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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
이혁 ·

후회의 고통

*저의 다른 모든 글들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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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노력한다는 건 정말 참 뭣 같은 일이다.
괜히 “Hard” Work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무언가를 위해/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소중한(’소중하다고 믿었지만 아니었던’이 더 옳은 표현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을 잃을 수도 있고, 가고 싶었던 행사에 못 갈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유혹들을 참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도, 우리는 노력 자체에서 굉장한 아픔을 인내해야 한다.
노력은 해보기 전까지 말은 쉽다.
물론 나중에 보상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추후에 있을 보상이 우리의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준다면 지금쯤 전세계 모두가 성공하지 않았을까?

노력이라는 것이 그렇다.
정말 힘들고,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차라리 뼈를 깎는 대가로 성공할 수 있다면 차라리 뼈를 깎을 수 정도다.
고통의 척도 중 가장 high-level에 위치한 것이 “노력”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노력보다 더 고통스러운 한 가지가 존재한다.
제목에서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듯, 바로 ‘후회에 대한 고통’이다.
그리고 이 후회에 대한 고통을 피하는 방법이 “노력”이라는 점이 굉장히 잔인하다.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곧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 반면, 노력하지 않음에 대한 후회는 곧바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후회가 되는 것은 언제까지나 데드라인이 있을 때의 얘기다.
데드라인에 의해 결정되는 인생은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인가?)

“나무를 심기 가장 좋을 때는 20년 전이다. 두 번째로 좋을 때는 바로 지금이다.”

- 미국 격언

지금 심은 묘목이 추후 어떤 나무로 자랄지는 모르는 일이다.
후세까지 누릴 수 있는 굉장히 큰 그늘과 많은 과일과 꽃을 선사해줄 수도 있고, 죽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지금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

인생은 한 번 뿐임을 피부로 느끼자.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모두와 다르게 진심으로 느끼자.
그리고 오늘 하루도 후회에 대한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자.

+ 훌륭한 나무보다 훌륭한 나무를 많이 심을 수 있는 정원사가 되는 것이 더 나은 결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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