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그나이트
사람은 태어나서 결국에는 죽기 마련이죠.
그렇다고 해서 죽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마땅히 인정한다면 무엇을 우선시 해야 할 것인가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무엇이 온전한 나의 인생을 만들까요?
사람은 불멸성에 대한 습관적인 믿음이 있는 것 같아요.
게으름, 후회, 반성 등등이 이로 인한 결과물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해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거나 뇌를 100% 발휘하는 건 아니겠지만 삶을 '주'관적 즉 주인으로 살아가는 시발점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주관적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떠한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아가려면 대상도 있어야 하고 방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혹시 오늘 아침에 집을 나오시면서 처음 본 사람의 옷은 무슨 색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처음 본 차의 모델은요?
알아간다는 건 관찰(인식)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 같아요.
관찰한다는 건 세상에 다가가 내미는 악수죠.
돌이켜보면 어릴 적 저의 모습은 짱구의 하위버전 같다고 생각해요.
[장난꾸러기 + '왜요?'쟁이]
제가 생각해도 부모님이 힘드셨을 것 같네요. 🤣
그래서 어렸을 적 '그만~!' 또는 '잠깐만! 소리를 참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다행이라면 방울뱀 같은 '쓰~읍!' 소리는 기억에 없네요. 😆)
당시에는 몰랐지만 세상에 악수를 청하던 어린아이의 궁금증이 어른들의 무관심에는 얼토당토않은 행동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만약에 궁금증으로 시작한 물음표가 세상에 의미 있는 느낌표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분들이 그렇게 했었을까요...?
세상에 많은 것들이 '인식'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수많은 기술자들이 매년 머리를 맞대고 각종 최첨단 기술을 집약시켜 새로운 모델을 내놓는 아이폰 한 대의 가격이 수백 년 전 기술로 만든 프랑스제 가죽 가방보다 싼 것을 생각하면 말이죠.
(이게 잘못됬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인식의 차이를 말하고 싶었어요.)
결과부터 생각하는 습관은 물론 안정적이고 체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제한으로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결과물이 나오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아인슈타인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 이유를 갖고 있다. 영원성, 생명, 그리고 현실의 놀라운 구조에 대해 숙고하는 사람은 경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매일 이러한 비밀의 실타래를 한 가닥씩 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신성한 호기심을 절대로 잃지 말아라."
에디슨 "결과! 물론 수없이 많은 결과를 얻어냈지. 세상에는 안 될 일이 수 천개 있지."
에디슨은 10,000개의 실패작을 가리켜 "나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작동하지 않는 법을 알아냈습니다 했다죠?
우리는 좀 더 주관적이고 모험적인 시점으로 세상에 악수를 청해봐도 될 것 같아요.
* PS. 짱구는 말썽꾸러기지만 저는 장난꾸러기였습니다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려주세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