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nho Park
- 글쓰기 모임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한창 글쓰기를 어려워한 때라 한 자도 쓰지 못하고 집에 돌아간 적이 많았습니다. 보통 강남에서 모였는데 집이 얼마나 멀던지, 가는 길 내내 다음에는 나가지 않는 걸 고민했습니다.
- 그런데 신기하게 모임에 나가면 무거운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힘들지만 꾸준히 글쓰기 모임에 얼굴을 비춘 것은 그곳에서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인 듯합니다. 한 자를 토해내기까지 겪은 어려움을, 글쓰기 모임 사람들은 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게 아닐까요.
- 그건 참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비록 다른 주제로, 다른 목적으로 글을 쓰고 있었지만, 나란히 앉아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이 저를 편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 시간이 지나고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읽었습니다. 줄리아 카메론의 책,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카메론은 연인을 잃고 실의에 빠진 친구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카메론은 친구에게 '목격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가 겪고 있는 아픔을 목격할 목격자 말이죠. 그리고 글쓰기가 그 목격자가 되리라고 여겼습니다.
- 화가 났던 일이나 슬펐던 일을 글로 쓰다보면 지난 일을 톺아보며 '아파하는 나'와 '글 쓰는 나'가 자연스럽게 분리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글 쓰는 나'는 '아파하는 나'의 목격자가 됩니다. 다른 자아의 아픔과 상처를 알아주는 또 다른 주체가 됩니다.
- 그래서 글쓰기는 심리 치료 도구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카메론의 일화를 읽고 함께 무언가 하는 존재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 글쓰기 모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용기를 얻었던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 산다는 건 외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리를 이루고 곁에서 함께할 사람을 찾습니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로 내팽개쳐진 우리는 불확실하고 불안하며 어렵고 힘듭니다. 그럴 때 나의 노력을 목격해줄 누군가가 있다면 어떨까요.
- 한배에 타고 함께 노를 젓는 사람, 서로의 수고로움을 지켜보는 그런 사람. 일터에서 안정감을 얻는 것은 그런 동료의 존재 때문일 겁니다. 실패하더라도 내가 쏟은 노력의 가치를 누군가는 알고 있으며 함께 답을 찾아나갈 사람이 있다고 느끼는, 즉 '노력의 목격자'가 있는 환경에서 안정감과 동기를 느끼고 열정을 불태우는 조직이 탄생합니다.
- 좋은 조직에는 모든 노력이 서로 의미를 찾게 해주는 서로의 목격자가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