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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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술에 취한 마차 타고 지친 달을 따러 가야지

하나둘 피어 오는 어린 시절
동화 같은 별을 보면서
오늘 밤 술에 취한 마차 타고
지친 달을 따러 가야지

크라잉넛 - 밤이 깊었네 가사 中

 

 

대한민국의 록 밴드 크라잉넛이 2001년에 발매한 3집 앨범 '하수연가'에 수록된 곡이다.

 

https://youtu.be/IIzi_9yoras



  

한창 MP3가 출시되던 때, 그 당시의 어린 나 또한 이 노래를 참 많이도 듣고 따라 불렀다.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간 노래방에서 어깨동무하며 목청껏 불렀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한껏 술에 취한 채 이 노래를 불렀다. 왠지 모르게 정겨우면서 쓸쓸한 감정을 내뿜는 이 곡은 분명 달이 뜨면 더 높은 재생률을 선보였을 것이다.

 

 

 

본인은 지난 주말 이 곡을 오랜만에 다시 듣게 되었다.

5월 예정된 밴드 공연의 선곡 후보 중 국내 인디밴드 곡 하나쯤 있으면 해서 여러 곡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서 재생했다.

 

 

워낙 많이 듣고 부른 노래라 익숙하게 재생되었지만, 유심히 곱씹어본 적 없던 가사말이 유달리 아름답게 와닿았다.

 

 

 

 

"오늘 밤 술에 취한 마차 타고 지친 달을 따러 가야지"

 

 

저 가사를 문학적으로 해석하거나, 의미를 쫓지 않아도 된다. 그저 저 가사 그대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었다.

 

"고요한 밤 밝게 떠있는 달을 향해, 삐그덕- 삐그덕- 언덕을 지나며 술에 취해 마차 짐칸에 누워있으면 참 행복하겠다."

 

 

 

 

어느덧 본인은 30대 초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아직 어리다면 어리고, 성숙하다면 성숙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서 의미를 찾기도 하고, 내 삶의 큰 부분이라 여겼던 것을 별게 아니라 치부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본인의 삶엔 도전, 변화, 성장, 새로움이라는 키워드가 가득했다. 물론 기쁘고 생산적인 나날이 이어지고 있긴 하나, 한편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안식과 쉼표를 바라고 있었나 보다.

 

 

 

나보다 더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들에게도 '밤이 깊었네'의 가사를 한번 선물해주고 싶다.

 

오늘의 깊은 밤엔 한 번쯤 술에 취한 마차 타고 지친 달을 따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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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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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Bondee) 사람은 자신을 뽐내고 싶거든

이번 주 인스타그램에서 유난히 지인들의 스토리에 아래와 같은 이미지가 많이 올라왔다. 나름 힙한 디자인과 지인들을 쏙 빼닮은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본인의 아바타

 

 

새로운 메타버스 플랫폼 또는, 한 때 화제 되었던 동물의 숲 같은 게임 캐릭터가 떠올랐다. 어쨌든 바빴던 한 주간의 현업을 금요일에 마친 이후 직접 서비스를 가입 및 이용해 보았다.

 

 

우선 본디(Bondee) 서비스는 앱 스토어에서 '찐친들의 메타버스 아지트'로 소개되는데, 쉽게 소셜 메타버스 서비스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본 글에선 본디(Bondee) 서비스를 짧게 이용해 본 개인적인 소회를 적고자 한다.

 

 

본디(Bondee) 서비스의 핵심 요인은 아래와 같다.

1. 현재 추가 가능한 친구 수는 최대 50명이다.
2. 본인의 아바타와 스페이스(=집)를 취향껏 꾸밀 수 있다.
3. 본인의 감정 상태, 일상, 상황을 유쾌하게 표현할 수 있다.
4. 내 친구들의 아바타와 집을 '아파트'의 모습처럼 뽐낼 수 있다.  
5. 메신저와 포스팅 기능뿐 아니라 친구에게 메모(=방명록)를 남길 수 있다.

 

 

누군가는 우리의 기억 속에 봉인한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떠올릴 것이다. 50명의 친구 수 제한을 제외하면 거의 싸이월드에서 유사하게 구현된 기능이다.

 

ㄱi억,,ㄴrㄴi..?

 

 

갑작스레 많은 이들이 본디(Bondee)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1. 본디 사람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

 

수단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사람으로서 자신을 표현하고 알리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표현 방식이 직설적이게 "나 엄청 똑똑해요, 나 엄청 돈이 많아요. 나 엄청 잘 놀아요. 나 엄청 외로워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상의 한 장면을 게시하여 은근슬쩍 연출하기도 하고, 본인의 정보나 고민을 게시하며 사회적 지위나 포지션을 뽐내기도 한다.

이전엔 개개인을 하나로 묶는 공통된 집단군의 '사회적 역할'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 시 되었다.
예로, 특정 연령이 되면 "회사는 다니고? 결혼은 했고? 아이는 낳았고?" 등 질문은 우릴 꿰뚫었다.

시대 흐름 상 개개인의 브랜딩(아이덴티티 표현)은 더욱 자연스럽고 필요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나를 좀 더 귀엽고 힙-하게 표현할 수 있고 그 과정에 게임성, 재미요소가 있다면 더욱 즐겁지 않겠는가.

 

 

본디라는 메타버스의 내 아바타는 "나를 좀 알아줘, 봐줘" 구구절절 써내리지 않고 본인을 말랑말랑하게 표현해 준다.

 

 

구구절절의 역효과 사례

 

 

 

2. 본디 사람은 네트워크와 소속감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아무리 개인주의 최고를 외친다 한들, 사회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주어지는 소속감은 상당히 높은 안정감을 제공한다.

 

 

맨 처음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시작해서 우린 학교, 친구, 회사, 게임 클랜, 동호회, 낯선 이들과의 모임 등 다양한 울타리를 들락거린다. 이 울타리는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곳도 있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노력으로 형성된 곳도 있다.

 

 

당연하게도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잘 이끌어주는 그룹을 선호할 것이고, 그 그룹을 외부에 표현하고 싶을 것이다. 또 다른 관점에선 특정 그룹은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떠나 본인에게 사회적 지위나 힘을 빌려주기도 한다.

 

 

본디(Bondee)는 본인이 가진 네트워크를 단순히 친구 수, 방문자 수, 방명록 수 등 일차원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본인이 꾸민 스페이스에 많은 메모가 휘날리고, 닮은 아바타끼리 상호 작용하며 대화를 나누는 등 기존 SNS와 차별화 된 친밀함을 느낄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룹이 본디(Bondee)를 주도적으로 이용함으로서 '트렌디'를 선도한다는 가치까지 체감할 수 있다.

 

 

 

이것이 본디(Bondee)에서 얘기하는 "찐친들의 메타버스 아지트"의 본질적인 즐거움이지 않을까?

 

("나는 그냥 친구 말고 찐친이다! 친구들과 이렇게 저렇게 즐긴다!")

 

 

(물론 욕한다고 친한 친구인 것은 아니다)

 

 

 

3. 얼마나 지속되고 성장할까?

 

처음 본디(Bondee) 서비스를 시작했을 땐 특유의 귀여움 및 아바타와 스테이지를 꾸미는 즐거움이 상당히 컸다.

 

 

근데 불현듯 21년도 잠시 반짝였던 '클럽하우스' 서비스가 생각났다. (= ‘쌍방향 음성 기반’ 소셜 플랫폼)

 

 

본인도 클럽하우스를 이용해 보았지만 헤비 유저가 되기엔 허들이 존재했다. 이미 대화를 하고 있는 그룹 내에서 '찐친은 커녕 친구도 되기 어렵다'라고 해야 할까? 정확히는 그 과정의 물리적/심리적 어려움이 큰 것보다 그 네트워크에 파고들어야 할 명분을 얻지 못했다.

 

 

메타버스 측면에선 할 수 있는 것은 워낙 많기에 차치하고,

 

본디(Bondee)가 '50명 한도의 찐친 아지트'라는 특성을 가진 이상 아래의 한계 돌파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1) 너무 많은 정보가 피로감과 현타(?)를 동반

(2) 네트워크에 참여하지 못한 자의 이탈 & 유입의 허들

(3) 50명 내에서 친구 목록을 솎아내는 과정에서의 피로함과 갈등

(4) 결정적으로 본인이 속한 그룹에 대한 외부의 관심도가 사라져 가는 것

 

 

역으로 위의 한계를 유료 상품으로 헷징 해주며 매출을 얻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헤비 유저의 영향력을 극대화해서 하위 소비자들의 컨트롤 타워가 되게 하고, 하위 소비자들은 소속감을 얻도록.

예: 유명 A 인플루언서의 Fan 전용 아파트 생성, 친구 수 +50명 상품, 특별한 아바타 간 상호 작용 등

 

 

본디 유행에 민감한 우리들에게 본디(Bondee) 서비스가 얼마나 지속되고 성장할지 지켜보자.

 

 

번외로 사람은 다양한 면을 가진 다면체처럼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다.
우린 다른 이들과의 상호 관계에서 본능적으로 다면체를 이리저리 굴릴 줄 안다.

때문에, '친구'라는 동일 관계에서도 어느 친구(그룹)냐에 따라 본인의 포지셔닝과 보이는 성격이 다르기도 하다.

당신의 아바타는 당신의 어떤 면을 보여주고 있는가?

각자 다른 아이덴티티를 뽐내고 있는 본인과 지인들의 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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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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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는 순간 관계는 더없이 감사하다

기대 :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다림.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삶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저 쉬고, 놀고, 관계에 신경쓰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와도 지금의 인내와 노력이 훗날 도움 될 것이란 기대를 품고 말이다. (솔직히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난 그저 쉬고, 놀고 싶다)



각자 품고 있는 목표와 희망은 삶에 있어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훗날 본인이 원하는 것을 거머쥘 모습을 떠올리며 기대감을 갖는 것은 효과적이다.



그럼에도 '기대'라는 것은 늘 충족될 수 없다.


늘 충족되지 않기에 실망과 허탈감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기대 이상의 결과는 더욱 높은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 기대는 주변 이들과의 관계에서 자주 작용한다. 기대와 달라서 실망하기도 하고, 기대가 있기에 지지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에서의 기대감은 관계를 끈끈하게 만들기도 하고, 멀어지게도 한다.



나와 상대 간 관계의 영역에서 기대는 언제/어떻게 활용해야 조금이나마 덜 스트레스 받을까? 아니 말을 바꿔서 "조금이나마 더 행복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기대감'이란 말을 역설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미 2줄 위에 언급한 대로 말이다.

예를 들면, "기대만큼"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는데"이다.



최근 본인은 1달 사이 주변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배려와 애정을 받았다.

(기대하지 않았다고 해서, 상대에 대한 관심이나 관계에 기대가 없다는 의미가 아닌 점 절대 혼동해선 안 된다!)




첫째, 주변인은 아니지만 모르는 아저씨(아버지 연배 쯤)께 지하철 좌석을 양보받았다.


어느 퇴근 날, 하필 가방을 챙기지 않고 출근한 날에 예상치 못하게 회사에서 챙겨가야 할 박스 하나가 생겼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 '케이크'도 사가야 했다.



두꺼운 패딩을 걸치고 박스와 케이크를 들고 퇴근 지하철에 탑승했다. 핸드폰을 볼 손조차 남지 않았기에 멀뚱멀뚱 서있었다.



지하철이 출발한 지 얼마 가지도 않아 앞에 앉아계시던 아저씨께서 일어나 말씀하셨다. "여기 앉아 젊은이"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그렇게 가면 불편해, 앉아"라며 터프하게 일어나셨다.



얼떨결에 양보를 받은 나는 감사 인사를 드렸고, 아저씨는 3 정거장을 서서 이동하시다 하차하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본인처럼 짐이 많을 뿐인 젊은이에게 양보해 준 적 있었나 떠올려보았다. 없었던 것 같다.

어르신이나 아이와 함께 탄 부모, 임산부나 다리를 다친 사람 등에게 양보해준 적은 많지만 말이다.


이렇게 전혀 바라지도 않았던 배려를 받고 표현이 안 되는 감사함과 왠지 모를 민망함을 느꼈다. 츤데레의 위력도 함께



둘째,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친한 형이 식사를 계산해 주었다.


위의 친한 형이 본인을 데려간 이후 정말 좋아하게 된 중국집이 있다. 그 중국집의 음식을 와이프에게 꼭 맛보게 하고 싶어서 함께 방문했다.



그런데 친한 형이 먼저 일행들과 식사를 하고 있던 것 아닌가. 심지어 자리도 가까운 옆 테이블로 안내를 받았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드립을 치고 각자의 자리에서 식사 겸 술을 마셨다. (TMI : 본인은 고량주를 마셨음)



마무리로 디저트를 먹고 와이프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형이 내게 다가와서 내게 얘기했다.

"내가 너 테이블도 같이 계산해 뒀어"



늘 내게 많은 술과 음식을 사준 형이지만, 그날은 사뭇 남달랐다.

그냥 반가웠는지, 데려왔던 식당에 온 게 대견해서 그랬는지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닌데 식사를 사주었다.



셋째, 많은 기프티콘 선물을 받았다. 오랜만이거나 처음인 이들에게


사실 이 글을 썼던 주간에 내 생일이 있었다. 케이크를 사간 것도, 중국집에 간 것도 그래서 그랬다.



본인은 생일이나 기념일에 괘념치 않는 타입이지만, 그럼에도 생일날엔 여러 이들에게 축하 연락을 받는다.

카카오톡에서 '생일'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은 점은
그 빌미로 연락과 안부를 나누고, 한국인의 전용 인사말 "밥 한번 먹자"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기프티콘을 받았다. 한 때 수학을 가르쳤던 제자, 졸업 프로젝트를 함께 한 후배, 사내 밴드 동호회 동료, 이젠 친인척이 된 큰 형님/작은 형님 등

그중 작년 비즈니스적인 계기로 한번 뵈었던 분께 받은 선물이 가장 나를 몸 둘 바 모르게 했다. 연락만으로 감사했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계신 분이라 당시 배울 것이 많다 느꼈고, 좋으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꼭 다음엔 커피든 점심 식사든 먼저 연락을 드리겠다고 약속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생일이 있던 한 주 동안 기대하지 않았던 과분한 배려와 애정, 축하를 받았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관계에 있어서 서로가 갖고 있는 기대를 충족하는 것은 물론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그저 즐겁기 위해서, 그냥 기분 좋으라고 나누는 배려와 애정도 나눠보면 참 좋다.


관계에서 기대하지 않던 큰 행복감을 얻을 수 있다.



츤데레라는 용어가 밈처럼 떠오르고,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캐릭터가 된 것도 그 이유 때문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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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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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G.O.D - 길



 

지난 주 인생 처음으로 신당에서 신점을 보았다.

 

 

다소 뜬금없는 흐름과 결론이지만, 본인의 첫 신당에서의 신점 경험은 'G.O.D - 길'의 가사로 귀결되었다.

 

 

신점을 보게 된 계기는 생략하고, 천명 앱을 통해 강남구의 '청월' 선생님의 신당을 방문했다.

신점 때문에 처음 가보는 동네와 골목들은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그렇게 마주한 어느 한 자택.

 

 

문 앞에서 실내 공간은 어떨지 상상하다 벨을 누르니 선생님께서 맞이해 주셨고, 귀여운 강아지가 보였다.

여느 가정집과 같은 거실이 먼저 반겨주어서 예상과 달리 어색하지 않아서 어색했다.

 

 

그리고 상담을 진행할 신당(방)으로 안내 받았는데 그곳엔 미디어에서 익히 보았던 불상, 향, 서적들이 즐비했다.

 

 

개인적으로 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크게 낯설거나 두렵지 않았고, 선생님의 친절하고 따뜻한 응대 덕분에 긴장은 금방 풀렸다.

솔직히 처음 마주한 선생님이 갑자기 목소리가 바뀌셔서 호통부터 칠 줄 알았다. (=편견의 폐해)

 

 

상담은 전반적인 운의 흐름을 먼저 듣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을 물으면 답을 듣는 형태로 진행했다.

 

 

그렇게 쌀알을 집고 탁자에 톡- 뿌리거나, 하늘에 질문하는 추임새를 넣으셨다. 조상님의 말씀을 대리인으로서 전해주기 위한 절차라고 한다. (이 과정 자체도 신기했는데 그 와중에 "오.. 조상님 저 보고 계신가요?"를 속으로 불러보았다.)

 

 

세부적인 내용은 차치하고, 짚어주신 내용들 중 아래가 인상적이었다.

첫째, 본인이 바쁘게 벌린 일들은 분명 복으로 돌아온다.

둘째, 23년 5월에 아주 기쁜 일이 생긴다.

셋째, 40대 중반에 해외에 다녀올 일이 생기는데, 커리어나 금전적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을 얻어온다.

넷째, 상담 중 갑자기 심장이 아프다고 하시길래 지병이 있으신가 싶었는데, 직계 쪽에 심장 쪽 질환을 앓으신 분이 없었냐고 물으셨다.

다섯째, 본인이 타고 난 운명의 기류를 잘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운명이라고 모두가 운명대로 살진 않는다. 

 

 

특히, 넷째가 소름 돋는 포인트였다. 친가에 갑작스러운 심장 질환으로 돌아가신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현대인의 고질병 '지방간'을 언급하셨다면 다소 설득력 떨어졌겠는데~ 라며 유별난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본인의 WOW한 경험은 다른 지점에서 얻었는데, 선생님의 말씀은 '신', '운명', '영적인 힘'의 측면보다 마음에 위로와 자신감을 주는 측면으로 와닿았다.

 

 

본인은 신당에 방문했을 때 큰 고민거리를 들고 간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뭘 여쭤봐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과적으로 선생님께서는 마음속 언저리의 고민을 찾아주셨다.

 

 

"본인께서 가고 있는 길이, 타고난 운명을 빗대어 봤을 때 잘 가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필요하시죠?"

 

 

선생님의 저 말을 듣자마자 내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던 고민이란 녀석은 불쑥 튀어나왔다. 부정할 것도 없이 본인은 그것이 궁금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현재 본인이 타고난 '운명의 기류'에 탄 채 잘 흘러가고 있다 말씀해 주셨다.

과학적이면서 시적인 표현을 보충해서 설명해주셨다.
철새들은 바람을 타고 먼 거리를 비행하는데 본인의 날갯짓이 있기 이전에 '바람의 방향'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 기류가 철새들의 목적지를 이끄는 것이기 때문에.

 

 

즉, 신당에서 처음 경험한 신점은 앞서 말했듯 '영적'인 측면보다 '심리적'인 상담에 만족을 느꼈다. ("신점은 그렇다"라고 결론짓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커리어를 돌이켜보면 뚜렷한 목표와 계획을 토대로 지금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순간순간 과감한 선택도 있었고, 예상 밖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고, 기대와 달리 아쉬운 경험도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내 모습이다.

 

 

운명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본인이 타고 난 '운명의 기류'가 나를 지금의 방향으로 이끌어 온 것 아닌가.

그리고 날갯짓을 해야 할 때 했기 때문에 '운명의 기류'를 잘 탔다는 말을 들은 것 아닌가 생각했다.

 

 

최근에는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면서 순간순간의 선택에 평소와 다른 무게추가 달린다.

 

 

그 부담은 실제로 느끼고 있었지만 스스로 '고민'이라고 얘기하고 싶진 않았나 보다. 이걸 '신당'에서 찾아내다니.

 

 

상담을 해주신 '청월' 선생님께서 탁월한 신점 능력을 갖추신 것인지, 심리 상담 능력을 갖추신 것인지 내가 판단할 순 없지만 분명 숨겨진 고민 상자를 열어주셨다. 고민 상자엔 'G.O.D - 길'의 노랫말이 담겨있었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타고난 '운명의 기류'가 어디까지 도달할지 모르겠지만 날갯짓을 멈추지 않아야 할 이유는 더 명확해졌다.

 

이왕이면 날개짓을 더 힘차게 해서, 2023년에는 새로운 기류를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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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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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2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경기 승리 후 (권경원 & 조규성 선수)

 

2022년을 3주 남짓 남긴 대한민국에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문구를 눈에 띄게 볼 수 있다. (줄여서 '중꺾마'로 쓰기도 한다.)

 

기적과 같은 월드컵 16강 진출과 함께 많은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며, 끊기지 않던 부정적인 소식만 가득했던 대한민국에 격려와 희망을 안겨주었다.

 

해당 문구의 탄생 유래는 다음과 같다.

[PC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롤, LOL) 2022 월드 챔피언십 경기 소식을 보도한 기사의 제목에서 유래]

해당 게임의 그룹 스테이지 1라운드에서 패배한 DRX 팀의 '데프트' 선수가 쿠키뉴스라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패배에 대한 감상에 대해 "오늘 지긴 했지만... 저희끼리만 안 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이후 인터뷰를 진행한 쿠키뉴스의 문대찬 기자는 해당 인터뷰 영상의 제목을 "DRX 데프트, 로그전 패배 괜찮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지었다.

이후 DRX 팀은 '꺾이지 않는 마음'에 걸맞은 역전 드라마를 써 내려가며 뒤늦게 해당 문장이 리그 오브 레전드 커뮤니티에서 화제 되면서 다른 분야로까지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카타르 월드컵 모두 플레이어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 많은 이의 감동을 선사한 역전 드라마를 써낸 것이다. 

 

이 문구가 유달리 감동을 선사하는 이유는 분명 '결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객관적인 상황이나 지표가 열악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 그에 따른 결연한 의지가 감동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자리를 잡을수록 과정보다 적정한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분명 어깨에 짊어진 책임의 무게가 늘어감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이뤄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릴 적엔 무언가 시도하고 탐구하고 노력한 것 만으로 칭찬을 받은 것과 달리 말이다.

"2등은 기억되지 않는다, 최선이 아닌 최고가 되어야 한다, 열심히 말고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젠 보여줄 때" 등의 문구는 경쟁 사회에 큰 동기부여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본인뿐 아니라 모든 이들은 지향하는 목표를 쫓기 위해, 또는 목표할 것을 찾기 위해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을 텐데, 그 과정이 최선이었든 가벼웠든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우리 마음 기저에 자리 잡힌 '본질'과 삶의 숙명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우리의 삶이 진정 추구하는 것은 '목표'를 이루는 것을 넘어 '행복'을 얻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목표는 수단일 뿐.)

 

 

즉, LOL DRX 팀의 데프트 및 카타르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보여준 "꺾이지 않는 마음"은 우리가 숙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결과'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행복을 느껴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주었기 때문 아닐까?

 

 

 

우린 모두 각자의 인생 타임라인에서 행복을 좇고 있다.

"이번만큼은 잘해서 당당하고 싶어요."
"지금과 같은 힘든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
"이 프로젝트를 잘 완수해서 연봉 협상을 잘하고 싶어요." 
"부모님 실망 그만 시키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수많은 변수와 함께 하므로 항상 결과가 좋을 수는 없지만 "꺾이지 않는 마음"은 또 다른 도전과 연속되는 내일을 위한 자양분이 될 것이며, 분명 결과를 바꿀 수 있는 힘도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당신이 꺾이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당신은 스스로를 보듬어 줄 자격이 충분하다.

 

 

어느덧 2022년이 3주가량 남았는데 2022년의 시작은 "~하면 그만이야" 짤과 밈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휩쓸었다. 하지만 2022년의 끝은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마무리해보자.

 

그리고 2023년 신년 목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전에 '무엇을 해야 더 행복할 수 있는가'로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마음이 꺾이지 않으면" 그만이야!

 

 

어느덧 티스토리에 1번째, 2번째 글을 작성한 것에 이어서 3번째 글을 작성했다. (참고: 2022.11.23 -종이 한 장 차이)

자랑스레 내놓을 글은 아니더라도 꺾이지 않는 마음만큼은 이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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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

이성재

종이 한 장 차이

종이 한 장(의) 차이
1. 사물의 간격이나 틈이 지극히 작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수량, 정도의 차가 지극히 적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은 아주 미세한 차이로 인해 결과가 크게 뒤바뀐 경우 종종 사용되곤 한다.

(그제 시작된 카타르 월드컵의 중계진들도 아쉬운 슈팅 또는, 패스를 보며 위 문장을 언급할 수도 있다.)

 

블로그 첫 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작성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 글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배경을 작성하기 전 최근 깨달은 것에 대해 먼저 말을 하고 싶다.

 

어느덧 30대 중반 진입을 앞두고 있는 본인에게 갑작스러운 '얼태기'가 찾아왔었다. 자주 즐겨 오던 축구나 풋살조차 함께 하던 친구들 및 개인의 사정으로 기회가 줄어들면서, 체력마저 쇠약해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얼태기'란 평소보다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고, 더 못났다고 생각하는 시기를 말하는 은어 (얼굴+권태기=얼태기)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매일 팔굽혀펴기 100회의 결과"라는 유투브 콘텐츠는 건강과 외모 관리에 소홀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과 의지를 불태우는 동기가 되었다.

 

"팔굽혀펴기 프로젝트"는 그렇게 개시되었고,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운동일지 양식'을 만들어 종이 한 장으로 인쇄한 것이다.

 

매일매일 팔굽혀펴기를 한 날짜를 기록하고, 그날 수행한 세트 수와 세트당 개수를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고된 업무나 술자리를 가져서 힘든 날이더라도 거실에 붙여둔 종이가 눈에 밟혀서 어떻게든 팔굽혀펴기를 했다. 

 

그 결과 처음 10개 2세트로 시작했던 팔굽혀펴기는 하루 최대 90개까지로 늘어났다. 그리고 종이 한 장에 하루의 팔굽혀펴기 기록을 채워가며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겨났다.

 

심지어 꾸준한 축구로 발달된 하체에 비해 약했던 상체도 굵어지는 것이 체감되었고(물론 수많은 남자들은 운동 후 뽕에 차오른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께서 팔뚝을 만지시고 "왜 이리 단단해졌어"라고 한 결과까지 일궈냈다.

 

하지만, 저 도전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무너졌다.

 

인쇄했던 종이 한 장의 양식을 모두 채운 이후 새로운 운동일지 양식을 인쇄하지 않았다. 그렇게 팔굽혀펴기를 수행하는 빈도는 점차 줄어들었고, 왠지 모를 미안함에 떠밀려 최근 한 달 간은 샤워 전 간헐적으로 50개가량 수행한 것이 전부였다. 

 

실제로 좋은 결과를 일궈내면서 나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던 프로젝트는 '종이 한 장'의 부재로 무너졌다. 프린트가 불가능한 환경이 아니다. 회사에서 인쇄할 수 있고 집 앞에서 무인 인쇄점에서 50원으로 인쇄할 수 있었다. 심지어 카드 결제도 가능한데 말이다.

 

나만의 프로젝트를 잃고 방황하던 중, 대략 15년도쯤에 인연이 되어 페이스북 친구로 있던 Steven이라는 분의 페이스북 글 하나를 보게 되었다. 바로 "오마카세, 글쓰기 그룹"

참가비 10만 원의 이 프로젝트의 그룹원은 약속한 10주 기간 동안 매주 1회(총 10회)의 글 작성을 완주해야 한다. 완주 시 해당 금액은 오마카세 밋업 시 사용되며, 주 1회의 글 작성을 지키지 못하면 페널티가 존재한다. (현재는 1기 모집이 마감되었으며 절대 수익성 활동이 아니다.)

 

평소 페이스북을 잘 키지 않던 내가 "종이 한 장 차이"로 그 페이스북 글을 보았으며, 조금의 용기를 내어 뒤늦게 글쓰기 그룹에 합류했다. 이미 1기 모집 활동이 시작된 터라 합류가 어려웠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마지막에서 2번째 멤버(즉, 종이 2장 차이?)로 합류했다.

 

이것이 내가 첫 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쓰게 된 배경이다.

 

"종이 한 장"에 담길 정도 분량의 이 글은 그룹 합류 후 귀가하자마자 바로 작성하였다. 분명 이 글은 훗날 내가 쓰게 될 책 한 권(또는, 인생의 한 챕터)의 인트로 한 장 분량을 차지할 것이다.

이제 멀티버스 세계엔 이 글을 작성한 현생의 나와, 쓰지 않았을 내가 공존한다. 분명 이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다른 삶의 경로와 종착지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서로를 가리키며 놀라고 있는 멀티버스의 스파이더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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