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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서
박준서 ·

감히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다짐

경남의 바다가 보이는 어딘가에 사는, 이제 수능을 며칠 안 남긴 고등학생(사실 상관없지만)이지만 디스콰이엇을 COMEUP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전날 충동적으로 먼 길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사전 등록이 현장 참여인줄 모르고 실수로 했던 나였지만 안갔으면 그냥 해결되는 것을 직접 가기로 한것은 그동안 봐 왔던 디스콰이엇을 만들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였다.


지체없이 디스콰이엇 부스로 갔고 (낯가려서 다른 곳은 멀리서 보기만 보고 안가봤다 ㅎ) 거기서 종한님을 만날 수 있었다. 명찰에 이름과 회사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그걸 보고 바로 알아봐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도착한 보람이 있었다. 물론 바로 그 전날 디스콰이엇 포스트에 댓글을 달아주셔서 기억 하셨을지 모르지만 반갑게 맞이해주던 그 순간의 기분은 단순히 기쁘거나 행복하다는 일차원적인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던 감정이였다.

나는 서울을 혼자왔다

궁금한 것들을 몇가지 여쭈었다. 질문에 정성스럽게 답변을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했다. 종한님은 과거에, 중고등 학생 시절의 메이커로 시도했던 것들과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내용을 써도 괜찮은지 몰라서 자세한 내용까지는 쓰지 않겠다. 종한님이 어떤사람인지 알고 나서는 기분이 복잡미묘했다. DDP를 들어가던 순간부터 각각 부스에도, 관람하러 온 사람들에게도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모두 주체적이고 활동적인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이였다. 디스콰이엇을 처음 본 이후로 시간이 꽤 지났고 수시로 사이트의 여러 디자인 요소가 바뀌고 디스콰이엇 팀이 게시글에 댓글을 달아 피드백을 해주는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디스콰이엇은 빨리 움직이고 있었고 프로덕트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종한님을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건 이 팀에 멋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서는 찾기 어려운. 내 주관과 편견이 강하게 반영되었을진 모르지만 적어도 고교 선생이 괜히 서울 올라가서 폐가망신시키지 말라고 하는 것과 그것을 대체로 수긍하는 학생들과 부모들의 분위기, 역동적인것 보다는 잔잔한것들을 선호하고 새로운 것과 편리함을 경계하는, 싫긴 하나 주체적인 행동에는 별로 관심없는 도시의 분위기에서 나와 함께할 사람을 찾는 것을 쉽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어딜가나 비슷하다고 생각할수 있지만 서울같은 도시에선 너는 안될거야라고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기라도 하지 이곳에서는 모험이란 단어를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전통어 쯤으로 여기고 반응하지 않는다. 허공에 외치는 기분은 욕설보다 강하게 내 심장을 찔렀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져도 멀리서 팀원을 찾을 수는 없었다. 군입대라는 제한선을 넘기지 않는 선에서 뭐든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야 했다. 시간도 공간도 멀리 볼 수 없었다. 내가 경남 어딘가에 산다는 그 물리적 간격의 압박이 같이 자주 활동해야되는 누군가에게 그닥 도움이 되지 않을것이라 생각했던 것도 한몫 했다. 서울에서 내려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지만 무언가 하려면 수없이 위로 올라가야 했던 나는 이게 얼마나 불편한 장애물인지 뼛속 깊이 체감하고 있었다. (여담으로 내가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무언가 하려면 최소 15만원은 들고 움직여야한다. 나의 한달 용돈이다)주변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뜻을 공유하긴 했지만 능력치가 높은 친구들은 100% 수동적이였고 모험을 꺼렸다. 그리고 이제 한발짝 때려고 하면 나에게 사과하며 팀을 떠났다

"이렇게까지 니가 진심일 줄 몰랐다. 미안하다."

난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도움을 줄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라는 질문에 "좋아" 이외의 답은 들을 수 없는 곳이였다.

언제나 성장은 운명적

팀이 다 흩어져 나 혼자남고 개발은 더뎌서 좌절하던 순간에 만난게 디스콰이엇이였다. 토스를 떠난 한 개발자의 블로그에서 연결된 링크를 통해 들어왔다. 나같은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주제를 분리한 커뮤니티는 될것이다 라는 나의 가설또한 디스콰이엇이 증명해나가고 있었다. 블로그에서 타고 들어왔듯이 사용자들의 바이럴도 확실했다. 어느새 디스콰이엇의 팬이 되어 있었다. 이곳의 어느 누구도 우리 팀은 아니였지만 메이커들이 존재하는 것을 체감하는 것 자체만으로 나는 혼자 버텼다. 다시 초심부터 생각하고 고쳐나가길 긴 시간동안 '혼자' 반복했다.

이번 COMEUP에서 종한님을 만나고 또 한번 더 성장할 준비를 하는 듯 했다. 나에게 남은 기간은 3개월 보다 조금 더 긴시간. 단기간에 무엇이든 성과를 내보고 싶어졌고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면서 외면했던 사실을 이제 마주할 시간이 왔다.

나는 복받았다. 아빠가 풀스택 개발자다. 그런데 개발과는 전혀 관련없는 직업이다. 단순히 뭔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아빠가 있었기에 자신감 있게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었다. 코딩이 뭔지 설명이 필요하고 파이썬도 이제 겨우 알아가는 도시에서 아빠의 도움으로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파이썬 루비 아두이노 라즈베리파이 JS등을 직접 해보고, 그리고 아빠가 하는 개발 이야기를 듣고 개발용어를 광범위 하게 익힐 수 있었고 XD, figma, framer를 사용해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볼 수 있었다. 개발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전적으로 디자인과 문제 해결법을 찾는데만 집중했다. 아빠가 해줄거라는 믿음이였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든 아쉽게도 아빠만 믿고 있으면 프로덕트가 언제 완성되냐는 친구들의 말에 얼굴 붉히며 아무말도 못하고 얼버무렸던 지난 2년처럼 될것이 이젠 확실했다. 사실 2년동안 알고 있었다. 아빠와 사촌형처럼 이 집안이 가진 무서운 코딩 능력과 학습 능력, 지식과 수리적 사고력 (우리 집안 양가 친척 통틀어 나만 문과다. 엄마 아빠는 물리학과 CC이고 집엔 물리학 책이 가득할 정도로 '수학을 사랑'하는 집이다. 나빼고)은 발품팔아도 찾을 수 없고 나와 함께 해준다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만 갈수록 알아차렸다. 가끔 너무 올려치기 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9개월동안 아무것도 안하다가 컴퓨터 앞에 하루 이틀 정도만 앉아 있으면 여러 기능이 달린 구동되는 웹 플랫폼이 나올정도로 실력은 대단할지 모르지만 프로덕트를 만들지 않는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틀만에 만들었고 완성되지 않은 채로 올해 2월 이후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멀리 가는 것 같지만 이 포스트의 모든 내용은 하나의 결과를 관통한다. 능력보다 실행력이 중요하다는 것. 남다른 열정과 실행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시너지를 내는 것. 그것이 정말로 필요한 것임을, 이제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순간이 온 것이다.

종한님은 나에게 카페로 먼저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사람을 모으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여서 바로 만들었다.(감사합니다^^) 그리고 카페가 완성된 것, 그리고 일주일 전부터 프레이머로 코드 없이 홈페이지를 만들고 있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같았다. 기쁜지 슬픈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빠로 부터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는 것, 그리고 확실하게 홀로 서보기로 다짐했단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랑 할 만큼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혼자 해볼 수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 이젠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쉬지 않는다. 남은 3개월은 나한테 소중하다. 멋진 능력을 가졌지만 움직이지 않는 팀보다 살아 숨쉬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한명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갈까 말까 고민했던 서울은 또 한번 나를 나아가게 했다.

여담 : 촌놈은 서울이 쫄린다

두번째 혼자 상경이지만 ddp, 강북은 처음이였다. 새로 공사한 광화문 광장과 DDP, 그리고 서울 광장과 시청 도서관은 뉴욕같은 도시에 살기를 꿈꿨던 내 심장을 뛰게, 아니 멎어버리게 만들었다. 광화문 광장 주변으로 여유롭게 앉아있는 사람들과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들, 고층빌딩에 둘러싸인 잔디밭에서 햇살을 받으며 도서관에서 꺼내온 책을 읽는 모습, DDP아래 역사유적과 그 유적을 주변으로 둘러앉은 다양한 사람들, 시선을 옮길 때 마다 고스란히 보이는 우리 역사까지. 지하철이 신기한 단계를 넘어섰을때 보이는 것들은 날 심란하게 만들었다. 서울 사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나도 한 6~7시간 있다보면 둔감해진다. 하지만 내 집으로 돌아올때 창밖으로 보이는 주변환경. 집 앞 정류장에 내리면 정류장 말고는 산밖에 없는 등 역체감이 정말 많이 심한편이라 (사막에 던져진 기분에 가장 가깝다) 서울에 살면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보인다. 누군가는 그에 따른 불편함을 말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불편하더라도 뭐라도 있는게 났지 아무것도 없는 것은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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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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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한
박종한

준서님!!! 만나뵈어서 정말 반가웠어요!!! 저도 오랜 시간동안 외로움을 느끼면서 혼자 이것저것 만들어왔었고, 1년 전에는 휴학 기간동안 집과 주변에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는 게 전부였는데, 운 좋게 친구 한명이 자기가 인턴으로 있는 회사에서 디자이너를 뽑는다고 추천해줘서 지원한 게 새로운 시작이 되었어요. 큰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세상은 준서님 같은 실행가/혁신가를 기다리고 있어요. 여기에도 카페 홍보해 주세요!! 저도 구경하러 갈래요!

박종한
박종한

앗 그리구 준서님이 올려주시는 글은 그 전부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어요!!! 한 번 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ㅎㅎ

Hongmin Park
Hongmin Park

부스에 없어서 준서님 못 만나본게 아쉽네요 ㅠㅠ 가족과 같이 프러덕트를 만드는 부분에서 공감이 많이 가네요 ㅎㅎ :) 저는 언니가 디자이너고 같이 프러덕트를 만들었는데요,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한편으로는 서로의 상황, 목표, 지향점 등이 잘 맞아떨어져야 확장이 가능하더라구요. 서로의 삶이 있는 상태에서 그런 것들을 맞추어 나가는게 어려운 것 같아요. 아무튼 준서님 홀로서기 응원합니다!! 막막할 때 디스콰이엇에서 해소해주세요 🙂

Jenny Hong
Jenny Hong

메이커로그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준서님! 제가 디스콰이엇을 처음 만들게 된 계기도 비슷한 외로움을 느껴서였어요. 저는 프로덕트를 개발할 능력은 있었지만 메이킹 과정이나 동기를 공유할 상대가 주위에 없는게 항상 답답했고, 개발을 지속할 의지를 저해하기도 했던것 같아요. 준서님 같은 인디메이커 분들이 서로 교감하고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공간을 계속 만들어 볼게요 :) 혹시라도 다시 서울 오실 일이 생기시면 꼭 만나뵙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