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IR은 투자자 관계를 위한 지속적인 홍보활동이 원래 의미지만, 스타트업, 특히나 이제 막 설립한 기업 사이에서는 시리즈 투자를 위한 영업 과정 정도로 통하는 듯합니다. 투자자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발 벗고 뛰어다니는 일이니 어느 정도 의미가 맞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PR은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기사 몇 개로 수십 장에 달하는 사업소개서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언론이 가진 신뢰성도 한몫합니다. 매체와 기자에 의해 좋은 회사로 한 번 인정을 받았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또, 좋은 기사를 읽으면 회사를 향한 '내적 친밀감'을 만들어 내기 마련입니다.
피알오즈 2호 고객사 시마크로는 사실 첫인상이 좋았다고는 못합니다. 인상이 나빴다는 의미가 아니라, 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분들이었다는 겁니다. 어딜 가도 중역급이실, 베테랑 느낌이 물씬 나는 대표와 상무 앞에서 나이 서른셋에 경력도 겨우 6년인 제가 얼마나 의연할 수 있었을까요. 덜덜 떨면서 PR의 중요성이라던가, 당신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다음 상황이 참 재밌습니다. 급전개라는 말이 딱 어울립니다. '할 테니까, 시간 되면 온 김에 회사 스터디하고 가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뒤로 우리는 샌드위치까지 깔아 놓고 한 시간을 '화학·바이오산업의 디지털 트윈'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짓는 데에만 조 단위 금액이 오가는 화학바이오 플랜트를 가상공간에 그대로 구현하는 시마크로입니다. 이들의 전문성을 한 시간 만에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엉뚱한 첫 만남 이후로도 데모데이에 따라가 솔루션에 대한 (매우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설명을 듣고, 보도자료를 작성하며 이것저것 캐묻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시마크로에 투자를 결정한 블루포인트 함슬범 심사역은 시마크로를 두고 블루포인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 투자 기준(큰 문제를 해결하는, 세상에 없던 것을 시도하는, 대표의 수용성이 높은)을 모두 충족하는 기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윤정호 대표에 대해서는 "심사역보다 나이가 많고 전문성이 훨씬 높지만, 항상 조언을 잘 수용하고 겸손한 모습을 유지했다"는 감상을 남겼습니다. 이미 알고 지낸 지 수개월, 어쩌면 일 년 넘게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계약 후 세 달이 지났을 무렵, 저 또한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비로소 시마크로와 윤정호 대표에 대한 글을 구상해 볼 수 있겠다고요. 회사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고, 어느 정도 서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반동안 글감을 찾았습니다. 영국에서 분자모델링 박사 후 과정을 밟다 세계 최대 산업 소프트웨어 기업 아스펜테크에 입사한 계기, 그 후 20년 가까이 개발에 전념한 경험, 시마크로 창업까지 한 시간 반동안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필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2주 정도 썼던 것 같습니다. 분량은 5천 자. 시마크로가 도전하는 혁신을 '밥 짓기'에 빗대어 친절하게 설명하는 윤정호 대표 설명을 읽으며, 독자들이 함슬범 심사역과 제가 느낀 감상에 조금이나마 공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습니다.
투자자들이 회사를 두고 내린 가치 판단, 대표이사에게 갖는 인상과 감상을, 그 뉘앙스라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으면 성공적인 PR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초기 회사에게는 단신 열 개 보다 깊은 고찰이 담긴 투고 한 편이 때로는 더 큰 효과를 낸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읽은 이들에게 회사에 대한 인식을 불어넣어 준다는 점에서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자연스럽게 스타트업 PR의 역할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지향하는 스타트업 PR은 독자들의 시간적, 물리적 한계를 해소해 주는 일입니다. 모두가 회사를 긴 시간 동안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볼 수는 없으니, 제가 그 역할을 대신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함슬범 심사역의 9개월, 혹은 제3개월을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면 꽤나 성공적인 PR이 아닐까 싶습니다.
P.S. 최근 일주일정도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이제 그만 보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