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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이현수 ·

의도를 버려야 찾을 수 있다 - 'Fort'는 어쩌다 'Fort'가 되었나?

image.png<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 Keykney(키크니)님의 작명 게시물>

안녕하세요, 이모지 기반 프라이빗 소셜 네트워크 ‘Fort’를 운영하고 있는 이현수입니다. 혹시 서비스 이름을 고민 중인 메이커가 계실까요? 서비스 이름 짓는 노력을 그만두자 역설적으로 멋진 이름을 지을 수 있었던 제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시작합니다!

서비스 기획보다 어려운 일

딱 1년 전 여름이었습니다. 한창 새로운 소셜 네트워크를 기획하고 있었어요. 이전까지는 주로 전략업무를 해오다보니 제품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UIUX를 어떻게 그리는지는 커녕 Figma가 뭔지도 몰랐어요.

그래도 이런 메이킹 작업이 서비스의 이름을 정하는 것보다는 수월했던 것 같아요. 얼추 기획이 마무리 되어가는데 이름을 뭐라고 지어야 할지 정말 고민이 되더라구요. 이건 뭐 앉아서 시간 보낸다고 뚝딱 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쭈우욱 나오는 것도 아니니 일한 것 같지도 않고…

서비스 이름을 정하는 건 창의성을 요하는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런데 제가 설정한 까다로운 기준이 일을 더 어렵게 만든 것도 사실이에요. 1) 제품의 컨셉을 담아내야 한다, 2) 우리에게 친숙한 물리적 공간과 대응되어야 한다, 3) 말하기에도 듣기에도 편안해야 한다. 세 개의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이름을 고안해내는 게 참 어려웠어요.

원하는 이름을 찾다

image.png<Friends 주인공들이 허구한 날 모여서 노는 카페 Central Perk>

몇날며칠을 고민하다 마음에 드는 이름이 드디어 생겼습니다. 혹시 미국 시트콤 ‘Friends’를 아시나요? 이 시트콤의 배경은 편안하게 꾸며진 카페입니다. ‘Central Perk’라는 이름의 카페에서 주인공들은 드러누워서 멍때리기도 하고, 기타를 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데이트를 하기도 합니다. 대단한 일도 일어나고 하찮은 일도 생기고, 말그대로 그들의 추억의 공간인 거죠. 저는 그런 공간을 디지털 세상에 마련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서비스 이름을 ‘Central Perk’라고 하고 싶었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베낀 이름이라 무난하게 ‘Coffee House’로 정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안 좋았습니다😭 주변 친구들에게 소개를 해봤을 때 카페와 관련된 서비스일 것 같다고도 하고, 클럽하우스 짭 같다고도 하고, 그냥 별로라고도 하더라구요... 조금은 의기소침 해진 상태로 잠재 팀원도 만나고 계속 기획을 하다가 우연히 ‘Coffee House’라고 적혀 있는 카페를 보게 되었습니다. 괜히 반갑기도 했는데, 진짜 그냥 카페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더라구요.

image.png<커피챗 하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Coffee House>

일단 마음의 여유를 갖기로 했어요. ‘이름을 생각해내자는 부담을 아예 내려놓자, 문득 영감이 떠오르겠지 뭐.’

그렇게 여유를 갖기로 하고 몇 개월이 흘렀습니다.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였어요. 여느때와 다름없이 시트콤을 보면서 식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Friends가 아니라 ‘Brooklyn Nine-Nine’을 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날 그 시간이 제게 예상치 못한 영감을 주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나를 찾아오다

image.png<Blanket fort가 등장하는 Brooklyn Nine-Nine의 씬>

Brooklyn Nine-Nine의 한 장면입니다. 경찰서장인 남자 주인공이 슬픔을 겪고 있는 친동생을 위로하기 위해 어릴 적 추억의 공간을 만들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런 공간을 뭐라고 부르는지 몰랐는데 ‘Blanket fort’, 또는 그냥 ‘Fort’라고 부르더라구요.

image.png<Blanket fort 구글 이미지 검색결과>

돌이켜 보니까 저 또한 어릴 때 자주 Fort를 만들고 놀았어요. 혼자 놀기도 하고 친구랑 같이 놀기도 했습니다. Fort 안에는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과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비밀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어요.

갑자기 머릿속에서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 우리 팀이 디지털 세상에 구현하려는 공간이 바로 저런 곳이야!’ Fort는 1) 프라이빗하고 편안한 컨셉을 담아내면서, 2)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공간이고, 3) 글자가 적으면서 발음도 쉽고 편하더라구요.

바로 다음날 팀에게 새로운 이름을 제안했습니다. 아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자 팀원 모두 두 눈이 반짝이더라구요🤩 다들 정말 좋다며, 아주 순식간에 만장일치로 이름을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image.png<팀원들에게 보여준 이미지>

의도를 완전히 버려야 길을 찾을 수 있다

당시에 읽고 있던 책 중 하나가 미국 음악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릭 루벤이 쓴 ⟪창조적 행위⟫였어요. 책의 초반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예술의 재료는 언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대화, 자연, 우연한 만남 속에 섞여 있고, 기존 예술 작품에 들어 있다. (중략)


우리가 열려만 있다면 메시지는 항상 우리에게 도달한다. 책을 읽다가 기막힌 인용문을 발견하고, 영화를 보다가 마음을 움직이는 대사가 나와서 돌려 본다. 때로는 그것이 우리가 찾던 답일 수 있다. 혹은 어딘가에서 계속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며 관심을 끌거나 지금 가고 있는 길을 확증해주는 생각일 수도 있다. (중략)


우리는 단서를 통제할 수 없고, 의지로 드러나게 할 수도 없다. 때로는 답을 찾거나 길을 확인하려는 강력한 의도가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한편, 오히려 의도를 완전히 버려야 길을 찾을 수 있을 때도 있다.


제게는 릭 루벤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단서가 나에게 도달하도록 마음을 비운 것 말이죠. 이름을 고민하고 계시다면, 그리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릭 루벤의 조언을 따라보는 건 어떨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메이커분들에게도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단서가 도달하고 있을 겁니다.


메이커 & 다음 글

‘Specto Labs’라는 이름의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공대를 졸업하고 컨설팅펌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스타트업계로 넘어온 지 만 3년이 되어갑니다. 작년 말부터 훌륭한 팀원과 함께 Fort를 만들고 가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왜 서비스명을 Fort로 지었는지를 풀어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우리 팀은 어떤 가치관을 기반으로 제품을 만들어 나가는지, 홈페이지를 만들 때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등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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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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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Adam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서비스 제공 가치와 경험이 'Fort'라는 이름과 너무 잘 어울리는것 같네요.

이현수
이현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좋은 이름으로 정할 수 있었습니다ㅎㅎ

Doeon Kwon 권도언
Doeon Kwon 권도언

현수님 메이커로그가 이번주 뉴스레터에 소개되었어요 :) https://dis.qa/YnTjh

이현수
이현수

오 이번 글도 소개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