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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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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가 내게 준 깨달음

필자가 사는 신림에는 전도피플(전도를 하는 피플)이 상당히 많다. 수 많은 인파들과 함께 신림역으로 향하고 있을 때면 군중들 사이에 숨어있던 전도피플들이 마치 차도를 향해 손을 휘젓고 있는 손님을 발견한 개인택시처럼 깜빡이 없이 훅 들어와 준비한 멘트를 쏟아내곤 한다. (뒤에서 보고있으면 상당히 흥미롭다)

포교헌팅의 메카, 사당역을 내 집 드나들듯 방문했던 경험들로 전도피플들의 외형과 내뱉는 첫 마디만 들으면 어느 종파에서 왔는지 알 수 있는 필자는 그들을 뿌리치지 못해 곤란해 하고 있는 사회 초년생들을 구출한 경험도 다수 존재한다. 신림으로 이사한 당일부터 전도피플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잊고 지냈던 중학교 동창을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친 것처럼 반가운 기분까지 들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회포를 풀고 싶었으나 반가운건 나 뿐만 이었을까? 2023년 최신 포교 트렌드를 알고 싶었지만 내게 말을 걸어주는 이는 없었고, 먼저 말을 건다면 도망가기 일쑤였다.(이들은 부끄러움이 많아서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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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역 앞을 지나갈 때 마다 내게 쥐어주는 신천지 전단을 보며 최신 현황을 파악하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을 깨닫고 신천지에 대한 흥미가 생기던 최근, 전단지를 통하여 머리가 깨이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공유해보려 한다.


신림역 신천지 신도들의 경우 내가 자주 마주했던 사당역의 신도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사당역에서 마주한 신도들의 경우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남녀가 3~4인 정도 모여있어 스스로를 배우, 어플리케이션 개발팀, 조별 과제를 진행하는 대학생들로 소개하여 설문조사에 참여해달라고 빌드업을 하고, 대화에 진척이 생긴다면 그때 조심스레 성경 얘기를 꺼내는 경우가 대부분 아니 모두 다 이랬다. 이렇게 교과서적인 포교 양식에 익숙해졌던 걸까? 마치 헬스장 홍보 전단지를 뿌리듯 (실제로 스크린 골프, 헬스장-필라테스 전단지를 뿌리시는 집단에 섞여있기도 하다) 지하철에서 나오는 내게 무심하게 건내는 전단지는 나의 허를 찔렀고 그리하여 나는 신천지 내부에 12지파 이름으로 된 축구팀 12개가 리그전을 펼친다는 사실과 신천지 공식 유튜브 채널이 2개, 어플이 1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전단지' 역시도 허를 찔려 받게 된 전단지 중 하나 였다. 역술가 차림새를 하고 계신(이 분들도 내 관심 대상이다) 할아버지 한 분이 커피숍으로 향하는 내게 전단지를 건내주었고 얼핏 볼 수 있었던 '생로병사' 라는 글자에 흥미가 생겨 커피숍에서 정독을 하기 위해서 전단지를 받아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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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라는 키워드 떄문일까? 대순진리교를 기대 했던 나는 성경으로 귀결되는 멘트에 실망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좀 유니크한 교회 전단지라고 판단하고 전단지를 버리려는 찰나, 원 안에 투명도 27% 한자로 써져있는 '신천지' 글자를 마주했을 때는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쳤던 중학교때 동창을 다이소에서 또 마주친 기분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홍보 문구 선정에 놀라하던 차, 중장년, 노령인구가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그들의 관심사에 맞는 홍보문구로 포교를 한다는 점을 깨닫고 감탄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를 놀라게 한 부분은 따로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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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비워져 있는 무료상담문의 칸 이었다.

신규 유저 유입에 필요한 유잃한 소통창구인 상담문의 칸...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상담 문의칸을 보며, 앞 뒷 장을 번갈아 가며 이메일 주소, 어플 안내, 전화 번호 등이 적혀있는지 확인했다. 전단지 그 어느곳에도 연락처가 없었으며 찾아와야 하는 교회 주소조차 없었다. 연락처가 누락이 된 것이라 생각을 결론지으려 하던 그 때, 내 머리 속에 영화 <쿵푸 팬더>의 한 장면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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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스스로 용의 전사가 될 수 없다고 낙담한 포가 집으로 돌아와 아빠에게 물어본 가문 대대로 내려져 오던 국수 맛의 비법에 대한 대답이었다. 특별한 일과 특별한 지위, 대단한 성취를 위해서라면 그 이름에 걸맞는 '비법'이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방어기제를 만든다. "난 그 비법을 몰라서 못해" 와 같이 비법에 대한 환상은 자신이 도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탈출구를 마련하여 '도전을 두려워 하는 나' 가 아닌 '의미 없는 도전을 피하는 현명한 나'로 스스로를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준다.

비어있는 용 문서에 실망한 포는 아빠가 이야기한 국수 맛의 비밀을 듣고 용 문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은 포는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타이렁을 제압하고 진정한 용의 전사로 거듭난다.

신천지가 전단지를 매개하여 헤드라인에 언급된 '생로병사의 비밀' 같은건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 방대한 가르침을 한 명 한 명에게 강의를 해주는 것이 아닌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비어있는 용의 문서를 쥐어주어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끔 유도하는 우그웨이 사부를 자처한다. 보잘것없는 전단지 한 장에 담은 '진정한 가르침'이 내 마음을 울렸고, 이러한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떄문에 종교라는 무겁고 민감한 주제를 이용하여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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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끝까지 봐준 모든 메이커 분들이 종교에 대한 어떤 견해를 갖고 있던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신천지와 쿵푸팬더의 가르침만큼은 갖고 자신있게 살아가길 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야기에 걸맞는 책 추천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모두들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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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

반월

춤만 추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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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or Die

매일 같은 옷, 같은 곳을 보며 앉아 있는걸 못 견뎌하던 고등학생은 도피처였던 춤과 사랑에 빠져 댄서가 되기로 마음 먹습니다. 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에 감화되고 그 자유로움에 취해 잠보다 춤이 더 좋다고 1년에 몇 개월은 집 대신 연습실 쪽잠을 자곤 했습니다. 가장 좋아했던 말은 "Dance or Die" 였고 오랫동안 제 평생의 모토라고 생각하고 말해왔습니다. 20살에 만난 은사님 덕에 대기업 엔터에서 일도 해보고, 학원에서 아이들도 가르쳐보고, 퍼포먼스 팀에도 들어가 대회 활동 수십 개도 해봤습니다.

늘 무시만 받는 것 같던 제 춤이 어느덧 장학금이 되어 돌아오고, 최우수상이 되어서 돌아오고, 안무에 대한 찬사로 돌아와 '일이 이렇게 잘 풀려도 되나' 생각이 들 때 쯤 연습 중 생긴 부상으로 손목 수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오른 손목을 다쳐 1년 반 동안 왼쪽 손목으로만 생활하다 보니 왼쪽 손목도 아파왔습니다. 왼 손목도 수술을 해야 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악몽처럼 저를 괴롭게 했고, 눈물과 술 없이 잠을 자기 어려운 날들을 버텨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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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에서 배우는게 더 많습니다. 닌자 거북이처럼 말이죠

전화위복이라고 할까요? 손목 때문에 현역 대신 공익근무를 할 수 있게 된 저는 법원 도서관 사서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 배치받게 되었습니다. 동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된 수술 이후 급격하게 친해진 책을 손 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공간에서 일을 하게 된건 너무나도 큰 축복 이었습니다. 그게 공익 근무고, 법원이었기 때문에 제가 배울 수 있는 세상이 있었습니다.

공무원들의 낮은 직업-윤리의식, 엘레베이터 타고 내리는 순서까지 정해져 있는 계급제의 암담함, 최소한의 예의 뒤에 느껴지는 판사들의 특권의식, 방청을 통해 엿볼 수 있던 피고인들의 기구한 인생사, 성과가 가져다 주는 보상은 '더 많은 일' 밖에 없기 때문에 능률 보다 줄 잘 서기에 집중하는 조직문화 등 셀 수도 없는 이 사회의 구린면들과 마주해야 했던 저의 21개월은 어찌나 흥미로웠는지 춤에 생각도 잊게 만들 정도 였습니다. 이때 의 경험과 제가 읽었던 75권의 책은 "날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날 강하게 만든다" 는 니체의 말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 것도, 공익 소집 해제일을 기점으로 화려한 데뷔를 기획했던 차에 책을 나르다 생기게 된 무릎 염증으로 1년 가까이 뛰지도 못하는 지금도 전만큼 힘들지 않은걸 보니 확실히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뭐라도 하자' 의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계 정상급 댄서가 되어 대중들에게 춤을 알리고자 했던 제 계획은 이제 앞뒤를 바꿔 일단 춤을 못추는 지금은 알리는 일에 집중하고 몸이 회복이 되면 다시 춤을 시작해 최고가 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적고 보니 인생계획 피봇이네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살려구요

춤만 추고 싶었지만 부득이하게 춤 이외에 다른 생업을 찾아야하는 지금의 저는 제가 댄서로서 불편했던 공연 예술계의 부족한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한 서비스를 만들려 합니다. 예술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다른 컨텐츠로의 양산을 촉진하는 평론, 공연 예술계의 정보들을 담고 있는 데이터 베이스, 아티스트와 소비자들이 직접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커뮤니티 3개의 핵심적인 기능을 담는 서비스를 만들어 장차 공연 예술과 관련된 모든 산업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려 합니다.

이런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택도 없으리란걸 알기 때문에 동료들과 자본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 스타트업 컴퍼니를 운영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세상 잘난 사람들도 뛰어들었다 쪽박차는게 창업인데 하물며 춤만 추던 저는 남들보다 몇 배는 노력해야 같은 선상에 있으리란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달라, 나는 잘 할 수 있어"가 기업가 정신 아니겠습니까? 이왕 하는거 죽을만큼 열심히하고 실패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게끔 하려고 합니다. 아 물론 성공할 겁니다(잊지마 기업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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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콰이엇 처음 가입하고 글 좀 쓰시는 슨배임들 보고 자극와서 끄적여 봤는데 미래에 제가 쓴 글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위치가 되도록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사랑하는 것만 하다가 죽고 싶습니다. 다른 몽상가 분들도 모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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