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출을 1년 정도 미뤄야 하는 팀의 공통점.
· 지금 가면 1년 뒤보다 비싸게 배운다.
한 미팅에서 한 팀에게 "1년 미루세요"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대표님 표정이 굳어졌다. 미국향 B2B SaaS를 만들고 있었고, 영문 발표자료는 현지인 기준에도 깔끔했고, 프로덕트 데모도 인상적이었다. 미국 VC 2군데와 IR 미팅 일정까지 이미 잡혀 있던 터였다.
근데 내가 물어본건 하나였다. "한국에서 유료 매출이 나고 있나요?" 대답은 "아직 무료 파일럿이요"였다. 파일럿이라는건, 고객이 돈을 낼 이유를 아직 못 만들었다는 뜻이지 시장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파운더분들 중에 공감하시는 분이 꽤 있을거라 예상하는데, 이 글은 미국에 가지 마라는 글이 아니다. 갈 사람은 결국 가게된다. 다만 지금 가면 1년 뒤보다 비싸게 배우는 팀이 있다는 얘기를 하려 한다.
1️⃣ 한국에서 돈이 안 도는 구조로 가는 팀.
미국 투자자가 초기 한국 스타트업 아니, 비미국 출신의 초기 기업에게 기대하는건 생각보다 단순하다. 완벽하게 현지화된 미국용 IR 덱이 아니라, 한국에서라도 SI든 컨설팅이든 뭐든 돈을 받아본 경험이다. 제대로된 지표가 훨씬 더 설득력 있다는 걸 난 수없이 직접 목격했다. YC 면접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이 “몇 사람들이 돈을 내고 있나?"인데, 시드 기준으로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할수 있는 팀은 많지 않다.
단계별로 보면,
1/ 한국에서 매출을 통한 메인 가설 및 팀 오퍼레이션 검증
2/ 정부 지원금 + 초기 투자금으로 미국내 MVP의 프로덕트화 & 버티컬 유저 인터뷰
3/ 코파운더 급 1-2명이 3~6개월 중/장기 체류하며 초기 고객 및 파트너 확보
4/ PM·세일즈 조직 미국 정착과 동시에 사업화
의 순서인데, 각각의 단계마다 최소 수억~수십억이 드는 게임이다. 특히 2번에서 3번 구간에서는 미국 로컬 VC와 한국의 기관투자가가 반드시 필요한데, 1번이 없으면 이 구간의 IR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문제는 1번을 건너뛰고 2번부터 시작하는 팀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고객이 돈을 내지 않은 상태의 PoC, 무료 파일럿, 파일럿 후 피드백이 없는 상황을 팀이 "우리가 뭔가 된 것 같다"는 시그널로 받아드린다면 이는 위험하다. PMF가 있는 팀은 돈이 들어오는 계약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우리가 검증하려는 메인 가설에 대해, 적어도 한국에서 연매출 X억 찍고 얘기하자. 이게 다다.
2️⃣ ICP를 한 문장으로 말하는 팀.
진단 미팅에서 ICP가 누군지를 물어보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 답변의 구조(Who, In which case, Instead of what, at the cost of X)로 팀의 깊이가 보이고,
둘째, 이 질문에 대한 파운더의 반응 자체가 고객을 얼마나 만나봤는지를 드러내는거다.
"우리 고객은 미국 중소기업 HR 담당자입니다"라는 식의 한 문장 답변이 나오면 십중팔구 고객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 것이다.
ICP를 구성하는 변수들(사용하는 소프트웨어, 예산 사이클, 담당자의 개인 KPI, 계약 구조, 심지어 세세한 기능/API 요청 수준의 디테일)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이 깊이가 없으면 미국 가서 콜드 아웃바운드를 돌려도 리드로 전환되지 않는다. ICP가 부정확하면 CAC만 태우게 되는거다.
미국은 많은 서비스 분야에서 CAC가 한국보다 최대 4-5배 저렴하다. 그만큼 신규 서비스들을 잘 믿어주고 실험해준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건 ICP가 정교한 팀에게만 적용되는 혜택이다. ICP가 한 문장인 팀에게는 그 4-5배가 고스란히 비용이 되는거다.
정리.
· 한국에서 매출이 도는 구조가 없으면, 미국 가서도 없다
· ICP가 한 문장이면, 미국의 낮은 CAC는 내 것이 아니다
· 1년 미루는건 포기가 아니라, 1년 뒤 더 싸게 가기 위한 투자다
미국 진출을 미루라는 말을 듣고 속상할수 있다. 근데 한국에서 첫 유료 고객 1명 만드는게, 지금 비행기 타는 것보다 더 빠른 길이다. 반대로, 위 두 가지에 해당 안 되는 팀이라면 지금이 1년 뒤보다 싸다. 메인 가설로 부터 매출이 나오고, ICP가 좁혀졌다면, 기관투자를 받지전에, 지금 어렵더라도 가는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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