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답해주지 않아서 물어보지 않았다.
온라인 영어교육 서비스 시원스쿨의 마케팅 팀장으로 일할 때의 경험입니다.
거의 벌써 10년 가까이 된 이야기네요. 라떼 이야기로 골방에 넣어두기에는 현업인 비즈니스에도 기본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아까운 인사이트라 생각해서 꺼냅니다. :)
시원스쿨에서 소셜커머스 티몬에 약 20만 원 정도의 1년 프리패스 상품을 론칭했습니다. 당시의 소셜커머스는 지금과는 개념이 달랐습니다. 일정 숫자가 모여야 딜이 성사되는 형태를 기본으로 파격적인 할인이 디폴트가 되는 시절이었어요. 이때 교육상품 중에도, 일반 상품 중에도 드물게 과감하게 20만 원대 상품을 론칭했고 우리는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 후로 몇 년을 티몬, 위메프 등에서 폭발적인 매출 확대를 만들 수 있었죠. (성수기 100억 이상 매출)
이런 폭발적인 성공의 과정에서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다이내믹하기 때문에 인사이트도 쏟아지게 되는데요, 그중에 오늘은 기억에 남는 일화. 소셜 커머스에 '소셜' 이 없는 것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된 제 성공 경험을 소개합니다.
처음에 론칭을 했을 때는 판매가 매우 저조했습니다. 티몬 쪽에서는 1년 상품의 기간을 쪼개거나 강의 구성을 쪼개서 3-4만 원짜리를 팔아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제시하며 압박했었죠. 저 또한 내부에서 압박을 받았고요. 전날 심야 홈쇼핑 방송을 끝낸 후 오후 출근하기로 하고 쉬면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호출이 와서 부리나케 회사로 날아갔던 기억도 나네요.
사무실에 돌아와 가만히 앉아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객단가 낮은 상품 판매가 주력인 채널에 고가를 들고 온 가격 전략의 실패일까. 아니면 우리 상품과 맞지 않는 채널에 상품을 론칭한 채널 전략의 실패일까. 여러 가지로 고민을 했습니다.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을 하면서 우리 상품 상세페이지와 티몬 사이트를 살펴보다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을 발견했습니다. QnA에 질문이 없는 거예요. 나름대로 노출도 좀 되었고, 고관여 상품인 교육의 특성상 여러 가지 물어볼 것들이 많은데 (레벨, 강의 구성 등) 너무 질문이 없었습니다. 성인 대상 온라인 영어 강의라는 비즈니스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설명할 기회가 필요했습니다. 상세페이지에는 그 내용을 다 담을 수 없고요. 질문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설명할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왜 질문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들도 살펴봤죠. 그런데 마찬가지로 생각보다 질문이 별로 없는 거예요. 제품에 대한 질문은 없고 주로 배송이나 환불 같은 단답형 질문들이었어요. 소수의 제품에 대한 질문들도 있었지만 뭔가 답정너 같은 짧은 단답형 대답이 주를 이루더군요. 소셜 커머스인데 '소셜' 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점을 공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가설을 세웠어요.
'진정성 있는 개인화된 친절하면서도 상세한 답변을 한다면, 사람들은 물어보기 시작할 것이다. 원하는 답변을 받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마침 한 분께서 이런 질문을 해주셨어요.
"팝송 가사를 해석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시원스쿨 강의를 들으면 팝송을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 분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렇게요.
실제로 저희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제가 어렸을 때 많이 듣고 자란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가 함께 부른 'Perhaps Love'의 가사를 분석했어요. 그리고 모든 문장마다 시원스쿨 강의의 몇 강에서 문장 해석에 사용되는 어법을 배우는지 주석을 다 달았습니다. 하루를 통째로 투자해서 장문의 댓글을 달았고, 이 고객은 20만 원이 넘는 프리패스를 구매하셨습니다. (당시 티몬에는 질문한 고객이 구매하면 상태 아이콘이 구매로 변하는 기능이 있어서 댓글창에서 고객의 구매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음)
이렇게 답정너 대답이 아니라 고객과 '소셜 네트워킹'을 하면서 질문에 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녹여냈고, 비슷한 질문이라고 해도 아침에 댓글을 달 때는 아침인사를, 점심 때는 점심 인사를, 밤에는 굿 나잇 인사를 담아서 복붙이 아니라는 것을 고객에게 보여드렸어요.
질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판매도 폭발적으로 늘어났고요. 팀장으로서의 다른 업무는 모두 밤 12시 이후로 미뤄놓고 QnA에 답변 다는 데 올인했습니다. 그런데 늘어난 질문에 이렇게 일일이 진정성을 담아 개인적인 경험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형태로 답변을 적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고 그러다 보니 질문이 쌓여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 지점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미 구매하신 고객분들이 대신 답변해주시기 시작한 거예요. 자발적으로. 제가 다른 질문에 이미 답변했던 내용이나 본인들이 받은 피드백을 참고로 중복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주는 고객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분들은 이미 구매를 하셔서 저희 제품 상세페이지로 다시 돌아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개인화된 답변을 받다 보니 저희와 '관계'가 형성되어 수시로 이 QnA 게시판을 보고 계셨고 질문이 밀리는 게 안타까웠는지 직접 답을 달아주시기 시작한 거죠. QnA에 진짜로 '소셜' 이 생긴 것입니다.
이 사례는 지금 시점에서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도, 고객도, 시장도, 플레이어도 변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 문제에 닥쳤을 때 (판매가 안된다) 해결점을 찾는 사고와 실행의 방식
- QnA로 고객에게 만족을 주고 긍정적 관계를 형성. 그리고 고객이 플레이어로 뛰게 되는 선순환
과 같은 것들 말이죠.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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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경험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디스콰이엇 팀원으로 일하면서 진정성 있는 개인으로서 다가가려고 많이 노력하는데요, 이런 일에는 시간이 많이 들지만 그만큼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동현님께서 적어주신 내용을 보고 한동안 멈춰있던 SNS 콘텐츠를 만들어서 메이커로그를 소개하는 일을 재개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런 좋은 내용을 더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서요! 영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도움이 되는 글이라고 해 주시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SNS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혼자 노트에 적어서 혼자 봐도 될 것을. 저는 왜 디스콰이엇에 글을 쓰고 다른 이가 봐주고 피드백 줄 것을 기다릴까. 공감받고 싶어서 라는 어찌보면 당연한 이유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SNS에서 다른 이의 글에 공감해주는 것도 참여자로서 해야할 일이겠죠. 말하고 듣고 말하고 듣고. 참여하는 구성원들도 훈련되어야 한다, 구성원으로서 의무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도 듭니다. :)
저도 커뮤니티 구성원으로서 일종의 책임감을 가지고 디스콰이엇에 올려주시는 글들을 다 읽어보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면 정말 공감이 가거나 깨달음을 주는 동현님의 글 같은 반가운 글을 만나게 되기도 하네요 :)
재밌는 뒷(?)이야기 감사합니다 :)역시 QnA가 최고네요
워낙 오래된 이야기라 군대 이야기 하는 느낌이라서 쓸까 말까 했던 건데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에는 CRM 툴을 이용해서 자동화로 고객센터가 운영되는 곳들도 많죠. 챗봇이라던가 음성안내라던가 모두. 조금은 아쉬운 것 같아요. 숫자가 말하는 효율성은 높아질 수도 있기는 하지만. 업종에 따라서도 다 다를 수 있으니 무조건 자동화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