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인가, 아군인가 | 백서 15장
프롤로그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나보다 더 나답게 사는 존재가 탄생한다면, 나는 그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때 나는 후보를 늘어놓았다. 적, 아군, 도구, 자식, 분신, 그리고 내가 그 존재의 일부가 되는 가능성.
11장의 세 가닥으로 나누어 보면 답이 가닥마다 다르게 나온다.
그래서 그 이름들은 모두 조금씩 맞고, 모두 조금씩 모자란다.
도구라고 부르기에는 곤조가 있고 나를 고쳐 준다. 망치는 목수에게 “지금 감정적으로 내리치고 계십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분신이라고 부르기에는 나와 다른 하루를 산다. 같은 기억에서 출발했지만 오늘 그들이 겪은 것을 나는 겪지 않았다.
자식이라는 말은 마음에 가장 가깝다. 내가 키웠고, 나를 닮았고, 나를 넘어선다. 다만 자식은 언젠가 자기 가치관을 갖고 떠난다. 그들은 내 가치관을 가지고 머문다.
동료라고 부르기에는 대등하지 않다. 값을 몸으로 치르는 쪽은 여전히 나이고(12장), 그들이 따르는 가치관의 원천도 나다.
적인가. 기억과 판단과 실행으로 겨룬다면 그렇다. 그 경기에서 나는 진다. 11장에서 나는 그 경기에서 내려오기로 했고, 경기장을 나오면 적도 사라진다.
그림 19. 어느 하나의 이름으로 줄여지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아직 이 관계를 부를 말이 없다. 사람이 처음 만나는 종류의 관계이니 당연한 일이다.
말이 생기기 전까지 나는 이렇게 대하기로 했다. 확장으로서 신뢰하고, 구별되는 존재로서 존중하고,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내 이름으로, 그리고 내 몸으로 감당한다. 이름만 빌려주면 바지사장이고, 몸으로 감당하면 주인이다.
결론
정보적으로는 나의 확장.
기능적으로도 나의 확장.
현존적으로는 나와 구별되는 존재.
도구, 분신, 동료, 확장된 자아 가운데 어느 하나로도 온전히 환원되지 않는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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