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않는 커뮤니티계의 시조새... (삐약)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 부터 였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모아서 무언가를 함께하길 좋아했던 것이.
🤦🏻♀️ 공부가 싫어 친구들과 만든 학교 커뮤니티
열한 살, 5학년 때의 일이네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학교에서의 교육이 굉장히 맘에 안들어, 학교 안에서 학교를 만들겠다고 선포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알아서 배우는 학교인 ‘신화 학교’를 만들게 되었어요. (그냥 학교 자체가 싫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학교 이름은 그당시 제가 너무 좋아하던 신화 오빠들 때문에 저렇게 지어졌는데 손발이 쪼그라듭니다..
처음에는 저와 저의 베프 찬미 그리고 우리들의 동생들이 참여하여 총 2명의 운영진과 2명의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왜 집 안에서만 놀지 않고 놀다가 좀 지루하면 갑자기 놀이터도 가고 그랬는데, 신화 학교(놀이)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그림 수업을 하던 유일한 학생 두 명인 “동생들”이 갑자기 탈출을 하고 싶다고 놀이터에 가겠다고 생떼를 부리는 거죠, 그렇게 그들과 놀이터에 갔고 저와 찬미의 슈퍼바이징 아래에 그들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탈출 수업(?)을 하게 됩니다. (다들 아시죠? "탈출!" 이라고 크게 소리지르면서 놀이터 기구들만 밟고 아슬아슬하게 다니던... 강한 자만이 살아남았던 그 놀이..)
지금 생각해보면 ‘조직문화 전파 / 내재화’가 꽤 잘되어있던 탓에 학교의 커리큘럼에 시나브로 스며든 동생들은 시키지 않아도 신화 학교를 놀이터에서 전파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꽤 많은 아이들이 쉬는 시간 마다 5학년 5반에 저를 만나러 오게 되었습니다. 꼴에 학교라고 입학증인가 뭔가를 수업시간에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서 쉬는 시간 마다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니 이게 제 커뮤니티의 시초였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는 친구들과 시시콜몰하게 소규모 그룹을 만들고, 엎고를 반복하다가 가장 최근에 진도프렌들리 이전에 만든 커뮤니티가 [한사랑산악개] 입니다.
그 당시 저는 피식대학의 [한사랑산악회]에 푹 빠져있었어요. 그리고 제 머릿속에는 아주 어렸을 때 미국에서 봤던 [젤리스톤 국립공원 파크레인져와 요기베어]가 스쳐지나갔습니다.
젤리스톤파크(위스콘신)의 파크레인져 스미스와 요기베어, 신디베어 그리고 부부.
저는 개를 키우잖아요? 함께 개를 키우는 사람들끼리 파크레인져 스미스처럼 활동하고 우리의 털복숭이 친구들을 요기베어처럼 만들면 아주 재미있는 세계관이 완성될 것 같았죠!
그렇게 12마리의 반려견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이 2021년 6월5일, 환경의 날에[한사랑산악개]를 창단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진도프렌들리가 이보다 1개월 정도 앞서서 시작한 인스타그램 계정이었는데 저는 이 때 까지도 진도프렌들리의 영향력이 한사랑산악개 보다 커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리고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기후 위기와 기후 정의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한사랑산악개]를 환경 프로젝트로 가져갈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한사랑산악개]는 산책길이 어디든 간에 각자의 산책길에서 함께 쓰레기를 줍고 인증하는 플로깅 프로젝트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6월5일 창단 이전에 앞서, 5월 중순부터 2주 가량 [한사랑산악개]를 위한 등산회스러운 페이즐리 패턴의 손수건을 구매하여 전사 스티커로 크게 [한사랑산악개]를 프린트하여 함께 굿즈도 만들고 산으로 공원으로 바다로 플로깅을 하러 다니게되었어요.
<<산악회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성이 있는 페이즐리 패턴 손수건의 굿즈>
함께 한 많은 아이들의 플로깅 :) 저희는 이 아이들을 '줍개'라고 불렀습니다.
한사랑산악개의 대장, 저의 반려견인 소복.
KBS의 아침 방송에도 출연하고, 인스타그램 플로깅어스 계정 인터뷰, 투썸플레이스 플로깅 앰배서더, 대우건설 플로깅 앰배서더 등등 … 많이도 했네요.
플로깅어스 인터뷰
투썸플레이스 팀 두썸 굿 활동
씨셰퍼드코리아의 도움으로 진행한 양양 기사문해변 비치코밍 및 어망 수거
<비치코밍을 지원하는 해양수비대 물개단>
그러던 중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함께 한 약 5개월의 신나는 활동이 겨울까지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늘 하던 일이니 그냥 조용히 혼자 하기로 하고 이 커뮤니티는 내리막을 걷게 되었죠.
이 커뮤니티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끌면서 배운 것은 있었습니다.
- 내가 원하는 것을 남들도 원할 거라는 사실은 버려라 — 매우 일시적으로 원할 수는 있어도 지속하기 어려울 수는 있다.
- 커뮤니티가 어느정도 지속되면 사람들은 결속력이 되어줄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그게 보상이 되었든, 굿즈가 되었든, 우리만 알 수 있는 트렌드가 되었든 뭐든 그런 것들 말이다.
- 사람들은 세상이 바뀌는 큰 단위의 변화보다 내 주변의 소소한 변화를 우선시 한다.
- 부지런은 커뮤니티 운영의 제1덕목이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할 생각을 하면 안된다.
실제로 이 네 가지를 깨닫고 진도프렌들리를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약간은 무모하지만 하고 싶은 것은 해야했던 저라는 사람은... 열한 살 때부터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여러가지 시도를 하면서 여기까지 왔네요. (지쳤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싶기도 합니닼ㅋㅋㅋㅋㅋㅋ)
무슨 글을 쪄볼까 하다가 커뮤니티 덕후인 저의 커뮤니티 운영자로서의 히스토리를 올려보면 어떨까하여 두서는 없지만 한 번 올려봅니다.
저는 아마 진도프렌들리가 사라져도 또 다른 커뮤니티를 운영하지 않을까 하네요...!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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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사진과 함께하는 스토리 공유 감사해요 :) 탈출 놀이가 그립네요! 그러게요, 저도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을 모아 장난감 칼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쏘다녔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놀았던 것 같네요. 인사이트 감사해요! 특히 2번에 많이 공감해요. '우리만 접근/소유할 수 있는 무언가' 가 있어야 커뮤니티가 강하게 오래 가는 것 같아요.
종한님, 제 댓글이 너무 늦었네요! :) 우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앞으로 지치지 말고 함께 커뮤니티 운영의 길을 함께 화이팅하면서 걸어갑시다..(?) !!!
저도 어릴때 커뮤니티를 만들고싶어하는 유전자가 있었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무리지어 무언가를 하고싶어하는 욕구가 컸습니다. 그런데 겁도 많아서 꾸려진 커뮤니티의 장이 되고싶어하던 욕심으로 변질되었던 것 같아요 (반장, 과대 등) 현재 커뮤니티를 매니징하면서 4번이 참 와닿습니다. 저의 매니징 근무시간은 유저들의 활동시간이니까요ㅎㅎ
오 어쩐지!! Derek님의 글을 보면서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저도 잼민 시절부터 커뮤니티 빌딩을 해왔습니다! https://disquiet.io/@han0park/makerlog/4925
글을 보고 종한님은 born to be 커뮤니티 리더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여러모로 겁이 많은 것 같습니다, 노력하고 있지만 이를 탈피하는게 올해의 목표이기도 하구요!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