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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희
손경희 ·

원어민을 만나면 영어가 되는 줄 알았지

흔히 그렇듯 나 역시 샬라샬라 멋지게 영어를 쓰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와 학원에서 영어를 계속 배우긴 했다. 나름 10년 넘게 눈과 귀에 바르니 영어로 된 전공책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아예 못 하지는 않지! 라는 약간의 자신감을 가지고 혼자 미국 동부에서 3주 짜리 홈스테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원어민친구 #홈스테이 #외롭고 #답답한
나를 초대해 준 가족은 동갑내기 친구와 부모님, 세 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친구는 자기방을 양보해주고 손님용 카우치를 썼고, 부모님도 무척 다정하셨다. 미국은 학기 중이라 학교도 같이 다녔다. 거의 하루종일 눈 마주치고 웃고 함께 음식을 나눠먹는 시간을 보냈다.

주변에 원어민들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영어 실력이 쑥쑥 늘 줄 알았는데, 기대와 달리 인간적인 교류보다는 동물적인 교감에 그쳤다. 내가 무슨 늑대소년🐺도 아니고 손짓발짓을 해도 소통이 잘 안 되니 잔뜩 주눅이 들었다. 낯가림 없는 ENFP 에게도 언어의 장벽은 높았다😲.

고맙게도 친구는 "It's okay. Your English is much better than my Korean." 이라며 위로해줬다. 언어는 수단이고 목적은 소통이니까 괜찮다고. 나만 0.5 배속으로 말하는 데도 사람들이 못 알아들으니 점점 말 수가 줄고, 다른 사람 말을 이해 못 해도 대충 알아들은 척 눈치를 봤다. 영어에 노출이 많이 되면 귀가 트이고 입이 열린다던데 이게 뭐람. 나는 점점 작아지기만 했다.

#원어민할머니 #긴장풀고 #희망적

그러던 중 주말에 친구네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할머니는 귀가 어두우셔서 온 가족들이 큰 소리로 또박또박 천천히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모두가 평소에 이렇게 말하면 다 알아들을 텐데! 할머니도 떨리는 목소리로 아주 천천히 말하셨는데, 한 음절 한 음절이 다 들리고 쉬운 말만 쓰셨다. 누군가를 100% 이해하는 건 처음이라 마음이 편했다. 언어에 막혀 고립된 와중에 동아줄이 하나 내려온 것 같았다.

한국어가 먼저 떠오르고 영어로 바꾸어야 하는 번역러에게 필요했던 건 할머니의 느긋함이었다. 바쁘게 머리를 굴리는 동안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첫 대화 상대였다. 몸은 다 자랐지만 언어적으로 미성숙한 인지부조화 상태. 긴장이 풀려야 그나마 띄엄띄엄 할 말을 할 수 있었다.


3주는 금새 지나고, 자신감은 커녕 두려움만 커진 채로 한국에 돌아왔다. 원어민과의 교류라는 기회는 희소했다. 길고도 짧았던 애매한 시간. 문화적 다양성은 배웠지만 영어 실력은 조금도 늘지 않았다.

후에 20대를 보내면서 겨우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는데...

Luno

생각부터 영어로, 나의 첫 AI 원어민 친구 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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