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한 줄 없는, 오직 고객에게 집중하는 해커톤을 만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 재학중인 고등학교 3학년 권오윤입니다. 작년까지 예비창업 단계에서 창업을 준비하다 여러 이유로 실패했고, 올해 부터는 정신 부여잡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
지난 주 금-토 1박 2일 간, 교내에서 해커톤 KIC 2024를 개최했는데요, 정말 힘들었지만 너무나도 배운 것이 많아 기록하고, 또 공유하고자 메이커로그를 남깁니다.
저희 학교는 KAIST 부설로, 연구 중심 학교를 표방합니다. 그렇기에 사실 스타트업 관련해서 뭔가를 하겠다 하면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어요. (사실 관심 있는 사람 자체도 거의 없었고요.) 저도 지난 3년간 그런 것들을 견뎌왔고, 또 너무나도 바꾸고 싶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기점으로 본교에 스타트업 관련 교육이나 행사를 늘리고, 끈끈한 생태계를 형성하려고 했습니다.
이번 해커톤은 기존의 해커톤들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구현을 요구하지 않았고, 행사 기간 동안 사업아이템을 기획해 최종 데모데이 때 5분 IR 피칭을 하도록 했습니다. 개발에 중심을 두지 않은 이유는, 저는 개발이야 언제 배워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극소수의 스페셜리스트의 영역을 제외하곤 개발에 대한 장벽이 너무나도 낮아지고 있고, 그들은 기르고 싶다고 기를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앱을 만들고 디버깅을 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단 프로덕트를 기획하고,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게 오직 문제와 고객에게 집착하도록 설계했습니다.
🎯 지향점
사실 고등학교 3학년이라 이런 행사를 하는 거에 대해 주변의 걱정도 많았고, 스스로 확신도 안 섰습니다. 그래도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이번 학기를 갈아넣으며 준비했습니다. 제가 스타트업 씬에서 구르며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토대로, 이번 해커톤 KIC는 세 가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1. 밤을 새면서, 오직 한 가지 프로젝트에만 몰입하는 경험
스타트업 판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것에 이끌렸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진짜 필요하다고 믿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 그를 위해 수도 없이 실패하고, 셀 수 없는 밤을 새고, 쌓아왔던 많은 것을 잃고, 그럼에도 결국 이루어내는.. 그런 모습이요. 입시와 과제, 시험의 연속에 치이는 친구들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한국 입시 제도에서 이런 경험을 해보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2.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파고들어, 솔루션을 도출해내는 과정
흔히 기업가정신으로 번역되곤 하는 Entreprenuership은 단순히 '사업가적 마인드'라기 보다는 문제를 대하고, 그를 해결해나가는 자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꼭 경영인이 될 것이 아니더라도, 이런 기업가정신을 키워나가는 것은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번 해커톤은 아이템을 정해놓고 그를 향해 달리기 보다, 문제를 정의하고 이에 대해 고민해보는 단계에 비중을 주었습니다.
3.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 튼튼한 BM을 갖춘 매력적인 아이템을 기획하는 과정
이쁜 앱 만들기 대회를 열고 싶진 않았습니다. 단순히 한 발짝 물러 서서 던지는 무책임한 기획이나 제안을 넘어, 진심으로 프로덕트에 fall in해 보게 하고자 했습니다. 당연히 수익성 부족으로 걸러지는 아이템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을 때는 보이지 않던) 프로덕트의 여러 측면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뭐..그걸 떠나 사업아이템을 만든다고 하면 BM도 같이 가야 하는게 언급할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하기도 하고요.
📝 프로그램
처음 이런 프로덕트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막연하게 '최종 데모데이때까지 MVP를 포함한 IR을 준비해라' 라고 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리가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교육이 주 목적인 이번 행사에서 그럴 필요도 없었고요. 그래서 타이트한 일정으로 미션 4개를 계속 제출하게 해 단계적으로 아이템이 구체화되게 유도했습니다.
미션 1. 문제 정의
팀별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1가지 정하고, 300자 이내로 이를 설명하게 했습니다. 이때, 1) 문제에 대한 설명, 2) 문제를 겪는 이들(고객군) 에 대한 설명, 3) 문제의 중요성을 포함하게 했습니다.
미션 2. Narrative & Numbers
앞선 미션에서 정한 문제를 바탕으로, 1) 고객 가설, 2) 시장 및 경쟁자 분석, 3) (문제 해결 시) 파급효과를 정의하게 했습니다.
미션 3. Lean Canvas & BM
막연하고 흐릿했던 앞선 단계에서의 솔루션을 구체화하는 단계였습니다. 린 캔버스를 통해 BM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미션 4. MVP 제작
Figma 등 원하는 프로토타이핑 툴을 통해 UI 단계까지 기획하도록 했습니다.
모든 팀마다 스타트업 분야 경험이나 수상경력이 있는 대학생 멘토를 배정해 미션 수행 및 IR 발표를 도왔습니다. 계속해서 피드백을 던져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솔루션에 매몰되지 않고 계속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에 정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진행
0. 사전 교육
행사에 앞서, 전날 사전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사전교육에서는 스타트업이 무엇인가?부터 실제 한국의 스타트업 씬에 대한 Practical한 내용까지 광범위하게 다루었습니다.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후반부에는 Lean Canvas 작성법이나, TAM-SAM-SOM, 마일스톤 및 KPI 등 방법론들을 다루었습니다.
최대한 뭔가 멀어보이는 창업이라는 단어를 현실로 다가오게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너무 멀게 느껴지는 Airbnb 사례 같은 예시보다, 실제로 창업을 했을 때의 이야기를 많이 담았습니다.
1. 행사 준비
고등학교 행사가 으레 그러듯이,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저도 거의 하루종일 책상만 옮긴 것 같아요. 행사장 분위기는 제가 참여하고 정말 인상 깊었던 Junction Asia 2023의 분위기를 따라해보고자 했는데.. 그런 느낌을 내는데는 실패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웠습니다.
티셔츠, 포스터, 이름표 등의 디자인도 거의 혼자 쳐냈습니다. 그래도 메인 컨셉을 한번 잡으니 ctrlC+V해서 오래 걸리진 않았습니다.
2. 행사 당일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사진도 없고, 사실 기억도 잘 안 납니다. 하나 느낀 건, 운영진은 정말 바쁘다는거. 정말 엉덩이 한번 붙이기가 힘들더라고요.
새벽에는 참가팀 전체에 치킨을 돌렸습니다. 진짜 좋아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 밤샘이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이 아닌 친구들과 밖에서 늦은 밤까지 놀며 치킨 먹는 재미있는 경험이 되게 하고 싶었는데, 나름 성공했던 것 같습니다.
3. 데모 데이
둘째날 저녁, 최종 IR 피칭을 진행했습니다. 총 20개팀이었고, 시간이 빠듯해 질의응답 없는 5분 발표로 진행했습니다.
심사위원으로는 본교 출신 창업가 선배님을 모셨습니다.
🏆 결과
1박 2일 안에 구상부터 IR까지는 정말 미친 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 완성되는것도 미지수라는 생각으로 기획했는데, 정말 다들 너무 잘 해주어 놀랐습니다. 퀄리티는 제쳐 두더라도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20팀 모두가 모든 미션을 제출하고, MVP와 BM을 포함한 5분 IR을 해내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IR에 대해서는 '자신이 창업가이고, 투자자를 만나는 자리라 생각하라'라는 무책임한 가이드라인과 아래의 요구사항만 제시했습니다. 어느정도의 유연함을 주는 편이 아이템마다의 특성에 맞는 발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무튼, 제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양질의 아이템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따로 언급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도 인터넷에서 다른 IR 자료들을 참조해 너무 잘 만들어 왔더라고요.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쉬었던 점은.. 너무 행사가 주먹구구 식으로 굴러갔던것 같습니다. 제 머리 속에만 있고 다른 운영 도우미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던 사항들 때문에 운영하면서 여러 차질이 있었고, 경험이 부족해 이런 마찰들을 슬기롭게 넘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건 정말 해봐야 느는것 같아요. 다음에 또 하면 완벽하진 않겠지만 지금보다는 더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향후 계획
행사 자체도 너무 재미있었지만, 재밌는 행사 하나로 이 일이 반짝 끝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첫 스타트를 끊었으니, 더 크고 더 치밀하게 만들어 작지만 강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보려고요.
사실 지금까지는 우리 학교에는 이런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 없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근데 이번 행사를 열어보니 수요가 없던게 아니라 공급이 없던 거였더라고요. 60명으로 계획했던 행사에 200명 가까이 지원하는 바람에 참 난감했습니다 😅.
하반기에도 비슷한 행사를 (이번에는 더 잘) 해보려고 합니다. 단순히 해커톤을 여러번 여는 것이 아닌, 스타트업 대표 초청 강연이라거나, VC 연계 프로그램, 법/회계 관련 교육 등을 통해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지금 생각했을 때 제가 1학년 때 있었으면 좋았을 것들을 만들어놓고 나가려고요.
입시에 치이는 고등학교에서 이런 것이 힘들거란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해커톤에서 새벽에도 눈이 반짝거리며 신나게 ir자료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할수 있겠다는, 그리고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이 일이 적성인가봐요.
마치며
저는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이지만, 학점 교류 프로그램(Honor's Program)으로 1년간 고등학생 신분으로 KAIST의 수업을 청강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 학부에 걸쳐 24학점을 수강하고 있는 중입니다. 뭐, 대학에 몸은 있지만 신분은 고딩인 만큼 입시는 그대로 해야 하고요. 내년에도 이 곳에 있을 수 있게 공부 열심히 하는 중입니다.
혹여나 제게 관심이 생기셨거나, 비슷한 일을 하시는 분들과의 커피챗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22-007@ksa.hs.kr
다른 무엇이 아니라 목을 내걸고 위대한 프로덕트를 만들어나가는 기업가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둠 속을 헤쳐나가고 있는 이 땅의 모든 메이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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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걸 실천하는 것도 큰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정진해보겠습니다 🫶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을 심어주려는 노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이것저것 배울점이 많은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관심 가져주셔거 감사해요 :)
Oyun님 메이커로그가 이번주 뉴스레터에 소개되었어요 :) https://stib.ee/kh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