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주차] 갈등 회피 증후군
12월에 맞이한 겨울과 새해에 맞이한 겨울은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12월은 지나간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나날이라면, 1월의 겨울은 ‘나 앞으로 이렇게 살 거야!’하는 희망과 변화할 내 모습에 대한 기대감이랄까.
그렇다면 2월의 겨울은 어떨까. 2월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료의 달이다. 겨울 방학을 끝내고 마주한 졸업식은 한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갈 때마다 나 자신은 크게 변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환경은 크게 바뀐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자꾸 생겨나고,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자꾸 늘어난다. 키가 조금 자라고 머리에 조금 더 많은 지식이 쌓인다고 해서 내가 ‘어른’에 가까워진 건 아님에도 준 어른에 가까운 대우를 받는다. 생각해 보면 준 어른에 가까운 대우를 받을 때부터 ‘많은 선택지’가 생겨난 것 같다. 어떤 진로를 택할 것인지, 어떤 공부를 중점적으로 할 것인지.
선택의 연속은 성인이 되고 나서 더 많아졌다. 강단이 없고 우유부단한 나는 이럴 때마다 내적 갈등이 심해진다. 매일 하는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걸 사지?’, ‘퇴사를 할까?’ 등의 여러 갈등들. 혼자서 하는 내적 갈등이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문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갈등이었다. 단순히 시간이 지난다 해서 해결되지 않았다. 소복하게 쌓인 눈이 거리의 쓰레기를 덮어서 마치 거리가 ‘깨끗하게’ 보이는 것처럼, 갈등도 내버려 두면 그저 미결된 채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만 했다.
갈등은 왜 그렇게 직면하기 싫었던 걸까. 갈등의 뜻을 톺아보면 조금 알 수 있지 않을까. 갈등이라는 단어 중 갈은 칡 나무를 뜻하고, 등은 등나무를 의미한다. 이 두 나무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각각 줄기가 꼬아 올라간다. 이 중에서 유독 고약한 건 칡 나무인데, 칡은 가만히 자라도록 내버려 두면 그 땅을 못쓰게 만들 정도로 땅을 헤집어놔서 유해식물로 불리기도 한다. 약재로도, 식재로도 쓰이는 칡에게 이런 사연이 있는지 몰랐다. 오죽하면 농부들 사이에서는 칡으로 뒤덮인 땅이 있으면 포기하라고 말할 정도다.
종종 삶은 칡 나무로 뒤덮여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을 마주한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썩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 고개를 내밀어 마주하게 된다. 갈등을 마주할 때마다 회피하거나 다 끝내버리고 싶었다. 관계도 끊어내고 싶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난 그렇게 올라온 감정들을 가지고 과거의 것들을 모두 지워버린 적이 있었다. 글쓰기 계정을 운영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글을 모두 지워버리고 계정을 탈퇴했다. 게임 때문에 싸웠을 때는 홧김에 계정을 탈퇴해버렸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팀 내 갈등을 마주할 때마다 다 때려치우고 나가고 싶었다. 모든 일을 다 마무리하고 ‘졸업’을 하는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출발보다도, 이 시기의 ‘갈등’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자퇴라는 선택지를 늘 고민했었다.
하지만, 갈등은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에리히 프롬은 갈등을 피하면 인간이 마찰없이 돌아가는 기계가 된다 말했다. 갈등은 자신의 영혼을 마주하고, 자신의 내면을 확고히 갈고 닦는 기회이기도 하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감정을 극복하고 강해지는 기회이기도 하다. 갈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종종 나는 왜 나의 감정이 무미건조한 걸까. 왜 남들은 화가 나는 상황에도 화를 내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지 생각했다. 단순히 성격이 무던한 걸까? 싶었는데 그저 갈등을 회피하면서 모든 감정을 내려두고 불균형한 감정으로 살아가고 있던 게 아닐까. 자기 자신의 감정을 가져오지 못하면서, 항상 타인의 감정에 의존하고 타인의 감정을 모방하면서 살아오고 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스스로를 잘 몰랐다는 걸 느낀다.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평생을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내린 진단이 오진일지 모르지만, 갈등 회피 증후군을 고쳐나가기 위해 더 많은 감정을 마주하고자 한다. 때론 끝까지 싸우며, 때론 격동하는 감정을 마주하기도 하면서 내면에 있는 감정들을 차별없이 돌봐야겠다.
p.s 이렇게 쓰는 게 맞나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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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두 굉장히 갈등을 회피하는 사람이어서, 맞서서 의견을 피력하기 보다는 한 두번 소심하게 의견을 내세우다가 조용히 있거나, 그렇게 퇴사했었어요... 아직도 너무나도 회피하고 싶지만 그 마음 꾹 참고 맞서 싸워보려구요!! 태완님 덕분에 팔로미노 블랙윙을 한번 찾아봤습니다 ㅎㅎ 연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