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의자로 돌아보는 조직문화> (긴 글 주의)
“XXX님, 이 앞 의자에서 대기해 주세요.”
간호사가 어머니의 이름을 호명합니다. 백내장 수술을 받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방문한 병원에서 저는 ‘이 앞 의자’라는 흥미로운 시스템을 발견합니다. (60대 이후 수술 1위, 2020 주요 수술 통계, 국민건강보험공단)
대기실 중앙에는 대략 30명은 앉을 수 있는 4열의 긴 의자들이 있지만 다시 굳이 진료실 바로 앞에 3, 4개의 의자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사업장인 병원의 공간은 크게 대기실과 진료실로 구분됩니다. 그 안의 이해 관계자들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룹'과 '환자 그룹'이 존재합니다. 의료 서비스 제공 그룹의 목표는 ‘좋은 의료 서비스 제공’과 ‘대기 환자 불만 최소화’에 있습니다. 환자들은 ‘좋은 의료 서비스’와 ‘적은 대기 시간’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이 앞 의자’는 유독 기다리는 걸 어려워하시는 어르신 환자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을 완화시키는 효과적 가치 제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곧 이어
“아버님, 아직 순서 아닙니다. 의자에서 대기해주세요.”
분명 ’이 앞 의자’는 대기실 환자들에게는 적절한 가치 제안이지만 그 의자에 앉은 환자들이 조급함에 안을 들여다보거나 앞에서 서성되기에 정작 진료실 내 의료진은 그림자로 인해 눈을 관찰할 때 방해를 받습니다.
제게는 이 앞 의자가 실제 현실에서 조직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고 상호 작용하는지를 잘 드러낸 상징적 예시 같습니다.
-----
흔히들 ‘우리 조직 문화는… 입니다.’ 와 같은 고정된 형태의, 미션 또는 가치 중심의 지향점을 띈, 이상적인 하나의 표현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조직 문화는 열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행하는 공유된 방식입니다."
- Brian Chesky, co-founder of AirBnB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발견되는 오해는 문화를 '규정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점입니다.
사실 문화는 규정되는 것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것이기에 이는 불가능한 시작이 됩니다.
——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를 휩쓴 뒤 2014년 10월 윌리엄 더들리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연설을 통해 '문화'라는 단어를 무려 45번이나 사용하면서 "현재의 금융 서비스 산업의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It) exists within every firm, whether it is recognized or ignored, whether it is nurtured or neglected, and whether it is embraced or disavowed.” "(문화는) 인식되든 무시되든, 육성되든 방치되든, 포용되든 부인되든 모든 기업 안에 존재합니다."
그는 은행가들이 심취해있던 급박하고 초조한 상황에서의 'Edginess 문화'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한다' 라는 태도의 금융계 뿌리 깊은 문화적 단서들이야말로 정부 규제나 조직 구조의 변화로는 해결하지 못한 거대한 금융 위기의 씨앗이었음을, 기업 구조의 변화에 상응하는 기업 문화의 지속적 변화가 핵심임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
인류학자들은 문화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요소로
- 텍스트로서의 공간
- 구성원 간 인상관리(Impression management)
- 행위, 대립
- 의례적 행위와 상징들을 다룹니다.
즉, 문화는 '소통에 관련된 모든 상징적 표현들에 대한 것'이라 정의합니다.
그렇기에 인류학자들의 시선에서의 조직 문화는 오히려
- 복잡하고 엉망진창이며
- 대립이 발생하며 비이성적일 수 있고
- 무의식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조직 내 문화를 해석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현재 존재하는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가능해집니다. 즉, 경력 많은 컨설턴트를 초대해 외부의 사례를 레퍼런스 삼아 대응하려는 시도는 본래의 해당 기업이 추구하고 역할에 맞는 대안이 되기에는 한계가 명확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내부에서 스스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대하고 반응하는지, 부서 간 추구하는 가치와 충돌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소통하며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을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
한 주가 마무리되는 금요일입니다. 오늘은 업무 중간중간 여러분들이 일하는 업무 공간 내 존재하는 '이 앞 의자’가 무엇일지 둘러보시면 어떨까요?
댓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