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미미
미미 ·

시작은 TMI로

최근 몇 년간,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작가 이슬아다. MZ세대를 대표하는 인기 작가인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숱하고,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 또한 숱하지만, 내가 그녀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은 조금 특별하다.


10대 시절의 나는 말 그대로 문학소녀였다. 논스톱과 투니버스에 빠져 있는 게 좀더 정상적인 열한 살에 벌써 내가 잘 하고 좋아하는 유일한 게 글쓰기라는 것을 알았고, 그 후로 뭔가를 쓰면서 먹고 살게 될 것이라는 데 대해 한 순간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마다 내가 가장 재능이 있다고 했고, 나가는 대회마다 입상했다. 초등학생이 새벽까지 읽고 쓰는데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이 모든 사인들로 인해,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는지, 내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이 길로 인해 내가 어떤 연봉과 어떤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을지는, 내가 포유류로 살고 싶은게 맞는지 만큼이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확신이 무너진 것은 열아홉 살 때 간 합숙 문예캠프에서였다. 국내에서 청소년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 중 가장 큰 대회였고,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우물안 개구리가 갑자기 엄청난 실력자들을 만나고 코가 납작해졌다. 코가 납작해진 것도 그냥 납작해진 정도가 아니라 아주 패일 정도라, 울지도 못할 만큼 충격을 받은 나는 단 일주일만에 근 10년동안 믿어온 진로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건 10대에 이미 경쟁자에게 이런 감정을 들게 할 수 있는 재능충들이지, 내가 아닐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나는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날, 이 글을 읽었다.


“나는 나에게 재능이 있는지 궁금했다. 재능은 누군가를 훨씬 앞선 곳에서 혹은 훨씬 높은 곳에서 출발하게 만드는 듯했다. … 지금은 더 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

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 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잘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

로맹 가리의 엄마는 어린 로맹 가리의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고 기대감에 부풀어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너는 커서 톨스토이가 될 거야! 빅토르 위고가 될 거야!”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 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 로맹 가리도 결국 로맹 가리가 되었다. 반복적인 글쓰기와 함께 완성된 최고의 그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그저 다음 주의 글감을 알려주며 수업을 마친다. 얼마나 평범하거나 비범하든 결국 계속 쓰는 아이만이 작가가 될 테니까.”

(이슬아, ‘재능과 반복’)


이미 미디어에 자주 소개되었던 이슬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며 놀라운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한 살 차이인 이슬아를 나는 어떤 문예 대회에서도 본 적이 없다. (나 때 기준으로는) 문학계도 의외로 다른 예체능계와 마찬가지로, 특기생 입시를 목표로 수상 싸움이 심했기 때문에 상위권 대회 수상자는 매번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어릴 때 두각을 나타냈더라면 이름이 낯이 익을 만도 한 것이다. 실제로 이슬아의 전공이나 학교도 어릴 때부터 문학도가 되기를 결심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재능을 인정받는 시기가, 혹은 재능을 찾은 시기가 빠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추측한다. 어쨌든 이슬아는 작가가 되고 싶어 했고, 계속 썼고, 우리 또래에서 제일 잘 나가는 작가가 되었다. 내가 ‘천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뭐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슬아의 삶이 그녀의 주장에 대한 근거였다.


십 수년 만에 내가 아주 틀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뿐 아니라 나는 다른 트랙에서도 똑같은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열정이 생기는 뭔가를 더 잘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내 재능과 남의 재능을 정량화하고, 비교해서, 어떤 시장에 들어가야 내 재능으로 가성비 좋은 경쟁을 할 수 있을지를 눈치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수치화되어 다가오는 열등감은 계속해서 지금이라도 재능없음을 인정하라고 압박하곤 했다. ‘최대한의 나’라는 건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몇 개 안 되는 유효해 보이는 시장에서 내 재능은 이미 수치화되었고, 그 결과가 이미 내 최대치는 별볼일 없을 거라고 예측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 나는 어떤 것이라도 반복해 노력할 힘을 빼앗겼고 더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지금의 내 꿈은 확실히 최대한의 내가 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더 재능을 갖고 싶다. 누구나 한 눈에 알아보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못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이제는 로맹가리가 점수를 낮추거나 높인다고 해서 톨스토이와 같은 글을 쓸 수 없고,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안다. 로맹가리는 ‘자기 앞의 생’을 쓰고자 하는 류의 사람이었고, 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 소망은 그들이 삶에 걸쳐 반복한 생각으로 얻게 된 것이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도 그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노력한 사람 또한 세계에서 그들 뿐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톨스토이도 조앤 롤링도 셰익스피어나 헤르만 헤세도 ‘자기 앞의 생’이나 ‘레 미제라블’을 쓸 수 없었다. 최대한의 자신만이 달성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노력한 사람만이 결국 어딘가에 도달한다.


이것은 문학도로서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지만, 사실 나는 이 글을 쓸 때 작가 다음으로 선택한 두 번째 인생인, 스타트업 메이커로서의 나에 대해 생각하며 썼다. 자본도 없고 사람도 없고 기술도 없고, 분명 같은 것도 말도 안 되게 더 잘할 거인들이 있는데, 심지어 똑같은 일 하는 사람들 중에도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한데 왜 뻔히 안될 일을 내 젊음을 갈아서 하고 있나. 오직 나만이 레 미제라블을, 자기 앞의 생을, 안나 까레니나를 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내 삶에 걸쳐 어떤 생각을 반복한 끝에 만들어진, 최대한의 나만 원할 수 있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만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반복할 힘을 가진 것.


이것이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고, 사실 요새 이런 이유로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나 말고도 이렇게 유치한 이유로 일하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싶다. 매우 매우 매우 낯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유로 첫 메이커 로그를 이런 TMI로 시작해 본다.

13

댓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tagrag
tagrag

쉰살인 제가 읽어보고 반성하게 되는 좋은 글이에요~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

Hyunsol Park
Hyunsol Park

글 너무 잘쓰시는 것 같은데요? ㅎㅎ 똑똑함, 기술, 자본 등의 잘난사람보다 매력적인 사람이 더 멀리가는 것 같고 사람들은 독립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 같아요 :) 그런 면에서 유림님은 멋있는 사람일 것 같네요!

송다예 Daye Song
송다예 Daye Song

개발자들이 1일 1커밋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 메이커로그네요ㅎㅎ 매일,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라는 생각에 공감해요!

박종한
박종한

유림님의 글에서 힘을 얻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