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권일

고권일님의 아티클

고권일

고권일

System.out.println("Hello, Disquiet!") - 2편

어제 쓴 글에 이어, 나의 마지막 두 단계 성장 과정을 공유하고자 한다.


Phase3: 군대 - 조기 졸업 (a.k.a. 절실함의 시기)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일반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하였다.1년 7개월 이라는 시간은 내 후반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turning point라고 말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때 느꼈던 절실함 은 "생존 욕구"로 부터 기인된 반면, 이 시기에 형성된 절실함은 "성공 욕구" 로 부터 기인된 것 같다. 만약 Phase3가 없었다면,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maker의 모습을 나에게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오로지 군번/계급이 primary key 역할을 하는 군대라는 조직에서 내가 느낀 것/결심한 것은 크게 3가지 이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겠으니, please do not judge me.

  1. 나는 정말 좋은 환경과 기회에 노출 되었지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었다.
  2. Value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사람들이 내가 만드는 무언가 로 인해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군대 때 책을 정말 많이 읽었는데, Good-to-great 을 쓴 Jim Collins, Principle 을 쓴 Ray Dalio 들 처럼, 나도 Social Impact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무언가 를 너무 만들고 싶다.
  3. 코로나는 위기이자 기회이다. 당분간 미국은 돌아갈 수 없고, 온라인 으로 학업을 해야하는 이 시기에, 앞으로 5년(30살 전)동안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 또래에 비해 어떤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바로 실행한다.


그렇게 나는 전역 후 3주 뒤, 2020년 9월 시카고 대학교를 온라인으로 복학하게 된다. 미국은 통상적으로 9월에 새 학기가 시작하고, 우리 학교는 1년이 3학기 제도이다. 복학 후 정확히 1년 뒤인 2021년 9월 까지 내가 한 "실행"은 다음과 같다(참고로, 1번과 2번은 parallel 하게 실행했다).

  1. 매 학기 들을 수 있는 수업들을 초과해서 듣고 수학 전공 자격을 갖추었다 (computer science도 복수 전공 하고자 고려 했지만, 그럴려면 1년 더 학교를 다녔어야 하기는 했다)
  2. 각각 다른 멤버들과 다른 사업 아이템 으로 3번의 창업 시도를 하였다.
  • 첫 창업은 군대 전역한 바로 다음 날, 약속한 멤버들과 사업 계획서(Business Plan)를 한 달 동안 작성했다. 정말 다시는 안 할, 미련할 짓이다. 그 때는 몰랐다, it is all about execution 이라는 것을. 아무튼, 그렇게 한 달을 밤낮없이 야심차게 IR 자료를 만들고, 내 아버지에게 pitching을 했다. 돌아온 대답은 개발 내재화 역량도 없는 너네 한테 단 돈 1000원도 투자 못한다 이었다. 많은 lesson-learned가 있었고, 같이 모였던 멤버들은 각기 다른 사정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팀이 와해 되버리고 말았다.
  • 상관 없다. 멤버들은 또 찾으면 된다. 그리고, 투자자가 아버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는 VC 초기 창업 프로그램에 지원 하면 된다. 그렇게 어렵게 다른 멤버 2명을 구하게 되었고, word-press 라는 간단한 툴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의 proto를 만들어 스프링캠프 VC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된다. 서류 면접 통과하고, 2차 대면 면접에서도 심사역 앞에 정말 자신있게 설명했다. 그 분도 "너무 좋다. 대표님 열정을 보면 정말 하실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피드백을 주셨는데, 결과는 탈락 이었다.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아니, 별로면 별로라고 솔직하게 말해주지, 왜 앞에서 좋다고 하고, 뒤에서 탈락 시키는거야?" 그 길로 바로 스프링캠프에 내가 왜 떨어졌는지 설명 부탁 한다고 이메일 썻고, 담당 심사역과 통화까지 하고 나서야 탈락 이유를 알게 되었다. 멤버들이 제품을 만들 역량이 충분하지 않았고, 그럴듯한 아이디어 만으로는 투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 세번째 창업 시도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두 번의 큰 실패를 통해 내가 크게 깨달은 게 몇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아 정말, 남의 돈 받기 힘들구나", 두 번째는 "웹 사이트 하나 혼자 역량으로 제대로 개발 못하는구나." 이었다. 나 뿐 아니라, 나와 비슷한 연령대인 내 멤버들도 마찬가지 이었다. 애초에 난 돈 받고(=투자 받고), 사람을 제대로 뽑을 생각을 했기에, 일단 투자자들의 눈을 끌만한, 좋은 대학교 출신들의 젊은 유학생 멤버들 위주로 팀을 꾸렸다. 그래서 세 번째 창업 시도는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게 된다. 세 번째 창업을 실행하기 전, 나의 principle은 아래와 같았다.
  • 현금 흐름을 바로바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이템을 시작한다. 내 MVP가 시장에서 작동 가능하고, sustainable 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
  • 일단 멤버는 필요없다. 사람 만날 시간에, 제품 개발 역량을 강화하자.
  • 그렇게 나는 여러 사업 아이템을 조사하고, 군대 가기 전 미국에서 3개월 Web-developer 인턴으로 일하면서 배웠던 Ruby on rails를 공부하게 된다. 물론 학교 수업도 병행 하면서 말이다. 그 떄 마침 Cameo라는 chicago-based 미국 스타트업이 시리즈-C 펀딩을 받은 걸 알게 되었다. 이 회사의 BM은 정말 간단 했는데, "Personalized video from your favorite stars" 이다. 쉽게 말해, 셀럽 한테 돈을 주면 셀럽은 내가 원하는 형태/메시지의 영상 편지를 만들어준다. 나는 이걸 한국에서 바로 실행해보면 되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첫 째, cash-flow가 매우 명확한 아이템이다. 소비자가 돈을 지불해야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고, 난 셀럽과 수익을 적절한 비율로 배분하면 되기 때문이다.
  • 두 번째, 개발 하기가 매우 용이한 아이템이다. 우선 MVP 형태로 만들 것이고, 셀럽이 보내는 영상의 경우, personalized 되어야 하기 때문에 웹사이트 내에 영상 embedding은 고려하지 않아도 되었다.depth3 정도의 웹사이트만 구현 하면 된다. 결제의 경우, paypal/square를 붙여주는 third-party 결제 툴을 사용하면 되었다.
  • 세 번째, 그 때 당시 코로나가 한창이었다. BTS 같은 빅 아티스트 들 이 아닌, 중소 연예 아이돌 들은 수입이 전혀 없는 상황 이었기 때문에 충분한 경제적 incentive가 있을 것이다. 또한, 아이돌 팬 들을 잘 보면 "눈 먼데 돈 쓴다" 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본인이 사모하는 아이돌 에게 돈을 매우 많이 쓴다. 돈 내는 사람/돈 받는 사람의 니즈가 너무 명확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이 사업을 비대면 콘서트, 아이돌 굿즈 판매 등으로 확장하는 나름대로의 그럴듯한 확장 전략도 가지고 있었다.
  • 네 번쨰, 나와 가장 친한 동생의 지인 분이 중소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고 계셨고, 그 기획사 에는 걸그룹 아이돌이 있었다.
  • 고민 안했다. 그 날 바로 웹 개발 실행 하였고, 1주일 뒤 MVP의 최소 형태를 갖춘 채로 나의 가장 친한 동생을 자리에 앉혔다. 그렇게 나는 제품 관리, 나의 친한 동생은 영업을 담당하게 된다. 이 동생은 그 날 바로 중소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던 지인을 설득하여 xxx이라는 아이돌을 성공적으로 섭외했다.실로 이 친구의 영업력은 대단하였는데, xxx 이외 일본이 주요 타겟인 두 연예기획사를 더 고객으로 영입하게 된다. 그렇게 한 달 반 동안 MVP 테스트 했고, tax included 약 3500불(400 만원) 정도 벌게 되었다. 이 때가 2021년 5월 즈음 이었고, 수학 전공 이수 완료를 약 한 달 정도 앞두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결정" 을 해야만 했다.

** 세번째 때 만든 On'star 메인 페이지를 첨부한다


쓰다 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다. 아쉽지만, 내가 하루에 Disquiet에 투자하는 시간이 거의 다 되가기에, 내일 글을 이어 써보고자 한다.

3
2
고권일

고권일

System.out.println("Hello, Disquiet!")

Disquiet 메이커 분들께 내가 만들고 있는 풀자2.0 서비스를 소개하기 전, 나의 성장 과정을 총 4단계로 나누어 설명 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처음 두 Phase만 설명하고자 한다.

Product와 관련되지 않은 나의 성장 과정을 얘기하고 싶은 이유는 두가지 이다.

첫번째는, 지금까지의 내 성장 과정을 글로 정리하여 어떤 lesson learned가 순차적으로 있었는지 내가 자주 보기 위함이다. 회고는 정말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두번째는, 나는 맥락없이 Product/사람/숫자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결과에는 WHY?가 있고, 그 WHY?를 알아야, 본질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메이커 분들에게 지금 만들고 있는 서비스를 내 자신이 depth 있게 공유 하기 위해서는, 풀자2.0 이 전의 "맥락"을 공유 안할 수 없었다.

내 개인적인 삶을 모두가 보는 공간에 공유하는게 솔직히 두렵다. 하지만, 풀자 2.0 이전의 "맥락"을 충분히 설명해야, 내가 편하고 자신있게 지금 만들고 있는 풀자2.0 서비스에 대해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아 적어보고자 한다.


Phase1: 중학생 1학년 - 고등학생 3학년 (a.k.a. 질풍노도의 시기)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내 정체성의 첫 절반은 한국에서, 나머지 절반은 미국에서 형성 되었다. 단어, 문법, 문장 어절이 어색해도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린다.

한국에서 중학교 3학년이 끝날 때 즈음, 한국과학영재학교 최종 면접에 탈락한 나는 인생에서 첫 좌절을 맛 보았다. 그렇게 좌절 하던 나를 아버지가 보시더니, "공부가 인생이 전부는 아니다. 더 큰 나라 가서, 더 큰 걸 보고 와라" 라고 미국행을 권유하셨다. 영어도 서툴었던 내가, 무슨 깡으로 그렇게 하겠다 라고 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게 미국 보스턴에 있는 boarding school에 입학하여 생전 처음 보는 백인 친구와 룸메이트를 하였다(심지어 하키 선수 였다). 밤 10시에 무조건 불을 끄고 취침을 해야만 했던 학교 규정을 위반할 수 없었기에, 처음 1년은 매일 밤마다 화장실 변기에서 영어 단어를 계속 외우고, 학교 수업을 따라 가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그 때 내 목표는 단 하나 였다. 내가 고등학교는 원하는 데 못갔지만, 어떻게든 대학교 만큼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학교를 꼭 간다. Survival of the fittest, 가장 강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나는 살아 남아서 증명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 누구보다 강했고, 피나는 노력 끝에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를 전체 1등으로 졸업하고,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27년만에 시카고 대학교(The University of Chicago)에 입학하게 되었다. 시카고 대학교는 전세계 대학교들 중 가장 많은 노벨상을 배출한 학교이자, 신 자유주의 시카고 학파로 유명하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에도 노벨 경제학 상을 두 교수님이 받으셨다. 경제학 교수님들은 서로 순서 정해서 노벨상 받는다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Phase2: 대학교 1학년 - 대학교 3학년 1학기 (a.k.a 혼란의 시기) 

좋은 대학을 나오면 인생이 전부인 줄 알았다. 화학과 전공으로 시카고 대학교를 입학했던 나는 1학년 때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Lab실에 내 인생의 절반을 보냈어야 했고, 그 무엇보다 화학 실험이 너무 재미가 없었고 지루했다. 그렇게 1학년을 방황 하면서 마무리 했다.

2학년이 되고 나서, 내가 학교에 가자마자 한 일은 school advisor에게 전공을 수학으로 바꾸겠다고 한 것이었다 (참고로 미국은, 전공 바꾸는 절차는 종이 한 장이면 된다. 개인적으로 참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난 어렸을 때 부터 수학을 매우 잘했었고, 나에게는 너무 쉽고 직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학년은 수학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시카고 대학교 수학과는 해석학(real-analysis)을 정말 심도있게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한데, 내가 좋아했던 수학의 "직관"이 이상하게 해석학 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들을 수 있는 수학 수업들은 꽤 빠른 속도로, 많이 수강 하였고, 내 성적은 줄 곧 A- 였지만 반에서 3%만 받을 수 있었던 A는 받기 너무 힘들 었었다. 그 때 처음 느꼈다. 내가 수학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나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는 추상적인 이론들을 내 classmates 몇 명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해하는 걸 보면서 말이다. "난 나중에 커서 뭐하지?" 라는 생각이 이 때 처음으로 심각하게 들었고, 좋은 대학만 가면 끝인 줄 알았던 나 자신의 모습에 크게 실망을 하게 되었다.

2학년 중반 이후 부터는 programming과 알고리즘 수업도 몇개 들었는데, 솔직히 수학보다 훨씬 재밌었고 직관적 이었다. Build하면 바로 결과를 볼 수 있으니깐 말이다. 그렇게 수업을 계속 듣다 보니, 컴퓨터 복수 전공도 고려해보라는 advisor의 말을 듣고, 수학 보다는 computer science 쪽에 focus를 준 채로 3학년 1학기를 마무리 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내 인생에서 x를 해보고 싶다 가 명확하지 않았기에, 머리도 식힐겸 겨울에 입대 하였다.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