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Di 메이커로그] 1. Pivot
작년 12월 난생 처음 법인이란 것을 세운 뒤, 다양한 경험들이 먼지처럼 켜켜히 쌓였으나 당장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단 한번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정리되지 않고 레거시로 남아버린 경험들은 나의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되어 나를 괴롭히기에 충분했다. 여전히 내일은 두렵지만 정리해야만 한다. 전략을 세우기 위해, 고민보다는 행동을 취하기 위해.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7월 초 피봇 아이디어 회의 이후, 8월부터 만들기 시작해 8월 17에 런칭한 <나만의 AI 헤어스타일리스트 - BiDi> (https://bidi.style)가 이제 3주가 되어간다. 꽤 오랫동안 묵혀왔던 생각들을 정리함과 동시에, 우리가 처음으로 작게 실험한 것들, 그리고 실험에서 배운 것을 정리해보았다.
얼마나 자주 올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BiDi를 만들어가며 종종 정리가 필요할때 즈음하여 메이커로그로 기록해두려 한다. 기록을 하는 시점과 보는 시점의 서비스가 많이 달라져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괜찮다. 예상했던 대로 진행된다면,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이유가 없어질 것만 같다.
(1) BiDi를 만들게 된 이유
왜 BiDi를 시작했는지를 먼저 깊게 고민해봤다. 이야기의 시작을 위해선, 6월 말까지 개발하고 있었던 이전 프로덕트 <리얼한 AI 얼굴편집 어플리케이션 - BiDi> (https://bidi-ai.com)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시작은 사실 단순했다. 학교에서 논문을 보다가 GAN 이라는 AI 네트워크 구조를 통해 사실같은 이미지를 생성한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진짜 같은 가짜 사람 사진을 무제한으로 만들어 낸다라니?) 이러한 GAN 구조를 잘 변형하면 헤어스타일/메이크업까지도 사실적으로 편집이 가능한데, 근 시일 내에 이러한 기술이 뷰티/미용을 경험하는 방식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계적으로도 뷰티 테크라는 이름 아래 AI/AR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소비자 경험 혁신이 시도되고 있음을 찾을 수 있었고, 뷰티/미용 분야의 디지털 전환이 필연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 글로벌하면서도 혁신적이고, 멋진 생각이었다. 참 무모했다.
(2) 리얼한 AI 얼굴편집 어플리케이션 - BiDi
우선, 리얼하게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을 직접 연구/개발하기 시작했다. 원본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리얼하게 앞머리를 생성/제거하거나, 머리 길이를 조절한다거나, 염색, 립 체험 등이 가능한 얼굴편집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었다. 첫번째 BiDi였다. 3개월 여를 개선/운영하며 이용자도 1,000여명까지 늘었으나, 첫번째 BiDi에는 크리티컬한 2가지 문제가 있었다.
- 최신 연구결과를 활용하다 보니, 개선을 위해선 AI 연구를 직접 진행하거나 다음 연구결과가 공개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 1번의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기능이 한정적이고 GPU 리소스 제한으로 속도 역시 느리다보니 리텐션이 낮았다. 거의 없었다.
처음 사용하는 유저들이 재밌어요!, 진짜처럼 바뀌어서 신기해요!, ~한 다른 기능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라는 피드백을 남겨주었지만, 피드백을 반영해 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기능 하나마다 논문 한 편을 새롭게 써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급한대로 리얼한 AI 카툰화 기능 정도를 붙여봤으나, 결국 풀고자했던 문제가 뭔지조차 모르게 되어버렸다. 첫번째 BiDi는 Lean하게 개발할 수 없는 제품이었고, 돈도 없고 시간도 없으며 인원이라고는 3명의 주니어 개발자 뿐인 우리 조직에 적합한 제품일 수 없었다. 구체적이지 않은, 너무나 크고 추상적인 문제를 풀고자 했던 제품이었다.
신기한건 대학 입학 때부터 에릭 리스의 Lean 스타트업, YC의 강의 등을 좋아했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며 들었는데, 그들의 말을 정확히 반대로 실행했다라는 점이다. 첫 문단부터 확인할 수 있듯, 직접 연구/개발부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러지? 쓰고봐도 정말 어이가 없다. 그땐 정말 고민 많이했고, Lean하게 하자고 수백번은 되뇌었던 기억이 난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지식이 이렇게나 무섭다. 가설을 설정하고, 프리토타이핑하고, MVP를 만들고 반복적으로 Iteration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논문부터 읽고 연구했다.
(3) 그래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건 뭔데?
7월 초 새로운 아이디어 회의를 위해 회의실에 앉았다. 기술력이 부족한게 문제이니 기술을 고도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갈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할지 등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회의가 며칠간 이어졌다. 치열했던 논의 끝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팀이 추상적으로 나마 정의하고 있었던 문제란 것이 Generative AI라는 기술의 문제였다라는 점이었다. 이 기술이 혁신을 가져올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술을 어떻게 잘 구현해낼지의 문제를 풀고 있었다. 문득 이런 질문이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건 뭔데?”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정의되어 있지도 않았고, 필요로 하는 니즈도 정의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솔루션은 당연히 몰랐다. 무엇보다 대표인 내가 막연한 가설에 기대어 제품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뷰티/미용 분야의 디지털 전환이 필연적이다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이고, IR의 마지막 장표에서나 잠깐 곁들일 이야기이다. 적어도 스타트업의 대표는 응당 특정한 고객의 특정한 문제를 풀고 있어야 하며,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고객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니즈를 갖고 있어서 왜 사용하는지에 대해 전문가여야 한다. 그러지 못했다. 처음부터, 문제 정의부터 다시해야 했다. AI 엔지니어가 아니라 스타트업 대표가 되어야 했다.
(4) 7월 15일, 설문조사라도 돌려보자
설문조사를 돌려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설문조사가 유의미하든, 무의미하든 우리는 고객이 누구일지, 어떠한 문제를 겪고 있을지에 대한 어떠한 힌트라도 찾아야 했고, 시장에 발을 딛어야 했다. 이전에 헤어스타일 체험 기능을 준비하며 헤어 시장에는 카카오 헤어샵 정도 제외하고는 어떤 서비스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즈니스는 모르겠지만 유저들이 느끼는 문제 만큼은 잔뜩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헤어스타일링 관련 설문조사라는 이름으로 이곳저곳 돌려보았다. 5분께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드린다고 하며.

웬걸, 며칠만에 147개의 응답이 왔다.
헤어스타일을 어떤식으로 찾아보는지,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한 후 실패한 경험이 있는지, 왜 실패했는지 등에 대해 물었는데, 대부분이 인스타, 네이버, 카카오헤어샵 등으로 헤어스타일을 찾아보고 있다고 응답했고, 약 75%의 응답자가 헤어스타일에 도전한 뒤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 우리는 디자이너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응답이 많을거라 생각했지만, 얼굴형이나 이목구비 등 외형적으로 어울리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실제로 최근 헤어 컨설팅 유튜버 들은 얼굴형 별로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에 대한 컨텐츠를 제작하여 많은 조회수를 올리고 있었고, 실제로 직접 컨설팅 후 높은 금액을 받고 있기도 했다. 숨겨진 니즈를 정말 잘 공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가진 AI로 분석을 자동화하고, 헤어스타일을 추천해준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먼저 니즈부터 확인해야 했다.
(5) 8월 1일, 사전신청 런칭 후 실험 결과
프리토타이핑을 기획했다. 사전신청 페이지를 만들어서, AI가 얼굴 분석해주고 헤어스타일 추천하는 서비스 사전신청 페이지를 기획했다. 목표는 아래와 같았고, 정말 최소만 개발해서 런칭했다. 크게 잡는 것 보다는 정말 최소한의 가능성이라도 발견하고 싶었다.
- 사전 신청 번호 입력: 100명 이상
- 유입 후 사전신청 비율: 10% 이상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 사전 신청 번호 입력: 253건
- 유입 후 사전신청 비율: 20%
우선 번호가 꽤나 많이 모였고, MVP를 개발해서 배포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첫번째 BiDi의 전처리 AI 모듈을 재활용 하기로 했고, 팀원 중 한명이 헤어스타일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실제로 얼굴형 별로 어울리는 헤어스타일, 앞머리, 컬러 등에 대한 추천 알고리즘을 짰는데, 코딩은 한개도 어렵지 않았고, 도메인 놀리지가 가장 큰 장벽이었다. 부족하지만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6) 8월 17일, MVP 런칭 후 실험 결과
AI 얼굴 분석과 헤어스타일 추천이라는 최소의 기능을 기획했고, 한번 와서 분석과 추천을 받고 어떻게 리액션 하는지, 피드백을 주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조금씩 마이너한 기획이 붙었는데, BiDi라는 가상의 AI 헤어스타일리스트와 대화하는 형태로 구성해서 BiDi가 얼굴도 분석해주고 헤어스타일도 추천해주는 느낌의 기획이 되었다. BiDi라는 가상의 스타일리스트를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기한은 딱 2주. 이 정도 볼륨을 빠르게 개발하는 건 자신있었다. 코어한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MVP 목표>
- (KPI) 주관식 피드백 100개 (분명 큰 니즈가 있다면 이 솔루션에 부족함을 느끼고 피드백 할 것이다.)
- (기획) 유저 인터뷰 최소 10명 이상 진행 (사전 신청자 중 응답자 중, 실제 Pain Point 인터뷰)
- (개발) 완료율 25% 이상 (유입 후 중도 이탈률 관련 지표, 서비스 퀄리티 측정 지표)

8월 17일 ~ 9월 4일 2주 반이라는 시간 동안 사용자들의 니즈가 무엇인지 배웠고 꽤 괜찮은 성과를 얻었다. 정량적 결과와 정성적 결과 각각은 다음과 같다.
<MVP 정량적 결과>
- 사이트 조회수: 5,467회 (평균 DAU = 약 100명)
- AI 분석 & 추천: 2,834회
- 전화번호 확보: 315개
- 1. (KPI) 주관식 피드백 150개
- 2. (기획) 유저 인터뷰 15명
- 3. (개발) 완료율 17.8% (이 부분은 조금 아쉬운 수치이다.)
<MVP 정성적 결과>
[어떤 사람들이 우리 사이트를 왜 사용하는지?]
- BiDi 이용자들은 대부분 18~34세의 여성이다. 이 부분은 팀에서 사전에 설정한 세그먼트였으며, 추가적으로 얻은 정보라면 18~24세 여성 이용자가 70%, 25~34세 여성 이용자가 30% 정도이라는 점이다.
- BiDi 이용자들은 유튜브나 블로그, 인스타 등을 통해 얼굴형/비율 등을 찾아보지만 그걸 보고 자신의 얼굴형/비율을 알기는 힘들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퍼스널 컬러 역시 많은 컨텐츠가 온라인 상에 존재하지만, 정보나 인사이트가 사용자에게 개인화되지 않는다면, 소화하기 힘들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유저들은 BiDi에게 자신의 고민을 반말로 피드백 남겨주었다. 마치 대화하듯이
- 이용자 분들을 실제로 10명 이상 인터뷰 했는데, 생각보다 고민이 정말 많고, 디테일하다. 헤어스타일의 경우만 하더라도 모발/모질 관련 고민, 이목구비 관련 고민, 목 두께나 컴플렉스 관련 고민, 피부톤의 고민 가지각색의 개인적인 고민들이 있었다. 이 고민들은 보통 평소에 검색 등으로 해소되지 못하고, 헤어디자이너에게 갔을 때에나 해소된다. 그런 고민들까지도 BiDi가 고려해 주기를 바랬다.
- 처음에는 헤어스타일만 추천했는데, 헤어 컬러까지도 나아가 메이크업 팁, 메이크업 제품을 추천해달라는 피드백이 왔다.
(7) 9월 1일, 이제 전략을 세워야 한다.
AI 퍼스널 컬러 분석과 헤어컬러 추천, 더 다양한 헤어스타일 추천이 담긴 2번째 업데이트 런칭 후, 팀원들과 결과와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워크샵을 다녀왔다. <AI 헤어스타일리스트 - BiDi>는 우리가 세웠던 가설을 잘 만족해주는 MVP 였다. 그러나, 우리의 가설은 임시적이었고, 전략이 빈약했다.
BiDi만으로는 이용자들의 모든 헤어/메이크업 발견, 고민이라는 문제를 풀어줄 수 없다.
지금도 그러하고, BiDi가 앞으로도 고도화되더라도 높은 가능성으로 그러할 것이다. 또, 유저 피드백으로 자신의 얼굴에 헤어스타일을 체험해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으나, 우리는 알고 있다. 그건 현실적으로 굉장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첫번째 BiDi를 통해 알고있는 중요한 한 가지 깨달음이 더 있는데, 자신의 얼굴을 편집할 때 유저들의 눈높이는 굉장히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기술적 장벽을 더욱 높게 만들어 Team을 또다시 Lean하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현실적이면서도, 지금 당장 실행가능하고, 우리의 기존 유저들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솔루션을 생각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