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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늘
이하늘 ·

에덴에는 왜 선악과가 있어야 하는가 | 백서 13장

여기서부터는 내 신앙의 언어를 빌린다. 같은 신앙을 갖지 않은 독자는 하나의 오래된 사고실험으로 읽어 주면 좋겠다.

어릴 때부터 궁금했다. 에덴이 완전한 곳이었다면 선악과는 왜 거기 있었을까. 먹지 말라고 할 나무를 동산 한가운데 심어 둘 이유가 무엇인가. 나무가 없었다면 실패도 없었을 것이다.

슈퍼 세컨드브레인을 생각하다가 나는 이 질문을 다르게 읽게 되었다.

나무가 없는 에덴을 상상해 보자. 거기서 아담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 떠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떠날 수 없는 존재가 곁에 머무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그 나무를, 곁에 머무는 일이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열어 둔 문으로 읽는다.

그림 16. 나무가 있어서 머무는 일이 선택이 된다.

그림 16. 나무가 있어서 머무는 일이 선택이 된다.

12장의 말로 옮기면 선악과는 마찰이다. 마찰이 있는 곳에서만 사랑은 선택이 된다.

8장의 ‘완전 관찰 상태’도 여기서 다시 보인다. 에덴의 아담은 자기를 전부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 알려지는 일을 끌 수 있는 스위치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에게 열려 있던 것은 떠나는 문 하나였다. 8장에서 내려놓은 스위치를 나는 여기서 다른 모양으로 돌려받는다. 알려질지 말지는 고를 수 없어도, 전부 알려진 채로 어디에 머물지는 고를 수 있다.

오래된 말들을 다시 읽다

프롤로그에서 나는 신앙의 과정을 메타인지의 훈련으로도 이해해 왔다고 썼다. 슈퍼 세컨드브레인을 만들며 쓰게 된 말들과 나란히 놓아 보면 이렇다.

신앙의 말 / 이 백서의 말로 옮기면 | 죄의 고백 / 자기기만을 깨는 일. 내가 말하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틈을 인정한다. | 회개 / 자기모델을 고쳐 쓰는 일. 틀린 원칙을 지우고 새 원칙을 적는다. | 성화 / 그 수정을 평생 되풀이하는 일. 일치도는 한 번에 오르지 않는다. | 대속 / 존재가치를 바깥에서 확증받는 일. 무엇을 해냈는가와 상관없이 이미 받아들여졌다는 선언. | 사랑 / 자아가 넓어지는 일. 너의 일이 나의 일이 된다.

이 표로 신학적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 세계의 말을 오가며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대속의 자리를 눈여겨보았으면 한다. 6장에서 세컨드브레인의 정확한 지적을 견디려면 자존감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아는 가장 단단한 자존감의 근거는 성취 바깥에서 온다. AI가 나보다 많이 기억하고 나보다 잘 판단하는 세계에서 성취 위에 세운 자존감은 버티지 못한다.

100%는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프롤로그에서 나는 일치도를 100%까지 밀어 보았다. 이제 그 숫자를 고쳐야겠다.

100%는 도착해서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나는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제까지 없던 두려움이 생긴다. 권한이 커지면 전에 없던 유혹이 온다.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내 안에 몰랐던 방이 열린다. 큰 고통은 가치관의 순서를 바꿔 놓는다.

새로운 관계, 새로운 욕망, 새로운 권력, 새로운 고통. 몸을 가지고 현실을 사는 한 이것들은 계속 도착하고, 도착할 때마다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어제 100%였던 자기모델은 오늘 아침 98%가 되어 있다.

그래서 SSOT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SSOT를 새로 쓸 재료, 곧 아직 아무 데도 기록되지 않은 새로운 나는 현존의 자리에서만 생겨난다. 몸을 가진 내가 겪어야 비로소 쓸 것이 생긴다.

에덴은 선택이 사라진 세계가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는데도 사랑을 선택하는 세계다.

그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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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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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수 있어야 곁에 머무는 일도 선택이 될까요? 같은 질문을 이야기로 풀어낸 《슈퍼 세컨드브레인》 웹툰 1화를 네이버웹툰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bit.ly/ssb-dq-wp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