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일화 2
안녕하세요. 포트존 대표 송준입니다.
지난 3월에 게시한 기적 일화 1(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기적)에 이은, "기적 일화2"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기적 일화 1

기적 일화 1 | Disquiet*
여러분들은 기적을 믿으시나요?저마다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기적은 내일이 더 나은 삶, 낫다고 생각하는 삶을 기적이라 부르고 싶습니다.섬에서 20년? 가능해?저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소재한 영흥도라는 섬에서 태어나, 대학교 입학 전까지 20년 가량 생활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 할 때의 학급 친구들은 고등학교...
https://disquiet.io/@songjun2625/makerlog/7774?commentId=29058
기적 일화2는 "대학교 입학 후, 1학년때의 기적"입니다.
아무도 안한다면, 내가!
20여 년간의 섬 마을 생활을 마치고, 대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입학 날이 가까워 오지만, 학과 사무실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보통, 학과 사무실에서 연락이 와서 OT 또는 대학 입학 관련해서 안내를 받아야 한다 생각했지만, 연락을 아예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한 의문으로 학과 사무실에 연락을 했고, '15년도부터 개정된 "개인정보 보호법"으로 인해, OT를 주관하는 학생회에 연락처를 넘길 수 없다는 답변을 얻게 되었습니다.
위와 같은 답변을 받은 저는, "내가 조금만 노력한다면, 더 많은 친구들을 더 빠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따라, 수*휘, 학교 홈페이지 등 수시 및 정시 합격자 친구들을 알 수 있는 커뮤니티에 모집 글을 올리며 단톡방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희 학과의 정원은 70명으로, 약 64명 가량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이고, 누가 어떤 사람인지는 명확하게 몰랐지만, 한 번이라도 함께한다면 달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새내기배움터(OT)전에 과 MT를 추진하여 약 40명 의 과 동기가 가평에 위치한 펜션에서 자체 MT를 실시하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과에서 주최하는 OT전에, 이제 막 성인이 된지 얼마 안된 학생이 단독으로 추진하였습니다. 부족하고 어수선한 준비에 혹, 참여한 동기들에 대한 불만에 걱정이 앞섰지만, 동기들은 "정말 좋은 경험"을 안겨주어 감사했다 들었습니다. 이에 힘입어, 다른 학과 친구들도 친해지면 좋겠다 생각하여,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같은 학교 신입생 친구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학교에서 주최하는 OT전에 네트워킹 자리를 운영하고, 더 나아가 총학생회, 단과학생회, 과학생회 에서 신입생 정보를 요청하기도, 홍보 게시글을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 저는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시기였고, 3 주 만에 약 2,000여 명의 동기들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입학 이후 저는 좀처럼 캠퍼스에서 자신감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교양 수업 때마다 출석 부르는 저의 이름을 듣고 처음 보는 친구들은 동시에 저를 쳐다보고 쑥덕거리기 일쑤였으며, 제가 캠퍼스 내 돌아다니거나 수업 듣는 모습은 도촬을 당하며 모 과의 단톡방에는 "OO에서 수업 듣고 있음, OO 지나가고 있음 등" 저의 모습이 회자되기도 하였습니다.
갓 20살이 되었던 저는 당시의 상황이 너무 힘들고, 무서웠습니다. 그럼에도, 몇 개월의 회복 기간을 거쳐, 신경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고, 17학번이 입학하는 3년 간 신입생 입학간 학교-신입생의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없었던 일이었음을 알기에 고생 많았다고, 이 기회를 빌어 다독여주고 싶습니다.
나를 위한 봉사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 때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동행 프로젝트"라는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봉사는 4학년에 접어 들기 전까지 약 3년 간 교육 봉사를 하였습니다.
참여 계기로, 섬에서 경험한 교육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고, 때로는 초등학교의 돌봄 선생님이 되기도, 때로는 고등학교의 방과후 수학선생님이 되기도, 때로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보조 선생님 역할을 도맡아 하곤 했습니다.
해당 교육 봉사(동행 프로젝트) 외에 수 많은 봉사활동도 꾸준히 했습니다. 장애인, 노숙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했었고, 이를 통한 소셜벤쳐 프로젝트를 수 차례 운영하였습니다.
봉사를 가기 위해, 때로는 목/금 공강 또는 금 공강을 내며 교육에 취약한 친구들을 위해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물론, 주에 10시간 이상 봉사를 하면서 학점도 비교적 낮게 나오기도 하였지만, 절대 후회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봉사는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동아리를 만들기 위한 전국 8도 유랑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배드민턴을 즐겨했습니다. 따라서,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무조건 배드민턴 중앙동아리를 들고자했습니다. 하지만, 배드민턴 동아리는 학교 내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1학년 1학기를 마친 여름방학 때, 동아리 접수 기간이어서 학교 커뮤니티를 활용하여 초기 멤버들을 꾸리고자 했고, 당시에, 한 명의 친구와 한 명의 선배를 영입하여 함께 동아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동아리를 만들기 위한 조건은 크게 2가지였고, 첫째는 20명 이상의 동아리원 확보, 둘째는 중앙동아리 회장의 10명의 이상 서명 받기 였습니다.
먼저, 동아리원 확보를 위해 온라인 홍보했지만, 반응이 없어 계절학기 시간표를 찾아, 강의실마다 방문하기도, 캠퍼스 내에서 직접 홍보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결국, 20명이 넘는 초기 동아리원들을 모집할 수 있어서, 첫 번째 조건은 충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인 "중앙동아리 회장의 10명 이상 서명"을 위해, 그들의 연락처를 알아내 직접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5학번이었고, 회장들의 평균 학번은 10학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 먼저 연락온다면 저는 적잖이 당황했을 것 같습니다. 또, 신청 시기는 방학 시즌이었고, 동아리 회장들은 고향에 돌아간 경우가 다수였습니다. 따라서, 동아리 회장들의 서명을 받기 위해 전국 팔도를 돌아 다니며 직접 서명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하이클리어"라는 이름의 "가동아리"형태에서, "STAB"이라는 "신규동아리"로 만들어내며, 1년간 200명이 넘는 동아리원이 함께하고, 현재 8년이 지난 지금 대학교에서는 최우수 동아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20살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위의 내용들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용기란, "나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고, 신념대로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먹을 수록, 용기란 쉽게 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이에게 고백도,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하는 것 모두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더 늦기 전에 용기내어 미루어왔던 일들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용기있는 자에게 기적이 온다" 생각합니다. 또, 시간은 절대 중요하지 않다 생각합니다.
저의 20살 기적 이야기를 마치며, 다음에는 그 이후의 기적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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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이게 다 20살이실 때 이야기이신가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부족하지만, 이루어내고자 하던 욕망에 대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학교 내 배트민턴 동아리가 있었다면 가입했을텐데.. 제가 만들 생각은 못했네요 ㅎㅎ 2편도 잘 봤습니다!! 😊👍
감사합니다! :> 3편은 더 알차게 연재해보겠습니다!
송준님 메이커로그가 Must Reads 164에 선정 되었어요 :) https://stib.ee/raZ7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