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용
2023년 마지막 날 회고를 작성했습니다.
회고 작성 전 감사했던 분들께 메시지를 보냈는데요. 한분씩 보내다 보니 무려 4시간이 걸렸네요. 2023년은 특히 감사한 분이 많았던 한해였습니다.
올해는 퇴사와 창업으로 모든 게 설명되는 한해였습니다. 이것 외에는 딱히 언급할 이야기가 없는 걸 보면 창업에 정말 잘 집중한 한해였던 것 같네요.
2023년 제게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2024년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세용
2023년 마지막 날 회고를 작성했습니다.
회고 작성 전 감사했던 분들께 메시지를 보냈는데요. 한분씩 보내다 보니 무려 4시간이 걸렸네요. 2023년은 특히 감사한 분이 많았던 한해였습니다.
올해는 퇴사와 창업으로 모든 게 설명되는 한해였습니다. 이것 외에는 딱히 언급할 이야기가 없는 걸 보면 창업에 정말 잘 집중한 한해였던 것 같네요.
2023년 제게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2024년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세용
유자랩스 법인 설립 후 첫 정부지원사업에 합격했다. 2024년 1월부터 유자랩스는 상암으로 이동한다.
현재는 강서구 마곡동에 소호사무실을 썼다. 고작 2평 원룸에 책상을 어찌어찌 5개 놓고 딱 붙어 앉았다. 누구는 문 앞에 앉아 문을 열 때마다 움직여야 하고, 누구는 기둥 사이에 들어가 의자를 움직이지도 못하고 앉아있다.
여름은 어찌 지냈는데 겨울은 참 힘들다. 창가가 2면이라 좋아했는데, 한파가 오니 발이 시렵다. 온풍기며, 난로도 켰지만 패딩을 입고 앉아있는 동료들을 보고 있자면 미안한 마음 뿐이다.
유자랩스로 넣은 지원사업은 이번에 두 번째였다. 첫 번째 사업은 서류에서 광탈해서 꽤 착잡했는데, 두 번째 지원사업에서 서류와 발표심사까지 모두 합격해 무척 기분이 좋다. 사무실에서 달달 떠는 동료들을 보나 나은 환경으로 데려갈 생각에 무척 마음이 평온하다.
이사갈 사무실은 무려 9평이다. 지금보다 4.5배가 커진다. 지금 사용하는 사무실이 2평이니 5명에게 각각 사무실이 주어진다는 생각에 들떴다. 다들 사회경험이 적지 않은데, 훨씬 더 화려한 사무실에서도 일해봤는데, 우리가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맛인 것 같다.
이제 2024년 정부과제가 주루룩 뜬다. 서류를 작성하고 발표를 준비해야하는 나로서는 이 작은 성공이 굉장한 힘이 된다.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가 꽤 재밌어진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난다.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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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어떤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마음껏 상상하고 전투적으로 현실화하는 편이다. 모든 전투에 관한 보상은 상상이 현실화됐을 때 돌려받는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떤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건 꽤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한다.
딱히 자원이 없는 나로서는 그동안 메이커로서 삶을 살아왔다. 돈 주고 다른 자원을 사면 좋으련만, 내 몸과 시간뿐이었던 지난 10여년은 스스로 메이커가 되는 것 밖에 해결책이 없었다. 때문에 제품을 만드는 개발자로 살았고, 콘텐츠를 만드는 기자로 살았다.
유자랩스를 창업하고서는 최대한 메이커로서 역할을 내려놓았다. 우리의 상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 충분하니 굳이 내가 메이커로서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충분히 상상하고, 분석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맡았다. 서로가 잘하는 것이 모여 우리의 제품으로 탄생했다. 어느새 제품이 나온지도 6개월이 됐다.
레퍼런스로 만들고 싶었던 고객사가 드디어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우리 제품을 활용해 마케팅을 진행했고 일주일 동안 억 단위 매출을 기록했다.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확인하며 동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데이터 로우가 늘어날 수록 흥분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와. 정말 어디서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성공사례가 만들어졌다.
마케팅을 마치고 고객사를 찾았다. 담당자는 회사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결과를 냈다. 2024년에는 해당 마케팅을 더 진행하기로 했고 추가 예산을 요청하기도 했단다. 그리고 그동안 수없이 상상했던 한 마디를 들었다.
"유자랩스 덕분에, 마케팅을 잘 진행할 수 있었어요"
이 제품으로 고객사 마케팅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란 상상이 현실이 됐다. 이 팀으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거란 상상이 현실이 됐다. 나도 언젠가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는 상상이 현실이 됐다.
마침, 창밖에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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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기록의 힘을 믿는 편이다. 에버노트로 시작해서 노션까지 협업 도구를 활용해 다양한 기록을 해두고 있다. 본업에 적용하기도 했고 그 내용을 엮어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첫 번째 창업인 <도밍고컴퍼니>때도 그랬지만 두 번째 창업인 <유자랩스>도 창업자로서 겪는 여러 이야기를 적고 있다. 주로 SNS에 올리는데 이 글을 보고 이야기해보고 싶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이 내용을 좀 더 정리해보라는 조언이 있어 <오세용닷컴>에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유자랩스> 출사표를 올린 8월 이후에 쓴 글을 모으니 20개가 되더라. <오세용닷컴>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로 발송할 계획이다. 뉴스레터는 <오세용닷컴>에서 구독할 수 있다.
작년까지는 내게 ▲주니어 개발자 상담 ▲SI 탈출 상담 등이 주된 콘텐츠였다. 때문에 당장 내게 큰 이득이 될 이야기는 없었다. 물론 내 주니어 시절이 떠올라 문의 내용보다 훨씬 더 긴 답변을 보내곤 했다. 퇴근 후 2-3시간 동안 메일을 썼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는 시니어를 비롯해 창업자들의 연락이 있다. 이들과는 <유자랩스> 비즈니스 연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업무의 연장선이 되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알기 어려웠던 이들과의 연결은 그저 감사할 뿐이다.
연락주세요 디스콰이엇 여러분.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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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한달 전 PMF라며 자랑했던 기능을 출시했다. 여러 고객사와 인터뷰하며 공통적인 니즈를 확인해 기대감을 갖고 빠르게 진행했다.
고객 의견을 수렴하고 기획하는 단계가 2주. 개발 기간 2주. 그렇게 한달을 와다다 달렸다. 그렇게 그 기능이 출시됐다. 다소 김빠진 채로.
기능은 약속한대로 11월 내 출시했으나 고객사 반응이 미지근하다. 다수의 고객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어째 인터뷰 시기와 온도가 다르다. 한 번도 아니고 2주 동안 여러 번 인터뷰 했는데 이럴 수도 있구나.
저마다 사정은 있다. 일이란 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일부러 그러려던 것도 아니며 우리 상황은 온전히 모를 것이다. 그런데 고객에게 우리 사정을 말해봐야 무엇 하나. 차라리 다음을 기약하는 게 낫지.
놀랍게도 차분하다. 어느새 예상치 못한 일에 조금은 무뎌졌나보다. 감정이 오르지 않는 현상이 내리지 않는데 도움이 된다. 또 기회가 있겠지. 여전히 우리에게 기회가 있겠지.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괜히 섭섭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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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얼마전 텐션 자체가 떨어졌다는 글을 썼다. 위로로 보이는 따봉을 수십 개 받으며 어째 불쌍한 친구가 된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했다. 불쌍한척 하려던 건 아닌데, 적다보니 그리 된 것 같은 느낌.
며칠 전 새로운 고객사 전화가 왔다. 인바운드 리드다. 처음 듣는 고객사의 처음 듣는 사람의 목소리다.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고객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 여전히 서툴지만 처음 몇 차례 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것 같다.
"혹시, 저희 제품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아, 대표님이 '쿠팡파트너스' 같은 거 만들라고 해서요. 외주 업체를 찾아보다가 유자랩스에서 딱 맞는 기능을 서비스하시는 것 같아서 연락 드렸습니다."
대화를 잘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다. 동료들에게 대화 내용을 요약해 들려주었는데 창가에 비친 얼굴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라? 나 재밌나보다.
생각해보면 나는 일하며 꽤 자주 웃는 사람이었다. SI 시절 PL이 되고 나서는 PL로서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아서 회의하다가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친놈처럼 보일까봐 입을 가린 적이 수차례다.
자사 제품을 만들면서도 고객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기분이 그렇게 좋았다. 부서장 역할을 하며 부서원이 막힌 업무를 해결해주거나 부서간 이슈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떠올릴때면 그렇게 좋았다.
텐션이 떨어진 게 아니고, 텐션이 올라갈 일이 다소 적었을 뿐이다.
동료가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거 없냐고 할 때 딱히 답을 못 했었다.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바운드 고객이 찾아오는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고객이 우리 제품의 기획 의도를 알아봐주는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고객이 생겨 유자랩스가 자생할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내 텐션 아직 안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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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개발자로 일하며 싫었던 워딩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그냥 해'다. 도무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냥 하는 건 참 힘들었다. 그래서 매번 따져댔지만 수직적인 구조에 눌릴 때면 정말이지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내가 관리자가 되고서는 일의 Why를 설명하려 애썼다. Why를 설명하는 건 상당히 귀찮은 작업이다. 때론 여러 이유로 Why를 설명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도 최대한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은 공유하고, 공유할 수 없는 부분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내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불안감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모르겠다만, 이번주는 앱 설치가 꽤 있음에도 불안감이 가시질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덤덤해지긴 하는지.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없으면 온갖 잡생각이 몰려온다. 그러다 보니 시간만 흘러가는 것 같아 스스로 '그냥 해' 정신을 심어봤다.
해야 할 일을 나열하고 우선순위를 설정했다. 늘 하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더 급한 일이 있어도 '그냥 했다' 더 중요하다는 느낌이 와도 무시했다. 정해둔 일을 그냥 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더니 이 방법도 썩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초기에 계획한 결과물은 나오니까.
미루고 미뤘던 상세페이지를 리뉴얼했다. 당연히 더 보완할 부분도 보이고, 자료도 더 넣고 싶은데 일단 정해진 기간까지 진행된 내용으로 마감을 했다. 마냥 붙잡고 있는다고 드라마틱한 변화도 없더라. 해야 할 것을 해야 할 시점에 적절히 마감하는 것도 꽤 필요한 능력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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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언젠가 창업자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팀은 하나 같이 마음을 다하며 정말 자기 일처럼 일해서 참 좋아. 정말 이런 사람들 찾기 어렵단 말이지.' 그랬더니 그 친구는 이렇게 비웃었다. '자기 일인데, 자기 일처럼 안 하는 사람도 있나? 마음으로 일하는 건 또 뭐야.' 뒤이어 이런저런 설명을 했지만 결국 이해시키지 못했다. 아쉽지만 그 친구는 마음을 다해 일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자신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면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이건 꼭 자신이 주인공이 돼야 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주인공이 아니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게 아닌, 팀에 충분히 보탬이 되고자 한다. 시간을 쪼개서 팀의 주요 미션과 함께 하고자 한다. 자신의 노력이 결과적으로 팀의 방향성에 녹아들길 원한다. 구성원이 노력한다고 해서,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꼭 좋은 팀이 되는 건 아니다. 결국 이들의 방향성이 일치해야 한다.
나는 여러 조직을 리드해봤다. 학창시절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속한 조직을 리드했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만든 커뮤니티를 13년째 리드하고 있다. 여러 금융 프로젝트 PL로 일했고, 부서장으로도 일했다. 올해는 삶의 대부분 영역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조직을 리드하며 내가 내린 리더십 철학은 '원팀'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로서 정말 좋은 팔로워십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구성원 역시 '원팀'을 생각하는 구성원이다. 결과적으로 경험한 여러 조직 중 정말 좋은 조직이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조직은 하나 같이 '원팀'의 방향성을 보였던 조직이다.
유자랩스는 내가 지난 12년 동안 커리어를 이어오며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원팀'으로 일하던 사람들로 구성했다. 이들은 나와 같은 조직에서 일했고, '원팀'으로 일한 경험이 있으며, 앞으로도 '원팀'으로 일하고 싶어 유자랩스에 모였다. 내가 자신 있게 두 번째 창업을 할 수 있었던 충분한 이유다.
지난주 환절기 감기에 갤갤대다, 밤샘 문서 작업을 하고 나니 컨디션이 다소 하락세였다. 이런 와중에 일주일 내내 외부 일정을 잡아 서울을 한바퀴 돌고 나니 체력과 정신력이 많이 소모됐다. 덕분에 지난 주말에는 유자랩스를 잠시 잊었다.
오랜만에 사무실에 출근했더니 동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던진다.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봤다며 스크린샷을 수백 개 찍어 인사이트를 들려주는 동료도 있고 ▲개발 기간이 다소 여유가 있어서 어떤 일을 더 하면 도움이 될지 고민이라는 동료도 있다. ▲개발자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개발만 해도 되는 거냐며, 뭔가 더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라고 하는 동료도 있다. ▲가능성을 찾아보겠다며 스스로 영업 건을 찾아 미팅을 나간 동료도 있다. ▲가끔 내 감정이 오르내려 미안하다 했더니만, 그거 보는 거 재밌으니 계속 해도 된다며 다독인다. 이들은 모두 제품팀이고 내가 이들에게 요구한 건 좋은 제품을 만들어달라는 것 뿐이었다.
떨어졌던 체력과 정신력이 순식간에 급속 충전이 된다. 동료들의 고민을 듣고 있자니 나는 대표자로서 일주일동안 무얼 했나 싶었다. 창업자는 외롭다던데, 외로울 틈을 막아버리는 동료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창업을 한게 맞나 싶기도 하다.
원팀으로 일하는 건 이런 기분이다.
각자 주어진 어떤 기능만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팀으로서 존재하고자 한 걸음씩 더 뛰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한 걸음씩 더 뛸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뛰지 못할 때 동료가 더 뛰어줄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속하고 싶다. 이 사람들과 원팀으로서 조금 더, 조금 더 지속하고 싶다. 팀워크로 모든 장애물을 뛰어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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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단어 하나만 주어지면 한시간 정도는 말할 수 있는데, 이 능력이 요긴하게 쓰이는 것 같아 뿌듯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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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유선 전화를 휴대폰으로 돌려뒀다. 덕분에 모르는 번호도 더 받는다. “네! 유자랩스 오세용입니다!”
동료들은 내 말하기 능력을 전폭 지지한다. 다른 능력도 있을텐데, 말하기 능력만 인정 받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 요즘은 내가 봐도 말하기 능력이 꽤 괜찮다.
종종 이동 중에도 전화가 오는데, 지하철 역사에서 20-30분 동안 허공을 응시하며 쇼핑파트너스 이야기를 하고 나면 굉장히 시원하다. 마치 개발하다가 막혔던 기능이 뙇! 해결됐을 때 느낌도 받는다.
한편으로는 어느새 고객이 20-30분 동안 제품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기능이 늘어났구나 싶다. 그리고 그 기능이 내 머릿속에 모두 있는 건 참 다행이지 싶다.
제품 철학과 시스템 구성 그리고 향후 방향성에 관해 구성원 모두가 함께하는 팀, 유자랩스. 내가 30분 동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팀 덕분일 것이다.
여기저기 돌아댕기는 동안 꼼꼼히 추가되는 쇼핑파트너스 신기능!! 커밍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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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고객이 수백 명, 수천 명 되는 B2B 서비스는 도대체 어떻게 고객사를 모았을까?
9월의 어느날 밤. 사무실에 앉아 머리를 뜯었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머리를 뜯고 있지만 요즘은 매일 같이 새로운 고객사가 쇼핑파트너스를 설치하고 있어 조금은 낫다.
이메일 도구의 힘을 빌려 콜드메일을 추적했다. 제휴 마케팅에 관심이 있을 법한 쇼핑몰을 찾아 메일을 보내는 과정은 마치 전단지를 돌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한 번은 읽어주겠지. 아, 전단지 돌리는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나보다. 꼭, 고객이 되진 않더라도. 꼭, 결제를 하지 않더라도. 꼭, 설치를 하지 않더라도. 유자랩스나 쇼핑파트너스라는 단어를 업계에 한 번쯤 알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꽤 굵직한 쇼핑몰이 가입했다. 동료들은 유명한 쇼핑몰이라며, 제품이 인스타에서도 핫하다고 하더라. 찾아보니 몇년 째 수천억 원 매출을 올리는 곳이었다. 도대체 쇼핑파트너스를 어디서 보고 설치하는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쇼핑파트너스는 2개월마다 메이저 업데이트를 해왔는데 그 외에도 2주 단위로 마이너 업데이트를 하고 있다. 이번 마이너 업데이트는 고객사에 별도 공지를 하고자 메일을 작성하고 예약을 걸어두려 했다. 그런데 이상한 걸 발견했다.
이메일 도구에서는 메일을 여러 리스트에 넣어서 발송과 미발송 등을 선택할 수 있다. 발송돼야 할 메일이 자꾸 빠지길래 봤더니 이전 콜드메일에 있던 메일 주소가 고객사가 됐던 것이다.
얼마 전 가입해서 동료과 말했던, 그 수천억 원 매출을 올리는 쇼핑몰이었다.
메일 히스토리를 보니 내가 보냈던 콜드메일을 열어보고, 클릭도 해봤더라. 그저 막막해서 전단지라도 돌렸던 것인데. 와, 이게 이렇게 설치로 이어지기도 하는구나.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그저 막막했는데, 그 사이 유료 고객사도 늘고 매일 같이 설치가 일어나고 있다. 그렇구나. 다들 이렇게 수백 명, 수천 명이 됐구나.
이렇게 오늘도 긍정 회로를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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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세일즈를 하다 보면 고객 설득에 실패할 때가 있다. 당연히 무조건 성공할 수 없겠지만, 실패를 받아들이는 게 아직은 서툴다.
말 잘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하고 싶은 말을 망설임 없이 말하는 것 같아 부럽다더라. 자신은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할 말을 다 잊곤 한다고.
대체로 그렇다. 할 말을 충분히 생각하고,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상대 답변을 예측한 뒤 말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말일 수록 수차례 고민한다.
그런데 세일즈는 많이 다르더라. 평소보다 몇 배는 고민했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듣는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횡설수설 하기도 한다. 덕분에 매일 같이 이불킥이다.
축구 경기에서 실수를 한 선수에게 해설자는 “빨리 잊고 남은 경기에 만회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마음처럼 되지 않더라. 눈 앞에서 놓친 고객이 아른거린다.
내가 좀 더 잘 말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자료를 좀 더 보완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고객 사례를 좀 더 정리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지나간 것을. 다음 기회에는 좀 더 나아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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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한참 소개 했는데, 서비스 소개서도 열심히 만들었는데, 홈페이지도 열심히 만졌는데... 고객사가 서비스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부모님께도 설명해보고 ▲IT를 잘 모르는 친구들에게도 설명해보고 ▲쇼핑몰 전혀 모른다는 소호사무실 실장님에게도 설명해봤다. 그렇게 보완하고 또 보완했는데 때로는 제자리 걸음인 것 같다.
▲여기 오타가 있네요! ▲링크가 작동 안 해요! ▲잘 안 보여요! 부지런히 여기저기 채워 넣었는데 어김없이 빵꾸가 난다. 나름 까다로운 사람인데, 여전히 더 까칠해져야 하는 것 같다.
뭐 어쩌겠나. 그렇게 또 보완하고, 그렇게 좀 더 까칠하고. 그렇게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아지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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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월 10만 원 요금제. 어제 밤 21시에 배포하고 오늘 아침에 고객사 메일을 보냈는데. 한 고객사가 기다렸다며 뽝! 결제 했다. 화끈한 고객이다.
여러 고객사가 요구한 기능인지라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말씀하신 기능을 출시했다며 신이 나서 전화했다. 그런데 다수의 고객사가 전화기를 끊지 않는다. 여기에 특정 기능이 추가되면 좋겠다고. 와다다 니즈를 쏟아낸다. 아니 원하는 게 뭐냐고 물어볼 땐 들을 수 없었건만. 왜 갑자기 니즈가 쏟아질까.
놀라운 건 다수의 고객이 똑같은 기능을 요청한 것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커스터마이징이 필요하면 비용을 내겠다고 한다. 당장 10월부터 쓰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겠냐고 하는 곳도 있다.
동료들과 기능 방향성을 논의하다가 비슷한 기능을 개발한 지인들이 떠올라 전화를 돌렸다. 여러 지인의 사례를 듣고 방향성을 정리해 말했더니, 이미 동료들이 그 방향성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더라. 아니 이러면 내가 필요 없어지는데... ㅋㅋ
그런데 잠깐. ▲다수의 고객사가 똑같은 기능을 원한다? ▲당장 쓰고 싶다고 한다? ▲묻지도 않았는데 비용을 지불하고 싶다고 한다? 이거 책에서 본 거 같은데... 이게 그 PMF인가 그건가?
현실에 멈췄던 시야가 또 다시 위로 떠오른다. 오랜만에 긍정의 상상을 펼친다. 아니 이러다 또 추락할 수 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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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지난 ▲5월 법인을 설립해서 ▲6월에 베타 버전 출시 ▲8월에 정식 버전 출시 ▲그리고 10월에 v1.1 출시를 앞두고 있다. 각 버전 출시 후 조금씩 변화가 있었는데 언제나 똥줄이 탔지만 되돌아보니 의미 있는 지점이긴 했다.
6월, 베타 버전 출시 후에는 주로 경영자들이 유자랩스 조직에 관심을 보였다. 유자랩스에 어떤 사람이 모여있는지. 어떤 사업을 구상하며,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를 물었다. 초기 단계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고 자신들은 어떻게 풀었는지를 들었는데, 정답이 없는 이 세계에서 알게된 어떤 사례들은 의사 결정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8월, 정식 버전 출시 후에는 쇼핑파트너스 제품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났다. 업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 파트너십을 고려해볼 수 있는 연락도 있었다. 그래도 조금은 이커머스 솔루션 시장에서 나눌 대화가 생겼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놀라운 것은 고객과 솔루션 제공사로서 미팅이 잡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온오프라인 미팅으로 잠재 고객을 만났는데, 그동안 스스로 고객의 니즈를 찾던 것과 달리 고객이 니즈를 가지고 찾아오는 경험은 꽤나 짜릿했다. 이 과정에서 ▲비슷한 제품 중 쇼핑파트너스가 제일 좋아 보인다 ▲디자인이 깔끔해서 좋다 ▲원하던 기능이다 등 잠재 고객이 관심을 보이니 너무, 너무 재밌었다. 이 과정에서 유료 고객사가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두자릿수 고객과 대화하며 이들이 원하는 기능을 모았다. 8월 정식 버전에는 포함돼 있지 않던 어떤 기능에 관한 니즈가 있었고, 이 기능을 우선 진행하기로 했다. 이 기능은 쇼핑파트너스에서 '앰배서더'라고 부른다.
앰배서더는 '홍보 대사'라는 뜻으로 쇼핑몰의 전체 상품을 판매하고 리워드를 받을 수 있는 기능이다. 쇼핑파트너스는 이 과정에서 앰배서더의 판매 내역을 추적하고 쇼핑몰이 정산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만든다. 컨셉은 굉장히 간단하고, 나 역시 실제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쉬운 작업으로 봤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등 앱 내 브라우저에서 이동했을 경우 ▲각 화면 이동 시 다른 상품을 구매했을 경우 등 다양한 케이스가 있어, 이를 모두 추적하기 위해서는 고민이 필요했다.
짧은 시간 동안 좋은 방향으로만 달려간 것 같지만, 실상은 사이사이 무척 괴로웠다. ▲고객 니즈를 듣는 건 좋으나 왜 처음부터 이렇게 하지 않았는지 속상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발견되면 나 역시 개발자로서 왜 이 이슈를 미리 확인하지 못했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도대체 휴일은 왜이리 많은지 훌쩍 휴가를 떠나버린 잠재 고객들이 너무도 기다려졌다.
짧지만 고통스러운 지점을 버티게 했던 건 동료들 덕분이다. 3개월, 6개월을 앞서 고민한다며 홀로 인상쓰고 있을 때면 오히려 동료들이 나를 다독였다. 이미 지난 일인데도 너무 아쉬워 일이 손에 안 잡힐 때도 동료들이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료들은 묵묵히 정해진 일정에 맞춰 제품을 만들었더라. 늘 고마울 따름이다.
이번 쇼핑파트너스 업데이트로 출시되는 앰배서더 기능은 특정 링크로 유입된 쇼핑몰 상품 판매를 모두 추적한다. 또한 앰배서더 유입에 따라 ▲회원/비회원 비율 ▲첫 구매 비율 ▲구매 전환율 등 쇼핑몰에 특화된 통계 데이터를 그래프로 제공한다. 쇼핑몰 담당자는 통계 데이터를 활용해 보다 효율적인 앰배서더 마케팅을 운영할 수 있다.
앞서 6월, 8월처럼 이번 10월 업데이트 후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다소 기대된다. 유자랩스 창업 후 어느새 6개월. 조금은 고객사가 원하는 방향에 다가갔음이 결과로 보이길 희망한다.
링크디
어필리에이트 마케팅 서비스
오세용
신규 인바운드 리드가 세 곳이나 들어온 날이다.
유자랩스 프로덕트 오너와 개발자 3인은 모두 제품 개발에 집중한다. 때문에 제품 개발 외 모든 작업은 대부분 내 몫이다. 외부 채널 역시 내가 담당하고 있다.
채널이 분산되면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최소화했었지만 리드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고자 이런저런 작업을 해왔다. ▲콘텐츠도 만들고 ▲콜드 메일도 보내고 ▲홈페이지도 리뉴얼 하고. 최근에는 ▲라이브 채팅을 붙였다.
오늘 신규 인바운드 리드가 세 곳이나 들어왔다. 신기하게도 모두 다른 채널로 들어왔다. ▲유선으로 ▲이메일로 그리고 최근 만들어 둔 ▲라이브 채팅으로. 게다가 두 곳은 미팅을 요청해서 한 곳은 온라인으로 한 곳은 오프라인으로 미팅을 잡았다.
스타트업 대표자는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충분하진 않겠지만 처음보다는 조금은 나아졌지 싶다. 대단한 걸 해내면 좋겠지만, 대단한 걸 해내지 못하더라도 어쨌든 한 걸음 나아가는 게 중요하지 싶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몇 주가 흐르고, 몇 달이 지나면. 한 걸음이 모여 대단한 걸음이 되는 것 아닐까.
유자랩스는 오늘도 한 걸음 내디딘 것 같다.
링크디
어필리에이트 마케팅 서비스
오세용
스타트업에게는 고객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수 없이 들었고, 배웠고, 나름 실천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거기서 더 고객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두 번째 창업 후 4개월이 흘러서야 어렴풋이 느껴지는 듯 하다.
무언가를 파는 건 사실 내 전공이 아니다. 나는 메이커에 가까운 삶을 살았고 나아가 무언가를 쓰고, 말하는 데 익숙하다. 본업에서 가장 세일즈를 많이 했던 포지션은 <마이크로소프트웨어> 기자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마치 창업자처럼 내 삶과 일이 하나였던 시간이었다.
고객이 중요하다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상황에 제품을 우선했던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각자 잘 하는 것이 있고, 잘 하는 것을 더 잘해야만 엣지가 생긴다. 유자랩스는 제품 팀으로 구성 돼 있고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때문에 어떤 아이디어를 자료로 만드는 것보다 빠르게 제품화 하는 게 장점이 크다고 봤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제품을 만든 건 아니다. 유자랩스가 만들 수 있는 기술적 난이도와 도메인 허들 등을 고려했고 당연히 성장성과 현재 시장성도 봤다. 결코 아무 생각 없이 이 아이템에 베팅한 게 아니다.
다행이 이 전략은 통했다. 제품이 나오자 내가 할 말이 생겼다. 주변에 보여줄 게 생겼고 나아가 우리를 모르던 사람들이 우리를 볼 매개체가 생겼다. 어느 정도는 우리 가설이 맞아서 시장에서 반응도 있었다. 나는 확률이 적당히 있었던 베팅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제품을 보고 ▲사용하겠다 혹은 ▲특정 기능이 추가되면 사용하겠다고 말한 고객사를 추려봤다. 당시 고객과 대화했던 메신저나 메일 등을 캡쳐했고 날짜를 태그했다.
적극적으로 사용 의향을 밝힌 고객사는 9개사. 이중에는 ▲장기적으로 파트너십을 희망한 고객사도 있고 ▲몇몇 테스트 후 바로 사용을 시작한 고객사도 있다 ▲설치 후 바로 유료 결제를 한 고객사도 있고 ▲수차례 장문의 메일을 주고 받으며 제품 개선에 기여한 고객사도 있다.
전체 설치 고객사가 100개 사를 넘었으니, 적극 사용 의사를 표한 고객사는 10%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를 뒤집어서 적극 사용 의사를 표한 고객사가 10%에 가깝다는 것에 포커싱했다.
사실 이렇게 정리하기까지 지난 4개월 동안 내가 고객 수십 명과 대화를 했는지 몰랐다. ▲메일 ▲SNS ▲Q&A ▲유선 등 다양한 곳에서 고객과 대화했고 이 내용을 대부분 기록해뒀다. 고객 인터뷰를 각잡고 안 했을 뿐이지 나는 지속해서 고객 목소리를 들어왔다.
다음 제품 업데이트는 10월, 한동안 제품팀은 설계된 다음 버전을 작업하느라 바쁘다. 이 시기에 나는 현재 버전 제품을 들고 다양한 고객군을 만나 적극 인터뷰할 계획이다. 어쩌면 첫 타석에서 진루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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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아래 고객군에 해당하는 분이 계시면 인터뷰 대상으로 추천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인터뷰 대상자>
1. 자사몰에서 인플루언서, 체험단 등 제휴 마케팅을 운영해본 담당자 분.
2. 제휴 마케팅 대행사 소속으로 다양한 쇼핑몰 마케팅을 해본 분.
3.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이거나 체험단에 참여해본 분.
4. 자사몰을 운영하는 쇼핑몰 소속 임직원 분.
<인터뷰 신청서>
감사합니다!
링크디
어필리에이트 마케팅 서비스
오세용
자사몰 제휴 마케팅 운영 솔루션 <쇼핑파트너스> 인터뷰 참가자를 모십니다
안녕하세요.
유자랩스 오세용입니다.
유자랩스는 이커머스 솔루션 스타트업으로 이커머스 분야 비효율을 개선하는 솔루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첫 번째 제품으로 자사몰 제휴 마케팅 운영 솔루션 <쇼핑파트너스>를 출시했습니다.
<쇼핑파트너스>는 현재 카페24 스토어에 등록 돼 있는데요. 클릭만으로 모든 스크립트가 설치되며 별도 회원가입도 없이 카페24 로그인만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치된 <쇼핑파트너스>는 링크만으로 인플루언서 판매 내역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또한, GA에서 알 수 없는 ▲반품 ▲교환 ▲환불 등 쇼핑몰 데이터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성과에 따라 쇼핑몰 적립금을 지급해 보상할 수도 있습니다.
유자랩스는 지난 2023년 5월 법인을 설립해 ▲6월에 <쇼핑파트너스> 베타 버전을 출시하고 ▲8월에 유료 모델을 포함한 정식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9월까지 앱 설치 고객사는 100개를 돌파했는데요. 사용 고객사 중에는 연 매출 1천억 원을 넘기는 생활용품 쇼핑몰 등 굵직한 고객사도 있습니다.
<쇼핑파트너스> v1.1을 준비하며 보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고객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아래 인터뷰 고객군에 속하는 분이 계시다면 인터뷰에 참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터뷰 대상자>
1. 자사몰에서 인플루언서, 체험단 등 제휴 마케팅을 운영해본 담당자 분.
2. 제휴 마케팅 대행사 소속으로 다양한 쇼핑몰 마케팅을 해본 분.
3.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이거나 체험단에 참여해본 분.
4. 자사몰을 운영하는 쇼핑몰 소속 임직원 분.
<인터뷰 신청서>
많은 메이커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모두 좋은 제품을 위해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링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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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
두 번째 창업 출사표...유자랩스, 좋은 사람과 좋은 사업을.
안녕하세요.
오세용입니다.

1.
지난 2023년 5월, 두 번째 창업을 했습니다. 커리어를 이어오며 정말 제가 좋아하고 잘 맞는 사람들과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사업자가 나온 지 어느새 4개월째인데요. 사업 아이템을 잡고 유료 모델까지 만든 뒤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창업은 그냥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닌, 정말 꼭 성공해야만 하는. 제 커리어에서 가장 진지한 도전입니다. 창업 자체를 자랑하는 가벼운 모습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창업 자체가 자랑거리로 생각되지도 않고요. 그랬더니 벌써 4개월이 지났네요.
4개월이 지난 오늘. <유자랩스> 출사표를 올립니다.
2.
첫 번째 창업은 하루라도 빨리하고 싶어서 12월 31일에 퇴사 후 1월 1일부로 창업을 시작했는데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순진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창업인 <도밍고컴퍼니>는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만들었는데요. 한국의 뉴스픽스를 만들겠다며 애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많은 경험을 했고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됐으며 이후 커리어로 이어지기까지 했던 도전인데요. 결과적으로 창업 자체는 성공으로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두 번째 창업은 제가 할 수 있는 온갖 까칠함을 더했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은 무엇인지 ▲내가 가진 자원은 무엇인지 ▲도전해 볼 만한 분야는 어디이며 ▲적절한 진입 장벽은 어디인지 ▲어느 정도 기간을 투자해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이즈이며 ▲주어진 자원 외 도움을 받을 사람은 있는지 ▲그래서 지금 적절한 타이밍인지 등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머리에 온갖 걱정거리가 떠오르는데 해결되기 전에 더 많은 걱정이 쌓이고 있네요. 그래서 점점 더 까칠해지는 것 같아요.
3.
제가 창업한 회사는 <유자랩스>입니다. 이커머스 마케팅 솔루션을 만들었어요. 카페24 쇼핑몰에 설치할 수 있는 앱인데요. 쿠팡파트너스 같은 제휴 마케팅을 자사몰에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제품은 <쇼핑파트너스>라고 합니다.
<쇼핑파트너스>는 쇼피파이 앱스토어 제품을 보며 벤치마킹하기 좋은 서비스를 찾은 거에요. 지난 6월에 베타 버전을 8월에 정식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회원 대상으로 리퍼럴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이 흔한 아이디어를 구현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고 여전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없던 제품도 아니고 경쟁자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경쟁자 대비 차별점을 가질 수 있는 요소를 고민하며 만들었어요.
4.
첫째, 사용 진입 장벽이 낮습니다. 카페24 회원이라면 카페24 스토어에서 버튼 클릭만으로 스크립트가 설치됩니다. 회사에 연락해서 별도로 엔지니어 약속을 잡고, 쇼핑몰 아이디를 공유하는 등 행위는 필요 없습니다. 카페24 어드민에서 로그인/회원가입 없이 사용하실 수 있어요. 카페24 회원이라면 진입 장벽이 굉장히 낮습니다.
제품 자체의 진입 장벽을 낮추며 제휴 마케팅의 두 고객인 ▲쇼핑몰과 ▲인플루언서에 관한 불편을 해결하려 노력했습니다.
둘째, 쇼핑몰 관점에서는 SNS 지표가 아닌 실제 제품 판매 지표를 통해 보상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GTM으로 상품 구매 여정을 트래킹할 수는 있지만 구매 이후 여정은 GTM으로 트래킹하긴 어렵죠. ▲배송중 ▲교환 ▲환불 등 쇼핑몰 데이터를 연동해서 인플루언서 판매 지표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셋째, 인플루언서 관점에서는 실시간 판매 지표를 볼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인플루언서는 쇼핑몰이 공유해 주지 않으면 실시간 판매 지표를 볼 수 없죠. <쇼핑파트너스>는 파트너스 마이페이지를 통해 쇼핑몰 판매 지표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5.
스타트업은 린하게 MVP를 만들고 시장 반응을 보며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고 하죠. <유자랩스>는 지난 6월 <쇼핑파트너스> 베타 버전을 출시한 뒤 별도 마케팅 없이 100개 쇼핑몰이 설치했어요. 몇몇 고객사는 기능 추가를 요청하며 별도 미팅을 하기도 했고, 연 매출이 약 100억 원 되는 쇼핑몰에서는 <쇼핑파트너스>를 활용해 실제 인플루언서와 제휴 마케팅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지속해서 고객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6.
<유자랩스>는 풀타임 5명이 함께 만들고 있어요. 저를 믿고 <유자랩스>를 본업으로 함께 달리고 있는 동료들이 너무도 고맙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고작 2평 사무실에 책상 5개 놓고 각자 노트북을 가져와 사부작 사부작 제품을 만들어 준. 4개월만에 PG를 붙이고 유료 모델까지 출시해 준 동료들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삶에서 운이라는 것이 정말 큰 것이구나를 깨닫는 요즘입니다. 제가 모바일 개발자로 일했고, 첫 번째 창업도 해봤고, 기자도 해봤고, 다시 개발자로 돌아와 개발 팀장, 개발 부서장까지 경험했지만. 물론 지난 10여 년간 이런저런 경험을 적극적으로 해온 건 맞지만. 그 일련의 역사가 온전히 제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과정이라고 하기엔 제 노력보다 너무도 소중한 동료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풀타임 외에도 파트타임으로 함께하는 동료들을 비롯 정말 많은 지인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부족한 요소요소에 각 분야 전문가가 닿았고, 덕분에 크게 부족함 없이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너무도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7.
올해 초만 해도 24시간 울려대는 장애 알림 속에서 괴로워하던 스타트업 개발 부서장이었는데요. 시간이 흘러 소중한 동료들과 가슴 벅찬 도전을 진행하는 요즘이 종종 꿈만 같습니다. 가끔 늦은 밤 홀로 퇴근할 때면 캄캄한 밤하늘이 내 미래인 것 같아 ‘어쩌지?’ 싶기도 합니다. 그러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동료들과 만드는 우리 회사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마구 두근댑니다. 제품에 관해 깊은 관심을 보이는 연락을 받을 때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유자랩스>는 아직 제 계획과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요. 아마도 앞으로는 제 계획과 크게 벗어난 일도 많이 생길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는 장애물을 꾸역꾸역 넘어갈 겁니다. 그게 스타트업이잖아요. 웃음이 끊이질 않는 <유자랩스> 2평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라면 정말 꾸역꾸역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8.
언제나 저를 응원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와 함께하는 동료들 그리고 <유자랩스>에게도 많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블로그에서 더 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오세용
SI 개발자는 어떻게 IT 작가가 되었나…단독 저서 출판 후기
채널예스 칼럼니스트, 협업 도구 칼럼니스트. 스튜북스 도서 출판 2권 그리고 <팀장님, 우리도 협업 도구 쓸까요?> 단독 저서 출판까지. 이제는 정말 ‘작가’라 불리며 활동하게 됐다. 2011년 SI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해 2023년 작가라 불리며 활동하기까지 나는 어떤 경험을 지나왔을까.
이 글에서는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2010년, 포털사이트가 한국에서 힘을 키우던 그때 블로그의 매력에 빠졌다. 당시에는 ▲올블로그 ▲블로그코리아 ▲다음뷰 등 다양한 메타블로그가 생겨났고 블로그가 포털사이트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블로그에 관한 책이 서점 매대에 깔릴 정도로 당시 블로그는 핫한 미디어였다.
블로그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마치 현재 유튜브처럼 당시엔 블로그에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어쩌면 나도 블로그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글을 쓰는 건 꽤 허들이 높은 작업이다. 당시 읽었던 블로그 책은 하나같이 ‘일단 써라’를 강조했는데 콘텐츠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임을 인정한다. 세상에 없던 콘텐츠를 써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는데 그만한 내공은 없으니 이래저래 고민만 했다.
그러던 중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K리그 선수와 경기를 분석하고 K리그 팬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싸커래곤이라는 필명으로 작은 게시판을 받기도 하며 잠시 축구 칼럼니스트의 꿈을 꾸기도 했다. 다음뷰에 송고한 글 중 하나가 다음 메인에 걸리며 1만 뷰를 넘었을 땐 정말 축구 칼럼니스트가 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내게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게 해줬던 건 축구 칼럼이 아닌 서평이었다.
2010년 어느 날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용돈 대신 서평을 쓰면 2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2010년 최저시급은 4,110원이었다. 그런데 2만 원이라니. 5시간 시급을 받을 수 있다면 이건 꽤 남는 장사다 싶었다.
세용아. 이제 너가 너무 커서 엄마가 가르칠 수가 없겠다. 그러니 책을 더 많이 읽었으면 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 용돈을 줄게.
그때부터 나는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2만 원은 굉장한 유인 수단이 됐고 어느 달에는 15권을 읽고 서평을 썼던 적도 있다. 이틀에 한 권이라니. 확실히 돈은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처음엔 너무 두껍지 않은 책만 골랐다. 두꺼우면 서평을 쓰기 어려우니까. 소설책도 서평을 쓰기 어려웠다. 너무 전문 서적도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자기계발서를 주로 읽게 됐다. 그리고 그게 내게 어떤 트리거가 됐다.
당시 자기계발서는 ‘망설이지 말고 당장 해라’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자기계발서 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맥락은 ▲자기계발서는 똑같다 ▲읽으나 마나다 등인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자기계발서로 굉장한 변화가 있었는데 맥락은 비슷할 수 있지만 담긴 이야기는 저마다 조금씩 달랐다. 나는 그렇게 그들의 성공 스토리를 읽는 게 너무 좋았다.
내 서평은 ▲한줄평 ▲서평 ▲인상 깊은 문구 등으로 나뉘는데, 인상 깊은 문구를 쓰기 위해 책을 읽으며 컴퓨터에 앉아 문장을 모두 타이핑했다. 정말 좋은 책을 만나면 ‘필사’ 한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타이핑’을 하는 것도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요즘은 책을 사서 형광펜을 긋지만, 당시에는 학생 신분이라 돈을 아끼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그렇게 200권이 넘는 책의 주요 문장을 모두 타이핑했다.
사회에 나오자 솔직히 책을 읽기 쉽지 않았다. 강제하는 사람도 없었고 누가 2만 원을 준다 해도 굳이 몇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서평을 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커뮤니티 스튜>에서 친구들과 책을 읽자고 의기투합했고 분기에 1회, 2달에 1회를 지나 매달 모여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모임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2023년부터는 3개월 시즌제로 변경해 비슷한 카테고리 책 3권을 읽고, 서평을 쓰고, 토론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나와 함께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아래 신청서를 쓰면 된다. 환영한다.
(클릭) 2023년 스튜 독서소모임 시즌1 신청서
개발자로 일하며 많은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했다. 팀장, 부서장이 되면서는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주요 기술이 돼야 했는데 나는 커뮤니케이션에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 자신감의 바탕에는 그동안 200권이 넘는 책을 읽고 서평을 썼던 게 기본기가 됐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젠가 친구와 TV를 보다가 이런 말을 했다.
나 : 저 사람 너무 멋지다.
친구 : 뭐가?
나 : 책도 쓰고, 강의도 하잖아. 멋지잖아.
친구 : 책 쓰고 강의하면 멋진거야?
나 : 음… 응. 나는 그런 것 같아. 나도 책 쓰고, 강의하고 싶다!
그 뒤로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내가 바랬던 것처럼 책 쓰고, 강의하는 사람이 됐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나는 책을 1차 콘텐츠로 한 2차 콘텐츠를 만들어 냈다. 스튜 독서소모임을 하면서는 친구들의 서평을 서로 읽으며 피드백하기도 했는데 같은 콘텐츠를 읽고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다시 책이 주는 매력에 푹 빠졌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2차 콘텐츠가 아닌 1차 콘텐츠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22년 신간 출판 종수는 약 6만 1천 종이다. 대한민국 인구수가 약 5천만 명이니 이중 작가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다. 최근 콘텐츠는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발행되지만 여전히 종이책이 갖는 위상은 의미가 있다. 특히, 지적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자신의 책을 쓰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는 있을 것이다.
서평을 200개 넘게 썼다고 했지만 내가 그동안 200권만 읽은 건 아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지 못한 책도 있고 사두고 아직 펼치지 못한 책도 있다. 책의 앞부분만 조금 읽다가 내려둔 책도 많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좋아하는 한 교수님께서는 ‘책은 사는 것’이라 말했다. 그래서 책은 읽는 것 아닌가요? 했더니.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라 답했다. 그래, 책은 사는 거다.
사실 ‘나 작가야’ 하며 으스대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책에 ‘저자 오세용’이라고 적히면 얼마나 짜릿할까 싶었다. 게다가 적힌 내용은 모두 내가 쓴 것이니 그 내용을 강의 등으로 말하는 것 역시 무척 뿌듯할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책을 쓰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먼저 콘텐츠가 있어야 했다. 아무 말이나 쓸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서평을 쓸 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썼다. 하루 종일 앉아서 서평만 쓰던 시절도 있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가져온 글이 아닌 오로지 내 머릿속에 있는 내 이야기를 쓴다니. 얼마나 많은 콘텐츠가 쌓여야 책 한 권으로 만들 수 있을까 싶었다.
콘텐츠가 있다고 해도 콘텐츠 만드는 법을 알아야 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자서전을 기자나 작가에게 부탁해 쓰기도 한다. 대필이 아닌 말 그대로 타인의 시선에서 쓰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자신이 바빠서도 있지만 글을 쓸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나는 언젠가 성공한다면 내 이름으로 내 책을 내고 싶었다.
어쨌든 책을 읽을수록 특히, 정말 잘 쓴 책을 읽을수록 ‘작가’라는 내 버킷리스트는 멀어져만 갔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콘텐츠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SI 개발자로 4년, 창업자와 프리랜서로 2년을 보내던 어느 날, 메일을 받았다. 소프트웨어 전문지를 만드는 미디어인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거였다. 내가 창업했던 <도밍고컴퍼니>는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창업 이야기가 휘발되는 게 아까워 창업기를 칼럼으로 적었다. 그리고 그 창업기가 실제 미디어에 연결이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IT 기자가 됐다.
소프트웨어 전문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는 꽤 역사가 깊다. 1983년 창간해 현재는 정간했지만 IT 업계 시니어들에게는 꽤 친근한 전문지다. 나는 2018년,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기자로 일했는데 당시 편집장에게 콘텐츠 만드는 법을 배웠다. 내게 콘텐츠 만드는 법을 알려준 조병승 전 편집장님에게 감사를 전한다.

내가 출판에 참여한 <마이크로소프트웨어>는 총 6권으로 분기마다 발행되는 계간지를 만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 한 권을 위해 3개월 동안 200페이지가 넘는 콘텐츠를 편집장과 둘이서 발로 뛰며 만들었던 경험은 개발자가 기자로 변신하기에 충분한 농도의 업무였다. 이때 나는 ‘개발하는 기자, 개기자’라는 별명을 만들어 필자들에게 친근한 기자가 되려 했고 덕분에 정말 많은 개발자와 이어질 수 있었다.
콘텐츠가 출판되는 과정은 꽤 흥미로웠다. ▲주제를 선정하고 ▲필자 대상을 정하고 ▲필자를 컨택해 기고를 부탁하고 ▲콘텐츠 초안을 받고 ▲수정하고 ▲교열하고 ▲인쇄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출판에 관한 전반적인 사이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이후 기자를 그만두고는 출판사 <스튜북스>를 설립해 친구들과 실제 출판을 했다. 6권을 출판했던 경험을 살려 POD(주문형 출판) 북으로 2권을 출판했는데 이 과정에서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역시 직접 해보는 것이 가장 빠르게 배우는 것 같다.
(클릭) 스튜북스
그렇게 콘텐츠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실제 출판을 했지만 아직 작가라고 하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나는 단독 저서를 집필하고 싶었고 내가 만든 사이드 출판사가 아닌 실제 업으로 운영되는 출판사에서 출판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기회가 찾아왔다.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 어떤 콘텐츠를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은지는 사실 모호했다. 적어도 어떤 분야에 10년은 일해야 전문가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개발을 10년한 개발자로서 사실 10년도 짧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전문가로 불리기에 물리적 기간이 절대적일까 싶기도 하다. 결국 내 콘텐츠를 만드는 건 너무도 모호했다.
기자 생활을 마치고 개발자로 돌아온 나는 개발자 삶에 집중하는 한편 비즈니스 미디어 <와레버스>를 운영하며 콘텐츠에 관한 갈증을 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제안이 왔다.

IT 출판사 <비제이퍼블릭>에서 메일이 왔다. 당시 협업 도구 노션을 조직에 적용한 글을 썼는데 이후 지인의 요청으로 작은 모임에서 발표를 했고, 이어서 노션 공식 웨비나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그 내용을 블로그에 쓰고 노션 공식 웨비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그 콘텐츠를 출판사 편집자가 발견한 것이다.
당시 회의 중이었던 나는 애플워치 알림을 보고 심장이 두근댔던 기억이 생생하다. 메일을 주고 받으며 일정을 조율하는데 마침 출판사 <비제이퍼블릭>과 내가 속한 회사가 같은 건물에 있는 우연이 있었다. 그렇게 편집자님을 만났고 출판까지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사실 노션 도입기 콘텐츠는 출판은 커녕 노션 공식 웨비나까지도 생각하지 않았던 콘텐츠다. 이 이야기를 콘텐츠화 하는데 나를 적극 지지해 준 사람이 있다. 인공지능 기반 바이오 스타트업 포트래이 이대승 대표님은 내 이야기가 콘텐츠화 돼야 한다는 응원을 주셨고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콘텐츠를 발굴해 주신 분이다. 다시 한 번 이대승 대표님에게 감사를 전한다.
책을 읽으며 작가라는 꿈을 꿨고, 우연히 기자가 돼 콘텐츠 만드는 법을 배우며 책을 6권 출판했다. 이어서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2권 출판했고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비즈니스 미디어 <와레버스>를 만들어 이어왔다. 그리고 정말 우연한 기회에 내 커리어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 기회를 얻었다.
도서 <팀장님, 우리도 협업 도구 쓸까요?>는 2021년 3월 첫 제안 메일을 받으며 시작했다. 그리고 2022년 2월 출판했으니 딱 1년이 걸린 셈이다. 책을 출판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단독 집필을 위해 1년은 굉장히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1년까지 걸릴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책을 8권 출판해 본 경험이 있고 꾸준히 글을 써왔으니 훨씬 빠르게 출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심지어 콘텐츠도 준비된 상태이니 탄탄대로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과 다른 것은 단독 집필이라는 것. 그리고 이는 내 그동안의 모든 경험과는 다른 경험이었다.
출간 제의를 받고 한 달 뒤인 2021년 4월에 ‘출판권설정계약서’를 작성했다. 이제 정말 나는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책을 쓰기 시작하며 고려해야 할 게 참 많다. ▲어투 ▲들여쓰기 등은 물론 ▲어떤 도구로 쓸 것인지 ▲인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지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대제목, 소제목 등은 어떻게 표시 하는지 ▲본문 내 밑줄 등 표시는 어떻게 하는지 등 출판사와 협의할 일이 많다. 기자 시절에는 이 모든 것을 내가 필자에게 안내했으나 이제는 내가 출판사에 맞춰야 했다.
그렇게 사전 준비를 마치고 어느 날 카페에 앉았다. 이제 집필만 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책 한 권을 나 혼자서 다 써야 한다니. 생각해 보니 기자 시절에는 20명이 넘는 필자에게 ‘글 써주세요’ 연락하는 게 내 일이었다. 스튜북스 출판은 이미 친구들의 콘텐츠가 만들어진 상태에서 교열, 편집을 하며 출판한 게 내 일이었다. 책을 8권 만들었으니 9번째 책은 쉽다며 허세를 부렸는데, 9번째 책이 아닌 내 첫 번째 책이었다.

2021년 하반기에는 매주 주말 카페에서 살았다. 생각보다 고려할 게 많았다. 심지어 도서 <팀장님, 우리도 협업 도구 쓸까요?>는 협업 도구 이야기로 화면 캡쳐 이미지가 많았다. 이를 하나하나 캡쳐하고, 주요 포인트에 표시하는 등의 일이 모두 내 몫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캡쳐해둔 화면이 갑자기 업데이트가 돼 다 바뀌면 어떡하나 싶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또한 이미 콘텐츠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만들어 둔 콘텐츠는 전체의 1/3도 안 됐다. 나머지는 이 시기에 다시 쓴 것이다. 물론 미리 만들어 둔 콘텐츠가 책의 핵심 메시지인 건 맞지만,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위 기승전결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부족한 살을 채워 넣는 작업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MS워드로 1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다. 글을 쓰며 이는 굉장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집필을 마치고 베타리딩을 지나 디자인을 넘어 인쇄까지 가는 것도 꽤 시간이 걸렸다. 결국 내 손에 책이 쥐어지기까지 1년이 걸렸는데 사실 당시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늘 함께 쓴 책을 손에 쥐었는데 내가 단독 집필한 책을 손에 쥐니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모르겠더라.

그렇게 책을 받아보고 아마 대부분의 작가들이 하는 의식인 서점 방문이 남았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방문해 내 책이 꽂혀있는 걸 보니 그야말로 감회가 새로웠다. 2만 원을 받기 위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던 어느 대학생이 작가라는 꿈을 꾸며 10년을 지나 교보문고에 단독 저서 책이 꽂히다니. 사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 종종 주변 서점에 가서 내 책을 찾아보곤 한다.
단독 저서라고 했지만 이 책은 나 혼자 만든 책이 아니다. 도서의 시작인 집필 제안부터 출판까지 늘 ‘우리 책’을 만드는 나의 파트너로서 함께해 준 김수민 편집자님이 아니었다면 단언컨대 나는 작가가 될 수 없었다. 언젠가 다시 함께 ‘우리 책’을 만들 날을 손꼽으며 다시 한번 김수민 편집자님에게 감사를 전한다.
(클릭) 팀장님, 우리도 협업 도구 쓸까요?
서평으로 기본기를 닦으며 작가라는 꿈을 꿨다. 우연히 기자가 돼 콘텐츠 만드는 법을 배웠고 다시 우연히 내 콘텐츠를 응원해 준 사람을 만나 용기를 냈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는 파트너를 만나 꿈을 이루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이 이야기를 책을 출판한 2022년 2월부터 줄곧 쓰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작가가 된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너무도 뛰어난 작가님들이 많아 이정도 책으로 내가 ‘작가’가 됐다고 말해도 되나 싶었다. 그렇게 작가가 되고 실감나지 않는 1년이 지나면서 몇몇 연락을 받았다. 작가라는 이유로 얻을 수 있는 강연 제안이었다.
나도 책 쓰고, 강연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10년 전이다. 그런데 내게 책을 써달라고 하고, 강연을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기다니.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었다. 지난 1년은 내 커리어에도 큰 변화가 있었고 덕분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차분히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야 되돌아본 10년은 또 하나의 어떤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만약 어떤 꿈을 꾸고 있다면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이야기를 읽고 힘을 냈으면 한다. 결국 손에 쥘 수 있더라. 만약 어떤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면 내 이야기를 읽고 힘을 냈으면 한다. 결국 기회가 오더라. 만약 어떤 꿈의 크기에 압도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 한 걸음 나아갈 용기가 됐으면 한다. 생각보다 그리 거대하지 않을 수 있다.
내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며 뿌듯하다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 다음에는 내가 ‘강사’가 될 수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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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블로그에서 더 편히 보실 수 있습니다.
SI 개발자는 어떻게 IT 작가가 되었나…단독 저서 출판 후기 – 오세용닷컴
https://ohseyong.com/?p=3631
오세용
디스콰이엇 첫 글로 끈적한 퇴사기를 올려봅니다. 앞으로 이어질 콘텐츠의 빌드업이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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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추억이 있다. 추억은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하고 때론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저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남았을지도 모를 기억이 추억으로써 존재하는 건 아쉬움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추억이 아닌 아쉬움을 먹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신입사원 근속연수는 2년 정도라고 한다. 최근 개발자 근속 연수는 2년도 채 안 된다고 한다. 4년. 현재 내 커리어에서 4년은 무려 30%에 달하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리고 4년은 아쉬움을 남기기에. 그렇게 추억이 되기에. 썩 충분한 시간이다.
6개월 만에 블로그를 켜는 오늘은 내 지난 4년의 아쉬움에 관해, 내 추억에 관해 끈적하게 남겨볼까 한다.
2019년, 코드에프에 합류했다. 나는 코드에프의 3가지 이름과 함께했지만 이 글에서는 모두 코드에프라 표현하겠다.
20명 정도가 앉아있던 서울 영등포 어딘가. 좋은 기억을 남긴 옛 동료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1년 여 기자 생활을 하며 개발을 잠시 놓았지만 이들은 나와의 경험을 떠올리며 기꺼이 기회를 줬다. 그렇게 개발자 출신 기자는 다시 본래의 자리인 개발자로 돌아왔다.
내가 속한 곳은 코드에프TF 개발팀. 개발자 3명 중 한 명으로 익숙지 않은 스프링과 앵귤러를 다뤄야 했다. 만 6년을 모바일 개발자로 살아온 내게 풀스택을 지향하는 개발팀은 큰 도전 과제였다. 더욱이 상용 API를 만드는 팀이라니. 구독형 서비스를 만드는 팀이라니. 내게 이보다 좋은 기회가 있을까 싶어 두근댔다.
개발자를 떠났던 내가 다시 돌아오는 걸 보며 누군가는 비아냥댔다. 개발이 우습냐 묻더라. 그 말 때문이라도 나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모바일 개발자 경험을 가지고 백엔드 개발자라니. 이런 내 커리어에도 나는 팀에서 존중받으며 일했다. 그 존중 때문이라도 나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개발자 출신이랍시고 개기자라며 필드를 누빌 때도 마음 한 켠에는 나는 그다지 대단한 기술력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 생각 때문이라도 나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나 이제 개발자야.
집을 회사 근처로 옮겼다. 덕분에 출퇴근 시간은 온전히 내 잉여 시간이 됐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밤에 남아 기술서를 읽었다. 모바일 개발자로는 어찌어찌 일을 해냈는데 스택이 바뀌니 영 힘을 못 썼다. 열심히 하면 잘 하게 되겠지. 그 마음으로 그저 열심히 했다. 개발자로는 계속 그렇게 살았었으니까.
스스로 부족함이 걸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라도 하고자 했다. 팀 내 전문 QA가 없으니 다년간 SI 경력을 살려 QA를 빡쎄게 했다. 팀 내 전문 테크니컬 라이터가 없으니 기자 경력을 살려 API 개발가이드를 썼다. 코드에프는 초기부터 비즈니스에 의견을 낼 기회가 있었다. 짧은 창업 경력을 살려 이것저것 아이디어도 냈다. 조직에 비효율이 보이기 시작하고서는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을 적용했다. 이때부터 협업 도구며 업무 절차며 스프린트며 하나씩 조직에 의견을 냈다.
그렇게 2019년을 보내며 나는 가장 잘한 것 3가지 중 단연 첫 번째로 ‘개발자로 돌아온 것’이라 썼다. 그저 컴퓨터를 좋아하다 어찌어찌 개발자가 됐지만. 그런대로 나는 개발자라는 포지션을 좋아했나 보다.
2019년 코드에프는 내게 다시 개발자로 돌아올 기회를 준 조직이다.
2019년 아쉬운 것 하나를 꼽자면 좀 더 프로그래밍에 시간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분명 많은 시간을 코딩에 할애했지만 되돌아보면 그때가 유일하게 코딩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2020년은 내 커리어에서 가장 안정적이었다. 회사 5분 거리에 집을 얻으며 출퇴근 시간을 영어 공부와 독서, 운동 등으로 채웠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았고 개발 공부에 사용했다. 글도 많이 썼다. 그래도 에너지가 남았는지 <스튜북스>를 창업해 책을 내고, 비즈니스 미디어 <와레버스>를 키우기도 했다. 2023년에도 이어지는 투자소모임도 이때 만들었으니 안정적인 조직이 주는 장점을 제대로 누렸다 생각한다.
코드에프 API는 안정적으로 성장했고 우리는 이 사업이 앞으로 잘될 거라 믿었다. 구성원은 각자 맡은 바 역할을 해냈고 한 방향으로 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이 팀이 좋았다.
나는 이 조직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앞으로 더 큰 성장이 가능하도록 돕고 싶었다. 이에 협업 도구를 제안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등 조직의 기반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당시 리더들은 내 의견을 수용했고 이 일련의 작업을 내게 맡기는 믿음을 보여줬다.
나는 협업 도구 노션을 활용해 10명 코드에프TF에 적용했고 이 적용 과정을 블로그에 연재했다. 그리고 몇몇 곳에서 발표를 진행했고 한국 노션 공식 웨비나에서도 발표할 기회를 얻었다. 이때는 정말 이 활동들이 이후에 어떻게 이어질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개발자로서는 프론트엔드 Vue.js 코딩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서비스가 알려지며 내부 운영을 위한 어드민 페이지가 필요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메일과 유선으로 고객 대응을 처리했는데 다소 비효율적이었다. 이에 우리는 어드민을 만들어 고객 대응을 효율화하기로 했다.
당시 나는 어드민 페이지를 개발했고 프론트엔드 개발을 본격 맛봤다. 자바스크립트는 나를 꽤 괴롭혔는데 자바에 익숙했던 내게 자바스크립트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언어였다. 어쨌거나 프론트엔드 개발을 공부하며 어드민 페이지를 만들고 이후 고도화하는 데도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
특히 이때 설계된 Q&A 시스템은 내가 퇴사 할 때까지도 사용됐는데 홈페이지에서 고객이 Q&A 게시글을 올리면 API팀 팀원에게 순차 할당되고, 어드민에서 댓글을 달면 고객에게 이메일이 발송되는 등의 고객 대응을 위한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으로 인해 이후에도 많은 시간을 아꼈다. 뿐만아니라 사내 다른 팀과의 협업을 위해 별도 이메일 문의를 하던 것을 어드민 내에서 메일을 보내고 수신할 수 있도록 했다. 어쨌거나 API 운영 시스템에 관한 설계에 참여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또한 구성원을 하나, 둘 더 채용하기도 했는데 당시 유행했던 노션을 활용한 채용 페이지도 만들었고 실제 개발자 채용을 하기도 했다. 브랜딩에도 신경 썼는데 구성원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보도자료를 써서 배포하기도 했다. 기자 경험은 유용히 사용됐고 개발 외에도 여러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스타트업 코드에프가 좋았다.
협업 도구부터 시작해 어드민 시스템과 브랜딩 등 다양한 곳에 기여하며, 비록 지분은 없지만 나는 코드에프가 내 회사라고 생각하고 다녔다.
2020년 아쉬운 것을 하나 꼽자면 어렵게 만들었던 루틴을 코로나 앞에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이다. 출퇴근 10분 컷은 정말 너무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2021년은 코드에프가 사실상 다시 만들어진 해다. 기존 경영진이 퇴임하며 이사진이 새로운 공동 대표로 취임했다. 이들은 젊었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 의지와 에너지가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새로운 코드에프가 기대됐다.
[CODEF 개터뷰 #2] 서성권 이사 “다들 많이 버는 거, 그게 행복이다”
2021년은 조직을 재정비하는 한편 확장도 병행했던 시기다. 개발자를 2배로 늘렸고 기획, 디자인 등 제품 직군 전체가 늘어났다. 사업군도 확장했는데 코드에프 API 외 신사업 그리고 마이데이터 본허가를 취득하며 본격 핀테크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조직은 더 늘었고 나는 조직 내에서 시니어로 분류되며 개발 팀장이 됐다.
내가 케이크도 많이 사줬눈데...
API팀 개발 팀장은 다양한 과제를 부여받았다. 먼저 24시간 365일 운영되는 코드에프 API 서비스의 기술적인 문제를 담당했다. 이미 코드에프 API를 활용해 운영되는 상용 서비스가 많았고 기존 고객 대부분을 유지한 채 신규 고객사가 지속 증가했다. 초기부터 함께한 서비스의 지속된 성장을 경험하며 개발 팀장이라는 자리가 탐이 났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팀장이 되고 나니 내 생각과 다른 게 많았다.
먼저 업무량이다. 24시간 365일 운영한다는 건 생각보다 굉장한 무게감을 갖는다. 어쨌든 팀장이 됐으니 기존 팀장의 역할을 모두 가져오기 위해 노력했는데 속도가 나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다. 업무 시간은 어떻게든 커버하겠다만 업무 외 시간이 정말 문제였다. 퇴근 후는 물론 주말에도 API 서비스는 운영돼야 했고 사실상 이 역할은 개발 팀장의 몫이었다. 팀원일 때는 왜 몰랐을까 싶었던 부분이 많았다.
두 번째는 팀 관리다. 당시 API팀은 나를 제외하고 백엔드 개발자 2명, 프론트엔드 개발자 2명으로 구성됐다. 팀에서 관리하는 굵직한 웹서비스가 4개였고 개편 의지도 있었기에 프론트엔드 개발자를 줄일 수 없었다. 심지어 별도 퍼블리셔도 없으니 프론트엔드 개발자의 업무량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API팀은 API 서비스를 운영하는 팀으로 API 서비스가 주된 상품이었다. 때문에 개발 팀장으로서 이 팀 구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결과적으로는 백엔드 개발자들이 제 몫을 해줬고 프론트엔드 개발자들은 프론트엔드 개발 외 팀을 위한 여러 업무까지 해줬다. 내 커리어 첫 팀원이었던 이 4명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다. 고작 몇 살 더 많다는 이유로, 고작 몇 년 더 경험했다는 이유로 팀장이 된 나를 존중하며 함께해 준 당시 팀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서툴렀던 API팀 첫 회식은 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는 팀 간 협업이다. 구성원이 두 배로 늘며 조직은 50명에 달했고 기존에 없던 문제들이 생겨났다. 업무량이 늘어나며 조직을 늘렸지만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조직은 혼란스러웠다. 누가 오너십을 가져야하는지 명확하지 않았고 누구의 역할도 아닌 회색 영역에서는 서로의 의견이 충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의 의욕이 불타면 또 다른 문제를 낳기도 했다. 서로가 강하게 의견을 내다보니 때론 감정싸움이 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초보 팀장이던 나 역시 많은 실수를 했다. 어쨌거나 모두에게 필요한 성장통이었다.
단순히 의욕이 불탄 것이라면 언젠가 식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커리어 첫 팀장을 맡은 나는 몇 달이 흘러도 그 의욕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혹여나 나로 인해 서비스가 망가지면 어떡하지? 그래서 우리 고객 서비스에 영향을 미치면 어떡하지? 그래서 나로 인해 회사가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여러 우려 속에서 나를 가장 긴장하게 했던 건 내 팀원들이었다.
내가 부족한 팀장이라서 우리 팀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거라면 어떡하지? 내가 부족한 팀장이라서 우리 서비스가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리고 내가 부족한 팀장이라서 우리 팀원들이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해서, 좋은 커리어를 만들지 못하면 어떡하지?
매일 야근이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가장 먼저 출근했다. 주말에도 작업했고 언제나 온라인이었다. 나는 좋은 개발자이고 싶었고, 좋은 직원이고 싶었고 그렇게 코드에프에 기여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내 동기부여 중 가장 강력한 건 역시 내 팀원들. 나는 팀원들에게 좋은 팀장이 되고 싶었다.
좋은 팀장이라는 건 마치 첫사랑과 같이 애쓸수록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6개월이라는 짧았던 팀장 생활을 마쳤다.
2021년 아쉬운 것을 하나 꼽자면 좀 더 침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등바등 애쓰는 것 한편으로 조금은 차분했더라면 실수를 줄이지 않았을까 싶다.
조직은 무섭게 성장했다. 경영진은 구성원을 더 충원하도록 요구했다. 전 조직이 구성원을 늘였고 팀 구조에 문제점을 파악하던 내게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구성원을 설득해 개발자 5명을 충원하게 됐다. 기존 5명에 5명을 더해 무려 10명이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팀 구조를 지속 고민했다. A안, B안, C안을 넘어 F안, G안도 만들었다.
고객이 지속 늘었기에 기존 맨파워가 아닌 시스템으로써 서비스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수작업으로 하던 업무를 어드민 UI로 할 수 있도록 설계했고, 데이터 변경 시마다 배포하던 서비스를 DB에서 조회하도록 설계했다. 여러 프로젝트를 설계하며 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구성원을 충원하는 그림이었다.
2021년에도 그랬지만 2022년에는 정말 많은 이력서를 검토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원래도 까탈스러운 성격은 팀원을 뽑기 위해 그야말로 매의 눈이 됐다. 그렇게 충원을 진행하며 나는 짧았던 개발 팀장의 커리어를 마치고 개발 부서장이 됐다.
영광입니다.
개발 부서장이 됐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코드에프 API를 운영했다. 하지만 팀원을 충원하며 자원이 확보됐고 그동안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을 하나, 둘 바꿔갔다. API팀은 비로소 시스템화되기 시작했다.
부서장이 되며 어쨌든 직책이 더 높아졌다. 사실 조직 내에서 의견을 내고 행동하는 것은 초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팀원으로서 나를 만난 초기 멤버들과 부서장으로서 나를 만난 멤버들은 나를 다르게 받아들였다. 때문에 내가 어떻게 이들을 대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또한 2020년, 10명 TF때 도입한 협업 시스템은 조직이 어느새 100명을 향하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에 경영진과 협의해 협업 위원회를 만들고 전사 협업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프로젝트를 띄웠다. 마침 2021년에 집필한 도서 <팀장님, 우리도 협업 도구 쓸까요?>가 2022년에 출판되며 협업을 논하기에 적절한 배경이 됐다. 물론 출판 전과 후 내가 생각하는 내 언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 책 썼어요
구성원이 늘어나며 하고 싶은 것을 정말 많이 했다. 협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물론 사용 서비스에 내 아이디어를 적용하거나 이후 시스템 방향성을 결정하는 등 능력에 비해 과분한 기회를 얻었다. 결코 코드에프 API를 내가 홀로 주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아이디어를 정말 많이 녹일 수 있었고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경험치를 원하는 만큼 얻었다.
정말 좋은 동료들과 함께했다. 무엇보다 개발1부. 수천 개 이력서를 훑고 수십 명을 인터뷰하며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한 5명을 뽑았다. 한 명, 한 명 머리로 그리고 마음으로 뽑았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끔은 서로 다른 방향을 원하기도 했지만, 혹여나 그들이 이 글을 본다면 말하고 싶다. 이런저런 일을 모두 뒤로하고. 어쨌거나 나와 함께 개발1부에서 함께했던 우리 10명. 단지 그것 하나만으로 나는 여러분 모두가 정말 좋다. 그리고 고맙다.
점심시간마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피파를 하며 동료들과 정말 많이 웃었다. 매주 독서소모임을 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던 동료들도 있었다. 넓은 라운지에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하고 다양한 동료들 속에서 하루하루 웃음이 마를 날이 없었다. 나는 코드에프에서 함께한 내 동료들이 정말 좋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한 줌의 추억으로 변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2022년 아쉬운 것을 하나 꼽자면 여유를 갖지 못했고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것이다. 조직이 성장하는 과정에 늘 아등바등 더 잘하기 위한 고민만 했던 것 같다. 조금은 즐겨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2023년, 코드에프는 사라졌다. 아주 급하게 이렇다 할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의 충격은 내게 여전히 남아 있다. 사랑했던 것을 잃는 고통이라면 몇 차례 경험한 바 있지만 이 고통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마 평생 익숙해지지 않겠지.
대주주가 바뀌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지분 하나 없는 직원이었기에 경영적인 의사결정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간간히 들려오는 소문은 들었다만 갑작스럽게 진행될 줄이야. 대표가 사임했다. 새로운 대표가 취임했다. 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가를 바라보는 것 외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전사 10% 인원을 관리하는 부서장이 이러한데 주니어들은 오죽했을까.
많이 바뀌었다. 한 주, 한 주 바뀌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렸다. 동료들이 울었다. 라운지에 앉아 엉엉 울었다. 분명 어제만 해도 같이 웃던 그 자리에서 우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났다. 내가 좋아하는 동료들이 우는 게 너무 싫었다. 너무 아팠다.
술이 늘었다.
그동안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어리바리 합류했던 어느 2019년. 코드에프와 한 몸이 된 2020년. 책임감을 느끼며 조직을 만들던 2021년. 양어깨 무겁게 10명의 부서원과 함께하던 2022년. 그리고 모든 게 한 줌의 재로 사라진 2023년.
이미 벌어진 일. 돌이킬 수 없는 일. 심지어 내겐 발언권도 없는 이 일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런 일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생각하며, 다시는 겪지 않으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했다. 이 자본주의 시대에 이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동료들과 다시 웃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꼭 그럴 순 없더라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고 싶었다. 가능성. 그렇게 나는 어떤 가능성이 되어 보려 했다.
그렇게 나는 코드에프를 떠났다.
글쎄. 2023년 아쉬운 것이라. 내 동료들과 한 번이라도 더 말을 섞어볼 걸 하는 아쉬움.
어느 날 아침. 더운 날 밤새 낑낑대며 뒤척이다 땀 흘리며 깼다. 아직 알림이 울리지 않았는데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시간이 얼마나 됐나 했더니 알림까지 1분이 남았다. 그 순간 1분이 지나 알림이 울린다. 썩 끈적한 아침이다. 분명히 뽀송한 상태에서 누웠는데. 생각해보니 재미난 꿈을 꾼 것 같기도 한데. 충분히 잔 것 같은데 썩 개운하진 않다. 그래도 하루를 시작해야지.
4년 동안 꾼 꿈을 이야기 하라면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글쎄, 얼마 뒤 20분 강연을 해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오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얼마 전 90분 강연을 했는데 그것보다는 오래할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허락한다면 조금 더 하고 싶기도 하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술을 좀 가져오련다. 사실, 다시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거든.
어떤 가능성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떤 가능성이 되는 삶이라니 가슴이 썩 두근댄다. 어쩌면 오늘을 위해 지난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싶다. 여전히 함께하는 내 동료들을 보고 있자면 여전히 나와 함께 꿈꾸는 동료들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가능성은 이미 현실이 됐는지 모른다.
6개월만에 열어본 블로그. 다음 글에서는 내가 어떤 가능성을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지 나눠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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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4년, 끈적했던 꿈을 마치며…코드에프 퇴사기 – 오세용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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