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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빈

문해빈

인생취미인 잡지식 모으기가 사이드 프로젝트로. 이용자 천 명을 넘기기까지의 이야기

저는 이것저것 쉽게 흥미를 느끼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재밌는 게 너무 많아서 한 가지에 빠져 있다가도 금방 다른 재미에 끌리곤 합니다. 덕분에 제가 걸어온 길은 뒤죽박죽입니다. 살면서 변해 온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어릴적부터 변함없이 이어져 온 것이 하나 있는데, 왕성한 호기심입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질문이 끊이질 않아 부모님을 곧잘 지치게 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교육하셨습니다. 그렇게 궁금한 것을 찾아 보는 게 제 ‘인생취미’가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궁금한 것이 생겨 검색을 하고, 그 결과가 새로운 궁금증을 낳고, 연관된 링크를 타고 또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이 제 일상입니다.

페퍼노트는 이런 제 삶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됐습니다.

페퍼노트의 시작: 매일도 쓰겠는데?

지난해 1월, 저는 회사를 퇴사하고 잠시 휴식기를 가졌습니다. 그동안 간단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1월에도 앱을 하나, 2월에도 앱을 하나 출시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주변에서는 제가 3월에도 무언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런 계획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낸다면 재밌겠단 생각이 들어 새로운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유튜브를 해보라는 제안을 종종 받았었습니다. 밥 먹다가도 ‘세상에서 제일 큰 생물 개체가 버섯이라더라고’ 하며 잡지식이 툭툭 나오다 보니 ‘그런 것 좀 모아서 유튜브 해보면 안 되냐’라는 말을 곧잘 듣곤 했습니다. 하지만 제 모토는 가급적 노력이 적어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영상 편집은 노력이 너무 많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구독자에게 이메일로 매일 글을 보내는 이슬아 작가의 사례가 떠올랐습니다. 유튜브는 어려워도 이메일을 보내는 것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영상 제작과 달리 글쓰기는 제게 익숙한 일입니다. 소재야 넘쳐나니 주제 선정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분량도 자유롭게, 짧게 쓰고 싶은 날은 짧게 쓴다면 노력이 많이 들 것 같지 않았습니다. 매일도 쓰겠는데, 라는 자신감이 들었지만 가급적 노력이 적어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제 모토에 맞춰 주3회 발송을 기준으로 잡았습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페퍼노트가 시작됐습니다.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라는 소개 글을 적고 ‘콜라를 제트기로 바꿀 수 있을까요?’라는 첫 메일을 시작으로 주3회의 메일링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페퍼노트의 고생: 매일도 쓰겠다고 한 거 누구야?

하지만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명색이 이메일인 만큼, 트위터 분량의 글을 쓰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소재가 넘쳐난다고 생각했지만, 글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소재를 골라내게 되곤 했습니다. 주3회 발송을 이어가기엔 글을 쓰는 데 많은 노력이 들었습니다. 세이브 원고를 만들어 두기는커녕 신혼여행 중에도 페퍼노트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결국 101회부터는 주1회 발송을 원칙으로 삼게 됐습니다. 아마 그보다 일찍 발송 빈도를 줄였더라도 구독자 분들은 이해해 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스스로 ‘줄일 때 줄이더라도 100회 정도는 처음 하려고 했던 대로 해보자’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정도 끈기는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한 번의 펑크 없이 100회를 다 채우고 났을 때 무척 뿌듯했습니다. 그 후에 빈도를 줄이고 나니 저와 페퍼노트의 관계도 한껏 건강해지는 듯 했습니다.

페퍼노트의 정체기: 왜 사람들이 몰라주지?

페퍼노트를 연재하며 구독자 수가 정체되는 시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기대하는 바에 비해 반응이 따라오지 않으니 실망감이 들었습니다. 그만둬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불쑥불쑥 찾아 왔습니다. 그 때를 버티는 요령 같은 것은 마땅히 없었습니다. 그저 버텼습니다. 운동할 때 너무 힘들어도 세트를 마저 채우는 마음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구독자는 생기지 않더라도 꾸준한 사랑을 보내 주시는 기존의 구독자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도 천천히 깨달았습니다.

다행히 구독자 수는 계단형으로 늘었습니다. 오랫동안 반응이 없는 것 같다가도 어느 한 순간 급증하곤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때는 초전도체 뉴스가 핫하던 때입니다. 시의적절하게 초전도체가 무엇인지 설명했던 글이 조회수가 10만이 넘게 터졌습니다. 그 전 몇 달동안 구독자 수가 늘지 않아서 지쳐가고 있었는데, 그 날 하루에 구독자 수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을 보며 얼떨떨했던 기억이 납니다.

페퍼노트의 미래: 유퀴즈? 예스!

페퍼노트는 완전 무료로 제공되고 있는데, 올해도 이 방침을 지켜 나가고자 합니다. 페퍼노트에서 수익이 창출되는 것보다도, 페퍼노트를 아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작년에는 페퍼노트에서 나오는 약간의 후원을 제외하면 수익이 없었지만 올해부터는 광고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광고를 받더라도 페퍼노트의 본질에서는 멀어지지 않으려 합니다. 책 광고는 페퍼노트와 아주 잘 맞을 것 같고, 책이 아니더라도 예컨대 홍삼의 역사를 얘기하며 홍삼 광고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페퍼노트를 시작할 때부터 막연하게, 언젠가는 이 내용들을 바탕으로 책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꿈꿔 왔습니다. 소설가를 꿈꿀 때에는 제 이름으로 책 한 권 내보지 못했는데, 페퍼노트를 모아 출판한 책을 서점에서 보면 가슴이 뭉클할 것 같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요즘 농담인 척 진담으로, 언젠가는 페퍼노트 에디터로 유퀴즈에 나가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다시 페퍼노트의 시작: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돌아보면 페퍼노트를 쓰는 일만큼 저에게 잘 맞는 일도 드물고, 저보다 페퍼노트를 잘 쓸 수 있는 사람도 드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려서는 수학을 잘하고 좋아했는데, 중학교에 가서 문과 뽕에 취하는 바람에 외고에 진학했습니다. 정작 외고에 가서는 또 예술 뽕에 취하는 바람에 소설가가 되겠다며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에 가서는 작곡을 하겠다며 음악에 몰두했고, 전공은 돌고 돌아 수학을 이중전공했습니다. 음악으로 먹고 살 깜냥은 안 된다 판단해 직업은 개발자를 택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중구난방 커리어인데, 페퍼노트 에디터가 되기에는 최고의 커리어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괴롭혔던 제 호기심이 페퍼노트의 원천입니다. 소설가가 되겠다며 연습했던 글쓰기가 페퍼노트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자기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좋다고들 말하는데, 제게 그런 일이 바로 페퍼노트입니다.

이력서에 한 줄 남겨 보겠다고, 또는 부수입을 만들어 보겠다고, 큰 관심도 없던 분야를 기웃거려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어떤 것도 꾸준하게 이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했어야 했던 일은, 숨쉬듯 자연스럽게 제 일상에 녹아 있었던 일, 인생취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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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리는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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