너스라고 판단했다. 조금 이기적으로 생각해서 6개월동안 수동적으로 요구받는 일만 하고 이직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회사에 대한 애착이 컸기에 짧은 기간 뒤에 바로 이직할 사람이 병특이라는 큰 베네핏을 가져가는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병특하면서 회사일은 일대로 하고 따로 추가적으로 공부하다가 나중에 이직해! 맘 편하게 생각하면되지’ 라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한소리 들었고, 실제로도 그냥 그렇게 할까 생각했지만 34개월의 복무기간이 결정적인 장애물이였다. ‘내가 일하다가 엄청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창업하고싶으면… 병특 기간동안에는 결국 못하는거 아니야?’ 라는 단순한 생각이였다. 창업은 하고싶다고 하는것이 아니라 시장의 상황에 맞게, 사용자의 니즈에 맞춰 빠르게 실행하고 수정해나가는것이 관건임을 깨닳은 현 시점에서 돌아보면 정말 옳은 생각이였다.


생산적인 삶 덕분에 빠르게 지나가는 군생활

‘병특 포기한거… 후회 안하나요?’ 물어보면 오히려 ‘최고의 결정이였다’고 말한다.


10월은 내 군생활의 50%를 채우게 되는 달이다. 병특중인 친구들과 연락하다보면 병특 안한거 후회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안하길 잘한거같다고 대답한다.개인적으로 정말 빠르게 시간이 흘러간다고 느껴지는데, 삶의 태도가 변하며 생산성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는 넘치는게 시간이였기에 남는시간에 친구들도 자주 만났고, 개인 여가에 시간을 많이 썼었다. ‘생산적인 일은 회사에서 충분히 열심히 하니까~’ 라는 마인드로 비교적 느슨하게 살았다.


예전에도 글을 통해 언급했지만, 군대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개인시간은 정말 적은 편이다. 처음에는 남는 시간에 아무생각없이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기도 했는데, 잠을 잘 때 떠올려보니 ‘그래서 결국 오늘은 뭐 한거지?’ 라는 생각과 함께 무기력감에 자주 빠졌다.


그렇게 책을 잡는것으로 시작해서 전역 이후 삶의 목표를 설정했고, 강의도 보고, 나라는 사람의 성향이나 가치관을 설명하고 정리하는 등 ‘여기서 이거라도 안하면 난 도태되고 나락에 빠진다’는 마인드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나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어떤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가 명확해져 사회에 있을 때 보다 훨씬 생산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마음가짐과 습관을 전역 후에도 가져가야할텐데… ㅎ 그럴 수 있기 위해 더 노력해야할것같다.

(노력했던 과정이 궁금하다면?)



군대를 통해 연결되는 소중한 인연

입대 이후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킹 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병특을 안하길 잘했다고 생각되는 또 다른 이유는 군대를 통해 수많은 인연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디스콰이엇 커뮤니티와 개인 뉴스레터 등을 통해 내 이야기를 글로 적어 올리고 있는데, 군대라는 공통점이 있거나 창업에 열의가 있는 사람들과 인스타그램이나 이메일을 통해 커피챗을 하고 네트워킹할 수 있어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군 부대에서는 IT나 창업 관련 관심사가 있는 구성원이 없다시피 해서 이런 만남들이 더욱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외에도 내가 구독해서 읽던 뉴스레터의 에디터분을 같은 부대에서 우연히 알게되어 너무나도 신기하고 감사해 같이 부대 카페에서 창업과 스타트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가장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인연은 관점 디자이너로 활동중이신 카카오 창립 멤버분을 부대에서 뵙게된 점이다. 직업군인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러 오셨는데, 내가 맡은 보직이 이런 행사 지원이다보니 우연히 유일한 병사 신분으로 청강할 수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디자인하라’ 는 주제의 강연 내용이 좋았던것은 둘째치고, 군 간부분들앞에서 ‘장삐쭈를 아시냐고. 꼭 보셔야한다’고 언급하시는 등 세상의 트렌드를 정말 잘 알고계셨다. IT업계 사람의 사고 방식과 언행이 강연에 속속이 녹아있었고 이를 너무나도 오랜만에 접해 너무나도 기분좋고 행복했다. 그렇게 강연이 끝남과 동시에 나가는 길까지 부대 지휘관인 여단장님이 디자이너님을 배웅해주시는 중간에 과감히 조심스럽게(?) 끼어들어 강연 내용이 너무 좋아 꼭 감사인사를 잠시라도 드리고 싶었다고 말씀드렸고, 연락처까지 받을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피치 느낌으로 간단한 소개와 함께 감사인사를 문자로 남겼더니, 그날 저녁 카카오 모빌리티 관계자분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에게 전화를 바꿔주며 인사말을 나눌 수 있게까지 해주시는 특별한 경험까지 할 수 있었는데, 이 모든 경험이 내가 병특을 했다면 사라졌을뻔한 일들이다.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서 무엇을 하던간에, 명확한 동기부여와 마음가짐이 잘 세팅되어있다면 높은 목표를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군대에서의 1년 6개월이 마냥 좋은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군대라는 환경을 통해 내 스스로를 돌아보며 창업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며 의미있는 경험들을 해올 수 있었음에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의 남은 50%도 지금처럼 점진적으로 꾸준히 이어나갈것이다.


결론 : 안 가도 됐던 군대를 온 나. 후회 절대 안한다! ❤️

제 이야기가 재밌으셨다면? 여기에서 더 읽어볼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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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원

김도원

여기서 자라구요…? 주 80시간 근무요? 이게 스타트업?

아침에 출근했더니 다들 이렇게 자고있었다.


2020년 내 삶을 요약하자면 이 글의 제목이 될 것 같다. 20년도 마포구 상암동의 한 스타트업 사무실은 나와 팀원들의 집이였다. 서비스 출시 기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까지 일하다가 회사 구석에 마련된 2층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9시에 일어나 공유 킥보드를 타고 10분 걸리는 헬스장에 가서 샤워하고 다시 돌아와 일하는게 일상이였다. 


관심좀 받겠다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던 시프티 근무기록


그렇게 내 근퇴기록에는 주 85시간이라는 시간이 찍혔고, 인스타 스토리에 이를 올리자 무수한 관심이 쏟아졌다. ‘일 한 만큼 돈은 받냐?’ ‘몸 챙기면서 해라’ ‘병난다’ 등 의 질문으로 시작해, 내가 회사에서 먹고 자고 씻고 하는 내용을 언급하자 ’무슨 이상한 회사를 들어갔길래 그렇게 갇혀사냐… 그 돈 받으면서… 당장 탈출해라’ 같은 답변을 들었다. 주변에서 나에게 개인적인 신경을 써주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아 고마웠고, 충분히 친구들의 그런 반응이 이해가 갔다. 내 회사도 아니고, 스톡옵션이 있던것도 아니고. 돈도 많이 안줬고. 나는 당시에 왜 그렇게 살았던걸까? 


회사 라운지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스타트업도 보고, 쪽잠도 잤었다.


역설적이게도 저렇게 회사에서 살면서 나는 너무나도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아직도 이 때를 회상하면 가슴이 설레고 더 잘 하지 못했던것에 아쉽다 🥺) 업무에 열중했던 절대적인 시간 자체가 많기는 했지만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았다. 가끔 약속이 있을 땐 자유롭게 나갔다가 회사로 돌아와 해야할 일을 했고, 점심시간이 지나 아무도 없는 헬스장에서 쾌적하게 운동도 하고. 주중에 놀러가고싶은 날에는 하루 쉬고 주말에 나와 일했다.


이런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했던건 공통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것을 쏟아부은 최고의 팀원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10명으로 구성되어있던 우리 팀은 특별한 문화가 없었음에도 다함께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슴 깊숙히 진심이였다. 우리에게 중요한것은 ‘아침 9시까지 출근하기’나 ‘하루 8시간의 근무시간 채우기’가 아니였다. ‘우리가 목표하는 서비스를 사용자에게 의미있게 전해주기’가 목표였다. 이를 간절히 이루고싶었기에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회사에 오래 머물렀고, 회사에서 살았다.


서울역 스파크플러스 시절의 사무실


서비스 런칭이나 긍정적인 지표도 즐거웠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하고싶어하는 일을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열심히 했던 과정 자체가 보상이였다. 무엇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남들 쉬는 늦은 새벽이나 주말에 일한 대가로 팀원들끼리 모여 남들 일할 때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인기 카페를 여유롭게 즐기고, 차가 하나도 안막히는 고속도로를 달려 바다를 보러가는 등 자유로움을 느낄 때면 더 할 나위없이 행복했다.

Work-life-balance가 아닌 Work-is-life 가 진정한 행복이고, 스타트업 정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저번 글에서 언급했듯, 최근 군대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내 삶에서 목표해야하는 제일 중요한 한가지가 무엇인가? 내 One Thing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처음 생각했던 목표는 ‘객관적인 능력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공부하는것’ 이였는데 그 이유는 전역 직후 현업으로 돌아가, 커리어에 당당한 한 줄로 내세울 수 있는, 어느정도 성장궤도에 올라와있고 규모도 있는 회사를 다니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역 직후 좋은 회사 다니기를 단기적인 목표로 삼아 한창 데이터 관련 공부에 매진했다가 문득 ‘좋은 회사 들어가면… 그 다음은 뭐지?’ 라고 생각해봤다. 좋은 회사를 가서 성장하고 굵직한 커리어를 한 줄 쌓고나면, 20년도의 내가 그랬던것처럼 자유롭게 살면서 행복을 극대화하여 살 수 있는 회사를 또 찾게될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가 좋은 회사를 다니는게 아닌 ‘자유롭게 살기’였음을 깨달았고, 머릿속에는 ‘굳이 그렇게 돌아서 갈 필요가 있을까..?’ ‘나 전역하면 취업이 아니라… 창업해야겠는데?’ 라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상암동 DMC 사옥에서 바라본 노을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물론 단순히 자유롭게 살고싶어! 라는 이유만으로 창업을 결심한건 아니였다. 여러 초기 스타트업을 거치며 각종 지원사업과 프로그램, 서비스 운영부터 서비스 기획, 사업 기획, UX 디자인, HR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다는 점, 스타트업이라는 가면을 쓴 밑바닥에서 실패도 해봤다는 점, 또 업계를 살펴보며 반드시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고,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서 예전부터 창업을 고민하고 시도해봤던 나였다. 여기서 ‘자유’라는 가치는 내 모든 정신과 행동을 창업에 몰두하게 하는 확신을 주었고, 애매하게 창업해볼까? 로 머물러있던 내 생각을 바로잡아주었다.


21년도에 20년도의 나를 돌아봤었을때는 당시 엄청난 시간과 노력, 열정을 투자했던것에 비해 성과가 뛰어나지 않았다는점, 명확한 데이터로 남기지 못했다는 점 등 여러 부분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내 삶의 목적을 실천하던 너무나도 값진 순간들이였고, 창업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줬던 최고의 경험이였다.


팀원들이랑 일본 여행가서 기모노 입고 건강검진 가서 한 장 찰칵


최근 당시 다녔던 회사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발굴하여 피벗한 서비스가 현재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보다 역시 그때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 그렇게 20년도의 기억을 떠올리며, 작지만 확고한 목표를 실행으로 옮긴 서비스를 런칭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요즘이다. 뜻이 맞는 미래의 소중한 팀원들과 함께 일과 삶의 경계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고객 문제를 해결하는 상상을 하며, 오늘도 군대 싸이버 지식방에 앉아 꿈을 준비하고 있다.


결론 : 회사에서 자고, 주 80시간 일하고. 이게 스타트업이지! Work is lif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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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원

김도원

해야할 것과 하고싶은것이 너무 많고, 시간은 부족할 때

다 조지고 올게!!! 그러나 늘 조져지는건 나였다...

저번 글을 작성했었을때 뉴스레터같은 글 작성보다는 나라는 사람의 객관적인 능력치를 키우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는것에 집중해야겠다고 목표했었기에 글쓰기 자체를 신경쓰지 않고 지냈던것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글을 쓰게된 이유는 그동안 겪었던 혼자만의 고민을 공유보고 싶어졌기에 끄적이게되었다.


11개월정도 남은 군생활이 끝나자마자 현업으로 돌아가서 역량을 펼칠 수 있게끔 공부하는것을 목표로한 뒤, 구체적으로 공부하자고 마음먹은 내용은 위와 같았고, 동기부여 200%인 상태였기에 열심히, 또 꾸준히 군대라는 환경에서 내 할 일들을 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사실은 바로 이곳의 환경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였다. 이전 뉴스레터에서도 언급했지만 내가 최대한 쥐어짜내서 만들어낼 수 있던 개인시간은 6시간이였고, 실제로 나에게 온전히 투자할 수 있던 시간은 3~4시간 수준이였다. 사실 6시간 자체도 내가 계획했던 모든 공부를 의미있게 해가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였다.


뿐만아니라 함께 일했던 전 직장동료들이나 학교 친구들로부터 각종 프로젝트를 도와달라거나 특정 부분에 함께하자고 제안을 받기도 했고, 나 또한 관심 분야에 맞는 각종 온라인 컨퍼런스나 창업 강의에 눈이가는 등 내가 계획했던것만 온전히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자꾸만 발생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공부할것에 집중했어야지, 굳이 또 눈을 돌리고 다른 일들을 했던 나의 잘못이였다. 그렇지만 나를 찾는, 어떻게 보면 고마운 사람들을 모르는척하고 싶지 않았고, 소중한 기회나 네트워킹으로 이어질 수 있는 컨퍼런스 및 강의도 놓치고싶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해야할것도 너무 많고, 하고싶은것도 너무 많은데 시간은 너무 부족한 상황에서 이도저도 끝내지 못하고 하루하루 흐지부지 뭘 한지도 모르겠는 채로 시간을 허비하거나 머릿속으로 뭘 먼저 해야할까?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한채 고민하고 힘겨워하는 나날들만 잦아졌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타이밍 좋게 내 군생활 중 첫 휴가가 7월에 찾아왔었고, 신나게 놀고 친구들을 만나면서 머리아팠던 스트레스를 떨쳐냄과 동시에 정신차리고 내가 겪고있는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주변 지인들에게 나의 상황과 문제점을 공유하고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질문하는것이였는데 그렇게 전 직장동료분과의 식사에서 책 한 권을 추천받았다.



일전에 디스콰이엇 CEO인 박현솔님이 공유해주셨던 책 추천 목록에도 나와있던 책이길래 조금 놀랐는데, 책의 이름은 ‘The ONE THING’으로, 명확한 Goal을 세워두고 그 Goal을 끝낼때까지는 그 하나에만 모든 정신을 쏟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였다.


“prioritize everything and put all your energy into accomplishing the most important thing.”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정하라.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우선순위와 에너지를 그 한가지에만 쏟아부어라.

책을 읽으면서 나를 대입해봤는데, 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대한 모든것을 질적으로, 양적으로 다 가져가려고 했고, 그렇기에 목표 달성에 다가가는것이 아닌 물레방아만 돌리고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것은 목표 달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것이 무엇인가? 였고. 결국 ‘스스로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높이기 위한’ 나의 One Thing이 무엇인지를 찾아야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책은 todolist를 극혐했다.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반드시 해야하는것만 리스트업하고 나머지 쓰잘때기 없는것들은 과감히 우선순위에서 없애라고 했으며, 이렇게 정리한 해야하는것들 중에서도 반드시 해야하는, 단 하나만의 "The Essential One"을 남기라고 했다.


사실 이 One Thing을 찾고 그 한가지에만 집중하는것은 쉽지 않았다. 내 One Thing을 찾는다는 관점에서 데이터나 UX 등 어떤 한가지에 집중해 공부를 해야할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고, One Thing에 집중한다는 측면에는 공부 이외의 것인 포트폴리오 정리나 지인들의 도움 요청 등을 포기했어야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이런 부분들에 관해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Extraordinary results require focused attention and time. Success is about doing the right thing, not about doing everything right. 우리가 관심과 시간을 집중시킬 때 비로소 놀라운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성공은 모든것을 옳게 하는것이 아닌, 옳은 일을 하는것에 달려있다.

책에서는 나머지를 포기하라고 한적이 없다. 다만 ‘놀라운 성과’를 얻고싶다면 한가지에 집중하라고 했을 뿐이였다. 나 또한 하고싶은것을 다 해도 상관없었겠지만, 군대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내가 목표하는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선 어느정도 선택과 집중을 했어야했던것이다. 책을 읽으며 수많은 wow moment를 겪은 나는 내 One Thing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 위해 생활습관을 하나씩 바꿔나갔다.



가장 먼저 내가 사용하고있던 일정관리 앱을 todomate에서 노션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todomate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할 일을 체크할 수 있는, 다른 투두앱들과 같은 기능을 제공하지만 친구들과 이를 공유하고 반응할 수 있게 만들어준 버전이다.


지인들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음은 물론 나 또한 내가 어떤 일들을 하고있고 해야하는지 공유할 수 있어 Productive한 SNS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매길 수 없고, 프로젝트별 전체 진행상황을 알 수 없다는점이 내 할일 관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없게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노션으로 갈아타기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내 One Thing을 달성하기 위해 해야하는 일을 곧 프로젝트로 정의하여 이를 정리하는것이였다. 대시보드 페이지에 내가 집중해야할 프로젝트 리스트들을 최상단에 둠으로서 항상 내가 뭘 중요하게 생각해야하는지 되뇌일 수 있게했고, 여기에 우선순위와 태그를 주어 구분지었다.



프로젝트 목록의 하단에는 이슈 목록을 표시했다. 이슈는 각 프로젝트 안에 종속되어있는 구조로, 해당 프로젝트를 다 끝내기 위해 내가 실질적으로 해야하는 일을 정리했다. 예시로 포트폴리오라는 프로젝트는 내 포트폴리오 사이트나 블로그 글들을 관리, 구축하는 프로젝트이고 ‘The One Thing 글 마무리하기’는 이 프로젝트에 속한, 내가 지금 쓰고있는 글을 지칭하는 이슈이다.



대시보드의 프로젝트 리스트에 올라와있는 것 중 한가지인 FastVentures Textbook 프로젝트이다. 프로젝트를 클릭하면 해당 프로젝트의 대시보드가 표시되는데, 프로젝트에 종속된 이슈들만 볼 수 있게끔 하여 특정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이나 해야할 일들을 볼 수 있게했다.



프로젝트의 좌측에는 메뉴를 두었는데, 해당 프로젝트의 이슈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끔 정리했다. 위 이미지의 경우 내가 수강중인 창업강좌인 FastVentures Textbook의 각 회차별 강의노트를 볼 수 있는 상태이다.


위같은 과정을 겪으며 나는 내 삶의 One Thing을 찾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우선순위 등을 정하며 부족한 시간속에서 차근차근 한 박자씩 나아갈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또 이를 찾는 과정중에서 ‘나라는 사람의 객관적인 실력을 키운다’ 라는것이 내 진정한 One Thing이 아니였다는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에 관한 이야기는 추후 또 글로 적어보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있는것도 바뀌어버린 내 One Thing에 부합하는 일 중 한가지라고 생각한다. 🙂


(원래 친근한 느낌을 주고싶어서 ‘~했어요’ ‘~합니다’ 의 어투로 글을 썼었는데 시간을 아끼고 기록을 남기는것에 의의를 두기위해 글 작성톤을 ‘~다’로 바꿨어요… 이해해주실거죠? 😢 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싶으시다면 제 웹사이트에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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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원

김도원

군대에서 Productive하게 살아가기(란 쉽지 않더라구요)

군대라는 통제된 환경속에서 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고, 그 속에서 저는 어떻게 저만의 계획을 세워서 살아가고 있는지! 공유해보려합니다 🙂

 

🚩 군 생활에서 목표하고 살아가는 것

제 기준에서 ‘이정도면 군생활 잘 하고있지!’ 라고 판단하기 위해 세운 목표인데요,

  1. 군인으로서 주어지는 업무(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잘하기.
  2. 나라는 사람의 객관적인 능력치를 성장시키기 위해 공부하기.
  3. 전역 후 바로 현업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관련 뉴스 및 소식을 꾸준히 접하기.

 

이 세가지 목표을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것인가?’ 를 정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군인으로서 주어지는 업무(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잘하기.

  • 효율적인 업무 처리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신경쓰기
  • 개인시간을 할애해서라도 미래의 시간을 단축해주는 자동화 작업하기
  • 후술할 2번과 3번을 이유로 소홀해하지 않기.


2. 나라는 사람의 객관적인 능력치를 성장시키기 위해 공부하기

  •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UX/UI 관련 능력 키우기
  • 데이터 관련 가공능력 키우기 (SQL, Basic Python, Tableau 등)
  • IT, 매니징, 경영,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책 읽기
  • 영어실력 유지에 신경쓰기 

 

3. 전역 후 바로 현업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관련 뉴스 및 소식을 꾸준히 접하기. 

  • IT 트렌드 팔로업을 위한 꾸준한 뉴스(국문, 영문) 읽기. 
  • 스타트업 투자 소식 및 창업 스토리 접하기.
  • 다양한 서비스 사용해보고 UX 경험기 및 ideation 남기기.

 

🌄 군생활에서 나만의 Boundary 만들기

앞서 군생활의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떠올려본 리스트를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을 찾기 위해 군대에서 흘러가는 저의 하루를 정리해봤습니다. 그렇게 다음과 같이 저만의 시간대를 몇가지 정할 수 있게되었는데요! (맨 앞에 있는 사진의 초록색 영역이 해당 시간대에요!)

 

아침식사 시간

아침식사 후 일과 시작 전까지 4~50분 정도

  • 수면보충 (하루 일과를 잘 마무리하기 위한 충전의 시간)
  • IT 뉴스 읽기 (싸이버지식방 PC 활용)

 

점심식사 시간

점심식사 후 1시간 정도

  • IT 뉴스 읽기 + 스타트업 관련 소식 찾아보기 (싸이버지식방 PC와 뉴스레터 활용)

 

저녁식사 + 개인정비

저녁식사 후 보장받을 수 있는 개인시간 3시간 정도

  • 운동 (체력단련)
  • 온라인 강의 시청 (UI / UX 및 데이터 관련)
  • 뉴스레터 등 글 작성

 

공부연등

취침 이후 시간에 1시간 정도 보장받을 수 있는 공부시간

  • IT관련 책 읽기
  • 온라인 강의 시청 (UI / UX 및 데이터 관련)

 

독서연등

공부연등 시간 이후 몰래(?) 생활관에서 책읽는 시간 40분

  • 자기계발 관련 책 읽기

 


🤤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더라구요 (하하)

이렇게 계획을 세워보면 군 생활 속에서 저에게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총 6시간 정도나 확보할 수 있었는데요! 계획한것에 비해 실제로 하루에 투자하게 되는 시간은 3분의 2 수준에 머무른적이 많았던것같습니다 😭

 

그 이유로는…

  • 부대 일정 (최근의 경우 유격훈련)의 영향으로 시간이 변동되는 경우가 잦다
  • 함께 생활하는 간부님들과 병사들과의 교류 (선임이 노래방 가서 아이브의 러브다이브 불러달라 그럴 때...) 를 위해
  • 계힉은 어느정도 구체적으로 세웠는데, 해야할 것과 하고싶은 것이 너무 많아 우선순위 정리가 안돼서 어느 하나 집중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될때가 잦다.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계를 하면서 스스로를 뒤돌아보니 ‘일반인시절에 사회생활 할 때와 비교해보면 막상 주어진 시간은 일반 사회와 크게 다를것이 없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사회나 군대나 열심히 사는것은 결국 제 의지에 달려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정말 신기하면서도 감사(?)했던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저의 의지가 부족해서 할 일을 미루고 한 적은 없었다는 점이였습니다. 스스로의 성장과 꿈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도 강한 지금의 마인드를 유지하면서 앞으로도 저의 루틴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려합니다. 😉

 

그래서 앞으로는?

  • 구체적인 계획에 비해 부족한 실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해야할것과 하고싶은것을 체계적으로 분리하여 전반적으로 골고루 공부하려해요 ㅎㅎ


제 이야기가 재밌으셨다면? 여기에서 더 읽어볼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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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원

김도원

군대에서 뉴스레터를 쓰고있는 이유

안녕하세요! 최근 디스콰이엇을 알게되어 열심히 구경중인 군인...입니다. 디스콰이엇에서 여러 IT 메이커분들의 이야기를 구경하고, 다양한 프로덕트를 알게되면서 즐겁게 눈팅하는중이였습니다 ㅎㅎ 저는 입대 전 약 2년간 스타트업에서 PM으로 일하다가 이번 22년 1월에 입대를 하게되었습니다.


군 입대 이후 느낀점은 정말 수도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와닿았던것은 ‘자유롭지 못한 제한된 삶’ 인것같습니다. 단체생활의 특성으로 인해 일정도 자주 바뀌고, 개인 시간이 주중에는 2시간정도밖에 보장되지 않아서 주말이 정말 황금같이 느껴지는데요, 제한되는 군대에서도 '특전사가 되버린 PM'이라는 뉴스레터를 작성하려 했던 이유와 그 과정에서 제가 겪은 심리적 어려움과 원인 등을 한 번 이야기해보려해요.


😗 뉴스레터 작성 이전, 그러니까 입대 그 전에는?

저는 19년도에 IT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했는데요, 대학이라는 울타리는 저에게 여러모로 작게 느껴졌습니다. 특성화고를 재학하며 참여했던 여러 대회에서 쌓을 수 있었던 미약한 실력과 네트워크를 활용해보기 위해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며 대학 바깥세상으로 지속적으로 시선을 돌리게되었습니다.

그렇게 합류했던 초기 스타트업 팀에서 준비했던 서비스는 KOTRA의 해외 스타트업 진출 사업에 선정되어 미국 텍사스에 방문해 영문 피칭도 진행하고, SXSW 행사에서 부스활동도 진행하는 등 엄청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20년도에는 코로나로 시작된 펜데믹을 활용(?)하여 낮에는 스타트업에서 업무를 진행하고 밤에는 녹화된 비대면 강의를 수강하면서 본격적인 기획 / PM 업무를 진행했는데요, 당시 제가 PO로서 발굴했던 서비스가 현재까지도 회사의 주력 아이템으로 굴러가고있는것을 생각하면 많은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것같습니다.

이렇게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쌓다보니, 대학의 과와 동아리에서 형성되는 커뮤니티와 수업을 통해 공부하게되는 과목들보다 현업에서 만나게 되는 업계 종사자들, 경험을 통해 피부로 배우게 되는 실무 및 필요성으로 인해 직접 찾아서 공부하게되는 내용들이 훨씬 더 의미있게 다가왔고 제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학교보다 현업에서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휴학을 한 상태에서 병역특례 편입을 준비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결국 22년 1월에 입대하게되었습니다.


🔬 입대 후 뒤돌아본 나의 객관적인 모습은?

군대… 를 좋아서 가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 학업과 현업에서 나름 열심히 달려왔었기에 군 복무 기간동안 스스로를 재정비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계획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뒤돌아보았을 때 느낀점은 PM으로서 소통하는 방법과 조직 및 문화의 중요성, 그리고 프로덕트의 시작부터 런칭 및 운영까지 필요한 절차를 잘 알게되었다는 점이였습니다.

하지만 과연 큰 규모의 회사들에서도 지금까지 내가 그래왔던것처럼 팀의 중심을 잡고 길을 제시할 수 있는가?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까? 전문적인 스킬들을 많이 갖추고 있는가? 라는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정한 군복무 기간동안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는데요.

  1. 나라는 사람의 객관적인 능력치를 성장시키기 위해 공부하자. (실무 관련 강의 시청, 독서)
  2. 전역 후 바로 현업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관련 뉴스 및 소식을 꾸준히 접하자.


❓ '특전사가 된 PM 뉴스레터'를 왜 하는지?

계획한 일을 꾸준히 하기위해 시스템화 하여 반 강제적으로 ‘할 수 밖에 없게 만들라.’ 는 내용을 입대 전 천인우의 ‘브레이킹 루틴’이라는 책을 통해 읽었었는데요, 뉴스레터는 이런 제 목표를 정말 잘 실행하고 있는가? 를 잘 판단하기 위해 설정한 시스템이였습니다.

뉴스레터를 작성한다 = ‘간략히 내가 공부한 내용을 하나의 오픈된 커뮤니티에 공개하는것이기에 부담을 크게 가질 필요가 없다.’ 반면에 뉴스레터를 작성하지 않는다 = ‘군대에서 제공받는 휴식, 여유시간에 목표를 잊고 지나치게 놀았다.’ 로 스스로 정했던것입니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주객이 전도되어서, 제가 실제로 얼마나 공부하고 이를 체화시켰는지 보다 ‘뉴스레터’ 자체에 더 집중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문맥을 얼마나 깔끔히 잘 작성했고, 읽는 사람에게 얼마나 잘 와닿는지 등, 완벽한 결과물에 집착을 하다보니 막상 정말 중요한 ‘나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한 공부’가 부족해진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이를 깨달을 수 있었던 과정은 해당 뉴스레터를 읽게되면서인데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지식’ & ‘실제 나의 지식'을 기준으로 4가지 유형으로 나눈것으로, 결국 객관적으로 바라본 나의 모습은 어디일까? 에 해당하는 내용이였습니다. 이를 읽으면서 저는 ‘내가 너무 뉴스레터 자체에 집착해 실제로 아는것은 적은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치 잘 아는것처럼 보이는 Armchair influencer가 되려고 했던것이 아닐까…’를 떠올리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던것같습니다. (위 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제가 걸어둔 링크에서 확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그래서 앞으로는?

Secret master가 된 뒤, True expert가 되는 방향으로 가야할것같습니다. 다시말해 객관적인 제 실력을 높이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공부에 좀 더 집중하고, 뉴스레터는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은, 가벼운 마음으로 앞으로 기분좋게 작성해갈 예정입니다.

사실 앞서 언급한 뉴스레터는 디스콰이엇의 권도언님이 작성하신 뉴스레터인데요, 저는 해당 뉴스레터를 통해 권도언님과 디스콰이엇을 알게되어서 유입된 케이스랍니다. 디스콰이엇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면서, 이런 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동기부여를 열심히 잘 얻어갈게요 ㅎㅎ


디스콰이엇을 만들어가는 권도언님의 뉴스레터 : https://maily.so/kwondoeon

제가 작성중인 뉴스레터 링크도 공유드리고 갈게요! : https://maily.so/pm.at.specialforce


p.s. 참고로 특전사가 TV에서 나오는 특전사가 아니고 일반 병사랑 크게 다를바 없는 특전병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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