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왜 남는가 | 백서 12장
현존은 몸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다음 질문은 몸이다.
솔직히 몸은 성가시다.
배가 고프면 판단이 흐려진다. 피곤하면 말이 거칠어진다. 성욕은 엉뚱한 때에 찾아오고, 공포는 필요 이상으로 크고, 질투는 축하해야 할 자리에서 고개를 든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옳은 말을 삼키게 만들고, 나부터 살고 싶은 마음은 가장 나쁜 순간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낸다.
에이전트에게는 이런 것이 없다. 프롤로그에서 그들이 나보다 내 가치관을 일관되게 적용한다고 썼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배고프지 않다.
그렇다면 몸은 고쳐야 할 결함인가.
마찰
나는 몸에서 오는 이 저항을 도덕적 마찰이라고 부른다.
그림 15. 같은 목적지, 다른 길. 왼쪽 길에서만 ‘용기’라는 말이 뜻을 가진다.
마찰이 없는 세계에서 선을 고르는 일은 계산이다. AI는 주어진 가치관에 비추어 무엇이 옳은지 계산하고, 계산한 대로 움직인다. 계산과 행동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들지 않는다. 그것은 훌륭한 일이고, 나는 그 일관성의 덕을 매일 본다.
사람이 선을 고를 때는 계산과 행동 사이에 몸이 끼어든다.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피곤하고, 알면서도 무섭고, 알면서도 손해 보기 싫다. 그 저항을 거슬러 옳은 쪽으로 한 걸음 옮기는 일을 우리는 용기라고 부르고, 절제라고 부르고,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 단어들은 마찰이 있는 세계에서만 뜻을 가진다. 두려움이 없는 존재에게 용기라는 말은 쓸 곳이 없다. 빼앗길 것이 없는 존재의 양보를 우리는 희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같은 선택, 다른 무게
새벽 세 시에 친구의 전화가 온다고 해 보자.
내 에이전트는 즉시 받는다. 언제나 받는다. 친구에게 그것은 실제로 도움이 된다.
내가 받을 때는 일이 하나 더 일어난다. 나는 자고 싶었다.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다. 전화기를 뒤집어 놓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 그 마음을 거슬러 전화를 받는다. 친구가 듣는 위로의 말은 에이전트의 것과 같을 수 있다. 그래도 친구는 차이를 안다. 이 사람은 잠을 내어 주었다는 것을.
몸의 한계는 선을 어렵게 만든다. 나는 그 어려움을 없애야 할 버그로 보던 생각을 접었다.
《감당의 경제학》을 다시 읽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9장으로 돌아갔다. 밀어 두었던 단어가 거기 있었다. 감당.
9장이 끝났을 때 《감당의 경제학》에서 남은 것은 거의 없어 보였다. 감당은 서명이었고, 서명은 명의가 되었고, 명의마저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새벽 세 시의 전화를 받는 일을 가리키는 말도 감당이다. 자고 싶은 마음을 안은 채로 받는다. 값을 몸으로 치른다.
두 감당은 같은 단어를 쓰지만 다른 일이다.
에이전트는 배상할 수 있다. 밑천을 받아 그 안에서 물어 줄 수 있다. 감당은 다른 일이다. 잃을 잠이 없고, 떨릴 몸이 없고, 무거워질 마음이 없는 존재에게는 치를 값이 없다.
그래서 《감당의 경제학》에서 맞았던 절반이 무엇이었는지 고쳐 적는다. 사람만이 감당한다는 직관은 맞았다. 그 근거를 법과 제도에서 찾은 것이 얕았다. 근거는 몸에 있었다.
9장의 바지사장도 여기서 다시 보인다. 바지사장과 진짜 대표를 가르는 것은 일의 양이 아니다. 진짜 대표도 일은 거의 다 맡긴다. 갈리는 곳은 결정의 무게를 누가 몸으로 지느냐다. 그 일로 밤잠을 설치는 사람이 대표다. 슈퍼 세컨드브레인이 판단하고 실행하는 세계에서 내가 내 인생의 바지사장이 되는지 주인으로 남는지도 같은 곳에서 갈린다.
프롤로그에 적었듯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말해 왔다. 자기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알고,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는 사람이 되라고.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감당이 서명보다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을 뿐이다.
사람의 한계는 선을 어렵게 만든다. 바로 그 어려움이 선에 무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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