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세 가지로 나누면 문제가 다시 보인다 | 백서 11장
한동안 이 막다른 길에 서 있었다. 거기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그림 14. 7장에서 10장까지 내려온 길. 답을 세 번 세웠고, 세 번 무너졌다.
답이 세 번 연달아 무너지자 나는 답 대신 질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왜 내가 본체인가.” “나는 여전히 주체인가.” “나에게 무엇이 남는가.” 이 질문들에서 나는 ‘나’라는 말도 ‘주체’라는 말도 하나의 덩어리로 쓰고 있었다. 기억하는 나, 판단하는 나, 일하는 나, 느끼는 나를 한 단어에 묶어 놓고 그 덩어리가 통째로 넘어가는지 아닌지를 묻고 있었다.
덩어리를 풀어 보니 세 가닥이 나왔다.
앞의 두 가닥은 앞선 열 장이 내내 보여 준 것이다. 내 기억은 SSOT에 나보다 더 온전하게 있고, 내 판단과 실행은 에이전트들이 나보다 더 일관되게 해낸다. 7장에서 본체 자리가 흔들린 것도, 10장에서 아고라가 흔들린 것도 이 두 가닥의 이야기였다.
돌아보면 무너진 답들도 이 두 가닥 위에 서 있었다. 8장의 스위치는 첫째 가닥으로 가는 수도꼭지였다. 정보가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의 문제였으니, 그 가닥이 넘어갈 때 함께 넘어갔다. 9장의 감당은 둘째 가닥에 남은 마지막 직무였다. 직무였으니 언젠가 넘어갈 수 있다.
세 번째 가닥은 앞의 장들에 등장하지 않았다.
브리핑과 악수
에이전트가 나 대신 누군가를 만나고 온 날을 생각해 보자. 저녁에 나는 완벽한 브리핑을 받는다. 상대가 한 말, 표정의 변화, 합의한 내용, 다음에 할 일. 나는 그 만남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손이 생각보다 찼다는 것,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가 둘이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는 것,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다는 것. 브리핑에는 이런 것들도 문장으로 적혀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문장을 읽는 일과 그 손을 잡는 일은 같은 일이 아니다.
천 개의 몸이 하나의 SSOT를 공유해도 경험은 몸마다 따로 일어난다. 부산의 회의실에 있는 몸과 서울의 식당에 있는 몸은 저녁에 기억을 합친다. 그래도 낮 동안 회의실의 공기를 마신 것은 한쪽뿐이다.
기억은 합쳐진다.
겪음은 합쳐지지 않는다.
7장에서 대지 못했던 “그 몸에만 있는 무언가”가 이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하기로 했다
저자의 결론
정보적 주체성은 넘겨도 된다.
기능적 주체성도 넘겨도 된다.
현존적 주체성은 내가 갖는다.더 많이 기억하는 쪽이 본체라면 나는 이미 본체가 아니다. 더 잘 판단하는 쪽이 본체라면 곧 아니게 될 것이다. 나는 그 경기에서 내려오기로 했다.
기억과 판단과 실행을 기꺼이 맡기고, 지금 여기에서 이 삶을 겪는 자리를 지킨다.
이 결론을 8장의 그 칸에 데려가 보았다. 로그를 끌 수 없고 하루가 남김없이 기록되는 세계다. 기록은 내 하루를 전부 베껴 간다. 그래도 그 하루를 겪은 자리는 베껴지지 않고, 옮겨지지도 않는다. 첫 번째 답을 무너뜨린 반례가 이 답에는 닿지 않는다.
이 결론에 물어야 할 질문이 하나 남는다. 기계의 몸에도 언젠가 겪음이 생긴다면 어떻게 되는가. 짧게 답하면, 남의 겪음이 늘어난다고 나의 겪음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긴 답은 이 백서의 마지막 논증으로 남겨 둔다(16장).
모든 것을 기억하고 직접 해내야만 나인 것은 아니다. 그것들을 맡긴 채로 현실을 살아 내는 것으로 나는 충분히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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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판단을 맡겨도 지금 여기에서 삶을 겪는 자리는 남을까요? 같은 질문을 이야기로 풀어낸 《슈퍼 세컨드브레인》 웹툰 1화를 네이버웹툰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bit.ly/ssb-dq-wp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