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18,000명 이상이 찍어본 '연결' 하나만 보고 시작한 프로젝트 'bindery' - by mufi (2부)
1편 이야기에 이어서 쓰는 글입니다!
첫 런칭에 매출, 사용자 수 6,000명 뒤에 숨겨진 진실
앞서 이야기한 mvp를 만들어 낸 것으로만 그냥 반응이 좋았다면, 그건 정말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다.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는지, 사람들이 왜 사용했는지, 단순 '네컷 부스'라서 사진을 찍은것인지, 중간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모두 써내려가면서 회고해보고자 한다.
일단 일 벌려놓고 보기(feat.학생회)
처음에는 단순히 '우리 학교' 에서만 성공시켜보자 였다. 22년에는 대학을 다니면서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창업 전공 수업에서 그 당시 교수님께서 내가 만든 사업계획서만 보고 딱 한마디 했다. "이거 학교부터 시작해" 그리고 방법은 안알려주고 학교에 설치만 하라는 말만 하고 떠나셨다.(물론 많은 방법과 여러 스킬들을 배웠다. 이 교수님은 후년에 투자사 관계자로 만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개발에 들어가기 전 창업 수업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대학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학생회를 하고있는 과 동기 친구에게 찾아가 먼저 말했다. "혹시 너희 축제나 행사 때, 네컷부스 넣어볼래?, 우리가 프레임 만들어줄게!" 그 말을 들은 학생회 친구는 당연히 좋다고 하였고, 각 학교 학생회 로고 (보통 대학교 단과대학 학생회들은 로고가 있고, 그 로고를 통해서 브랜딩을 한다.) 를 넣은 포토 프레임을 만들어주면서 학생회 친구들이 주최하는 행사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개발해놓은 기능들을 바탕으로 22년 9월 서원대학교 가을 체육대회에 첫 팝업 부스를 열게 된다. 앞서 1부에서 이야기했던 가성비 제품으로 만들어 나갔다.
그냥 '작동하는 개발 프로그램'과 '제품'은 천지 차이다.

처음 제품을 만들 때, 나는 솔직히 말해서 디미고(IT특성화 고등학교이다.)웹프로그래밍과 3년에 컴퓨터공학과 3학년을 다니면서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만들지 못하는 IT 전공자였다. 나 혼자 스스로 제품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서비스 설계와 기획 개발 회의를 끌어나가는 실행력이 있었고, 그 실행력으로 당시 서원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서 개발로만 1,2등을 하는 친구들을 설득하여 같이 개발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 친구들도 처음에는 즐겁게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점점 매우 큰 부담과 스트레스로 변해갔다는건 지금도 알고있고, 첫 제품 개발이 끝난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출시 직전까지 잠도 안자고 3,4일 밤새면서 테스트하는건 기본이었으며, 축제 기간동안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모든 고객에게 죄송하다고 외치면서 밤새 버그를 찾았다.
단순 대학교에서 평가받기 위한 프로그램을 잘 개발하는것과 돈을 받고 파는 제품은 정말 차원이 다른 스트레스의 경험이었다. 상상도 못한 곳에서 버그가 일어났고, 새로운 하드웨어를 적용시켜가면서 서비스를 만드는건 보통 많은 공부가 필요한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이 고통은 내가 여기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 당시 개발에 참여한 팀원들은 몇 배로 힘들었을 것이다. 팀원들은 모두 실제 서비스 개발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시장에 내는 제품 특성상 한정된 시간, 한정된 공간에서 서비스를 유지시켜야 했기 때문에 현장에서의 빠른 피드백과 버그 픽스가 주된 일이었고, 문제가 터졌을 때 그 안에서 결단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거때문에 17만원짜리 프린터기를 6,7번씩 구매했다) 그렇게 모두가 3일밤을 새가면서 체육대회 포토부스 행사를 끝냈고, 우리 mvp 프로그램 제품은 몰아치는 폭풍같은 행사에서 살아남은 조금 더 성장되고 안정화된 제품이 되었다.
첫 서비스의 런칭 제품인 사진이 제대로 나와서 돈을 받을 수 있는 사진은 운영 시간 대비 30%밖에 되지 않았었다. '죄송합니다' 라는 수십번의 말과 '극한의 스트레스'를 희생하여 얻은 결과였다.
한 대가 돌아가? 그럼 두 대, 세 대도 돌릴 수 있어야지! - 다른 학교로의 진출
첫 서비스 런칭인 서원대학교 체육대회는 부스 한 대로 돌아갔다. 그 당시 단순한 생각으로는, '우리가 돈을 벌려면 부스 한 대가 축제 기간동안 벌 수 있는 돈은 한정적이니, 여러 대를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였다. 그래서 다른 학교로 들어가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이 이야기도 흔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2022 충북 창업 우수기업으로 1,000만원을 받은 돈으로 내가 기획한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여러 업체를 돌면서 견적을 받아봤다. 나도 개발에 대해 완전 문외한이 아니었지만, 견적을 받아 본 결과 mvp 개발비는 키오스크-모바일-관리자 이 세가지를 개발하는데 드는 최소 견적이 4,000만원부터 시작했다. 절대 개발할 수 없는 돈이었다. 하지만 지원금은 써야하고 제품은 만들어야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금액에 맞는 사람을 구해야 했다.
그래서 대학생 중에 외주를 하면서 돈을 버는 친구는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3학년이 되면서 충북대학교로 편입을 한 친구에게 외주 요청 의뢰 관련 글을 작성해서 '에브리타임'에 올려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그렇게 올린 글에 3명의 학생에게 문의를 받았고, 그 중 한 학생이 개발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학생이 모바일 mvp 프론트 를 개발해주었고, 그렇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학교에 한 명의 팀원이 생기게 되었다.
이 친구를 팀원으로 영입한 결과,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충북대학교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힘을 써 주었고, 내가 서원대학교 학생회 친구들에게 제안했던 방식을 따라하게 만들면서 충북대학교 축제 입점에 성공하게 된다.
서원대학교 체육대회가 끝난 뒤 약 2주 후, 서원대학교와 충북대학교의 축제 날짜가 겹치게 된다. 동시에 두 대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팀원들은 다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을 알면서도 다른 학교에도 또 MARK-1 부스를 제작했다. 7명의 친구들이 붙어서 3시간동안 두 곳에서 부스를 만들었고, 손을 다치기도 했다. 그렇게 서원대, 충북대 두 곳에는 두 명의 개발자가 운영 기간동안 쉬지않고 언제 터질지 조마조마해가며 노트북을 들여다 보고 있었고, 동시에 두 곳에서 운영을 시작했다. 결과는 전 서비스에 비해 2배 이상 안정화되었고, 매일 매일 노트북을 포맷해가며 프로그램을 다시 깔아가면서 운영해서 나온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완전 대박🤩]
이 날 거의 1,200명의 학생들이 우리 사진부스에서 사진을 찍었고, 컴퓨터와 카메라, 인화기는 뜨거워져 불이 날 것만 같았다. 이제 운영 시간 대비 사진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약 70%까지 올라갔고, 이 기간에도 첫 런칭때와 비슷하게 엄청난 버그 픽스와 밤샘이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폭풍같이 몰려온 축제는 끝이 나고 있는것만 같았다.

두 개의 학교로 끝난 줄 알았는데... - 동국대학교 끼리끼리
이 당시, 어머니가 육회연어 전문 음식점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난 거기서 알바를 하며 당시 서버 유지비를 벌고 있었다. 그 날 내 친동생이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러 왔는데, 그 자리에서 내 동생이 ' 형! 우리 학교에서도 네컷 부스 운영하자! ' 라고 말했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이 동국대학교에서 '프런티어' 라는 창업동아리를 하고 있는데, 동아리에서 각자의 사업 아이템으로 학교에서 팝업 마켓을 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출의 일부를 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조건으로 '끼리끼리' 라는 포토부스 사업을 동국대학교에서 오픈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형제짤]
'끼리끼리'의 사업 목표는 '동국대학교 브랜드 포토부스 런칭' 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으며, 그 당시 '끼리끼리 포토부스'를 운영하고자 하는 팀원들은 마케팅 계획, 홍보 전략, 운영 전략 부분에서 많은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 덕분에 오프라인 사업의 홍보의 효과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점들을 알게 되었고, 그 중 한 명인 내 동생이 중간중간 중요한 결단과 영업적 성과와 성장에 가장 많은 일들을 하며, 나와 같이 밤을 새면서 그 때의 일들을 똑같이 반복했다. 그 당시 무피의 팀원들과 동국대학교 팀원들의 시너지로 여태 앞서 없었던 사용자 수와 엄청난 레슨런 포인트들을 얻을 수 있었다.(물론 제품의 안정화는 여기서도 더 이루어지면서 서비스의 사이즈도 커졌다. 쿠폰 기능, 사진 저장 기능 등등)
그래서 그 때 22년 최고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 팝업 행사 이후, 추후 동국대학교 linc+ 창업 페스티벌, 이후 축제와 박람회 참여 기회까지 얻게 되어 꾸준한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우리 사용자 수는 22년 9월에 런칭해 22년 기준 6,000명의 이용자들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제품을 바탕으로 공모전에도 나갔다.

[개발에 영혼을 갈았던 팀원 중 한명이 수상을 받았다.]
사실 1편에서 23년 이야기까지 쓰고 끝낼 줄 알았는데, 글을 처음 쓰다 보니까, 하고 싶은 말을 너무 주구장창 쓴 것 같다. 이후에도 22년 이야기를 더 쓸게 남아있어서 다 기록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3년에 새로 생긴 동료들의 이야기, 건국대 이야기, 사이드 프로젝트 힘조절으로 프로덕트를 엄청나게 업그레이드 시킨 이야기, 청년 창업사관학교에 선정된 이야기, 축제와 기획사 새로운 고객들이 생긴 이야기, 많은 멘토들을 만난 이야기, 경쟁사들에게 생존을 위협받는 이야기, 그리고...제일 중요한 이야기 등 할 얘기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투머치토커였나...), 여기서 끝낼까 했는데 다음에 또 써야겠다...
중간에 내용이 지루해져서 끝까지 다 읽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읽어주셨다면 정말 감사드립니다.
글을 써보니까 너무 좋은 경험 같습니다. 다시 한번 저 한테 글 쓰라고 추천해준 @김현준 님 고맙습니다. 매우 좋은 경험입니다.

[이 때 새벽 3시 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