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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sik choi님의 아티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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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시대 4 : 불안은 우리를 커뮤니티로 이끈다

세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급변하고, 우리 앞의 삶은 단 한 발자국조차 내다보기 힘들다.

요동치는 현실에서, 핵개인화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존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진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우리를 더욱 불안으로 밀어 넣고,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보다 못난, 비슷한, 더 잘난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찾아 나선다.

핵개인 이라는 것은, 삶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것이고,
이는 자유와 유연함과 불안을 선사한다

부모님, 친구, 가족, 연인 이라는 관계성 및 그 관계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매여 있지 않고, 나 홀로 오롯이 나의 삶에 대해 결정하고 살아가는 핵개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타인과의 고정된 관계와 질서 속에서 내 삶의 닻이 되는 시절은 이미 저 멀리 과거로 떠내려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자신의 삶의 방향과 방식을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결정하고 살아 나아갈 수 있다는 막대한 자유와 유연성을 의미한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가 강제된 시절도,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도,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말도,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된 삶의 틀도 이제는 더 이상 없다(혹은 없어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그냥 원하는 대로 알아서 잘 살면 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타인에 기대지 않는 자유와 유연함은 개인의 내면적 성숙함을 요구한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싶고, 그래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어디로도 가기 두렵다는 말이 되어버린다.

현실적으로 비유해 보면, 대학교 졸업하니 이제 알아서 살라고 한다. 그런데 그래서 뭐 어떻게 벌어먹고 살라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지 누구도 알려주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시대인 것이다. 오롯이 나 스스로가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또 하고 싶은지 나만의 기준으로 결정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나와 당신 같은 사람은 삶을 어떻게 살아 나아갈지에 대한 단단한 원칙과 방향을 아직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말거나 이러한 핵개인화는 시대의 요구이자 압력이 되어 우리 개개인을 휩쓸고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그로 인해 파생된 불안은 나와 당신뿐만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불안 해소하기 1 : 나를 타인에 비추어 보기.
(나와 비슷한 사람 만나기)

우리는 우리 홀로 있을 때 우리 자신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는 적절한 타인이 있어야만 나 자신을 구체화하고, 더 나아가 개변할 수 있다.

마치 혼자 공상할 때 수많은 모호한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다가, 타인과 대화를 할 때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게 되고, 더 나아가 그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글쓰기도 이와 비슷한 효용을 지닌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우리 자신의 기준과 호오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나를 적절히 비춰줄 수 있는 타인을 찾아 나선다. 그것은 심리상담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친구일 수도 있다. 요즘 들어 가장 트렌디한 '타인'은 오프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나는 타인인 것 같다.

나를 적절히 비추어 보기 위해서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 나의 의견을 적절히 수용하고 반문할 수 있는 맥락적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의견을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관계적 거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나와 비슷한 나이 이거나, 비슷한 산업에 종사하거나, 아니면 비슷한 삶의 방향을 추구할 때, 혹은 이 모든 것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나의 의견을 이해하고 또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나와는 관계적 그리고 심정적으로 1~2 발자국 떨어진 사람 이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사람을 가족 혹은 주변에서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족에게 말하면 너무 걱정만 하거나 가르치려 하고, 동료에게 말하기는 왠지 꺼림칙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취향을 기반으로 사람들을 묶어주는, 그리고 나와는 일시적으로 유지되는 관계만 가지는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모임에 나가게 된다. 그곳에서 우리는 타인과 대화하고 상호작용하며 우리 자신이 무엇을 호오하고 또 논하고자 하는지 알아간다. 그것도 책과 술과 영화라는 테마를 조미료로 더해 조금 더 고상하게!

불안 해소하기 2 :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 받기
(나보다 더 괜찮은 사람들 만나기)

삶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모를 때 오는 불안을 어떻게 해소할까?

삶의 기준은 그냥 저 멀리 치워두고, 하루하루 내가 더 낳아지는 어떤 행위를 하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하루하루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다양한 것이 있지만, 바로 나보다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매일 운동하고, 자기계발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러한 매일의 행동들이 쌓여 우리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만든다. 하지만 이런 혼자 하는 행동에는 오랜 기간의 인내와 꾸준함이 요구된다. 하루 운동했다고 내가 운동을 좋아하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오랜 인내와 꾸준함이 없어도 단번에 나 자신이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내가 보기에 훌륭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그룹에 속하는 것이다.

트레바리와 같은 서비스는 이런 "괜찮은 그룹에 속해있다"라는 감각을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이다.

가만히 보면 트레바리의 모임을 신청하기도 전에 우리는 이런 생각을 가진다 "도대체 저만큼의 돈을 주고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자기계발을 중요시하는 사람일까?".

즉, 트레바리라는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 자체가 "독서모임 치고는 매우 큰 금액"이라는 필터를 통해 어느 정도 걸러진 괜찮은 사람들일 것이라는 약간은 속물적이면서도 당연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신청한 모임에 들어가면 첫 만남에서 서로 자기소개를 한다. 그리고 그 자기소개를 통해 개개의 사람들의 배경과 인상을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변호사, 의사, 금융인, 대기업 직원........ 의 사람들이 모이는 그룹에 내가 들어왔구나!"라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각자 자신의 최고의 면을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독서라는 고상한 행위를 중심으로 가져가는 만큼, 개개인의 화두 및 의견 또한 매우 흥미로운 구석이 있는 것 또한 느끼게 되고, 내가 정말로 괜찮은 그룹을 만났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모임을 마치고 나오면서 우리는 훌륭한 사람들이 모인 그룹에 속해있는 "훌륭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모임에 속한 만큼 앞으로 나는 더욱 괜찮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불안을 잠시라도 털어두고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을 가진다.

불안 해소하기 3 : 나보다 더 좌절한 사람들 보기

우리는 언제나 항상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거나,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상당 부분 자기 파괴적이고, 이러한 자기 파괴에도 불구하더 타인보다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라 느끼길 바란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보다 못나 보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을 찾아간다.

아니라면 왜 그렇게 자조적인 글들이 넘쳐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가 열심히 글을 읽을까.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조금 더 자세히 다루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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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카페 : 어머니들의 고독과 정보전쟁

맘카페는 욕할 대상이 아니다. 그냥 우리네 삶의 일부일 뿐이다

지금은 한철 지나간 이슈이기는 하지만, 이전에 맘카페라는 키워드가 우리 사회 내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보통 안 좋은 이야기들과 연관되어 뉴스에 오르락내리락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근래에 커뮤니티에 대해 조사하면서 맘카페를 다년간 운영했던 사람의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맘카페는 단순히 욕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 커뮤니티 또한 사회의 압력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네 어머니들의 격렬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맘카페의 주된 목적은 아래와 같다.

1. 외로움을 이겨내는 것

2. 믿을만한 정보를 찾고 공유하는 것

핵가족에서 더 나아가 핵개인화 되어 나아가는 이 시대에 우리네 어머니들은 육아에 있어서 자기 자신밖이 믿고 기댈 사람이 없다.

어르신들은 저 멀리 시골에 있거나, 아니면 아이를 봐주시기에 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

출산하는 나이는 더욱 늦어지고 또 다분화되기 때문에, 그리고 출산을 하는 사람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내 주변에 내가 육아를 할 때 이 경험을 같이 공유할 다른 어머니들을 찾기 힘들다.

그렇기에 어머니들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외로움, 더 나아가 고독함을 느끼게 된다.

이를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온라인에서 자신과 비슷한 환경과 인생의 단계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다.

다만 만약 맘카페의 목적이 단순히 외로움의 해결이었다면 단순 채팅으로 수렴했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어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외로움의 해결에서 더 나아가 아이를 위한 믿을만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대상이자 공간을 원했다.

아이는 한 번만 기를 수 있기에, 최대한 많은 검증된 정보를 찾고 적용하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이 정보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시어머니 혹은 자신의 엄마가 아이들을 키울 때 습득했던 지식은 이미 철이 지나버린,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정보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육아에 대한 트렌드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그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잡아 자신의 아이에게 최선의 육아를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자신과 비슷한 환경의 다른 어머니들이 실제로 검증한 신뢰성 있는 정보들을 찾게 된다.

이러한 정보들은 하나의 구역에 모여 있어야 빠르게 공유되고 도 새로운 정보가 생산된다. 이 '구역'을 온라인상에서 구현한 것이 바로 맘카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삶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고독을 해소할 창구이자, 육아라는 현실에 매우 큰 영향을 주는 정보를 찾고 또 공유하는 장으로서의 맘카페는 필연적으로 개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일부로 여기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맘카페의 정보가 개인의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맘카페는 둥글둥글한 세계이기 때문에 (누구도 직접적으로 타인을 비방하고나 평가하지 않는 세계) 올바르지 않은 콘텐츠 및 개인에 대한 자정 작용이 오롯이 운영자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운영자의 업무 과부하를 만들고 콘텐츠의 질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걸러지지 않은 콘텐츠를 기반으로 단체 활동이 이루어지는 경우 현실에 좋지 않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 둥글둥글한 세계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고,
맘카페라는 커뮤니티를 어떤 커뮤니티로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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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시대 3 : 영향력(지분) 전쟁

어디서든, 우리는 영향력을 욕망한다

요즘 커뮤니티에 대해 조사해 보고 도 참여자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점은, 그 어떤 종류의 커뮤니티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타인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분투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견이 타인에 의해 긍정되고 또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우리는 타인과 구분된 고유성을 획득해야 한다. 이 고유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어필해야 하고, 더 나아가 커뮤니티 내에서 권한과 권력을 얻어야 한다. 즉, 우리는 커뮤니티 내에서 흔히들 말하는 '지분', 즉 권위이자 영향력을 획득하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아닌데?'라고들 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링크드인 이든 레딧이든 모든 콘텐츠 창조자들은 자신의 콘텐츠가 타인들에게 많이 읽히고 또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잘 읽어보면 자신이 이 주제에 대해 전문가라는 것, 경험이 많다는 것, 다른 사람과 차별회 된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퍼뜨린다 (나라고 안 그럴까?). 그냥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목적이야!'라고 한다면 사실 나를 구분할 수 있는 닉네임 및 이름 같은 어떠한 정보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여기서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우리는 커뮤니티 내에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분투할까?

링크드인을 예로 들면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실력이 있거나 혹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홍보하기 위해 내 콘텐츠가 더 많이 읽히기를 원한다 (그 외의 목적이라면...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해 주는 게 좋아서?)

브런치를 예로 들면, 언젠가 이 글들이 책으로 출판되기를 원하거나, 아니라면 영향력 있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 내 글이 더 많이 읽히기를 원한다. (그렇다, 상기의 내용은 내 욕망이기도 하다)

혹은, 다른 커뮤니티라면 그냥 내 글이 다른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그리고 내가 타인에게 인정받는다는 느낌 때문에 내 콘텐츠가 더 많이 읽히고 긍정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콘텐츠 자체가 좋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즉 타인가 구분되는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마법의 단어를 활용한다

퍼스널 브랜딩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영향력은 끝도 없이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튜브를 보자. 한 개인이 자주 찾아보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많이 쳐줘도) 100명을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초창기부터 구독자를 쌓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이제는 구독자라는 영향력 수치를 높이기 쉽지 않다. 마치 영향력이라는 것이 어떤 한정된 자원으로 여겨지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몇몇의 자신의 취향 및 가치관과 일치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팔로우하고 나서부터는 새로운 사람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거나 찾아 떠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새로운 사람이 끊임없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타인의 영향력의 총합은 고정되어 있고, 이 한정된 자원을 취득하기 위해 커뮤니티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무한 경쟁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커뮤니티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이 한정된 영향력이 대부분 기존 몇몇 개인에게 몰려 있고,   신규 유저들이 그 영향력을 뺏어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보는 유투버만 보지 신규 유투버를 찾아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새로이 영향력을 쌓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기존 커뮤니티의 경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커뮤니티를 찾아 떠난다.

나는 커뮤니티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사실, 오프라인의 현실과 다를 바 없지 않다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집중해서, 커뮤니티의 개개인들은 커뮤니티 내에서 어떤 생에 주기를 겪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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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시대 구성요소 2 : 커뮤니티 유목민

이 시대의 가장 큰 화두는 '나'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를 찾기 위해 다양한 취향을 탐구한다.

그런데 취향은 나 혼자 찾고 쌓기 어렵기 때문에 커뮤니티를 찾아간다.

그렇게 커뮤니티를 찾아다니는 우리는 커뮤니티 유목민이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활동에 충만감을 느끼는지, 무엇에 행복을 체감하는지,무엇을 추구하는지 알기 위해 직업 이외의 활동들을 한다.

직업은 우리를 이루는 가장 큰 요소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항상 우리와 딱 떨어지는 무언가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여가 활동들을 우리는 "나 자신을 알기 위한 취향 찾기"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자신의 취향을 가지는 것을 장려하는 그리고 추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인터넷만 들어가 봐도 다양한 활동에 대해서 준 전문가급 지식을 제공하는 클래스들이 널려있고, 그것을 오프라인에서 아르 쳐주는 공방도 많다. 우리는 그러한 활동들에 대해 배우고 실행할 의향이 있는지 결정만 하면 된다.

그런데,사실 취향을 쌓는다는 것은 단순히 강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서 완료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취향을 타인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우리의 취향을 공유하고, 발산하고, 창조하고, 대화하기를 원한다.

나의 의견을 타인에 비추어 봄으로서, 그리고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상호작용을 해야만 우리의 취향을 갈고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단순히 남의 지식을 알고만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혹은 그 취향이 파생되는 활동에 초점을 두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또 들어간다. 예를 들어 내가 힙합 패션에 관심이 많다면 패션 자체에 대해 전문적으로 다루는 그룹에 들어갈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취향에 기반한 커뮤니티는 개인에게 있어서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가족 혹은 친구 관계로 엮인 어떤 항구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의 내 취향이 무엇인가에 따라 모이고 또 흩어지는 관계이다.

그러다 보니,취향을 공유하는 커뮤니티에 애정을 가지면서도 이것이 더욱 끈끈한 관계로 발전되지 않을 일시적 관계라는 것에 일말의 불안감을 가진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언제든 이 커뮤니티를 떠나 다른 커뮤니티로 옮길 수 있다는 안도감은 심리적 책임감 및 압박감을 덜어준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우리는 일종의 커뮤니티 유목민이 된다. 한 커뮤니티에 쌓인 나의 기록이 아깝기는 하지만, 취향의 변화 및 다양한 이유에 따라 언제든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커뮤니티를 찾아 떠난다. 또 그런 커뮤니티를 찾기 어렵지 않다.

이런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회사들일 것이다.

링크드인, 레딧, 네이버 등등. 그 회사들이 운영하는 일종의 커뮤니티는 이 커뮤니티 유목민들을 묶어두기 위해 어떤 전략과 방법들을 사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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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뮤니티 시대 구성요소 1 : 고독 ]


'나'에 대해 책임 질 사람이 '나'만 남게 되었고,

급변하는 세계는 그 책임을 쌓아 고독으로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나와 같은 사람을 찾아 커뮤니티를 맴돈다

인공지능, 경제위기, 전쟁, 육아, 결혼 등등 수많은 커다란 현실과 현상들이 우리를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각각의 현실들은 너무나도 커서 현실감이 없지만, 어느 순간 발밑을 보면 그것이 이미 무릎까지 차올라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멀게만 느껴졌던 인공지능의 직업 대체성은 내 바로 뒤에 서있고, 끊임없이 들려오던 경제 위기는 피부로 와닿는다. 그리고 나는 이미 결혼해 있다.

문제는, 이 외에도 수많은 현실의 격변이 맞물려 돌아가며 우리가 적응할 시간도 없이 세상을 휩쓸며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해소할 수 없는 불안감은 우리 머리를 맴돌다, 

어느 날 밤, 바닥 깊은 곳으로 우리를 끌어내리는 고독으로 돌아온다.

해결할 것은 너무 많은데, 우리는 혼자라는 느낌을 느낀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과 그에 점점 휩쓸리는 우리의 나날들이 많아질수록,  이에 대해 깊이 같이 고민하고, 사유하고, 대화할 사람을 찾아 나선다. 혼자서 이러한 불안과 외로움을 견디어 낼 수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에 걸쳐,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깊은 고민을 타인에게 털어놓고, 타인으로부터 공감과 이해와 의견을 받음으로써 저절로 그 고민이 해결되는 느낌을 받은 적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더 이상 우리에게 가족 혹은 친구라는 이름아래 우리와 비슷한 시기의 겸험과 고민을 공유하는 사람이 점점 더 없어져 간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기에는 각자가 각자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느낀다. 그래서 부모님과 같이 살다가 결혼을 함으로써 가정에서 가정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은 깨졌다. 형제자매는 없는 경우가 많고 친구들은 각자 너무 다른 삶을 살기에 공감하기도 벅차다. 부모님에게 기대기에는 이미 각자가 살아갈 날들이 벅차다.

그렇기에 우리는 점점 더 1인 가구로 분화되어 개개인이 개개인을 책임지는 시대로, 즉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무한한 감정적 경제적 책임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시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혼자라는 것은 너무나도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기에, 우리는 나와 비슷한 경험과 고민과 방향을 가지는 '대화를 나누기 좋은' 사람을 찾아 나섰다.

이러한 대화에 대한 욕망은 인터넷이라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에 뒤따라오는 비용을 극도로 줄여주는 도구와 만나 '커뮤니티의 시대'를 만들어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커뮤니티의 시대'가 누구에게나 열린 오픈된 온라인 기반 커뮤니티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모두에게 오픈되고 공유되는 온라인 기반 커뮤니티에서,

소수에게만 공유되고 소속을 유지하기도 힘든

온오프라인 믹스 기반의 닫힌 커뮤니티로 방향을 점차 틀고 있다.

왜 그럴까.

[서러운 아저씨들 티 클럽 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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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랄한 기획] 우리는 왜 커뮤니티를 찾아 나서는가

호랑이가 담배 피우다 심심해서 떡 먹으러 마을 내려갈 때부터

우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공동체 중 하나는 부족이었다. 

그리고 부족의 정의는 공통의 혈연, 신앙, 혹은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지금 우리는 그러한 부족 생활에서 탈피했을까? 

아니면 이런 커뮤니티에 대해 더 갈증을 느끼고 있을까?

송길영 씨의 "시대예보 : 핵개인의 시대"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은, 우리 모두 핵가족을 넘어 자기 자신이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남에게 기대지 않는 핵개인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있어야만 영위가 가능하거나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던 일들이 (예 : 빨래) 점점 더 아웃소싱 가능하게 되었다 (예: 런드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너무나 길어진 기대 수명과 낮아진 경제성장률은 가족의 큰 기능 중 하나인 윗 세대에 대한 아랫세대의 봉양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타인을 책임진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귀찮아지는, 혼자 살아도 잘 살 수 있는 시대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런 시대에서 우리는 우리와 연결된 관계들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편집하고,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점은, 가족인지와 상관없이, 같은 지역에 사는지와 관계없이, 동일한 국적을 가지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우리가 원하는 "좋은 사람"을 찾아 연결되기 너무 쉬워졌고 또 당연하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쁜 점은, 강제된 관계가 없어짐으로써 장기간에 걸친 성공과 실패, 행복과 고통, 짜증남가 배려를 겪고 또 공유해야만 만들어지는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짜증 나는 사람과 같이 있지 않을 자유를 획득하였고, 그럼으로써 그 짜증을 넘어 서로가 좋은 사람이 되어가며 만들어질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인내를 가질 필요성 또한 삭제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대화하고 만나고자 하는 "좋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 삶에 대한 태도, 세상을 바로 보는 관점, 지향하는 지점이 적어도 비슷한 방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타인의 긍정을 추구하고,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삶에 도달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난 속에서 서로가 응원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바라기 때문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우리의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은 삶의 단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나와 맞는 사람을 찾아 떠날 수 있기에, 내가 가지는 관심사와 삶에 대한 가치관을 공유할수 있는 커뮤니티를 찾아 떠돌게 된 것이다. 

즉, 대 커뮤니티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사점에서 내 질문은 시작되었다. 도대체 훌륭한 커뮤니티란 무엇일까. 더 나아가 커뮤니티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Product Manager로서 잠깐이나마 회사에서 일을 해보면서, 개개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이끄는 근원적인 욕망과 행동 패턴이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욕망과 패턴이 하나의 그룹 내에서 서로 섞일 때, 다양한 시너지와 문제가 동시에 생긴다는 것을 겪었다. 그나마 회사라는 강제된 조직 구조 내에서, 싫으나 좋으나 공통의 목적을 위해 상호작용하고 일해야 하는 환경에 처해 있기에 사람들은 더 좋은 해결책과 대화를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커뮤니티라는, 회사처럼 삶에 직접적인 강제성이 (월급 이라던가) 없는 조직은 어떻게 하면 좋은 관계와 가치를 만들어 나아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커뮤니티라는 것은 지금의 시대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닐까.

그것을 찾아 나아가고자 이런저런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서러운 아저씨들 티 클럽 관련 소식 듣기 : https://forms.gle/s88ni4qmyaUdFcT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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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sik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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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회사와 좋은 사수가 없을 때 성장 하는 방법

부업으로 강의를 하다 보면,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그 연차에 배워야 할 부분들을 배우지 못해 보이는 수강자들이 간간히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 수강자들을 보면, 이전의 내가 떠오른다.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했을 때, 그리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방향조차 찾을 수 없을 때의 갑갑함을 나 또한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엄청난 업적을 이룬 사람도, 커리어가 화려하게 빛나는 사람도 아니지만, 그냥 평범한 회사에서 평범하지 않게 배우려고 노력을 조금 해봤던 사람으로서 이 글을 써본다.




내가 들어간 첫 회사가 배울 것도 너무 많고, 훌륭한 동료와 사수도 주변에 깔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 어렵다.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있다고 하더라도 단박에 들어가기는 요원한 일이다.


나 또한 첫 회사에 들어갔을 때, 데이터 분석가는 나 혼자였고, 주변에서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하고 또 어떤 식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조언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더욱이, 그때의 나 또한 가치를 만드는 데이터 분석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머신러닝으로 멋들어진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었기에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다.


이렇게 내가 걸어가는 방향이 옳지 않다고 말해줄 사람도 없고, 내가 무언가를 배울 사람도 없는 환경에서 나의 성장 또한 극도로 느렸다. 회사에서 시켜서 무언가를 하고 있기는 한데, 성과는 없고, 그래서 나 또한 내가 하는 일에 대화 회의감이 극도록 높아지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두 번째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때가 조금 터닝 포인트였다. 그 회사의 임원중 한분이 데이터 해석에 관련된 경험이 좀 있으셨기에 몇몇 데이터 분석 스킬에 관련해 조언을 줄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내가 무엇을 배우기 시작해야 하는지 약간의 힌트를 주셨다. 물론 그 이상으로 무언가 더 해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디딜 수 있는, 없는 것보다는 100배 정도 낳은 시작점을 주었다.


이렇게, 내가 지금 모르는 것이 무엇이고, 더 나아가 데이터 분석을 보통 어떻게 하는지 매우 기초적인 가이드라인이 주어지니 그래서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때, 기초적인 가이드라인 및 조언 이외에 더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책과 아티클을 무지막지하게 읽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특히 영어로 된). 그러다 보니, 데이터 분석이라는 업에 있어서 나만의 관점과 로드맵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 로드맵을 따라 내가 자발적으로 프로젝트를 만들어 진행해보다 보니 성장 속도가 더욱더 빨라지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이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글로 쓰다 보니 나의 생각을 더욱 정밀하게 가다듬고, 나의 실패에서 더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런 성장 과정을 겪다 보니, 나는 특정 업무를 빠르게 배우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 그 업무를 해본 사람에게 가서 "내가 무엇을 배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로드맵" & "이 업의 궁극적 가치는 무엇이가"에 대해 배운다
  2. Amazon(혹은 yes24)에서 해당 업무 관련 키워드 검색 후, 리뷰 수 및 평점 수가 높은 순서대로 책을 10~15권 정도 읽는다
  3. 책에서 배운 내용을 기반으로, 자발적으로 프로젝트를 기획, 제안, 진행 을 한다
  4. 2번과 3번에서 배운 것을 주기적으로, 꾸준히 글로 적는다



"그 업무를 해본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 너무 어려운데요"라는 생각이 든다면 커피챗을 요청을 마구마구 뿌려보자.


"왜 그 업무를 해본 사람에게서 상세한 스킬 셋을 배우는 단계가 포함되어있지 않나요?"라는 생각이 든다면, 상세한 스킬은 강의나 책으로 배워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에게서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상세한 스킬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세상을 해석하는 관념적 구조와 철학이다


"왜 yes24가 아니라 Amazon을 추천하셨나요?"라는 질문이 있다면, 슬프게도 영어로 된 콘텐츠가 한국어로 된 콘텐츠보다 질이 훨~~~ 씬 좋은 경우가 많다


"왜 자발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나요?"라고 물어본다면, 좋은 회사와 좋은 사수의 존재 유무를 떠나 내가 배운 것을 실행해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지식이고 내 실력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좋은 회사와 사수가 없더라면 내가 자발적으로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좋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과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


"꼭 배우고 겪은 것들을 글로 써야 하나요?"라고 물어본다면, 글쓰기의 효용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글로 무언가 쓴다는 것은 나의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전개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보면, 글쓰기란 내 마음속에 모호하게 안개처럼 뿌려있던 나도 몰라던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만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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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sik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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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형 인공지능은 현대의 고전이자 신화가 되는가

왜 좋은 이야기는 모두의 기억에 남을까. 왜냐하면 좋은 이야기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개개인의 삶은 일정한 패턴을 띄지만 동시에 굉장히 많은 노이즈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출생 -> 학교 -> 직장 -> 결혼 -> 출산 -> 은퇴 -> 죽음"이라는 형태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하지만 어떤 곳에서 태어나고, 어떤 학교를 가고, 어떤 직장을 가는지는 모두가 다르다


좀 신화학 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서로 상세한 내용은 다르지만 "모험 시작 -> 초자연적 도움(양심, 본능, 끌림..) -> 어려움을 만남 -> 인생의 암흑기 -> 삶의 변화 -> 보상 -> 시작점으로 돌아옴"이라는 사이클을 끊임없이 도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혹은 예술가는 자신의 주변을 관찰하여 이러한 인류를 관통하는 패턴을 모아 노이즈는 제거하고, 핵심적인 패턴만 정제하여 작품으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품이 더더욱 인류를 관통하는 패턴을 내포할 때 사라들에 의해 기억되고 칭송받는다.


조던 피터슨 박사에 따르면 이런 예술품의 꼭대기에는 성경, 코란, 불경 같은 것들이 있다. 몇십, 몇 백명의 의 작가에 의해서 편집이 되고, 수천 년이라는 시간의 시험을 거쳐 쓸모없는 정보들은 사라지고 중요한 정보들은 점점 더 응축된 일종의 지혜의 보고가 바로 이러한 종교 서적이라는 관점을 가진다.


이 외에도, 수많은 신화와 고전 작품들이 바로 인류를 관통하는, 누구에게나 공감받을 수 있는 패턴들의 패턴을 녹여낸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여기서 오늘의 질문이 있다. 2020년도까지의 인터넷의 모든 글을 학습시킨 Chat GPT3는 예술 작품이자 고전 문학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우리는 주변을 관찰하고, 그 관찰에서 파생된 생각을 인터넷에 글로 적는다 (싸지르는 글도 많지만). 그렇다면 거의 모든 인류의 정제된 생각들을 모아서 한 번 더 정제하여 핵심적인 패턴만 모아 "질문에 대한 답"이라는 형태로 결과물을 만드는 chat GPT는 일종의 성경이나 고전 소설과 같은 선상에 있는 예술작품이자 지혜의 보고(이미 이런 취급을 받지만)라고 할 수 있을까?


정답은 모르지만, 왠지 언젠가 성경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시대의 지혜의 보고" 혹운 "고전명작"  정도로는 불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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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 PO, 데이터 분석가는 왜 글을 써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주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는 다양한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마치 꿈결처럼 인지하고 흘려보내고 있을 뿐 그것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나에게 왜 글을 쓰냐고 물어보면 바로 답하지 못한다. 나의 생각 속에 그에 대한 답이 완벽히 정제되어 있지 못한다. 나는 나를 돌아보며, 마치 무엇이든 있지만 무엇도 없는 생각의 안갯속에서 그에 대한 답이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가끔씩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그 생각들을 이어 보고, 다시 잘라보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다. 


그냥, 안갯속에서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에게 와 있을 뿐이다. 마치, 내가 헤매고 다니는 동안 저 멀리서 내가 겪은 수많은 것들의 파편이 저절로 조합되고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이 내가 답하기로 한 질문에 대한 답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글을 쓰는 와중에 동시에 생각으로 굳혀져 내게 다가오는 경험은 너무나도 신기하다.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만, 성경을 썼던 사람들이 왜 성경을 자신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아서 그것을 만들었다고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한다. 우리는 글의 주인이지만, 글 도한 우리의 주인인 것이다.


그래서 근래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어떻게 우리는 글을 써 내림으로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던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참조 : The Psychological Significance of the Biblical Stories: Genesis)


세상은 굉장히 복잡한 관계와 의미의 그물이다. 예를 들어 지금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보자. 당신의 마음속에 스마트폰은 터치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무언가 이다. 하지만, 갑자기 스마트폰이 고장난다면? 그때부터 당신에게 스마트폰은 다양한 알 수 없는 기기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해할 수 없는 고도의 기술집약적 머신으로 다가온다. 


즉, 맥락과 상황에 따라 동일만 물체이더라도 매우 복잡하게, 혹은 매우 간단한 무언가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면 스마트폰이란 이 기계는 본질적으로 얼마나 복잡할까? 생각해보자, 스마트폰을 이루는 각 물질의 특성, 물질 간 연관성, 기기 부품의 특징, 기기 부품이 만들어지게 된 원인 등등 스마트폰 자체는 수많은 정보와 정보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내가 몇 년을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완벽히 알 수 없는 복잡한 무언가 이다. 


스마트폰 조자 본질적으로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여기에 더해서 맥락에 따라 그 복잡도가 무수히 변한다. 그렇다면 세상은 얼마나 복잡할까?


세상은 본질적으로 너무나도 복잡하기에 우리는 그것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순간순간 우리의 목적에 따라 세상의 일부분을 구조적으로 이해할 뿐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우리가 알 수 없는 복잡함과 그에 반대되는 구조적 이해 사이에 아직 정제되지 않은, 하지만 꿈결처럼 인식되고 마음 어딘가 쌓여있는 세상의 파편화된 이미지 및 정보들이 존재한다. 


바로 이 구간, 아직 완벽히 정의되지 않은 다양한 맥락에 따른 세상의 각 부분에 대한 정보 및 이미지들이 쌓여있는 이 구간이 바로 우리의 "이미 알고 있지 않은" 생각이 태어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꿈결 같은 생각의 구간에 들어가 이것들을 정제할 방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질문이 주어지면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생각한다. 예를 들어 "당신의 왜 사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에 대한 답은 없지만 답을 하기 위해 머리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 끊임없이 돌아가는 생각은 보통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흐름이 아니라 이리저리 휘청이는 사고의 만취상태와 같다. 그래서 보통 너무 어려운 질문은 일관되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고,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고양된 어떤 이미지, 혹은 말로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매우 표면적인 형식의 답을 이끌어낸다. 


그렇기에 타인이 이해 가능하고 또 논리적인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생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꿈같은 생각의 구간에서 적절한 것들을 끄집어내 하나로 이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하얀 백지에 질문을 답하기 위해 한 자 한 자 써 나아가다 보면,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가 답을 하듯 글이 써내려 간다. 그렇게 써내려 지는 생각의 파편들은 "글"이라는 작품이 요구하는 "맥락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저 스스로 논리를 짜 맞추어 나아가고, 편집되고, 삭제되고, 덧붙여진다. 그렇게 글은 우리의 세상에 대한 꿈같은 지식과 이해와 이미지를 하나의 정리된 이야기로 만들고, 그 이야기를 우리는 다시 우리의 정체성 중 하나로 받아들이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의 목적이자 효과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어떤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우리 자신을 쌓아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읽고, 듣고 그리고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글쓰기의 목적과 활용 방법을 보면 왜 PO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과 그 해답을 실행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 직군들에게 높은 글쓰기 실력이 요구되는지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글의 유려함, 설득력, 문법 따위가 아니다 (물론 중요하지만). 그들은 얼마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생각과 이미지의 파편으로부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답을 끌어 내 이야기로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잘하기 위해서는 결국에 어른들로부터 100만 번쯤 들어본 4가지를 하면 된다


  1. 많이 읽기, 듣기, 경험하기
  2. 많이 질문하기
  3. 많이 생각하기
  4. 많이 쓰기


안다. 당연한 말을 하기 위해 서론이 너무 길었다. 




결론은 책 좀 읽고 글 좀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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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의 게임 시스템과, 이 시대의 데이터의 의미

데이터란 무엇인가. 

현실의 단면을 특정 기준에 따라 정의, 측정, 기록한 결과가 데이터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관측하고, 그 관측들에서 공통된 패턴을 추출하고, 그 패턴을 정제하여 우리가 무언가 배울 수 있는, 혹은 우리의 근원적인 무언가가(마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란 형태로 기록한 것이 소설이다.


따라서, 소설이란 것 자체가 작가가 자신의 주변을 관찰하고, 그 관찰된 것들 사이에서 추출한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어떤 패턴이기 때문에 소설은(특히 장르문학은) 현시대의 욕망과 그 욕망의 합의가 이끄는 시대의 흐름을 함의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고전이 아니라 판타지 소설 같은 지금 바로 이 시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장르 문학에 사용되는 소설적 도구들은 (예를 들와 회기 라던가, 게임 시스템 이라던가, 탑을 오른다던가 등등) 현시대의 욕망을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판타지 소설 속 "게임 시스템"이란 게임에서 적용되는 스테이터스를 통한 캐릭터의 특성 및 강함 측정, 행동에 따른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보상(레벨업, 스테이터스 상승 등), 현 상황에 대한 "퀘스트 창"을 통한 명확한 설명 들이 현실의 주인공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는 가상의 설정이다.


그렇다면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의 필수 조건이라고 불릴 만큼 한국의 판타지 장르물에서 자주 쓰이는

이 단순하고도 익숙한 "게임 시스템"이 우리에 적용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주인공에게만 적용된다는 설정은 왜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런 게임 시스템은 근간인 "데이터화"는 우리의 욕망에 대해 무엇을 의미할까



1.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사람에 대한 측정 기준, 그리고 편리한 측정


사람의 근본적인 욕망중 하나는 나와 타인에 대해 아는 것이다. 나는 어떤 상태인지, 그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나와 그를 비교했을 때 어떤 부분에서 나는 더 뛰어난지, 그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등등, 우리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알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의 온전한 인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서브적 인격들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부캐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목적에 따라, 그리고 다양한 현 상태에 따라 내가 아닌 나를 표현한다. 그것은 나일까 아니면 나의 일부분의 표현일까? 이러한 일부분들의 합이 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어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수많은 경우의 수와 수많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랜 시간을 가지고 다양한 상황에서 그 사람을 관찰해야만 그나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 속의 게임 시스템은 이러한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 사람의 현 상태와 기질을 몇몇 가지 기준으로 종합하여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혜 : 10(한계:40) , 민첩 : 25(한계:50), 재능 : 예민한 예술가" 같은 형태로 말이다. 이는 매우 신(GOD) 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인간 모독적이다. 


예를 들어 지혜가 1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보통 사람의 1/10 정도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일단 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가 되어 있어야 하고, 또 보통 사람의 지혜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서 그 사람의 인생 전반에 대해 알고 있어야 이러한 수치를 매길 수 있다. 이런 전지적이고 전능적인 것을 게임 시스템은 가능하게 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이러한 게임 시스템을 적용받고 또 사용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해 탐구하고, 고민하고, 관찰하는 과정을 겪을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게임 시스템을 통한 나와 상대에 대한 절대적이고도 객관적인 평가, 그리고 그것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어진다는 것은 우리의 근본적인 "사람에 대한 이해"라는 욕망과 "이해를 기반으로 한 평가"를 해소해준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누군가에게 절대적이고도 전능적인 시점에서 평가받고, 또 타인을 평가하고 싶다는 말이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평가가 객관적인 데이터라는 형태로 표현되었으면 한다는 것이 아닐까?


즉, 지금 이대의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결핍은 다른 사람들, 심지어 나에 대해서 조차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 즉각적인, 다른 사람보다 더 특별한 보상, 그리고 자기 개변


모든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나이다. 예를 들어 공무원 시험공부를 열심히 안다고 공무원이 되는 것은 아니고, 일을 열심히 한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노력은 성공의 필수 조건일 뿐, 단 하나의 저건은 아니다. 하지만 게임 시스템을 사용할 경우 다르다


공부를 하면 지능이라는 스테이터스가 올라서 머리가 똑똑 해지고, 성과를 올리면 그에 따라 특별한 무언가가(마법의 물약 이라던가) 보상으로 주어지고, 싸우면 레벨이 올라가서 우리의 재능을 변화시킬 수 있다.


즉, 게임 시스템은 우리가 노력만 한다면 보상을 즉각적으로 주고, 그 보상 또한 다른 사람들에 대비해 매우 특별하고, 또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기회조차 준다. 


노력이 바로 성과로 이어진다는 것에 따라 보면 매우 공정해 보이지만, 동시에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보상이 다른 과정을 통해 주어진다는 것에서 (그것도 게임 시스템의 임의대로!) 매우 차별적이다. 


이를 반대로 뒤집어보면, 우리의 욕망이 무엇인지 살짝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 즉각적이고 객관적인 성과로 바로 나타나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를 객관적으로 더 뛰어나고 강력한 사람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것이 적용되면 우리는 "특별"할 수 없으니, 이 시스템이 나에게만 적용되던가, 아니면 게임 시스템이 나에게만 어떤 특별한 무언가를 주기를 바란다.


즉, 우리는 특별하고 싶어 한다. 물론 이 특별함은 언뜻 보기에 "공정"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 이 무슨 모순적이면서 당연한 사람의 욕망인가



3. 수치(데이터)는 믿을 수 있다


후각, 시각, 청각, 느낌 등을 통해 어떤 사람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전달될 수 있다. 즉, 꼭 어떤 사람에 대한 정보가 수치의 형태로 전달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음이 썩은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배경이 검은색처럼 보인다는 설정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주인공에게 전달할 수도 있지 않은가? 왜 "수치"의 형태로 그 사람을 측정하고 관찰하기 바라는 것일까?


현시대의 사람들, 특히 학생들은 수많은 수치 속에서 살아간다. 시험 성적, 공부 진행률, 내신 등급 등등 수많은 수치들이 우리를 측정하고 정형화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가장 친밀하게 느껴지는, 그리고 객관적으로 느껴지는 평가 형태가 바로 "수치"라는 것이다. 


물론 이 "수치"는 절대적으로 옳은 경우는 거의 없다. 시험 성적은 나의 미래에 대한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고, 학습 진행도는 내가 그것에 대해 얼마나 배웠는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 "수치" 자체가 잘 못된 기준에 따라 측정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깊게 생각하는 부분이 아니다. 그냥 그 수치라는 형태가 우리가 보기에 가장 객관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서 게임 시스템이라는 전지적이며 일부 전능적인 무언가가 수치로 사람들을 축정 해준다는데, 어떤 불만이 있겠는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평소에 행하는 수많은 "수치화되지 않은" 평가에 대해 불신이 증가하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면접에서 왜 제는 합격하고 나는 떨어지는가. 똑같은 사람처럼 보이는데 제는 왜 인정을 받고 나는 그렇지 않은가. 임원은 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왜 보상을 많이 받고 나는 적게 받느가. 내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객관적으로 수치화되어 정형화된 정보에 근간하지 않은 모든 평가를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수치화되어 평가되는 환경에서 자란 우리가, 그런 수치가 존재하지 않는 회사 및 사회에 대해 극도의 불만을 가지고,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 수치로 모든 것을 측정하는 게임 시스템에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론 : 우리는 세상 살기 힘들고 불공평 하니, 나 대신 누군가 세상을 공정하고 간편하게 (하지만 나는 특별히 대해주면서)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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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의 시스템화 된 의사결정 프로세스(반성록)

새로운 분야를 배울 때마다 진짜 전문가들을 만나면 항상 감탄을 한다. 그것이 어떤 분야인지에 상관없이 말이다. 근래에 새로 배운 것들로는 백엔드, 부동산, 교육이론 등이 있는데, 그중에 부동산 전문가들의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감명이 깊어서 이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한다. 


어떤 물품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그것의 가치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고객들은 그 상품 혹은 서비스가 내가 내는 돈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 가격에 구매한다. 회사는 그 가격이 내가 상품 및 서비스를 만들 때 투자되는 돈보다 가치 있기에 그 가격에 판다. 투자자는, 그 상품(특히 자산)의 가격이 본질적인 가치보다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을 구매한다.


고객으로서 무언가를 구매하는 것은 우리가 매일 하는 것이기에 그 행동을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 상품이 내 감정적 & 물질적 욕구와 욕망을 지금 얼마나 채워줄 수 있는가가 바로 구매를 일으키는가 결정짓는다. 이 또한 깊이 들어가면 할 말이 많지만, 한 명의 고객으로서 느낌적인 느낌으로 우리가 왜 무언가를 사는지는 쉽게 "느낄"수 있다.


그렇다면 투자자는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자산(상품)을 구매할까? 특히, 투자를 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릴까? 


부동산이라는, 정재 된 데이터도 많이 없고, 시장 자체가 왜곡된 경우도 많고, 구매 및 판매가 극히 어려운 (일단 공인중개사 찾아가는 것부터가 너무 어렵다) 시장에서 무언가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무 어렵다. 


이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람들 또한 똑같이 느낀다고 생각한다. 고객에 대한 데이터가 잘 정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물건이 팔릴지 안 팔릴지 검증된 것도 아니고, 내 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도가 항시 높은 것도 아니다.


이런 모호하고 정확하지 않은 환경에서 부동산 전문가들은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일까? 내가 그 사람들의 강의들 들어본바 아래의 과정을 의사결정 시 거친다


  1. 특정 산업에 대한 구조적 이해

    a. 이 산업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가

    b. 어떤 것들이 이 산업에 영향을 주고, 어떻게 엮여 있는가

    c. 그래서 내가?? 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에"만" 신경 쓰면 되는가 

  1. 내가 신경 써야 하는 것들에 대한 정리된 자료 수집

    a. 내가 신경 쓰기로 결정한 중요한 변수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다

    b. 위의 변수들의 연관 관계를 고려하여 데이터를 정리한다

  1. 의사결정 threshold를 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결정한다

    a. 내가 액션을 취해야 하는 다양한 한계선 정하기 (예 : 부동산 가격이 주변 아파트 대비 30% 이상 낮다)

    b. 위에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몇 개의 한계선이 초과하는지 모니터링

  1. 행동
  2. 피드백

    a. 내가 중요하다 생각한 변수가 정말 중요한가

    b. 각 변수간 연관 관계를 내가 올바르게 이해했는가

    c. 알맞은 정도의 정확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했는가

    d. 내가 설정한 한계선이 적절한가



부동산 전문가들은 위와 같은 5가지 과정을 의사 결정에서 매 투자 시 거친다. 와...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4년 반 동안 데이터 분석한 나보다 더 데이터 잘 활용하고 의사 결정하는 것 같다. "IT 산업이 최고야!"라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 역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산업을 뛰어넘어 극도의 효율성과 현명함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투자가들의 의사결정을 어떻게 서비스 운영 및 데이터의 활용에 녹일 수 있을까. 위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보며 내가 느낀 것은 많은 서비스 기획자 및 데이터 활용자가 (나 또한 그렇다) 아래의 질문에 대해서 모두 "YES"라고 하는 케이스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1. 나는 정말로 내가 몸담은 산업을 이해하고 있는가
  2. 나는 정말로 내가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3. 나는 정말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의사결정 threshold를 가지고 있는가
  4. 나는 정말로 나의 의사결정을 매번 복기하는가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의사결정 과정인데, 이를 실행하기가 너무너무 어렵다 (넵 다음 반면 오시고요). 이런저런 환경이 갖춰져 있어야 하고 문화적 합의도 있어야 하는데, 뭐 이런 건 정말로 변명이고 나부터 잘해 나아가야 다른 사람들도 하지 않겠는가.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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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sik choi

changsik choi

부동산 유튜버로 비춰보는 데이터의 해석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서 근래에 부동산 관련 영상 및 책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약 반년 간 서로 다른 자칭 부동산 전문가들의 주장을 듣다 보니 굉장히 재미있는 데이터 해석 패턴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신뢰할 만한 전문가일수록 더 넓은 맥락에서의 데이터를 보고, 자신의 예측에 대한 한계성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최근 5~6년 동안 부동산의 가격은 꾸준히 상승했고, 그것이 당연한 패턴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 패턴에 대해서 어떤 데이터를 때려 붙여서 설명을 하든 일단 패턴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니 누구라도 자신을 "부동산 가격을 예측하는 전문가"라고 설명을 할 수 있었다. 이는 회사의 데이터를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일단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면, 혹은 지속적으로 회사가 망하고 있다면 무슨 데이터를 때려 붙여서 설명을 하든 "말이 된다". 즉, 패턴이 일관적일 때 그 누구라도 그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주장들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더 정확히는, 이 일관된 패턴을 어떻게 하면 연전 시킬 수 있는지 잘 설명하고 실증할 수 있거나, 아니면 언제 패턴이 바뀌는지 예측할 수 있는 주장일 때 그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부동산 ㅈ~ㅗㅓㄴ문가들 중 어떤 사람들이 요번의 급락을 예측했을까? 그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믿음이 가는 사람의 주장과, 믿을 수 있는 주장은 별개이다. 부동산 하락을 예측 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획득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이다. 바로 현상의 복잡성을 인지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의 예측의 한계성과 시나리오에 따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반대로 믿음은 가지만 주장이 틀렸던 사람들은 모두 특정 현상이 모두 단 하나, 혹은 두 가지 이유로 일어났다고 매우 심플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주장이 옳았던 사람들은 특정 패턴을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변수뿐만이 아니라, 그 패턴을 만드는 더 큰 패턴과 연관된 변수 또한 참조하여 데이터를 해석하고 현상을 예측 및 설명한다. 예를 들어 많은 부동산 ㅈ~ㅗㅓㄴ문가들이 단순히 부동산의 수요와 공급 논리를 근거로 하여 부동산 가격 상승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부동산 가격의 silver bullet, 즉 모든 것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변수라 말했다. 하지만 "확신을 할 수 없지만... 전체적인 경제 패턴으로 볼 때 이런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 하락할 수도 있어요.. 조심하세요"라고 했던 그 당시의 마이너한 주장의 사람들을 보면(즉 진짜 전문가들), 특정한 현상은 하나의 변수로 설명될 수 없고, 다양한 데이터들, 특히 단순히 특정 도메인(부동산)에 연관된 데이터뿐만 아니라 그 도메인이 속한 메타적인 도메인(경제)을 고려하여 잘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전문가들은 매우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데이터뿐만이 아니라 연관 데이터 또한 참조하고, 여기에 더해서 특정 현상이 사실은 다양한 다른 현상들과 엮여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에 "부동산이 떨어진! 그건 당연해!" 혹은 "부동산이 올라간다! 그건 당연해!"라고 말하기보다는 


"이런 이런 시나리오에서는 이런 것이 확률적으로 가능하다. 그렇기에 이런 변수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유심히 봐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무엇일까? 


개인적인 경험상 데이터를 활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바로 눈앞에 보이는 데이터, 혹은 자신이 전문가인 도메인의 데이터만 바라보고, 그 데이터를 기준으로 현상을 해석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데이터 분석가가 회사 내부 고객 이벤트 로그 및 상품 데이터만 바라보는 것이 그 예이다.


하지만 정말로 특정 현상에 대해 이해하고자 한다면, 단순이 우리에게 주어진 데이터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시스템적 사고를 (이게 이렇게 변하면 이것이 이렇게 된다) 갖추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가 화장품 산업에 속한 IT회사에 있다고 단순히 화장품 및 고객 관련 데이터로 왜 우리 회사 영업이익이 떨어지고 있는지 분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거시적인 데이터들, 예를 들어 재무제표, 금리, 부동산 매매건수 같은 다양한 데이터를 보면서 이것들이 어떻게 고객 및 회사와 연관되어 있고, 이 데이터 중 무엇이 변화할 때 그것이 연쇄적인 다른 현상을 일으키는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든다. 데이터를 사용하기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닌가. 너무 복잡하게 가는 것 아닌가. 


하지만 회사를 분석한다는 것은 결국 회사의 산업, 고객, 회사 자체, 경제를 전부 어느 정도 이해하여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고 또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인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다양하게 알아야만 퀄리티 있는 데이터의 활용이 있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개인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도메인을 기반으로 이해를 넓혀 나아가야 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여 일종의 공유된 시스템적 이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과적 감성이 아닌 매우 문과적 감성을 포함한 아트라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다.


여기서 개인적인 꿀팁을 더한다면, 어떤 데이터를 봐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모호할 때는 내가 당면한 질문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먼저 생각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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