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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호
손승호 ·

가설이 없는 프로덕트는 우연에 기대게 된다.

바야흐로 2010년대 중후반은 스타트업과 프로덕트의 대유행 시대였다.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습득하겠다며 MSA, DDD, 애자일, 린 스타트업과 같은 키워드가 대두되고 "버티컬하게 시장의 문제를 공략한다"는 일념아래 한국 IT업계도 좋은 커뮤니티와 양질의 세션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


그러다보니 많은 회사에서 기존의 Project Manager가 아닌, Proudct Manager(내지는 Product Owner)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고, 적극적으로 구인하는 것 같다.

이제 제품 조직에서 PM(또는 PO)가 없는 스쿼드는 보기가 힘들 정도다.


그런데 정말 많은 회사가 PO/PM을 "일단" 구인하고, 뛰어난 사람들의 집합만 만들면 좋은 조직이 되고, 좋은 조직은 곧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것이란 세계관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정말로 그럴까?

한국의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PM/PO를 채용한다는 채용공고를 약 50군데가량 취합하여 조사해보았다. 대부분은 업력 3년이내, 길어야 5년이내의 조직이었고 MVP를 막 출시했거나 출시하고자 하는 회사들이었다.


프로덕트도 있고, 마켓도 있는데 정작 MVP 레벨에서 검증할 가설이 무엇인질 채용공고에 전혀 적어두질 않았다. 그저 '성장하고 있는 마켓에서 이런 프로덕트가 있으면 사람들이 어련히 써주지 않을까?' 수준에 그친 프로덕트가 너무 많았다.


내 세계관에서, 그 어떤 훌륭한 PM도 스타트업에서 평화로운 워라밸과 높은 연봉만을 바라고 구직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이 증명되었는지, PMF를 올바른 방법론으로 찾아나갔는지, RAT에 대한 검증수준이 어느 단계까지 이루어졌는지, 내가 involve했을 때 맡게 될 롤이 얼마나 넓은지를 보고 가슴설렘을 느껴야 그 회사와 함께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훌륭한 PM/PO를 구인한다는 회사에서 연봉은 얼마로 협상이 가능하고, 금요일은 유연근무제이고, 회사에 탁구장이 있고, 매달 하루씩 영화를 보러가고.. 무슨 문화비를 얼마씩 주고..

불편한게 많은 나로선 그런게 대체 왜 중요한지 도무지 모르겠다. (어디 구석에다 박아놔도 되는 문구 아닌가?)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한다.'는 문구만큼이나 추상적이고 믿기지도 않는다.


내가 궁금한건 그래서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단걸 코파운더들이 어떻게 증명했는지", "MVP에서 검증하고 싶었던, 이 프로덕트의 가장 위험한 가설(RAT)가 무엇이었는지", "현재의 CC와 Retention Curve가 얼마나 되는지와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이 문제를 우리 조직이 잘 해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 문제를 해결했을 때 시장에서 발생할 benefit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실제로 유저들이 프로덕트가 제시하는 방법으로 서비스를 사용하길 원한다는 것이 어느 수준까지 증명되었는지?" 등이다.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런 질문들은 모든 C-level의 임원들은 한 번씩은 해봤을법한 고민이고, 이러한 고민들로부터 스토리텔링을 구축해서 조직/프로덕트/마켓에 대한 믿음을 갖추었는지를 묻는 것이다.)


엔젤 투자자들은 돈을 투자하고, 좋은 멤버는 시간을 투자한다고 했던가.

좋은 PM/PO에 대한 구인은 사실상 VC에게 피치덱을 제공하는 것과 별반 다를게 없다.


PM을 구인한다면서 채용공고에 본인들이 무슨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는지 구체적으로 적지 않은 조직은.. 채용공고만 읽어보아도 "우연에 기댄 성공"을 바라는 조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C-level의 R&R을 가진 사람이 프로덕트가 지금 검증하고 있는 가설에 대해서 딱 3분만 들어보아도 조직이 해결하고자하는 미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가설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논리적 타당성이 있으며, 어느 단계까지 검증에 접어들었는지를 숫자로 증명해내는 조직만이 스타트업이다.


프로덕트에 가설이 없단건 조직의 방향이 없단거고, '어쩌다 떠오른대로 해봤더니 우연히 사람들이 좋아하리라'는 생각은.. 억지로 제비 다리를 꺾고선 박에서 금은보화가 나오길 바라는 놀부심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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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여전히 PM/PO를 구인하면서 그들을 마치 "서비스기획자"인 것 처럼 사용하는 조직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PM/PO는 본질적으로 PMF를 찾아내고 고객경험을 위한 퍼널을 꾸준히 개진시키는 롤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Product와 Market이 따로 떠 있는게 아니라, 어떻게든 Growth-Loop를 그릴 수 있도록 연결성을 만드는 사람이 PM이다.


신규 기능만 출시한다면 Inflow가 늘고 유저들이 좋아할거란 착각을 버리라. 애초에 프로덕트가 해결하려던 RAT가 잘못된 시점에서 엉뚱한 PM/PO를 뽑아다가 신규 feature만 만들어봤자 조직의 돈과 시간만 소모된다.


PM/PO는 가설이 없는 프로덕트더러 "애초에 사용자들이 원하는 프로덕트도 아니고, 시장 크기를 확인해보니 돈도 안 되는 거 같은데 신규 기능을 만들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시장을 바꾸거나 이 프로덕트 자체를 엎어버리시죠."라고 솔직하게 경영진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한다. (그게 어렵다면, 그 이유는 분명 가설과 증빙할 지표가 데이터로써 없기 때문이다.)


이걸 못해서 계속 되지도 않을 프로덕트에 기능만 추가해보자고 우기는 경영진과 곧이곧대로 알겠다며 시간을 버리는 개발진들.. O/X를 결정할 가설도 지표도 없기 때문에 조직은 느려진다. -애자일이 "일단 모르겠으니 개발하고 보자."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건 아닌지? 이 루프를 잘못 돌면 결국 (가설이 없으니) 수정해야 할 부분도 모르게 되고, (의사결정을 위한 핵심지표가 없으니) 멈추지도 못하고, 그 누구도 배운 것 없이 시드머니가 사라질 때 조직은 망한다-


경영진은 자신들이 현재 개발을 통해 검증하고자 하는 가설에 대해 명예롭게 VC와 미래의 직원에게 말할 수 있어야한다. 그것조차 못 하는 조직은 방향이 없는 배이며, 모래집 위에서 시간을 버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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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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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김주영

@Youngil Go

박종한
박종한

헐 진짜 공감합니다..

김민지
김민지

엄청나게 공감하고 갑니다!

장영운
장영운

검증하고자 하는 가설이 없으면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판단할 기준이 없기 때문에 피벗하거나 사업을 그만둘 시점도 객관적으로 정할 수 없고, 그저 스스로를 더 갈아넣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저도 초기 기업이 복지를 강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세울게 그것 밖에 없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결국 그런 지출이 런웨이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오니까요.

장영운
장영운

"가설을 검증한다"는 말에는 "가설이 틀렸을 수도 있으며, 그 경우에는 프로젝트를 피벗하거나 엎어야 한다"는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Doeon Kwon 권도언
Doeon Kwon 권도언

중요한 부분을 일깨워주는 글이네요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승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