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가설 검증을 너무 늦게했다가 피봇행 특급열차에 탑승했습니다 (3/3)
그루머노트의 성장 정체, 얼어붙은 스타트업 투자, 플랫폼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애견미용사라는 세 번의 강펀치를 맞은 저희는 그로기 상태가 되었고, 플랫폼을 만들어도 애견미용사(공급자 사이드)를 통해 매출을 만드는 건 어렵겠다고 판단하며 좌절했습니다.
하지만, 좌절한 상태로 링 위에 누워있기에 저희에게 자금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생존할 방법을 찾아야 했고, 플랫폼 수요자인 반려견 보호자가 애견미용사보다 수가 더 많으니 성장 잠재력이 더 클 거라 믿으면서 새로운 가설 검증을 시작했습니다.
그루머노트를 만들면서 얻은 교훈과 시간과 자금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플랫폼 수요자 사이드 가설 검증을 위해 다음 2가지를 충족하는 정말 다양한 가설을 검증했습니다.
고객이 당장 해결하고 싶은 head on fire problem을 찾는다.
제품 개발 없이 고객이 솔루션을 원하는지 검증한다.
피봇을 결정하기까지 정말 많은 가설 검증을 진행했는데, 그중에 가장 마지막에 시도했던 내용을 공유해보겠습니다.
(👇 1편과 2편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에서 발견한 미용 관련 반려인의 고민
저희가 가설 검증하던 시기에 반려인 커뮤니티에서 반려견이 미용하고 오면 몸을 벌벌 떨거나, 산책하러 나가지 않으려 하거나, 구토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글을 종종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유기견이었던 ‘마루’를 입양해 함께 살고 있는 대표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에 굉장히 공감했습니다.
마루가 미용 스트레스를 받아 셀프 미용을 시도해 봤지만, 오히려 상처가 나서 미용 거부감이 더 심해졌고, 미용실에 다녀 올 때마다 해줄 수 있는 게 간식을 주는 것밖에 없어 괴로웠던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저희 팀은 가설 검증의 첫 번째 기준인 ‘head on fire problem’ 조건에 부합한다고 생각해 이 문제에 대해 더 조사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강아지가 미용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미용 기계(바리깡 등)에서 발생하는 소리, 미용 과정에서 털이 잡아당겨지면서 발생하는 고통 등 다양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 고민하던 중, 마루가 미용 스트레스를 덜 받았던 미용실이 있었다는 걸 떠올렸고, 인터뷰를 요청한 뒤 찾아갔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떠올린 마지막 가설
애견미용사는 주어진 시간 안에 미용을 마쳐야 다음 강아지를 미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한 자리에 계속 가만히 있게 하거나, 미용 기구에 다치지 않게 몸을 고정하는 등 강아지의 본성과 반대되는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보호자는 돈을 내고 미용을 맡겼으니 예쁘게 미용해 주길 기대하기 때문에 미용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애견미용사는 강아지가 원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강아지는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나중에는 미용실 냄새만 맡아도 도망가려는 행동을 보일 정도로 미용에 거부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마루가 스트레스를 덜 받았던 미용실은 다른 미용실과 ‘추구하는 방향’과 ‘미용 시간’이 다르다는 걸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미용 완성도보다는 강아지가 스트레스를 덜 받는 걸 추구하셨고, 하루에 미용할 수 있는 강아지가 줄어 돈은 좀 덜 벌더라도 다른 곳보다 미용 시간을 1.5~2배 이상 쓰면서 쉬는 시간도 여러 번 가지고 산책도 시켜주고 있었습니다.
다른 애견미용사도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애견 미용을 시작했기 때문에 강아지가 스트레스 받는 걸 가슴 아파한다는 걸 알고 있던 저희는 이 인터뷰를 마치고 가설을 하나 세웠습니다.
“강아지의 미용 스트레스를 줄이고 싶은 보호자는 강아지가 놀면서 미용 받도록 하기 위해 미용 시간 연장에 돈을 낼 것이다.”
보호자는 강아지의 미용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좋고, 미용사는 스트레스가 적은 미용이 가능하고, 미용 시간이 늘어 하루에 미용할 수 있는 강아지가 줄어도 매출에 큰 차이가 없을 테니 win-win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엔 진짜 될 것 같은데...?
가설을 세우고 주변에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해 저희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얘기하면서 돈을 낼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절반 이상이 추가금을 내더라도 강아지가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할 의향이 있었고, 보호자와 미용사 모두 win-win 할 수 있는 방법 같다며 이건 진짜 잘될 거라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인과 인터뷰한 내용을 기반으로 플랫폼을 개발하기엔 너무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해 우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돈을 낼 의사가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가설 검증 원칙 중 하나인 ‘제품 개발 없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랜딩 페이지를 만들고, 설문폼으로 연결해 잠재고객의 전화번호나 이메일 같은 개인정보를 수집한 뒤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가설 검증을 진행했습니다.
이번엔 문제 정의도 확실하고 솔루션도 꽤 자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설문폼으로 연결해 개인정보만 수집하는 게 아니라, 강아지 정보도 입력하게 하고, 미용 시간을 늘리기 위해 지불할 금액 선택지까지 설문폼에 추가했습니다.
이전 가설 검증에서는 오픈카톡방과 네이버 카페에만 공유하고 끝내기도 했는데, 이번엔 인스타그램 유료 마케팅까지 진행하면서 기대를 안고 잠재고객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던 순간
인스타그램 마케팅 콘텐츠에 포함된 “우리 강아지 미용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라는 문구 때문인지, 광고를 보고 랜딩 페이지로 전환되는 비율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그리고 랜딩 페이지에서 설문폼으로 전환되는 비율도 지금까지 했었던 가설 검증보다 월등히 높았기 때문에 “드디어 Problem-Solution Fit을 찾은 건가?”라는 생각도 했지만, 미용 시간을 늘리기 위한 금액 선택 단계에서 대부분 이탈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랜딩 페이지를 더 많은 보호자에게 노출해야 했을 수도 있고, 아직 미용할 시기가 안 돼서 설문폼에서 이탈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했던 모든 시도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어떤 방법으로도 스타트업스러운 성장이 어렵다고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가설을 검증했고, 이제 진짜 보내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피봇을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3년 간 열심히 만든 그루머노트는
자연스럽게 운영 종료 수순…을 밟지 않고, 서버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유료화를 진행한 뒤 유지 보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애견미용사분들의 생업이 연관된 제품이다 보니 갑작스럽게 운영 종료하게 되면, 그루머노트를 사랑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 너무 큰 피해가 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무료로 운영하기엔 운영비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루머노트 사용에 필수적이진 않지만, 대부분 사용하고 계신 부가 기능을 매월 일정 금액을 내고 사용하도록 유료화를 진행했습니다.
처음엔 결제 전환율 5%도 안 나올 것 같아 엄청 걱정했지만, 예상의 10배가 넘는 분들이 결제해 주셔서 서버비는 충분히 내고도 남을 정도의 매출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도 오류가 발생하면 바로 대응해 드리고 있고, 마케팅도 안 하고 있는데 어디서 알고 오시는 건지 사용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 데이터 불러오는 속도 최적화, TIPS 과제 개발 및 적용 등 사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면서 조금씩 시간을 내서 개선하고 있습니다.
그루머노트를 유지 보수하면서 피봇 후 StepBy도 만들고 있다보니, 하나만 만들 때보다 1.5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 하지만, 그루머노트를 통해 배운 점이 많아서 그런지 StepBy는 굉장히 효율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 번에 걸쳐서 저희가 피봇을 결정하게 된 이유와 제품 없이 가설 검증한 방법을 공유해봤습니다.
다 쓰고 보니 제품 없이 가설 검증한 방법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공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