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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Shin
Peter Shin ·

우리 서비스명을 지워도 말이 되는 IR덱은, 미국에서 읽히지 않는다.

· 슬라이드 세 장, Before/After로 바꿔보기. 실예시.

3-4년 전 YC 투자 유치 이후, 요세미티에 놀러갔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현지 B2B SaaS 전문 VC 하우스 파트너였다. 요세미티라 목소리도 때때로 들리지 않아서 어떻게 해서든 끊으려고 말을 멈춰도 다짜고짜, 우리 서비스를 이미 공부해왔다며 말을 이어간다. 20-30분간 자신이 왜 우리 회사에 투자하고 싶은지 핏칭하는데, 내용이 이랬다.

나는 Data Governance만 지난 10년간 팠고 너희 팀이 무얼하려는지 안다. 너희가 Series A 가려면 이런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이런 기능들도 필요할거다. 내가 투자하면 이런 사람들 소개시켜줄수 있다. 한번만 만나자.

통화를 하며 시켜놓은 피자가 단단하게 식었다. 그런데 끊고 나서 더 오래 걸렸던건 따로 있었다. 그 파트너가 우리 회사를 세 줄로 설명했는데, 내 덱은 그때 20-30장이었다.

덱은 우리가 발표하는 자료가 아니다. VC가, 고객이 우리 없이 읽고나서 옮길때 쓰는 자료다. 미국 초기 미팅은 보통 20-30분 줌 콜이고, 담당 심사역은 당일, 어쩌면 콜 즉후, 우리가 없는 데스크 앞에서 우릴 한 줄로 옮긴다. 한국 팀들이 실리콘벨리 VC 앞에서 힘겨워하는 지점은 첫 60초인데, 그 안에 탈락이 확정된다는 얘기라기보다, 그 60초에서 옮겨 적을 한 줄을 못 건지면 안되기 때문이다.

Earn your next 10 seconds 라는 표현처럼, VC 앞에서 얘기할때 우리는 문장 뒤에 따라올 다음 10초를 얻기 위해 지금 VC의 관심을 얻어내야 한다. 이렇게 못하면, 뒤에 붙은 29장은 아예 열리지도 않는다.

그럼 30장 중 어디부터 고치나? 한국 팀들 덱에서 제일 자주 걸리는 세 장이다.

1️⃣ 첫 장: 시장 규모 → 옮겨 적을 한 줄.
Before: "글로벌 시장 규모는 120조원이며, CAGR은 18%입니다”.  한국 심사역 앞에선 큰 야망으로 읽혀 칭찬받을수도 있는 방식이다.

미국에도 TAM SAM SOM 장표가 나온다. 다만 그 120조원은 같은 폴더에 들어 있는 다른 덱 열 개에도 거의 그대로 적혀 있어서, 파트너가 회의에서 옮겨 적을 문장으로는 안 남는다는 점을 기억하자. 한국은 금융권과 투자 전문가 집단이 훨씬 많고 미국은 문제를 직접 풀어본 파운더 출신이 많기 때문에, 시장을 도출할때는 Bottom up 방식으로 가야한다.

After: "미국 동부에서 HIPAA 데이터를 다루는 모바일앱 운영하는 기업중 시리즈 B 이상 2000곳. 고객당 ACV $100K. $20M이 SOM입니다”

2️⃣ 기술 장표: 아키텍처 → 권한의 이동.
Before: “AI 모델 구조와 데이터 파이프라인의 문제를 푼다.” 한국에선 설명할수록 기술력으로 평가받고, 실제로 좋은 기술도 많다.

미국에선? “핏칭한지 5분 지났는데 아직 고객 얘기가 안 나오네. 고객이 누군지도 모르겠다” 기술보다 제일 먼저 우리 고객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짚어줘야 한다. YC에서 반복하는 말을 기억하자. If you're over-explaining the tech, you probably don't have users yet.

After: "보안 컨설팅 펌이 6주 걸려 하던 HIPAA 감사 대응을, 이제 고객사 컴플라이언스 매니저가 이틀 만에 직접 끝냅니다. EHR 3곳의 접근 로그를 실시간으로 받는건 저희뿐입니다"

3️⃣ 트랙션 장표: 상대가 이미 아는 것 → 상대만 모르는 것.
Before는 "승인을 받아야 매출화가 가능합니다" 같은 문장이다. 상대가 이미 깔고 있는 전제라, 읽고 나가도 파트너 손에 남는게 없다. 특허 개수도 비슷한데, 몇 개인지보다 어떤 청구항이 경쟁사를 막는지를 묻는다.

After: (우리만 아는 지난달을 올린다). “$10K MRR (Nov) → $30K (Dec)  시리즈 B 헬스케어 앱 4곳과 연간 계약, 그중 2곳은 CISO가 직접 서명했습니다" 같은 추세와 계약 로고, 초기면 pilot 결과나 pre-orders.

이게 안 통하는 팀도 있다. 임상 바이오, 승인 전 기기, 정부과제로 버티는 팀은 매출이 없는게 정상이라, 그 자리엔 다음 마일스톤과 붙어 있는 병원, 비희석 자금이 들어간다. 대신 날짜를 박는다. "2027년 3월 FDA 510(k) 제출, 임상 사이트 병원 2곳 확정, NIH SBIR $300K 수령"

VC가 연 검토하는 기업 1,000개,
그중 투자까지 가는 곳 1~2곳.
0.1~0.2%.
이 확률에서 40장을 끝까지 읽어주는 투자자는 없다.

정리.
· 첫 장은 회사 이름을 지우면 말이 안 되는 한 줄로 연다
· 기술 장표는 아키텍처 대신 권한의 이동을 보여준다
· 트랙션 장표엔 상대가 이미 아는 전제 말고 우리만 아는 지난달 지표를 넣자.

미국에서 이미 첫 매출이 나고 있고, ICP가 직함 단위까지 좁혀진 팀이라면, 지금 덱이 그 성과를 못 따라가고 있을 확률이 높다. 해당된다면, 지원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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