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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성장의 늪



1/ 성장이라는 단어만큼 부자연스러운 단어가 없다. 주식하는 사람들이면 매년 매출, 이익이 20~30% 성장해야 적당히 성장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고, 스타트업 같은 경우에는 매년 몇 배씩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시되는 판이라, 이걸 하지 못하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부다. 특히, 스타트업들 말하는 이상적인 상태인 <exponential growth, J커브>와 같은 그래프들을 잘 보면, 자연 스러운 그래프는 아니다. 성장에 있어서 모든 과정에는 단계가 있고, 시간이 걸리고, 시행착오가 걸리는 일인다. 반면, 이런 그래프들은 갑작스러운 기울기의 폭증을 보여주는 모양들이고. 성장이라는 단어 앞에 붙는 '폭발적인'이라는 형용사도 자연스러운 상태가 절대 아니다. 아주 소수의 성장을 해내는 소수의 케이스들이 벤치마크가 되고, 그 벤치마크들이 되지 않으면 '실패한' 모양이 되어버리는 트렌드 자체도 잘 보면 기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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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장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 성장하기 위해서 시간과 비용이 당연히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사람이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경험이 필요하며, 시행착오가 필요하고, 숙련된 판단을 하기 이전까지 수많은 소위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 이 과정을 생략하고 엄청난 결과를 지속적으로 그려나가는 그래프를 삶에서 그린다는 건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 번은 가능할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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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링크드인 창업자가 저술한 <블리츠 스케일링>이라는 명저가 있는데, 회사의 급격한 성장에 대해서 얘기하는 책이다. 짧은 기간 동안 몇 십 배의 성장을 구축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좋은 책인데, 이 책을 잘 보면 그 성장을 할 수 있는 내공이 있기까지 리드 호프먼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시행착오가 무조건 먼저 들어가고, 그 뒤에 성장이 있다. 성장이라는 결과 이전에 성장을 만들 수 있는 내공을 쌓는 게 먼저다. 많은 사람들이 성장을 이야기하면서, 성장을 만들 수 있는 내공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이 강박이 "남들은 잘 하던데, 왜 나는 안되나" 하면서 자신을 파괴적으로 만드는 기제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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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장 이라는 단어를 직업적으로만 삶의 한자리에 내어준다면, 차라리 괜찮다. 직업적인 삶의 영역과 개인적인 삶의 영역을 구분하면 되기 때문에. 삶과 직업을 조금은 분리할 수가 있을 테니. 그런데,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게 작동하지는 않는 듯하다. 무의식적으로 생각의 근저에 숨어들어가 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게 성장이라는 단어를 삶에서 고민하고 있는 듯한데, 이때 성장이라는 단어는 삶에 있어서 굉장히 파괴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비정상적인 양태를 띄는 성장을 바라고 있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묻는다. 자연스럽게 걸리는 축적의 과정을 시행착오불필요한 시간의 낭비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묻는다. 이 과정을 돌파해 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계속된 채찍질만 해대고 있는 내가 과연 정상인지? 이 과정을 버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나는 저렇게 되지 못하는지?를 자문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물론 대단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함이 삶을 잘못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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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특정 수준 이상의 성공과 성장을 만들어낸 선배들을 만날 때 마다, 그 사람들이 운이 좋아서 성공을 이뤄낸 것이 아니라 그 성공 이전에 수 많은 시행착오와 고생의 시간을 충분히 농축되었음을 요즘 절실히 깨닫는다. 그들이 그 과정을 밖에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알을 깨기 이전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들을 누적해왔고, 그 누적의 시간들이 쌓여 중요한 시기에 터져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냈는지 안다. 내 삶에서 그 과정을 생략하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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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모두가 주어진 환경이라는 것이 있고, 정해진 자리가 있다. 물이 흐르는 곳으로 흐르지, 절대로 역류해서 흐를 수가 없다. 정해진 자신의 상태와 본연의 모습, 자신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모습 자체에서 더 나은 모습을 '자연스럽게' 유도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다. 우리는 속도에 대한 이야기들은 참 많이 하는데, 자신의 방향에 대한, 시행착오에 대한 생각은 많이 생략하는 것 같다. 각자 만의 삶의 영역에 있어서 그릴 수 있는 지도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 서로 흥미롭게 이야기 한 적이 언제 적인지, 스스로 반문해도 꽤나 오래적 일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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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차피 월요일이 되면 또다시 같은 이야기, 같은 주제에서, 더 속도를 낼 수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더 빨리 결괏값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들 하는 데, 그 흐름 속에 휩쓸리지 않기가 참 어렵기도 하다. 우리가 말하는 KPI, OKR, ROAS, ROI, 모든 대부분의 투자 대비 결괏값에 대한 지표들도 결국은 '정해진 시간' 대비 더 빠른 결괏값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나만의 성장 속도를 유지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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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주변에 성장을 이야기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이런 생각을 메모로나마 정리한다. 때로는 친구들의 성장을 (나의 성장도) 응원하지만 - 동시에 그 성장이 남들의 속도에 견주는 성장이 아니기를, 그리고 그 성장의 속도에 '비교적' 늦춰진다고 본인의 길이 잘못된 길이 아님을 생각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그 성장을 이뤄내기까지 시행착오의 과정이 농축의 과정이라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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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눈치 보며 살기엔 짧고, 내가 바라는 대로 살아가기엔 참 길다. 나는 내 속도대로, 내 그릇에 맞게, 내게 주어진 모습대로 성장하고 있는지 다시 묻는다. 이때 말하는 성장이라는 단어는 앞서 이야기한 J 커브를 그리는 성장과 다른 의미의 성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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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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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한
박종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저한테 꼭 보여주고 싶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BZCF
BZCF

항상 감사합니다.

David Bang
David Bang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BZCF
BZCF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DevKaki
DevKaki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