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희
아이디어만으로 100만원 먼저 받고 제품 만들었습니다.
개발 전혀 없이 그림 한 장으로 20명에게 100만원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클로바노트와 같은 미팅 노트테이킹 앱인데, 먼저 써보신 20명 모두 클로바노트를 해지하고 저희 제품으로 구독 전환하셨습니다.
디스콰이엇에 계신 정말 소수의 분들에게만 먼저 사용해볼 수 있는 기회를 드리려고 합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댓글에 '관심있어요'를 달아주세요!
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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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희
17년 4월에 들어와 24년 12월에 정든 회사를 떠난다. 8년여의 긴 시간이었다. 마치 초등학교를 나와 중학교를 다니던 중에 전혀 모르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듯한 기분마저 든다. 작은 기대감,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가 생각난다. 첫날인데 사수님이 생일 휴가라서 없다고 했다. 멍하니 앉아 주변을 바라봤는데, 무언가 사람들이 만들고자 하는 것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빠르게 배포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든 같이 이뤄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지만 들었다. 사실 그때의 나는 개발을 계속해서 피해왔기에 퍼블리싱을 제외한 프론트엔드는 하나도 몰랐다. 그러나 사수님의 도움을 받고, 코드를 읽고, 또 열심히(?) 터트려가며 1~2주가 지난 시점부터 바로 기능 개발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만들어야 할 것이 많았고, 또 많은 것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무실을 옮기고, 시간이 흐르다보니 등을 맡기고 함께 일을 했던 동료들이 떠나고, 다시 팀을 만들어 움직이고… AB180에서의 마지막 2년은 거의 다른 팀과의 협업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에 집중했던 것 같다. 조직이 커질수록 세일즈, CSM 등 다양한 파트가 생겨나지만 협업의 고리는 느슨해지기에 어떻게든 그 부분을 다잡고 싶었던 것 같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대체 어떻게 한 회사를 오랜 기간 다닐 수 있었나요?”
물론 여전히 나보다 오래 계신 분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해본다면, 딱히 오래 다녀야겠다는 비장한 각오 같은 것이 있던 것은 아니다. AB180에 들어오기 전에, 그러니까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어떻게든 입에 풀칠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주변의 도움으로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컴퓨터 학원 선생님, 용접공, 법무팀 비서, 그리고 에이비일팔공의 개발자. 앞의 4개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솔직히 개발자는 하기 싫었다. 그야 주변에 뚝딱하고 데이터베이스 같은 걸 만드는 사람, 1KB 단위로 메모리 최적화에 목을 메는 사람이 있으면, 나같은 사람이 개발자를 해도 되나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개발자를 고른 것은 찰나의 순간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골라도 그 순간은 잠깐이고, 그 외에는 좋아하지 않는 것을 마주하고 견디는 시간이다. 만약 내가 그런 시간을 참고 견딜 수 있다면, 심지어 잘할 수 있게 된다면, 내가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 놓여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기 증명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작정 하기 싫은 것만 한 것은 아니다. 8년을 다녔지만 실제로는 약 4~5개의 회사를 다녔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처음에는 얼렁뚱땅 기능을 찍어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디자인 시스템이나 유저 가이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후에는 성능 최적화나 안정성, 우리 회사의 구조나 역학을 보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같은 일을 쭉 해온 것이 아닌, 제가 원하는 바를 계속해서 각을 재고, 성취해내면서 오래 견딜 수 있었던 힘이 되었던 것 같다.
AB180에서 내가 가장 감사하게 느끼는 것은 좋은 분들이 곁에 많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진지하게 좋아하는 것, 잘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할 사람을 찾는다고 하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오히려 비웃음을 살 때도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다같이 모여 같이 합을 맞춰갈 수 있던 것은 천운이나 축복 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치로 표현해볼 수도 있겠다. 좋은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50% 정도로 치고, 좋은 기회가 있을 가능성을 20%로 치고, 5년 이상된 중소기업의 생존 확률은 30%이다. 나는 우리가 3% 정도의 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내가 떠나는 이후에도 AB180이 좋은 회사, 좋은 사람들이 가득한 곳으로 남아있길 바란다. 퇴사 이후에는 지우고 싶어도 내게서 ‘AB180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을 것이다. 혹 회사가 이상해져 업계에서 소문이 나면 아무리 제가 ‘내가 있었을 때는 멀쩡했는데’라고 말해도 딱히 사람들은 믿지 않을 테니까.
퇴사 이후에 바로 작은 스타트업에 공동창업자로 합류한다.
창업 전선에 합류할 생각은 원래 추호도 없었지만, 몇 가지 생각의 전환이 있었다. 7~8년 전에 내가 피했던 선택을 골랐을 때 고르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던 새로운 기회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또한 꾸준히 나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병목을 마주치며 관성에서 계속 벗어나야한다. 마지막으로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AB180의 대표인 성필님이 AB180을 창업한 나이가 지금 내 나이 즈음이라는 점. 나도 이런 회사를 만들고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있다.
평균적으로 회사가 1년 안에 망할 확률이 60% 선이니, 커리어를 1년 정도 버린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서 회사가 망해서 다시 추하게 AB180에 받아들여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 AB180이 ‘당신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사양할게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길 바란다. 마냥 씁쓸하지만은 않을 테니까.
처음에 10명 있던 사당역 오렌지팜 105호에서 강남역 두 층 짜리 건물이 되기까지 좋은 분들과 좋은 여정을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감사했고, 언젠가 또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찬희
Building Workflow: 모든 일에는 흐름이 있다
예전에 Airbridge에 Cmd+K(커맨드 팔레트)를 만들며 썼던 글을 공유합니다.
B2B SaaS를 만들며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모든 일에는 하나의 흐름이 있으며 그 안의 걸리적거리는 부분을 해결해주는 것이 제품의 경쟁력이 된다는 점입니다.
현실의 일은 언제나 제품의 바깥에서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고객을 돕고자 한다면 제품 안으로 가두기보다 정보가 더 많이 흐를 수 있도록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API 등 제품의 인터페이스를 공개한다는 생각으로 만들거나, Zapier 연동을 지원할 수도 있겠지요 :)
찬희
안녕하세요, 이찬희입니다.
Airbridge(https://airbridge.io)라는 모바일 마케팅 성과 분석 도구의 프론트엔드를 만들며, 다른 SaaS를 만드시는 분들은 기능을 기획하며, 엔터프라이즈 고객을 대하며 어떤 고민을 하시는지 궁금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찬희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얼만큼 말랑해야할까. 소프트웨어 형태의 제품을 만들면서 은근히 고민될 때가 있다. ‘톤앤매너’라는 말보다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적당한 메타포가 없어서 구석 한편에 고이 넣어두었다. 그렇게 버려둔 이 주제를 며칠 전 점심으로 돈까스를 먹으며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돈까스로 제품의 말랑함을 이야기한다? 싸이코 같은 발상이지만 그래서 재밌다.
예전에 골목식당 에피소드 중 연돈에서 돈까스 고기를 준비하는 법을 본 적이 있다. 눈에 들어왔던 것은 돈까스 망치를, 넓게 펴는 용도로 하나, 부드럽게 만드는 용도로 하나. 총 2개 쓴다는 점이었다.’ 넓게’와 ‘부드럽게’라는 단어는 소프트웨어 형태의 제품을 설명하기에 좋은 단어다.
망치질 없는 돈까스를 사람들은 먹지 않는다. 너무 크고 질겨서 썰어먹을 수 없다. 반대로 지나치게 두드려 물렁하다못해 액체에 가까워진 것을 우리는 ‘돈까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적당히 두드려 형태와 질감을 잡아야 한다. 망치질에 왕도는 없어서, 얇게 두드린 경양식 돈까스도 적당히 두툼한 일식 카츠도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다. 하지만 한 번 두드리면 되돌릴 수 없다. 망치질 한 번 한 번이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제품도 어찌보면 비슷하다. 첫 아이디어나 사용자의 니즈만으로는 ‘제품이 되는 것’에 한계가 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 사람들이 사랑해주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면, 목적에 부합하는 적절한 형태와 기능을 찾아 다듬어야한다. 한 번 제품에 씌운 색깔은 쉬이 지워지지 않기에 조금은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플렉스의 ‘생일 축하 기능’은 과연 필요할까. 얼마 전 권고사직을 받고 서류를 쓰러 플렉스에 들어갔다 생일 축하 알림을 보고 비참해졌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이 많았다. 만들어진 의도를 충분히 공감하지만, 사용하는 목적과 기능이 명확한 제품일수록(특히 B2B SaaS), 이를 가로막는 기능과 인터랙션에 사람들이 더욱 민감해지는 것 같다.
다른 하나로 ‘게이미피케이션 만능설’이 떠올랐다. 한때 기능을 눌러보게 하는 스텝 형태의 가이드, 특정 행동에 뱃지를 주는 리워드 시스템이 유행했었다. 온보딩의 부담감을 낮춘다, 인게이지를 높인다 등 여러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많이 사라졌는데… 눌러야만 다음으로 넘어가는 플로우를 사람들이 진심으로 귀찮아한다는 것은 간과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설계 없이 만들어진 이런 기능들은 코드에도 큰 부채를 남겼다.
양배추 샐러드, 장국, 마카로니, 밥 등… 돈까스를 시키면 항상 함께 나오는 사이드 메뉴가 있다. 애드온(Add-on)으로 시켜먹을 수 있는 카레도 있고. 식욕을 돋구고 더욱 맛있게 느껴질 사이드 메뉴를 가게들은 항상 고민한다. 하다못해 다른 곳을 따라 양배추 샐러드를 낸다고 해도, 참깨 소스를 줄지 유자 소스를 줄지도 치열한 고민 끝에 정해지는 것들이다.
Airbridge 같은 B2B SaaS를 생각해보면, 소프트 프로덕트(Soft Product)라고 불리는 유저 가이드, CSM 온보딩 서포트, 매체/대행사와의 파트너 매니징이 있을 것 같고. 하드 프로덕트(Hard Product)라는 소프트웨어(웹앱, 백엔드 등)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Airbridge의 사용을 유도하는 작은 프로덕트(abit.ly)가 있다. 이들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는지가 제품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반대로 말하면, 하나라도 경험이 좋지 못했다면 전체의 경험 역시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사이드 메뉴의 완성도가 좋아도 필요한 메뉴가 없으면 아쉬움이 된다. 그렇기에 제품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항상 고민해야한다. 제품을 구성하는 작은 제품에는 무엇이 있으며. 이를 어떻게 잘 챙겨갈 것이며. 우리가 보고 있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나는 ‘OO 같은 제품을 만들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흥미가 있다. 얼마나 깊게 제품을 생각해보았는지, 무엇을 시도해보았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구글, 페이스북 같이 다른 제품을 든다면 좀 의심할 것 같고…
이번 글에서 나는 의식의 흐름으로 ‘돈까스 같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적절한 온기와 두께, 그리고 말랑함. 적절하게 곁들여먹을 수 있는 양배추 샐러드와 장국. 한 입 베어물었을 때 물리지 않고 정성을 느낄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을 주는 그런 돈까스 같은 제품을.
프론트엔드 개발을 하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좋네요, 만들어볼까요?’ 라고 먼저 말하며 움직이는 개발을 하면 어떨까. 사이드 메뉴라도 탐험을 시작해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으면 좋으니까.
Image created by DALL-E 2: Astronaut slicing delicious tonkatsu with knife. realistic, autofocus, canon camera.

돈까스 망치로 제품 두드리기
우리가 만드는 소프트웨어는 얼마나 말랑해야할까?
https://hiddenest.dev/tonkatsu-as-a-produ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