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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현

이보현

건강한 죽순이 납작한 대나무보다 낫다

한국어 선생님이 한국어만 가르쳐서는 안 되는 이유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다. 그 말은, 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는 의미다. 최근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요즘 너무 잘 되고 있어서 무섭다.”고. 내가 생각했던 일이 예상보다 빠르게 내 눈앞에서 펼쳐지다 보니, 그게 언제 사라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자 또 다른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즐겨!”라고. 그래서 나는 그 말을 새기며 일희일비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다듬고, 현실에서 흘러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늘 진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다. 진심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그 진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있다. 진심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뿐이니까. 누군가 내 진심을 의심하거나 질문을 던져도, 그로 인해 일시적으로 감정에 상처가 생길지라도 나는 그것을 기회로 삼는다. 그 의심과 질문이 나로 하여금 진실을 다시 마주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한국어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외국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전업 한국어 교사다. 여기서 ‘전업’이란 단순히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커리어 발전을 위한 고민, 학생 관리, 학기 계획, 다양한 행사 기획, 그리고 다른 교사들과의 협력까지 모두 포함한다. 이 모든 활동이 결국 나를 더 나은 교사로 성장시키고, 한국어 교사라는 내 정체성을 더 견고하게 만든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엘리엇이다.

예비 한국어 선생님들을 반드시 데뷔시킬 결심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엘리엇은 대체 뭐하는 곳인가요?” 그 질문에 숨이 막힌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이 종종 “한국어 선생님이면 가르치는 일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학생들을 위한 길이죠.“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엇에서 한국어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그들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말 속에서 출몰하는 불안이 무엇인지 나는 가늠할 수 있다. 그 불안은 종종 “안 그래도 한국어 선생님이 많은데…”라는 뒷말로 이어지곤 하니까.

나는 많은 예비 한국어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자격증 자체보다 그 과정 전후의 여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어 교사가 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는 사람들, 자격증 과정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격증을 따고도 실전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막막함에 좌절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이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이 길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자책하며 포기하곤 한다.

나는 이러한 고민의 악순환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팀원들과 함께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한국어 교사가 되고자 하는 꿈이 단순한 목표에 그치지 않고, 현실 속에서 전문성을 쌓으며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길을 마련한 것이다.

하루 만에 완성된 기획안은 곧바로 홍보에 들어갔고, 일주일 만에 6명의 예비 한국어 선생님들이 우리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진심인 한국어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말에서 오류를 발견한다. 이는 한국어 선생님을 너무 단편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교사는 입체적인 존재다. 교과 지식과 교육 과정 개발은 물론, 학생 관리, 학기 기획, 다양한 행사 준비, 그리고 다른 교사들과의 소통과 협력 등 모든 것이 교사라는 역할을 다채롭게 만든다. 이 모든 요소가 연결되어야만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엘리엇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엘리엇에서 만나게 된 다른 선생님들과 나누는 대화, 학생들과의 경험 등은 나에게 큰 자산이 된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나의 토양이 더 단단해지고, 나중에 맺을 열매도 더욱 건강해진다고 느낀다. 우리는 결코 납작하지 않다.

죽순이 대나무가 될 때까지. 울창한 대나무 숲을 꿈꾸며.

“한국어 선생님이 너무 많아지면 기존 선생님들은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을 다시 떠올려본다. 솔직히,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나는 그럼 ‘우후죽순’ 생겨난 선생님이 아니었던가? 나는 되고, 너는 안 되는가? 내가 조금 빨라서 그 위치를 선점한 게 아닌가?

내가 가진 진심이 나만의 것이라는 근거가 어디 있는가? 기존 선생님들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학생들을 위한 최선의 방법인가? 더 많은 선생님들이 생겨나야만 나 역시 더 성장할 수 있고, 학생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엘리엇의 프로그램이 비용 면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점으로 우리의 진심이 곡해되도 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걷고자 하는 예비 선생님들의 열정은 진심을 증명하지 않는가? 그들의 마음을 과연 얕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든 선생님들도 결국 돈을 벌고있고 벌 생각을 하시지 않는가?

내가 막연하고 은근한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한국어 교사로서의 모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많은 선생님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도울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고 본다. 시작이 어려운 이들을 돕고, 기존 선생님들이 더욱 단단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지할 것이다.

모두가 자신만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면, 작은 죽순이 커다란 대나무가 되어 한국어 교육의 숲을 더 울창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숲에서 더 다양한 관점으로 한국어 교육을 논의하고, 학생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직업과 이 분야가 절대 정체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기쁨을 나 혼자만 알고 싶지 않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상투적인 말이 자꾸 진부할 정도로 반복되는 건 이유가 있다. 함께하면서 한국어 교육 시장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며, 그들과 함께 나도 더 나은 교사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글은 나의 분노일 수도, 나의 선전포고일 수도, 혹은 나의 출사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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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현

이보현

자격 미달은 ‘학교 밖'으로 나가라. 어쩌라고 씨발 정신과 함께.

나는 오랫동안 자신감이 부족했다. 스스로가 자격 미달이라고 느꼈고, 그 거대한 결여를 상상하면 심장이 조여왔다. 굽은 등을 펴기 위해 대학의 힘을 빌리려고 애를 썼던 적이 많다. 이 말은 참으로 오래 공부를 했고, 여러 학교를 전전했다는 뜻이다.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에 갔다. 쥐고 있던 적은 돈들은 어김없이 6개월마다 대학으로 흘러들어갔다. 몇 학기를 사고 나면 학위가 나왔지만,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에 나는 늘 더 높은 곳을 바라봤다. 또 다른 고등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다시 학교 근처를 전전했다. 이 끝없는 굴레에서 빠져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학교에 있을수록 오히려 학교를 떠나기가 더 힘들어졌다. 보고 배운 것들이 내 안에 쌓여, 어느덧 나를 옭아매는 족쇄로 변해버렸다.

포장지에 갇힌 날 것

“네 글은 너무 예뻐.”

학부생 때 모교에 전 세계적으로 이름난 영화감독이 전임 교수로 있었다. 그가 맡은 영화 제작 워크샵 수업에서는 1:1 면담 시간이 필수였다. 내가 제출한 시나리오 원고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그는 내 글이 너무 예쁘다고 말했다. 종이의 왼쪽 상단이 삼각형으로 접힌 것을 보니, 정말 읽은 게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잠깐 기뻤다. 칭찬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곧이어 나온 그의 말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너무 예뻐서 건드릴 수가 없어. 포장지를 벗겨야지.”

포장지? 내가 선물이라도 했던가? 머릿속에 떠다니는 물음표를 애써 삼키고, 멋쩍게 웃었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감독답게 그의 혜안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며 나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다. 그의 발언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었다.

그날 모든 학생들과의 면담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강의실에 모였다. 교수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오셨다. 그리고 정말 맥락도 없이, 갑자기 고막을 찢을 듯한 소리로 외쳤다.

“어쩌라고 씨발!!!”

순간 강의실 전체가 얼어붙었다. 다들 눈이 둥그래지더니 어느새 뒤집힐 것 같았다. 나 역시 과장 한 스푼 더 보태면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교수님이 그렇게 기함하며 소리치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씨발’이라는 단어는 너무도 무방비한 상태에서 날아들었다. 그런데도 교수님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냥 이렇게 살아. 어쩌라고 씨발. 남들이 네 작품에 대해 뭐라고 하든, 너에 대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 날것 그대로 살아야 해. 잘 보이려고 애쓰지 말고. 단순하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교수님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살아가면서 필요한 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고민할 것도 별로 없고. 내가 몸을 누일 작은 방 하나만 있으면 충분해. 매일 아침 일어나서 방을 깨끗이 닦고, 책상에 앉아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밥 먹고, 그렇게 같이 자고 일어나서 다시 방을 닦으면 되는 거야. 그거면 충분해. 너희는 아직도 어리기 때문에 35살까지는 계속 시도해야만 한다. 중요한 건 씨발것을 계속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거고. 적어도 10년 동안은, 졸업하고 나서 10년간은 네가 진짜 즐거워하는 일을 찾아서 그걸 지속해야만 한다. 꾸밈없이. 날것 그대로.”

그제야 교수님과의 면담 시간에 언급된 포장지의 의미가 선명해졌다. 잘 보이려고, 글을 잘 쓴다고 인정받고 싶어서, 그리고 과제를 제대로 해냈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서, 나 자신도 모르게 내 글을 포장하고 있었다. 온갖 욕망이 눈 가리고 아웅하며 포장지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그다지 옳지 않다는 판단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전문성’을 쌓으려 들어간 대학에서 ‘창의성’을 거세당하고 있다는 것을 교수님이 나보다 먼저 알아차린 것 같다. 그때 그는 아마 교수의 눈이 아닌, 감독의 시선으로 졸업반의 우리들을 마주했던 게 아닐까. 고맙게도.

개성이 쌓이면 그게 전문성이 된다는 것을 알려준 감독님의 영화를 여전히도 종종 찾아본다.

안하무인과 어쩌라고 씨발 정신 사이에서.

안하무인과 ‘어쩌라고 씨발’ 정신 사이의 중간지점을 찾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나는 남다르고 잘났고, 너는 모른다’ 같은 오만한 태도를 피하려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부족함이 늘 언제나 절대적인 사실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 게다가 완벽이라는 기준 자체가 관점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 그래서 결국 완벽이라는 게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와 인맥, 권위가 굳게 쌓인 체제 앞에서는 따돌림당하지 않으려고 가끔씩은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나는 어쩌라고 씨발 정신을 잃고 싶지 않다는 것. 남이 부여하는 자격에 기대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내 자격을 믿어주는 것. 종이에 적힌, 남이 발행한 전문성 따위에 의지하지 않고 내 발로 전문성을 쌓는 것. “쟤 뭐야?” 라는 말이 내 귀에 들어오더라도 나는 귀를 막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며 어쩌라고 씨발을 외치는 것. 불안감에 가슴이 헐떡일 때면 주변에 도움을 구하고 비슷한 처지일지 모르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 이 모든 것들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

그렇게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가, 또다시 학교 밖으로 나와 시도하고, 다시 학교로 되돌아가는 마음을 들쳐메고 집으로 돌아가고. 이 회사를 다니다 저 회사로 옮기고, 이 나라에 살다가 저 나라에 가서 정착하며 몇 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신탁처럼 내려졌던 그 나이에 가까워졌다. 35세. (그래도 아직 몇 년 남았다. 흠흠.)

안 될 게 뭐야?

자격과 전문성은 아마도 오래도록, 내가 남의 돈을 받고 일을 하는 한 계속 나를 따라다닐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그 고민이 고통으로 변할 때면, 여전히도 가끔 남의 명성에 기대고 싶은 약한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내 밖에 있는 학교, 회사, ‘선생님’, 혹은 전문가 등이 나보다 더 커 보이고, 마치 그들에게 기대어야만 할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35세가 아직 되지 않아 10년의 수련 시간은 채우지 못했으나, 대략 그 정도의 시간을, 충격적인 ‘어쩌라고 씨발’ 신탁 사건을 겪고 난 내가 항상 그 마음을 판단의 중심에 두고 나와의 대결을 펼쳐온 결과, 고통을 가라앉히는 최고의 방법은 내가 나의 스승이 되는 거였다. 그러기 위해선 주변에 기댈 무엇도 없어야 한다. 내 밖에 무언가가 있어 보인다는 환상과 착각도 깨야 한다. 의존성이 커지면서 자립성이 줄어든다 싶어질 때 과감히 떠나야 한다. 발목을 잡는 생각과 규칙이 작동하는 단체 속에 있다면 다리를 잘라서라도 버려내야 한다. 육신을 뺏기는 게 영혼을 잃는 것보다는 낫다.


여기까지, 이런 생각을 품고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에게 반대하는 이들이 없을 리 없다. “그거 할 수 있겠어? 가능하기는 해?” “네가 그럴 자격이 있나?” “말만 번지르르한 사기꾼 아니야?” “실패하고 나면 어쩔 건데?” 충분히 던질 수 있는 의문과 질문들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여전히 같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지금까지 늘 같다. “안 될 게 뭐야?”

앞으로도 이 말을 외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겠지만, 어쩌라고 씨발 정신을 장착하고 나면, 제아무리 심리적 장벽을 세우려 해도 나는 끄떡없을 것이다. 그러니 안 될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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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현

이보현

제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주세요.

너를 위한 말하기가 곧 나를 위한 말하기.

오늘은 룩셈부르크 국립 어학원의 가을 학기 수강 신청일이었다. 두 달 전부터 기다려온 날이라, “이번에는 꼭 룩셈부르크어 수업을 듣고 말겠다!“며 기대에 차서 사이트에 접속했는데, 음… 1분 만에 모든 수업이 마감되었다. 수강 신청에 실패하는 쓴맛을 본 것이다. 순간 눈물이 앞을 가리며, 대학 시절의 수강 신청 전쟁이 떠올랐다.

충격으로 부서진 멘탈을 줍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룩셈부르크어 수업이라고 감히 만만하게 봤던 내가 미웠다. 룩셈부르크어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 인구가 적은 소수 언어라 배우려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이 이렇게나 몰리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 생각보다 시작반이 많이 개설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혹은 여유롭게) 수강 신청에 성공할 줄 알았다는 안일한 생각을 곱씹었다. 소수 언어라서 오히려 더 배우려는 경쟁이 치열한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서의 결론은 이거였다. “아 여기, 내가 사는 곳은 룩셈부르크였지!”

Bonjour 대신 Moien 로 인사해요.

하루는 집 앞 뜨개질 상점에 들어가 무의식적으로 “Bonjour!“라고 인사했다. 룩셈부르크인 직원은 “Moien!“이라고 답했다가 내 인삿말을 듣고 “Bonjour!” 라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앗차 싶어서 그녀에게 다시 “Moien!“ 하고 룩셈부르크어로 안녕을 건넸다. 그녀는 활짝 웃었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뜨개실을 굳이 몇개 더 사서 나오면서 생각했다. 아무리 이곳에서 프랑스어가 주언어처럼 쓰이고 모든 이가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고 해서 룩셈부르크어, 즉 그들의 모국어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무시해온 건 아닐까. 그들이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할 줄 안다고 해서 그들이 모국어로 대화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니까. 아주 작은 디테일일지 모르지만, 커다란 차이를 만드는 섬세한 마음을 놓치고 있었다.

내가 룩셈부르크에 살면서도 이 나라의 말을 배우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구나, 하고 인식하고 나니 뭔가 빚진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나를 자기네 나라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프랑스어로 접근성을 낮춰주고 또 한국어 수업도 들어주며 같이 한국어로도 대화해주는데, 나는 특히나 룩셈부르크인들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중요할 그들의 언어에 관심조차 주지 않았구나, 하는 미안함에서 나온 빚이었다.


그 후로 나는 기초 룩셈부르크어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실례합니다”, “좋아요” 같은 간단한 표현들부터 연습했다. 그렇게 인사할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하게 웃어 준다.

소수어를 배우는 게 뭐 어때서?

어제 개강한 한국어 단체 수업에서 나는 7개 이상의 다양한 국적으로 이뤄진 20명 가량의 학생들을 만났다.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왜 공부해요? 라는 진부하고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20명의 19명은 아마도, 한국 드라마와 음악이 좋아서라고 답했다. 나는 그들의 대답을 듣고 오른 손을 들어 엄지를 치켜 세웠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좋으니까 하는 것처럼 멋진 일은 없어보였다. 영문도 모른 체 내게 실용적이지 않아 아웃을 당했던 안드레아보첼리가 나를 바라보는 거 같아 민망하긴 했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걸 주세요.

2시간 수업 중 1시간 30분 쯤 흘렀을 때였다. 수업 내내 필요시 가끔 프랑스어를 곁들여 설명을 했다. 우리 반에 있는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4개 국어 이상을 구사하고 공통 언어로 프랑스어가 포함이 되길래 당연히 프랑스어로 설명을 했던 거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 학생이 영어로 설명해 달라고 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물었다. “영어가 더 편해요?” 다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왜요? 프랑스어가 더 편하지 않아요? 여긴 프랑스어권이고, 여러분도 다 프랑스어를 할 수 있고요. 다들 모국어처럼 프랑스어를 구사하잖아요.” 그랬더니 아까 그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영어도 편해요. 회사에서 주로 영어를 써요. 이제는 영어가 더 익숙해요.”

룩셈부르크에는 워낙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섞여 살다 보니,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것과 별개로 일상에서 주로 구사하는 언어는 영어인 모양이었다.

아, 그럼 그대들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 온 나의 프랑스어는 어쩌나! 하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영어를 겸해서 설명했다. 그래도 결국 한국어 수업이니까, 학생들이 한국어에 익숙해지도록 점차 한국어로 전환해 갔다. (사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이었지만, 한국어로만 설명을 하니 그들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리는 걸 나는 봐 버렸기에 어쩔 수 없이 영어를 곁들였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 언어를 배운다는 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능력 만큼이나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줄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다.

단순히 나를 표현하는 언어를 넘어서서 말하는 나와 듣는 상대가 함께 이 순간을 함께 나누기 위해 매개가 되는 언어를 대하는 태도, 그 중심에 상대를 두려는 성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그 사람에게 알맞는 표현으로 건네야만 한다.

어쨌든 그래서 이제 나는 어디서 룩셈부르크어 수업을 들어야 할까?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눈물을 힘껏 닦고 검색을 재개한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학습 의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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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현

이보현

세상에 완벽한 교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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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우리 무슨 책 쓸 거예요?”

수업이 시작될 때마다 받는 질문이다. “쓰고 싶은 책이 있어요?” 하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니요, 아무거나 괜찮아요.” 혹은 “저 이 책 있는데요.“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 그들이 새로운 교재 혹은 자료집을 기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교재는 지도다

이 지점에서부터 교재 선택의 고민이 시작된다. 나는 교재를 수업의 길잡이로 삼되, 수업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오늘의 학습 목표와 학생들의 필요를 어떻게 결합할지 고민한다. 예를 들어, 오늘은 이 챕터를 끝내야 하니 특정 문법과 어휘를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책에 있는 기본 어휘는 학생들이 자습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어휘들과 관련된 더 많은 표현을 한꺼번에 익힐 수 있도록 따로 자료를 제작해 수업 시간에 함께 다룬다.

나는 수업 시간 내내 정말 바쁘다. 학생들이 던지는 질문을 귀담아 들으면서 동시에 타자를 치고, 적절한 자료를 검색하며 필요한 예문과 설명을 찾아낸다. 그래서 매 수업마다 남기는 메모와 노트가 몇백 페이지에 이를 정도다. 그때마다 이런 자료들을 모아서 교재로 만들어 볼까 생각한 적도 수없이 많았다. “이 자료들을 모으기만 해도 교재가 되겠는데?”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문법 내용은 같을 수 있어도, 모든 예문이 각기 다른 학생에게 맞춤화되어 있다. 한 학생에게는 흥미로운 예문이 다른 학생에게는 전혀 공감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잠시 반짝였던 아이디어는 힘을 잃고 만다. 더불어 일반적인 교재가 단순한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해하게 된다.

모든 학생을 만족시킬 교재는 없다

세종학당 교재를 최우선으로 두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 교재들은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고, 다양한 학습 환경과 학습자를 고려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들이 가진 경험과 노하우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내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세종학당 교재가 모든 학생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나은 교재를 찾아 나서면서도, 동시에 완벽한 교재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나를 마음 편하게 만든다. 내가 모든 학생을 절대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오히려 더 자유로워진다. 내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그 빈틈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된다. 남들이 닦아놓은 길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게 된다.

모든 이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오히려 가벼워진다. 나 역시 모든 학생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그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그래서 내 학생을 위한 맞춤형 자료를 만든다

얼마 전,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다가 예상치 못한 경험을 했다. 계산대에서 물건을 담으며 “아우, 무겁네…” 하고 혼잣말을 했더니, 점원이 “무거워요? 어떡해요?”라며 한국어로 말을 건넸다. 깜짝 놀라 “한국어를 어떻게 배우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드라마를 보면서 배웠다고 했다. 학원 수업은 재미가 없었고, 개인 수업은 적합한 선생님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 역시 단체 수업과 개인 수업을 하면서 양쪽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업의 한계가 분명한데도 나와 함께해주는 학생들이 있다.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00 씨, 오늘 뭐 했어요?” 그러면 하루가 지나기 전에 학생들이 저마다의 하루를 담아, 때로는 오탈자가 섞인 문장을 보내온다. 그 모습이 흐뭇하고, 귀엽고, 대견하다.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들이 “이 선생님과 공부하면서 시간 낭비나 돈 낭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갖고, 성인이 되어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한 그들이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해주고 싶다. 그래서 자꾸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나보다.

사실 지난주와 이번 주는 몸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침대에 누워 어제의 수업을 곱씹으며 학생들의 질문을 떠올렸다. “한국 선수들은 왜 양궁을 잘해요?”,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빨라요?”, “한국에는 왜 샤머니즘이 많아요?” 학생들이 던지는 이런 질문들은 나에게 큰 자극이 된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주제들을 자료로 만들어 정리하고, 교재 목록을 다시 손보며, 원고를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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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현

이보현

작고 다정한 도움의 힘

- 2분 짜리 영상으로 상대적 얼리어답터가 된 사연

3개월 전쯤이었을 것이다. 문득 노션(Notion)이라는 도구를 배워보고 싶어졌다.

노션이 생산성과 조직력을 높여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막상 써보려고 할 때마다 뭔가 모호하고 답답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익혀보리라 결심하며 스케줄러에 ‘노션 배우기’를 적어놓고 며칠을 묵혀두었다. 그러다 기분이 꽤 괜찮은 하루의 끝에 노션을 켜고 손을 대기 시작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일단 해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러 유튜브 영상을 보고, 노션으로 제작한 샘플들을 훑어보다 보니 점점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잠깐 재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쏟아지는 낯선 용어들과 ‘쉬워 보여 더 당황스러운’ 조작법에 심장이 쿵쿵대고, 손끝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노트북을 덮으며 혼잣말을 했다. “맞아. 나는 원래 기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

마음에 돌덩이가 짓누르는 듯해서 답답했다. 몇 번의 가벼운 시도 끝에 금방 포기했던 과거, 노션과의 악연이 다시 떠올랐다. ‘맞아, 그때도 비슷했을 거야. 그래서 그만뒀었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냥 구글 Docs나 더 잘 활용할 걸. 괜히 생산력을 높이겠다고 하다가 시간도, 에너지도, 의욕도 전부 다 잃어버린 것 같군.’ 자책하며 눈을 감았다. 남들은 다 잘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어려운 걸까? 속상했던 밤, 아마 나는 살짝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노션으로 대표되는 ‘기술’과 나 자신에게 져버린 분노로 점철된 밤이었다.

입버릇처럼 되뇌인 말: “나는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사람, 종이와 펜을 들고 수기로 글을 쓰는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 나는 기술에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에 조바심을 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더욱 성급히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계를 지음으로써 그 안에서 편히 머무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익숙한 것을 더 잘하려는 주의였다. 편하고 익숙한 것에 안주하면서 그것을 잘 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더 다양한 결과를 내고 싶어하기도 했다. 그 마음을 과연 언제부터 외면해 왔을까?

기술에 대한 관심이 지하실에서 걸어나와 지상에서 따뜻한 햇살을 쬔 날을 돌이켜본다. 지하실의 문은 “노션을 사용해볼 생각이 있어요?”라는 말에 곧장 열렸다. 엘리엇 팀원인 토리가 내게 건넨 질문에 나는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토리는 “생각보다 간단해요. 제가 알려줄게요!”라며 흔쾌히 나섰다. 나는 깜짝 놀랐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탓에 나는 잠들었지만, 토리는 여전히 같은 날에 노션 사용법을 찍어 보내왔다. 이렇게 곧바로, 정성껏 애써서 알려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토리가 보내준 영상은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핵심 기능들만 뽑아낸 2분 남짓한 짧은 영상이었다. 그걸 눈으로, 머리로, 손으로 익히는 데는 2일, 아니 2주 정도가 걸렸다. 인트로의 첫 문장, “안녕하세요, 보니님” 하던 목소리의 톤과 리듬이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였다. 이제 나는 노션 없이는 못 사는 상태가 됐다.

핑거프린세스라고 놀리지 말아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챗GPT나 유튜브, 검색엔진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나를 ‘핑거프린세스’라고 놀릴 수도 있을 테지만, 핑거프린세스는 혼자서 손가락을 놀리다 지쳐버려, 눈과 귀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 눈과 귀로 담을 정보의 대상이, 나를 알아주고, 나의 상황을 이해하며, ‘시도부터 해보자’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주변에 늘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또 다른 팀원 타로도 노션 사용법을 글로 정리해 공유해 주었다. 노션을 사용하다가 고민이 될 때마다 나는 타로의 노션 사용법 노트를 참고한다. 팀원들이 작성해 놓은 노션 문서들을 돌아보며 내 것으로 소화시킨다. 그러면서 우리 팀에서 시도해볼 만한 다양한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고 잘 정리해 팀원들에게 공유한다.

누군가에겐 별거 아닐 수 있는 일이다. 노션이 나온 지가 언젠데, 유저도 얼마나 많은데. 늦었다고, 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아날로그를 좋아하고 잘하면서도 항상 기술적인 +1을 갈구하는 사람,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게 아니라 그 장점을 더 극대화할 수 있는 기술을 원하는 사람 말이다.

관점에 따라 핑거프린세스로 불리던 누군가가, 이제는 유려하게 손가락을 놀리며, 스스로 상대적 ‘얼리어답터’라는 완장을 차고 다음 도약을 준비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완장을 찬 자, 다른이에게도 채워주자.

“이걸 할 수 있다면, 다른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노션 사건을 통해 ‘얼리어답터’라는 완장을 찬 나는 점점 더 다양한 도전들을 하게 됐다. 홈페이지 제작, 영상 마케팅, 프로그램 기획, 디자인 등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펼쳐졌다.

커리어적인 면에서도 수확이 뚜렷했다. 기존에 만들어 놓았던 많은 워크시트와 소교재들을 하나로 종합하고, 내 이름을 넣은 교재를 묶어냈다. 이 과정에서 계속해서 교재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적합한 문장 데이터를 고민하며 기존에 나와 있는 교재들을 낱낱이 분석하고도 있다. 배움의 선순환이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는 지금을 과거의 나라면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선뜻 “네”라는 답은 나오지 않는다.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한국어 선생님들은 혼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력이나 커뮤니티의 부족으로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한다.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구할 사람도 적고, 기회도 부족하다 보니, 나처럼 쉽게 지치거나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런 흐름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모든 것을 혼자서 스스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나와 맞지 않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나의 능력 부족으로 직결되지는 않으며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럴 때일수록, 그 장애물을 치워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함께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마치 내가 노션 사용을 여러번 시도하다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우연히 또 운명적으로 나타난 동료들의 선의에 한계를 부수고 나아가려고 노력해본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자상함과 나에 대한 믿음이 큰 차이를 만들었다. “어렵지 않으니 이것부터 해봐. 할 수 있어.” 그 따뜻한 말 한마디와 정성스러운 행동이 별 거 아니었다고 말하는 동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네겐 작은 조약돌이었을지라도 내게는 커다란 디딤돌이 됐다고. 그리고 크기에 상관없이 무언갈 나서서 나눠줘서 고맙다고.

공교롭게 이번에 우리 팀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 나의 상황과 맞아떨어졌다. 한국어 선생님들을 대상 기획한 ‘자신만의 교재 만들기 프로그램’에 벌써 몇 명의 한국어 선생님들이 모였다. 우리는 감동을 넘어서 감격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잠재력과 진심을 보여줄 수 있는 때가 온 것에 무한 감사를 보냈다.

우리 팀은 한국어 교사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도록, 그들이 전문성과 자부심을 느끼며 커리어를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서든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기반한 꿈을 품고 있다. 엘리엇을 통해 좋은 데이터 말뭉치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교재를 만드는 데 선생님들이 더욱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그동안 해보고 싶었는데 뭔가 어딘가에서 자꾸 막혀서 번번히 포기하다 역시 이길은 내 길이 아닌가? 나는 안 되나? 라는 편견을 가질 새도 없이 이게 되네! 하는 자신감과 함께 도약할 수 있도록, 옆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얼리어답터’라는 완장을 힘차게 두드리며 내가 해낼 수 있고, 해내야만 하는 일들에 더 큰 책임감을 덧대어본다. 동료들이 채워준 이 완장의 의미는 그런 것일테니까.

그리고 누구에게라도, 내 경험담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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