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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HYEOK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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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 창업기 3편》

그렇게 팀이 꾸려지고, 여러 사소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믿고 거래했던 고구마 농가가 상품을 보내지 않고 잠적해버리기도 했고,

충분한 재고를 확보하고 있다던 말을 믿고 복숭아 농가에 많은 양을 발주했지만, 3주라는 경이로운 출고 지연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대놓고 과수를 속인 상품을 보내고는 잠적한 농부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감사하게도, 대봉은 큰 문제 없이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대봉이 더욱 성장해서,

우리 팀과 오래오래(가능하다면 평생) 함께 회사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불안하고 힘든 날도 많지만, 저는 행복합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식량 부족을 인류 멸망의 원인으로 제시합니다.

최첨단 과학이 총동원되는 미래에 ‘농업’이 인류의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다시 등장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농업은 느리고 어렵고, 낡은 산업으로 여겨집니다. AI나 반도체처럼 단기간에 큰 자본 수익을 창출하기도 어렵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은 생존과 직결된 산업이며, 그 시장 규모에 비해 아직 충분한 혁신이 일어나지 않은 분야입니다. 어쩌면 농업은 우리가 가장 과소평가하고 있는 진짜 미래 산업일지도 모릅니다. 대봉은 2027년까지 농산물 위탁판매 시장 점유율 6%를 달성하고, 국내에서 손꼽히는 농산물 유통기업이 될 것입니다.

이후 농산물 오프라인 유통으로 진출해 더 큰 임팩트를 만들어내고,

종자를 연구하며 스마트팜을 육성할 계획입니다.

수출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세계를 넘어, 우주로 갈겁니다.

그렇게 화성에 사과나무 씨앗을 심는 그날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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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 창업기 2편》

[거래액 살리기]
거래액은 떨어지고, 팀에 혼란이 가득했던 그때 인턴을 했던 회사에서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회사의 팀원들은 “무자비한 우선순위화”를 중요한 가치로 여겼는데요. 저도 짧은 시간이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참 좋은 가치라고 생각했고, 그 효용을 직접 느꼈어요. 근데 당시 대봉은 정반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팀은 패닉 상태였고, 실험이랍시고 여러 시도를 난사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우선순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우선순위화도 아니고 무자비한 우선순위화를요. 가장 먼저, 하고 있던 실험을 모두 멈추고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 시장 조사를 했어요. 수십 명의 셀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시장 크기도 가늠하고, 시장의 성장률을 계산했습니다. 시장 조사를 할수록 고객과 시장을 조금씩 더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복잡하게 얽혀 있던 것들이 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고객과 시장을 100%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이전보다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했습니다. 이런 시장 조사 과정을 통해 우리가 찾은 단서들은 우선순위 설정을 위한 중요한 재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바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선순위 설정의 기준으로 삼았어요.
우선순위와 전략을 정한 후에는 사무실 칠판에 해야 할 단 한 가지만을 적고 그것만 했습니다. 그걸 달성한 후에는 칠판을 지우고 해야 할 일을 다시 적고, 달성하고 지우고 이걸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우선순위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일을 해 나갔습니다. 틈만 나면 인터뷰를 했고, 셀러들이 어떤 상품과 기능을 원하는지를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상품 종류를 줄였고, 우리가 정말 경쟁력을 갖춘 상품만 셀러들에게 추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추천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어떻게 더 좋은 추천을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경쟁력을 갖춘 상품과 우리를 믿어주는 셀러분들의 수를 늘려갔습니다. 어느 순간, 감소하던 거래액이 반등했고, 24년 1월에는 12월 대비 3배 성장한 5,700만 원 거래액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자비한 우선순위라는 가치는 지금도 우리 팀의 중요한 문화로 남았습니다.

[제기동의 여름]
사업의 규모를 키우는 것과 시스템을 만들고 안정화하는 일 사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해가 바뀌고 짧은 봄이 끝날 무렵, 대봉도 거래액은 증가하고 있었지만 그만큼 오퍼레이션 단의 문제가 많았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거래액 상승도 좋지만, 이대로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거래액을 높이는 것보다 오퍼레이션을 자동화하고 안정화하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하는 타이밍이 되었고, 이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온라인 서비스인 대봉의 개발을 책임져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떠오른 사람이 민기형이었습니다. 저는 파운더스라는 학회를 했었는데 개발자인 민기형과 저는 같은 조였어요. 민기형은 그 누구보다 큰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제가 만난 어떤 사람보다 인간적으로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민기형에게 함께 대봉을 해보자고 제안했고, 감사하게도 “좋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모인 대봉의 창업자 3명은 제기동에 한 오피스텔에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대충 쑤셔 넣고, 같이 구보를 했습니다. 그러고는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일을 했고 밤이 되면 잠을 잤습니다. 자기 전에는 불을 꺼놓고 누가 보면 망상이라고 할 법한 대봉의 미래와 꿈에 대해 신나게 얘기했고, 일을 하다가 답답할 때면 셋이 아무도 없는 옥상에 올라가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오피스텔에 달린 2003년식 에어컨 덕분에 2024년 여름은 정말 더웠지만, 아주 멋진 여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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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 창업기 1편》

안녕하세요. 대봉을 만들고 있는 최재혁입니다.

대봉은 온라인 셀러에게 농산물을 공급하는 서비스입니다.

대봉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기준 대봉에 입점한 셀러 수는 1,900명을 넘었고, 누적 거래액은 20억 원을 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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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을 시작한 지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그간의 기억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됐습니다. 앞으로 3주간, 일주일에 한 번씩 총 3번 대봉의 1년 6개월간의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 23년 8월부터 24년 1월까지 대봉의 기록입니다.

[창업 계기]
어릴 때부터 제 꿈은 창업해서 성공하는 것이었어요. 깊은 고민 끝에 창업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창업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멋져 보였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20살부터 여러 번 창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어요. 군 복무와 스타트업 인턴 기간을 마친 23년 2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제대로 창업에 도전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건 아니고 “겁없이 창업에 도전해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라고 생각을 했던건 맞아요.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잃을 것이 늘어나고, 그럼 겁이 많아져서 창업을 하기까지 아주 큰 결심이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팀 빌딩]
저는 똑똑하면서도 창업에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었습니다. 근데 마침 대학 동기이자 친한 형이었던 동현이 형이 준비하던 시험을 그만둘까 고민하더라고요. 같이 강릉 여행을 가는 기차 안에서 설득했습니다. 창업을 왜 해야 하고, 그게 왜 지금인지, 시장에는 어떤 기회들이 있고 우리가 왜 할 수 있는지를 정리도 안된 상태로 막 떠들었던 것 같아요. 대봉이라는 이름도 그 대관령을 지나는 기차 안에서 지어졌습니다. 참고로 대관령을 보고 떠올린 대봉이라는 이름은 큰 봉우리라는 뜻이고, 대봉처럼 큰 유산을 만들겠다는 우리의 포부를 담은 이름입니다.


[시장조사]
그렇게 동현이 형과 대봉을 결성 후 가장 먼저 도메인을 농수산물 유통시장으로 정했고, 농수산물 유통시장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농수산물 유통구조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고 복잡한 유통구조 안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솔직한 회고입니다. 농수산물 유통시장 중에서도 다양한 아이템을 태핑 했어요. 과일로 정과도 만들어보고, 간장게장 공장, 명란젓 생산을 알아보기도 했고, 동현이 형은 강서시장에서 일 해보기까지 했지만 좋은 기회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시장 조사를 이어갔어요. 그러다가 농산물 분야에 농산물 온라인 셀러 시장이 뜨고 있다는 사실과 농산물의 높은 변동성 때문에 셀러들이 공급처를 찾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MVP]
그러면 온라인 셀러들에게 공급처를 큐레이팅해 주는 서비스가 의미 있지 않겠냐는 가설을 세웠고 바로 MVP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농부가 필요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농부님 한 분을 찾았고 그분 상품을 홈페이지에 정리해서 올렸습니다. 우리가 당시에 후킹 포인트로 삼았던 것은 농부의 정보를 정말 상세히 공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구색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우리를 신뢰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셀러들이 모여있는 카톡 채팅방에 들어가 한 명씩 개인 카톡으로 그 페이지 링크를 보냈습니다. 계속 보냈습니다. 그 링크를 보고 한 두 명이 주문을 넣기 시작했고, 며칠이 지나니 일평균 거래액이 20만원을 넘었습니다.

[거래액상승]
조금씩 거래액이 늘었지만 성장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거래액을 높이려면 가격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데, 거래액이 별로 되지 않으니 농부님과 협상 자체가 되지 않더라고요. 근데 가격만 낮추면 거래액이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발주량을 가지고 농부님을 찾아가면 그때는 가격을 낮춰줄 거라는 믿음도 강하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가격을 낮췄습니다. 2만 원에 받아서 2만 원에 팔던 샤인머스켓을 역마진 2,000원을 잡고 1만 8천 원에 판매했고 적극적으로 홍보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하루에만 200만 원치 거래액을 만들었습니다. 그 발주를 가지고 농부님을 찾아가니 감사하게도 가격을 낮춰주셨습니다. 그날은 23년 8월 27일이었어요. 첫 구매가 나온 지 딱 2주가 된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당시에는 사무실도 없어서 학교 라운지 구석에서 일했는데, 둘이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렇게 터진 거래액은 추석 버프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고, 9월 추석 택배 마감 전까지 40일 동안 우리는 6천만 원치 과일을 팔았습니다.


[거래액추락]
기분 좋게 추석을 보내고 다시 판매를 재개했을 때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판매 재개일 거래액이 정확히 1,106,300원이었거든요. 택배 마감으로 판매하지 못한 기간이 열흘이니까 나누기 10을 하면 발주량이 일 거래액 기준으로는 10만 원이 간신히 넘는 수준이 된 것이죠. 더 최악은 그 거래액도 조금씩 줄어 23년 10월 3일에는 거래액이 45,700원이 찍혔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발주서가 고장 난 줄 알아서 3번을 확인했는데, 진짜더라고요. 거래액 하락의 이유는 주력 상품의 시즌 종료, 10월 제철 상품인 감,귤, 포도에 대한 준비 부족 때문이었어요. 준비가 부족하니, 좋은 가격 상품을 판매할 수 없었고 다시 손해를 감수하고 가격을 낮추어도 역부족이었습니다. 부족했던 준비를 만회하기 위해 제철 상품 소싱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이미 많은 농가는 당시 시즌에 거래할 거래처를 확보한 상황이라 소싱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럼 제철 상품 말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상품을 찾고 그 종류를 늘려서 거래액을 높여보자는 생각을 하고, 상품 종류를 극단적으로 늘려보기도 했지만 좀처럼 거래액이 살아나지 않더라고요. 자동화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라 오퍼레이션에 많은 시간이 들었고, 프로모션을 위한 여러 실험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를 하려고 하니 정신이 없었어요. 효율은 떨어졌고, 거래액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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