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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

이재욱

불안했지만 인정받았다. 그리고 쫓겨났다.

취업했다. 알바할 나이에, 음식점 알바생도 스타벅스 정규직도 아닌 개발자로.

들어가기 전, 해당 글은 저의 알려진 이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특정 인물 혹은 기업을 비난하기 위한 목적이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나는 중3때부터 사업을 시작한 나보다 1살 어린 고등학교 후배에게, 카톡을 받았다. 창업 멤버로 합류해주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기뻤다. 내가 이정도구나 싶었다.

이 후배는 꽤나 자주(?) 창업을 했다가 접고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가를 반복한 친구였고 나도 이 후배가 새로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나보다 개발자로서의 능력은 훨씬 뛰어났고, 그런 능력을 활용해 어린 나이부터 과감하게 이것저것 시도하는 모습이 평소에 그 친구를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친구에게 창업 멤버로 합류해달라는 요청을 받다니. 인정 받은 것 같았다.

그런데 나에게 합류해달라는 연락이 왔을 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내 실력에 대한 무의식적 의문이 이유였을까.

새로운 시작 그 설렘

본격적으로 그 친구와 만나서 사업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동료들과 술도 마셨다. 이때까진 크게 별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한 보람이 있구나, 이 나이에 나같은 사람이 어디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나에게 심취하는 정도의 생각 외에는 말이다. 빨리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서 설레기도 했다. 친한 친구들에겐 자랑도 했다. 나 창업했다고. 창업 멤버로 합류했다고. 하지만 그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단지 파티에 끼고 싶었을 뿐이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외로움과 불안함이었다. 계속 겉돌았다. 너무 훌륭한 동료들과 대단한 대표 사이에서 내 모습은 영락없이 초라했다. 멋지게 와인잔을 들고 우아하게 서로의 잔을 부딪히는 사람들. 나는 거기서 고작 와인따위 마셔본 적도 없지만 잘 아는 척 연기하며 파티에 끼기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그냥 그 파티에서 하객 알바쯤이라도 좋았다.

메인 스테이지에 서고 싶은 것이 아니다. 뭐 이왕이면 그렇게 놀면 좋기는 하겠다. 원래 보통 내가 주연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내 상태를 보면 당장이라도 연회장에서 끌려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할 것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할당되었던 자잘한 Task들은 진작에 끝냈고 애초에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야가 아니었기에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일을 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내가 다른 동료들처럼 무급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었다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솔직히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알고 뽑았으면, 업무를 할당해주면서 따라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변명해 보자면 그랬다. 근데 사실 뭐 내가 실력이 CTO만큼 충분히 좋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내가 더 성장해서 회사를 내 것으로 만드는거야. 그렇게 일하자.

하지만 내 실력에 대한 의문을, 무의식에 있었던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자존감은 점점 떨어졌고 회사에서는 동료들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괴로웠다.

나를 대체 왜 데려온거야?

대뜸 어느 날 내가 대표에게 물었다. 그때의 상황에서는 '대뜸'은 아니었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건 스스로 불안감을 심하게 갖고도 꽤 시간이 지나서 던진 말이었다. 당장 잘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잘릴 위기에 처해있어 불안하다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나를 무기력하게 그리고 의미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게 싫었다. 뭐라도 손에 잡혀있지 않으면 환멸감을 느끼는 게 나였으니까.

저는 형의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믿어요. 그리고 형 뭐든 열심히 하시잖아요. 열정있게 잘 해줄 것 같아서 데리고 온거에요.

우리가 형을 버릴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 없어요. 오히려, 형이 성장해서 형이 우리를 버릴까 봐 걱정이에요.

그들은 내 불안한 입지를 아는 듯 말을 꺼냈다. 나는 내 불안함이 기분탓이 아니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솔직히 감동받았다.

나는 내가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찾기 시작했다. 회사의 문제가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했기에 PM 겸직을 진지하게 고려해보기도 했다. PM이라는 게 단순히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간다기보다는 관련 기술을 알고 있어서 그것을 수행하는 기술자와도 소통이 원할하게 되어야한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결과적으로 이정도 규모의 회사에 PM은 너무 과분하다는 견해가 있어 없던 일이 되었지만...

'회사'에서 '우리'로

그렇게 일을 시작한지 한달 즈음 지났을까. 나는 시작할 때부터 있었던 문제점을 상기했다. 바로 소통이 안된다는 것. 내가 질문을 해도 정확히 뭔지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았고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몰랐다.

팀에서 문제를 찾는다면 소통이 안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바로 고개만 돌리면 대화할 수 있는데 대화를 하지 않았다. 사업의 자세한 방향성과 세부 계획, 설계는 대표만 알고 있었고 이외의 사람들은 뭉퉁그려 알고 있는 것이 팀 전력의 큰 손실로 이어졌다.

근데, 내가 더 많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니 진짜 업무가 할당되었다. 내가 할당되도록 만들었다고 해야 더 맞을 것 같기는 하다. CTO에게 할 것이 뭐가 남았냐고 물었고 남은 업무를 말해주었다. 솔직히 남은 업무가 무엇인지를 알았을 때는 겁이 났다. 내가 잘 아는 분야도 아니었고 해 보지도 않았기에 겁이 많이 났다. 그때 나는 내가 내가 그걸 맡아서 하겠다고 했고 드디어 한 달만에 제대로 된 업무가 할당되었다.

업무가 할당되자 내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점점 프로젝트가 어떻게 굴러가는 지, 뭘 해야할 지 윤곽이 잡혔고 실력도 빠른 속도로 늘어갔다. 드디어 나의 것이 회사 프로덕트에 담기기 시작했다. '회사'가 '우리'가 되는 순간 내 열정은 최고조에 달했다.

난생 처음 보는 기술을 다뤄야 할 순간들도 굉장히 많았는데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다 잘 헤쳐나갔다. 계속 리서치하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봤던 걸 또다시 보고, '왜 이렇게 구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스스로 반론하며 성장해나갔다.

대표가 말한 '형의 가능성'을 내보이기라도 하듯 나의 입지는 점점 좋아졌다. 중요도가 높은 업무도 맡아서 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면 내 머릿속은 workflow로 꽉 차있었고 퇴근을 할 때면 머리 위로 DB 구조가 떠다녔다. 일이 너무 좋았고 미쳐 살았다.

나를 인정 받았다

회사에 온지 두달 즈음 되던 날, 대표가 문득 나에게 말했다. 곧 월급 인상 계약이랑 스톡옵션 계약이 있을 거란다. 순간 난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입지가 좋아지고 있고 필요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무의식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은 공식적으로 나를 인정받는 순간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이사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이미 내부에서도 잘한다고 칭찬이 자자하단다. 미칠듯이 기뻤다. 다른 사람에게 내 실력과 능력을 인정 받는 것만큼 가치 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잘렸다.

그런데 어느 날 대표가 회의를 소집했다. 경영 상의 문제였고 회사 입장에서는 어느 한쪽에 베팅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듣고보면, 회사 입장에서는 나를 자르든 뭘 하든 해서 고정비를 최대한 줄이고 그쪽에 투자를 하는 게 맞지. 채용 예정되어 있던 것들도 다 취소하고.

경영 상의 관점에서 그리고 회사 입장에서 보면 그게 맞았다. 당연히 설마 나를 자를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그리고 내가 뱉은 말은 뒤늦게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결정했어. 사무실도 빼고, 형. 이제 그만하자.

...어? ....

나 월급 안 올려줘도 되니까, 그냥 이대로 받아도 전혀 상관 없으니까, 애초에 난 돈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그렇게 해도... 내가 잘리지 않는 경우의 수는 없는거야?

...

1시간 전만 해도 구조를 설계하며 들떠있던 나인데, 1시간 만에 갑자기 그렇게, 회사에서 쫒겨났다.

회의가 끝나고 난 자리에 앉아서 하던 일을 계속 했다. 근데 갑자기 대표가 퇴근하라고 하는 것이지 뭐냐. 난 당연히 월급날까지 남은 일주일 남짓한 시간을 최선을 다해 일하려고 했는데, 그냥 그렇게 끝난 것이었다.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미 이 회사는 내 회사나 다름이 없었지만, 정리할 시간조차 없었다.

난 한순간에 3년간 봤던 친한 회사 대표이자 고등학교 후배를 잃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겐 가족과도 다름이 없었던 너무나도 소중한 동료 3명을 잃었다. 어쩌면 대표는 경영자로서 출중하다고 해야되나. 그렇게 내 영혼을 담은 직장을 잃었다.

이틀 뒤 짐을 빼면서 사무실을 떠날 때 그제야 실감이 났다. 동료들 앞에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꾹 참고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일어서려 한다. 긴 기간동안 이어졌던 무기력을 걷어내고 다시 일어서려 한다. 한순간도 멈출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 것이다.

이제 다시 나는 나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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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

이재욱

창작은 인간만의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사진 애플리케이션에 인물 별로 사진이 자동 분류되어 있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가? 이 기능을 몰랐다면 스마트폰을 켜서 확인해 보아라.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은 내가 찍었던 사진을 인물 별로 정리해 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 것일까? 스마트폰은 눈도 없고 두뇌도 없다. 물론 상징적으로 눈과 두뇌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사람의 것처럼 작동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눈도 두뇌도 없는 AI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생성'인가 '창작'인가

요즈음 ChatGPT와 함께 뜨거운 감자가 된 AI의 작품이 하나가 더 있다. 바로 AI가 그린 그림이다. AI가 그린 그림이어서 주목을 받는다기보다는 너무 퀄리티가 높은 것이 문제이다. 사람의 것과 구별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혹자는 사람이 만든 창작물을 학습하고 조합하여 만들어지는 ‘생성물’이라고 하고, 혹자는 이런 말을 ‘원자력 발전소가 물을 끓여서 터빈을 돌린다’는 식의 설명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며 AI도 충분히 ‘창작’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AI가 작동하는 방식을 알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은 1950년대부터 있었다

고전적인 인공지능을 개발할 때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예상되는 규칙들을 일일이 프로그램에 삽입하는 방식이 많이 사용되었다. 즉 사람이 ‘과정’부터 ‘결과’까지 모두 입력해서 컴퓨터에 논리를 생성한다. 이렇게 완성된 프로그램에 특정 키워드를 ‘입력’하면 논리에 따라 결과값이 나오는 식이다. 예를 들어 병을 진단 해주는 인공지능을 만든다고 해보자. 의사는 기침, 재채기, 두통이라는 과정과 감기라는 결과를 프로그램에 삽입한다. 이제 이 인공지능에 환자가 기침, 재채기, 두통 증상이 있다고 입력하면 인공 지능은 환자가 감기에 걸렸다고 처방을 내릴 것이다. 지능을 가진 프로그램이라기보단 특정 키워드를 가지고 미리 준비된 응답을 출력하는 딱딱한 로봇이라고 하는 게 우리의 직관에 더 와닿는다.

현대 인공지능의 핵심 기술 ㅡ 머신러닝

다만 머신러닝은 이와 결이 다르다. ‘입력’과 ‘결과’가 담긴 데이터셋(Dataset, 자료 집합)을 컴퓨터에 넘겨주면 컴퓨터는 그 데이터를 학습하여 ‘과정’을 스스로 만든다. 그리고 새로운 입력이 들어오면 선행 단계에서 ‘스스로 만든 과정’에 따라 결과를 내어 놓는다. 수많은 감기 환자에 대한 데이터셋을 학습시키고 환자가 기침, 재채기, 두통 증상이 있다고 ‘입력’하면, 인공지능은 스스로 만든 ‘과정’을 토대로 환자가 감기에 걸렸을 확률이 높다고 처방을 내릴 것이다. 즉 이러한 인공지능은 통계적 확률에 기반한다. 

실제 머신러닝 기술로 만들어지는 인공지능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단순히 데이터셋을 가지고 2차원, 3차원적으로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수많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원하는 특정 데이터셋에 가중치를 주는 등의 작업을 거쳐 고도화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인간의 두뇌가 가진 신경망의 구조와 매우 비슷하다. ‘인공신경망’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인공신경망은 비로소 인공지능의 핵심 논리 체계가 되어 컴퓨터의 두뇌가 된다. 그러나 컴퓨터가 그린 그림이 과연 창작물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더 생각해봐야 한다.

미술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AI

2022년 9월, 미국에서 열린 미술전에서 AI가 그린 그림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사람이 그리지도 않았고 단 한 번의 붓질조차 하지 않은 생성물이 어떻게 미술전에서 우승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의 수많은 창작물을, 그것도 원작자의 허락도 없이 데이터셋으로 활용해 만들어진 일개 ‘조합품’은 절대로 예술작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머신러닝을 이해한 독자라면 AI가 그렇게 단순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반론할 수 있다. 실제로 AI는 단순히 그림을 베끼고 조합품을 생성하는 것이 아닌 이제껏 인간이 그려내지 못한 작품을 그려낸다. 우리의 신경망 구조를 본뜬 인공신경망을 통해 인간과 거의 똑같은 논리를 활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제 그림은 학습에 쓰지 마세요

게다가 AI가 학습에 사용한 인간의 창작물-인터넷에 게시된 그림은 모두가 열람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AI가 그림을 학습하는 과정은 사람이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거나 기법을 학습하여 실력을 키우는 과정과 동일하다. 사람이 아닌 AI가 내 그림을 보고 배우는 것이 싫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된 그림을 학습하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다. 우리가 공개된 그림을 볼 때 ‘열람료’를 내진 않지 않는가?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닙니다

또 AI 그림의 우승에 반대하는 이들은,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데 들이는 노력에 비해 손가락만 몇 번 까딱해 생성된 그림은 그 가치를 인정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미술전에서 우승을 거머쥔 우승자 제이슨 M. 앨런은,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AI에게 설명문을 입력하는 데 80시간이 걸렸다고 항변했다. 미술가가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노력에 버금가는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앨런이 그림을 생성하는 데 사용한 프로그램은 누구나 쉽게 접근해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손가락 몇 번 까딱이면 되는 노력이었으면 모두가 AI로 뛰어난 작품을 생성했을 것이고 우승자를 가릴 수 없었을 것이다. AI로 그림을 생성하기 위한 과정이 결코 단순한 과정은 아니란 뜻이다.

영원한 우리의 동반자

이러한 사례를 보면 10년 후의 우리 사회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 지 정말 궁금해진다. 어쩌면 미래에는 AI 아티스트가 등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AI에게 적절한 텍스트를 넣어서 원하는 결과물을 뽑아내는 전문 기술자 말이다. AI는 필연적으로 우리 미래와 함께 할 것이다. 마냥 배척하고 반대하기 보다는 변화에 발맞춰 함께 상생하는 편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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