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2021. 07
처음에는 수십페이지의 백서였어. 모두가 공감할 것 같았거든. 성경보다 읽기 힘든 사업계획서였지만, 그 당시의 나는 너무나도 만족했었지. 이제 사업은 그 글을 하나하나 실천하기만 하면 되겠다.
2021. 11
투자를 받는다는건 뭘까?
3년 전 나에게는 폼나게 투자받는거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 같아. 투자를 받고, 수십억원의 기업가치를 산정받고, 멋진 영상도 찍어보고.. 커다란 전광판 광고 단가를 알아보며 내 서비스의 트래픽이 급증하는 상상을 했었지.
[당시 바라본 코엑스 전광판]
2022. 02
물론 이때 투자를 받았어도 결국에는 잘났다고 생각했었던 나와 내 서비스를 자랑하는데 돈을 다 쓰지 않았을까(아마 못 받았겠지만). 웬만한 일들은 사람들 없이 내가 다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렇게 1년을 혼자 개발만 했다. 학점은 신경도 안 썼어.
1년을 그렇게 허송세월 보내고 나서야 문득 겁이 나더라. 마치 계시를 받은것 처럼, 내가 만든 이 프로덕트를 아무도 안써줄 것을 확신하게 됐어.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3시간동안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 성큼 나를 찾아온 좌절을 받아들이는데에는 그 3시간이면 충분했었지.
2022. 11
22년 연초부터 반 년동안 어떻게 하면 서비스가 예쁜 쓰레기로 남지 않을 수 있을지 정말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 해결하고 싶은 결제금융 문제는 더더욱 명확해져갔어.
추석날 오전 할머니댁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부모님께 도전을 해보겠다고 말씀드렸고, 남들이 취업을 준비할때, 나는 다시 재도약을 다짐했지. 부모님이 그렇게 말리셨어도, 난 해야만 했어.
[22년 추석, 내가 다시 일어났던 할머니댁]
2023.04
이번에는 결제금융 문제 해결에 진심인 사람을 애타게 찾으며 (하지만 또 혼자) 코드를 짜기 시작했고, 그런 나를 줄곧 지켜보던 10년지기 친구가 외대 근처 술집으로 찾아왔었지.
늦은 밤에 결제금융 문제 해결에 대한 내 진심을 담은 글을 보여줬었어. 그 후로도 몇 주를 설득한 끝에 point3팀은 처음 만들어졌다 (Let's fucking go)
2023. 08
나는 마지막 1년 남은 휴학을 신청했고, 우리 둘은 외대 원룸에서 살면서 당시에는 바이올렛 페이였던 point3 영업에 착수했다. 기억나? 영업의 ‘ㅇ’ 자도 모르는 우리는 그냥 막무가내로 고객사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방문영업을 뛰었었지. 그 뜨거운 여름을 나는 잊을 수가 없어. 너무나도 무대책에 무계획이었지만 문제를 풀고 싶은 진심만은 가득했지. 그 진심이 그분들에게 잘 전달되었을까.
[첫 방문영업에 사용했던 초라한 PPT]
2023. 12
연말이 되고, 나는 우리 둘의 한계를 깨달았다. 우리가 가진 너무 많은 구멍들을 같이 채워 나갈 팀원들을 찾기 위해 2인실 공유오피스에서 한 달 동안 수십명의 사람들을 만났었지.
사업은 99%의 운이라는 말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 나에게는 너무 과분한 팀원이 무급의 조건으로 하나 둘, 우리의 진심을 알아보고 같이 시장을 흔들자는 말에 공감해준 건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인거지. 우리는 법인 설립 1년만에 팀 깃허브를 만들었고, 심지어 출시되면 바로 도입을 하고 싶다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어.
2024. 03
투자를 받는다는건 뭘까?
나와 10년지기 친구뿐이던 팀은 7명까지 커졌고, 현금이 줄어드는 속도를 보며 나는 투자를 받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어. 명확하고 거대한 문제에 도전하는 우리 팀, 나에 대한 팀원들의 공감, 응원, 믿음.. 전부 나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축복인게 더 분명해지고 있었거든.
팀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어. 수천만원의 영끌 자금과 가수금이 된 집 보증금마저 모두 소진돼서 사무실을 빼야 하는 때가 되었을 때, 우리를 몇 달 간 지켜봐주시던 두 분의 어른들 덕분에 우리 팀은 두 달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지.
[새벽, 화곡동 전산실]
2024. 05
투자사들을 찾아다니면서 왜 우리 팀이 멈추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지, 우리 팀은 어떤 팀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했어. 이딴 사업 아이템 개나 줘버리라는 험한 말들을 들으면서도, 나는 같이 사는 너희들 덕분에 견딜 수 있었어. 받았던 엔젤 투자금도 다 소진되고 다시 한 번 숨이 막혀와도, 우리, 그리고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생각하며 매번 마음을 다잡고 미팅에 미친듯이 임했다.
지금
우리 팀이 시드 투자 유치에 성공하기까지는 6개월이 넘게 걸렸어. 정말 파산 직전인 우리들을 구한건 나도, 투자자도, (기독교를 믿는 몇몇에게는) 예수님도 아니고, 우리의 진심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처음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책임의 무거움과 어려움에 대한 달관이 거의 전부다. 우리 서로가 있기에, 나는 행복한 것 같아. 이제 본격적으로 PG시장의 문제를 풀어야겠어. 나는 대한민국의 허리인 사업자들이 수수료로 착취되는 꼴은 절대로 못봐주겠어. 내 진심을 믿고 응원해주는 모든 분들을 위한, 우리 팀원들을 위한, 대한민국의 사업자들을 위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6월의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