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만 추고 싶었습니다
Dance or Die
매일 같은 옷, 같은 곳을 보며 앉아 있는걸 못 견뎌하던 고등학생은 도피처였던 춤과 사랑에 빠져 댄서가 되기로 마음 먹습니다. 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에 감화되고 그 자유로움에 취해 잠보다 춤이 더 좋다고 1년에 몇 개월은 집 대신 연습실 쪽잠을 자곤 했습니다. 가장 좋아했던 말은 "Dance or Die" 였고 오랫동안 제 평생의 모토라고 생각하고 말해왔습니다. 20살에 만난 은사님 덕에 대기업 엔터에서 일도 해보고, 학원에서 아이들도 가르쳐보고, 퍼포먼스 팀에도 들어가 대회 활동 수십 개도 해봤습니다.
늘 무시만 받는 것 같던 제 춤이 어느덧 장학금이 되어 돌아오고, 최우수상이 되어서 돌아오고, 안무에 대한 찬사로 돌아와 '일이 이렇게 잘 풀려도 되나' 생각이 들 때 쯤 연습 중 생긴 부상으로 손목 수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오른 손목을 다쳐 1년 반 동안 왼쪽 손목으로만 생활하다 보니 왼쪽 손목도 아파왔습니다. 왼 손목도 수술을 해야 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악몽처럼 저를 괴롭게 했고, 눈물과 술 없이 잠을 자기 어려운 날들을 버텨야 했습니다.
시궁창에서 배우는게 더 많습니다. 닌자 거북이처럼 말이죠
전화위복이라고 할까요? 손목 때문에 현역 대신 공익근무를 할 수 있게 된 저는 법원 도서관 사서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 배치받게 되었습니다. 동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된 수술 이후 급격하게 친해진 책을 손 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공간에서 일을 하게 된건 너무나도 큰 축복 이었습니다. 그게 공익 근무고, 법원이었기 때문에 제가 배울 수 있는 세상이 있었습니다.
공무원들의 낮은 직업-윤리의식, 엘레베이터 타고 내리는 순서까지 정해져 있는 계급제의 암담함, 최소한의 예의 뒤에 느껴지는 판사들의 특권의식, 방청을 통해 엿볼 수 있던 피고인들의 기구한 인생사, 성과가 가져다 주는 보상은 '더 많은 일' 밖에 없기 때문에 능률 보다 줄 잘 서기에 집중하는 조직문화 등 셀 수도 없는 이 사회의 구린면들과 마주해야 했던 저의 21개월은 어찌나 흥미로웠는지 춤에 생각도 잊게 만들 정도 였습니다. 이때 의 경험과 제가 읽었던 75권의 책은 "날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날 강하게 만든다" 는 니체의 말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 것도, 공익 소집 해제일을 기점으로 화려한 데뷔를 기획했던 차에 책을 나르다 생기게 된 무릎 염증으로 1년 가까이 뛰지도 못하는 지금도 전만큼 힘들지 않은걸 보니 확실히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뭐라도 하자' 의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계 정상급 댄서가 되어 대중들에게 춤을 알리고자 했던 제 계획은 이제 앞뒤를 바꿔 일단 춤을 못추는 지금은 알리는 일에 집중하고 몸이 회복이 되면 다시 춤을 시작해 최고가 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적고 보니 인생계획 피봇이네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살려구요
춤만 추고 싶었지만 부득이하게 춤 이외에 다른 생업을 찾아야하는 지금의 저는 제가 댄서로서 불편했던 공연 예술계의 부족한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한 서비스를 만들려 합니다. 예술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다른 컨텐츠로의 양산을 촉진하는 평론, 공연 예술계의 정보들을 담고 있는 데이터 베이스, 아티스트와 소비자들이 직접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커뮤니티 3개의 핵심적인 기능을 담는 서비스를 만들어 장차 공연 예술과 관련된 모든 산업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려 합니다.
이런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택도 없으리란걸 알기 때문에 동료들과 자본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 스타트업 컴퍼니를 운영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세상 잘난 사람들도 뛰어들었다 쪽박차는게 창업인데 하물며 춤만 추던 저는 남들보다 몇 배는 노력해야 같은 선상에 있으리란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달라, 나는 잘 할 수 있어"가 기업가 정신 아니겠습니까? 이왕 하는거 죽을만큼 열심히하고 실패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게끔 하려고 합니다. 아 물론 성공할 겁니다(잊지마 기업가 정신).
디스콰이엇 처음 가입하고 글 좀 쓰시는 슨배임들 보고 자극와서 끄적여 봤는데 미래에 제가 쓴 글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위치가 되도록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사랑하는 것만 하다가 죽고 싶습니다. 다른 몽상가 분들도 모두 화이팅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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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잘추는 사람들 너무 멋있어요 새로운 시작도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공연예술 전공생으로서 응원합니다.
공연예술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와~ 글도 잘쓰시네요.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넘 멋지고 새로운 시작도 화이팅입니다~!!
반월님 메이커로그가 Must Reads #257에 선정되었어요. https://stib.ee/6z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