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에게 쓰는 편지 - 2016년의 이요한의 글
회고를 적기로 했어요.
뭐 그렇게 대단한 일처럼 이야기 하느냐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요즘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들과 단어들과 기억들이 가득해서 무엇부터 꺼내보면 좋을까 생각을 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사탕이 가득한 유리병에 손을 넣고 한 움큼 잡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이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그러면 와르르 쏟아봐라, 라고 듣던 분이 이야기 했습니다. 너무 간단하게 이야기 해서 놀랐어요.
그래서 쏟아보려구요. 제가 과거에 썼던 글들로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외장하드를 열어보니 데이터가 나이테처럼 쌓여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 겹 한 겹 벗겨보면서 이요한은 누구인가를 알아보려구요.
이 작업을 하는 동안은 저에게 매우매우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요즘 많이 혼란스럽고 내가 하는 말에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과거의 내가 해왔던 일과 말과 글들을 정리하면서 다시금 제가 어떤 사람인지 다져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정말 개인적인 글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게 생각보다 많이 용기가 필요한 일이군요. 그럼 다들 좋은 밤 되시고, 즐겁게 감상해 주세요.
아래 전문은 2016년 스무살의 이요한이,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후배인 T에게 보내는 응원 편지입니다.
*
T에게
작년에는 내가 편지를 받았는데, 이제는 내가 너한테 편지를 주는 입장이네. 저번에 짧게 통화할 때는 되게 내가 별 말 안 했잖아. 뭔가 해주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말로 하자니 정리가 안돼서, 그리고 너희가 시간이 없으니까 핵심만 말해주고 싶었단 말이야.
글쎄, 나는 뭐랄까 내가 고삼때 했던 생각들을 너희가 하고 있을까가 제일 궁금해. 고삼이라는 시간이 나한테는 굉장히 무거웠거든. 그래서 어서 벗어나고 싶었고. 열아홉이라는 나이가 실감이 잘 안나더라고. 수능이 뭔데 날 이렇게 힘들게만 할까,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아래층에서 뛰어다니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열아홉이 끝나면, 올해가 가면 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까?
사회에서 항상 나오는 이야기는 실업난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직업 중에는 공무원 비율이 가장 높다, 이런 이야기들 뿐인데. 그런 걸 보면서 정말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 내가 만약에 스무살이 된다면 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뭘 하고 싶을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게 좋은 대학인가?
엄마나 아빠, 친구들이나 선생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그러더라. 아무리 그래도 수능은 봐야하고, 대학은 가야하지 않겠냐. 우리나라는 그런 사회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언젠가 너에게 대학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난 남들처럼 공부를 했어. 수능날까지. 아니 사실 그런 척을 했던 것 같아. 복도에 한 시간 두 시간 서 있으면서 모의고사와 문제를 풀었지만 뭔가 속으로는 계속 똑같은 생각이 들더라. 지금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그렇게 수능이 딱 끝났는데, 뭔가 허무한거야. 이제 학교에 가도 수업은 없고, 그렇다고 내가 다시 전처럼 아래층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어. 그럼 뭘 하느냐, 수능 결과는 나왔으니까, 그 점수 맞춰서 대학에 가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듣는 시기가 오는거지.
난 그러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일을 시작했다.
T야. 내가 전화로도 이야기했지만, 대학을 갔기 때문에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게 아니야. 그건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2년의 교육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그런거지. 사회에 나가기 때문에 네가 선택을 할 수 있는 폭이 늘어나는 거야. 세상에는, 생각보다 자기 길을 꿋꿋이 멋있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고등학교 바깥에서, 대학교 바깥에서 자기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사람들이 정말로 많아.
네가 그걸 느꼈으면 좋겠다. 스패너는, 와부고는 작아 T야. 네가 여기서 했던 일들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극히 일부 일뿐이야. 스스로 뭘 하고 싶어하는 지 아는 게 중요해. 그리고 그걸 믿어.
저번에 그런 말을 했었지, 내가 먼저 길을 닦아 놓고 있겠다고. 내가 닦고 있는 길은, 너뿐만이 아니라 S, Y, J, M, K, G, 스패너를 했던 친구들과 내 주변에서 같이 일 했었던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나 또한 하나의 사례일 뿐이지, 정도는 아니라는 거. 만약에 네가 나랑 보는 방향이 다르더라도 나는 네가 가는 길이 맞다고 말할 거야.
T야, 지금은 실감이 안나겠지만 수능이 네 인생에서 그렇게 크지 않은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될 날이 올거야. 그때 너도 S나 스패너 3기 후배들한테 네 이야기를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이제 고3 T가 아니라 사회인 T로 만날 날이 곧 오겠다. 기다리고 있을게, 끝까지 힘내자.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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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재미있는게 그 친구는 도시계획 전공으로 들어가서 지금 아나운서를 준비 하고 있어요 (* * )
요한님 메이커로그가 Must Reads 154에 선정 됐어요! https://stib.ee/lHT7
야호 👀 감사합니다
T발 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