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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이종석 ·

상실에 관하여 : 강해지려 하지 말고, 슬픔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라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겪은 상실에 대해 얘기하고 또 얘기하는데, 그것은 마음이 정신적 충격을 다루는 방법이다. 또한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동안 고통을 부정하는 방식이다. 마음이 강해지면 부정은 서서히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치유가 되면서 지금껏 부정해왔던 모든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분노는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에 더 신경쓰지 않았던 것에 화가 나고, 사랑한 이를 더 잘 보살피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분노가 논리적이거나 타당할 필요는 없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날 수도 있다.


분노하고 있다는 것은 치유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수면으로 올라오기에는 너무 이른 감정들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판단하지 말고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고 분노 그대로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 삶은 불공평하다. 죽음 역시도 불공평하다. 분노는 상실의 불공평함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이다.

“무거운 마음 안에서 살아가는 일, 그 밖에 내가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외로움= 대화를 나눌 사람이 집에 없다는 것. 몇 시쯤에 돌아오겠노라고, 또는 (전화로) 지금 집에 와 있어요, 라고 말할 사람이 더는 없다는 것.”


단지 슬픔 곁에 앉으라. 슬프면 자신이 그 슬픔을 느끼게 하라. 분노와 실망에게도 이같이 하라. 하루 종일 울어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 상처를 억누르거나 또는 표현할 정도로 충분히 아물지도 않았는데 인위적으로 꺼내려고 하는 것만 피하면 된다. 여기서 얻어야 할 것은 고통을 느끼고 난 후 찾아오는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알라. 정작 피해야만 하는 일은, 쏟아내어야 할 눈물이 충분히 빠져나오기 전에 울음을 억지로 멈춰버리는 것이다.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말라. 눈물이 전부 빠져나오게 두라. 그러면 스스로 멈출 것이다.


사랑한 이의 상실에 대해 이상 없음 또는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용의 단계는 사랑한 이가 실제로 떠나버린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 새로운 현실이 영원한 현실임을 인정하게 되는 단계이다. 이 현실을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또는 헤쳐 나가보려고도 하겠지만 결국 받아들이게 된다.


수시로 그와 관련된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그간 네가 힘들여 꼭꼭 눌러두었던 슬픔은 여지없이 또 분출될 거야. 그러나 기억해. 어떤 경험을 하든지 그 안에는 늘상 슬픔이 웅크린 채 숨어있지.


사랑한 이가 떠나버린 후에라도 그에게 편지를 쓰라. 당신이 어떻게 지내고 그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말하라. 만일 무덤 앞에 있었다면 했을 말들을 편지로 옮기라. 다음에 사랑한 이의 무덤을 찾았을 때 지금껏 쓴 편지를 다 모아 그에게 읽어주면 그 편지들이 결국엔 당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다면 다소 광적인 자극을 접하더라도 패닉은 줄어들 것이다. 직관적으로든 이해를 해서든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패닉은 누그러진다.


상실과 재해의 참담함 속에서 도무지 살아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심지어 얼마 동안 자신의 앞날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리고 그런 충격을 겪고 다시 살아갈 수 있을지 의심이 되더라도 가야 할 삶은 남아있다. 인간은 자신이 아는 것보다 잠재된 적응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하고 삶을 즐길 때쯤, 이것은 사랑한 이를 배신하고 있는 거라고 느낀다. 물론 다른 어떤 것으로 잃어버린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결합, 의미 있는 새로운 관계, 새로운 상호 의존 관계를 형성할 수는 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하므로 그들의 삶에 참여하게 된다. 우정과 관계 속에 자신을 투자한다. 다시 예전처럼 살아가기 시작한다. 다만 이 모든 것은 슬픔에게 충분한 시간을 배려할 때만 가능하다.


언젠가 우리는 일상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 절망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겁니다. 


잘린 나무는 육체적 충격을 경험한다. 그것으로 나무의 삶이 완전히 끝났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곳에서 작은 생명의 새싹이 돋아나온다. 아주 서서히 그리고 조용하게.


출처 : https://www.longblack.co/note/477


감사합니다.

The Future Makers Club 그룹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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