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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
이혁 ·

“나”를 잃고 싶지 않은 것과 꾸준함이 무슨 관계인데?

지옥 바닥을 기어다닌 나날들

작년 하반기에 너무 힘든 일들이 연이어 들이닥쳤고, 그때부터 너무 기인(棄人)처럼 살기 시작했다. 내가 당시 느꼈던 감정들이 너무 부정적이었고, 부정적이기만 했기에, 그 외적인 모든 감정들을 하나라도 보이는 사람들이 부러워서 싫을 정도였다. 세상이 나를 놀리는 것만 같았다.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벌리고, 많은 책과 영상을 접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극히 일시적이었다. 활동을 하는 모든 순간들 속에서조차 나는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혼자서 보내는 시간보다는 나았다.

평일에 비해 바쁘게 지내지 못해, 외로움 가득한 주말과 공휴일을 혐오했다. 그때의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리자면, 사실상 송장이었다. 숨만 붙어있었을 뿐.

설 연휴, 어질러진 방바닥에 엎드려서 유튜브에 "혼자 노는 방법"을 검색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너무 슬프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가족들과 오손도손 시간을 보내느라 학생들이 다 빠진 텅 빈 명절의 기숙사 안, 내 자신의 신세의 처량함이 더욱 극대화됐다. 너무 순간적으로 바뀐 상황들에 무너진 내 자신이 기존에 이상적으로 꿈꾸던 모습과 괴리가 컸기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눈물이 났다.

웃기게도, 그 상황 속에서도 영상은 계속 찾아다녔다. Distraction을 정말 절실하게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실뜨기 하기, 혼자 체스 하기 등 무엇이든 좋았다. 휴일 동안이라도 정신만 다른 곳으로 팔리게 할 수만 있다면.

당시 본 것은 어떤 심리학자가 "혼자 노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이었다. 영상의 내용 자체는 혼자 노는 방법이 아닌, 조금 더 본질적인 내용, 즉 "왜 혼자 노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냐"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영상 전체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딱 한 가지는 뇌리에 깊게 박혔다. "지금 외로움과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제대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항상 자존감이 높았기에, 당시에도 나는 ‘지금 겪는 것은 일시적인 시련일 뿐, 이겨낼 수 있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내용이 왜 갑자기 가슴을 울렸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불현듯 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인사이트

나는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척만 했을 뿐,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높은 자존감은 실제가 아닌, 사람들에게 보여주고팠던 거짓된 페르소나였으며, 연약함을 감추기 위한 방어 기제였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외적인 요인들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나는 외적인 요인들에 너무 기대면서 살았다. 그리고 기댔던 외부 요인들이 무너지자 스스로가 무너져버렸다.

그렇게 찾던 Distraction 역시 외적인 환경 변화의 일종이다. 문제도, 해결책도 다 외부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액션

이 생각이 들고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방 청소였다.

1인실에 살았기에 내 방을 볼 사람은 나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을 깔끔히 정리했다. 바닥에 널부러진 옷가지들을 다 갰다. 이불 정리를 했다. 책상 위를 정리했다. 이어서 기숙사 공용 청소기를 가져와 바닥과 현관문 앞을 청소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모델하우스에 온 듯한 느낌이 날 때까지 했다. 손님이 왔을 때만 깨끗하게 유지되는 방 역시 외적인 요소에 기대고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외적인 요소에 휘둘렸던 내 자신이 너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방 청소 뿐만이 아닌, 외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되었다면, 그 어떠한 모습도 다 바꾸고자 마음을 먹었다.

두 번째로 한 것은 샤워와 면도, 그리고 향수 뿌리기였다. (당시 나는 몇 주간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길었었다.) 약속도 없었고, 어디 나갈 계획도 없었지만, 그렇게 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만 스스로를 가꾸는 것 역시 외부 환경에 휘둘리는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로 한 것은 무작정 나가서 달리는 것이었다. ”정신이 산만한 것은 육체가 편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떠올라서였을까, 이어폰도 안 끼고 그냥 뛰었다. 숨이 찰 때까지 뛰었고, 숨이 찼을 때 더 빠르게 뛰었다.

뛰면서 나의 행동거지들을 좌우하는 또 다른 외적인 요인들에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5amily였다.

나는 평일에만 새벽활동을 할 뿐, 외적인 요일과 시간들에는 스스로가 자랑스럽지 못했다. 열심히 산, 하지만 짧았던 새벽시간들이 이롭지 못한 그 밖의 시간들에 대한 합리화가 되었고, 이후에는 더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될 변명이 되었다.

5amily가 나를 망쳤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5amily가 없었다면 나는 결코 지금의 모습조차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5amily의 활동만으로 내가 만족할만한 성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이지 독이었다. 지금까지의 성장을 퇴보시키는 위험한, 하지만 너무도 달콤한 발상이었다.

이 날은 일요일이었고, 나는 다음 주말까지, 더 나아가 모든 주말과 모든 시간들까지, 스스로가 만족할 모습을 스스로에게 보여주기로 마음 먹었다.


회고

생각해보면 스트레스와 고통을 느낄 때마다 나는 해결책을 항상 외부에서 찾고 있었다. 스트레스와 고통 자체도 돌이켜보면 외부에서 생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쉽게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휘둘리는 동시에 의존하는 내 자신이 너무 안타까웠다.

역설적일지는 몰라도,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것은 결국 하기 싫은 것들이다. 하고 싶은 것들은 결국엔 순간적인 만족을 따내기 위한 아주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나는 매일마다 “그 날의 가장 하기 싫은 일”은 꼭 자체적으로 마련해서 스스로에게 선사하고자 하고, 매일 최소 한 가지씩은 선사하고 있다.

그 날을 기준으로 나는 매일마다 새벽에 러닝을 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뛰는 게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올리는 시점 기준, 194일째다.)

러닝을 빠지는 건 한 번이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분노는 오래간다. 나는 적어도 내 자신만큼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믿고 싶다. 그렇기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거르고 싶지 않다.

하루 끝에서 돌아봤을 때, ‘오늘 이런 x같은 일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x 같은 일은 내가 만들었고, 결국 이겨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은 지난 날의 자기혐오로 시작했지만, 이는 사실상 self-love의 또 다른 형태였다.


글을 마치며

스스로를 사랑해서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옷 산다고? 충분히 존중한다. 하지만 내적으로 단단해지는 것을 더욱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 시작은 ‘꾸준함’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말로 들었을 때는 참 쉽지만, 결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효과가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었냐고? 나중에는 겪었던 일들을 편하게 이야기할 날이 오겠지만, 그 전까지는 self-grind mode ON이다.)


자기소개

이렇게 말하는 너는 누구냐고?

(앞은 회고였으나 지금은 급 공손)

저는 꾸준함의 가치, 다른 말로는 ‘그럼에도 하는’ 삶을 지향하는 이 혁이라고 합니다.

5년째 새벽 5시 이전에 일어나서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해당 가치를, 넓게 보면 “꾸준함을 통한 최선”이라는 가치를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3년째 [ 계획 달성의 습관화를 돕는 미라클모닝 커뮤니티, 5amily ]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리고,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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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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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
이혁

서툴게 쓴 긴 글 다 읽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다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