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콰이엇 CTO님과 커피챗을 하고 느낀 바
생애 처음으로 커피챗을 했다.
그저께 쓴 글이 논의로 이어져 디스콰이엇 CTO님께 커피챗 요청을 받았다.
오늘 아침 CTO님과 서로 웃으며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재밌는 문화이다.
면접도, 인터뷰도, 일상대화도 아닌 이 무언가는 무엇일까?
바로 커피챗의 기원을 검색해봤다.
서구권에서 넘어온 문화로 가벼운 '정보형 미팅'이라고 한다.
커피챗은 부담 없이 정보를 묻고 답하는 문화라고 한다.
부담?
또, 부담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오늘 커피챗 주제가 '부담' 이었기 때문이다.
"왜 디스콰이엇에 글 쓰는 것이 부담스러운가?"
1. 부담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정의는 아무곳에서 퍼왔다.
부담은 어떤 일이나 상황이 감당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참 오묘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싫다, 어렵다, 힘들다, 불가능하다, 기분 나쁘다, 시간이 안 된다' 는 근거가 또렷한 부정어이다.
호불호에 기반하거나, 능력, 감정, 리소스에 기반한다.
그럼 부담스러움은?
부담은 아주 막연하고 주관적인 느낌이다.
본인도 정확히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낀다.
명확한 근거에 기반하지 않으며,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남에게 설명하기 어렵다.
[부담감]
왜인지 모르겠는데, 무언가 책임이 부여되거나 전가되는 느낌, 잘 해내야될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심하진 않고 20% 정도 나쁜 느낌.
여기서 핵심은 서두에 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다.
본능은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머리로는 원인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괴리에서 오는 20%의 감정이다.
당장 나에게 책임이 부여되고 전가되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 그렇게 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하면 부담스럽다.
즉, 의무감이 동기를 앞서는 것이다.
2. 커피챗은 부담을 지워버린다.
내 생각에 커피챗 문화는 인간의 부담스러운 감정을 덮어주는 좋은 솔루션이다.
우리는 시대의 변화를 겪으며 커리어, 채용, 사업의 성공을 위해 더 많은 낯선 이와 이야기하고, 약하게 연결되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약한 연결을 잘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오랜 시간 좁고 강한 연결이 생존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한 연결은 어색하다. 낯선 이와의 소통은 늘 어딘가 부담스럽다.
그 사람의 명확한 의도를 몰라 의심하게 되고, 자신이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부담스러움을 해소하는 최고의 방법이 커피챗이다.
3. 커피챗의 전제, 그리고 디스콰이엇
커피챗이라는 규칙은 인위적으로 부담을 덮어둔다.
근데 놀랍게도 그게 먹힌다.
서로 강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님을 즉시 전제로 깔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 지금부터 가볍게 얘기나누는 겁니다." 라고 롤플레잉을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CTO님과의 커피챗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편하고 즐거웠다.
"우리 당신에게 당장 원하는 게 없어요. 그저 당신의 생각이 더 궁금한거에요"
"나도 그래요. 제품의 팬으로서 한 토로이고, 대단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아요. 그저 디스콰이엇의 생각이 궁금해요"
놀라운 건 이런 전제를 깔고 시작하면, 더욱 유의미한 논의가 오고간다는 것이다.
빠르게 편안해지고, 요즘 느끼는 감정과 솔직한 생각이 오가고,
공감하며 가까워지고, 내 일이 아님에도 그 방법을 골똘히 생각해보게 된다.
어디서 시작된지도 모르는 서구권 문화가 날 무장해제시켰기 때문이다.
만약 커피챗이라는 룰이 선언되지 않았다면? 달랐을 것이다.
나는 그렇다. 막연히 상대방에게 잘 보여야한다는 부담, 혹은 디스콰이엇에 대한 불만을 열렬히 토로했으니 해결책을 가져가야할 것 같은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커피챗이라는 단어가 나를 부담으로부터 해방시켜줬다.
괜찮다고 해주었다. 이것도 하나의 포용이다.
4. 커피챗 같은 SNS
CTO님과 커피챗을 하면서 이 분께서 진심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곤란해하시고, 해결하고자 치열하게 고민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았다. 멋있게 느껴진다.
원래 진정성있는 모습에는 본인의 약한 순간이 담겨진다.
나는 이러한 모습들이 디스콰이엇에 많이 담겨야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메이커의 삶은 해결사처럼 멋지게 척척 헤쳐나가는 순간보단 약하고 어려워하는 순간이 많다.
풀기 어려운 문제를 골랐기 때문이다.
그것이 삶의 가치관에 의해서든, 물질적인 목표에 의해서든, 반골 기질에서 비롯되었든 간에
우리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골랐다. 그래서 약해보이고 어려운 순간이 많다.
실제로, 익명성이 보장되는 PM 오픈카톡방에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글이 많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도저히 못 버티겠는 고충을 나누기 위해 진솔한 모습을 보인다.
많은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도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많이 본다. 자신이 풀지 못한 버그를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결하고, 감사해하고, 그렇게 쌓은 실력으로 나중에는 다른 개발자를 돕는다. 그렇게 개발자들은 다같이 빠르게 성장했다.
내 생각에 이러한 선순환은 꼭 익명성이 보장되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다.
무언의 공감대, 어떠한 강력한 전제가 필요할 뿐이다.
우리가 푸는 문제가 매우 어려운 것이며,
이는 다같이 고민해도 풀 수 있을지 확답할 수 없으며,그래서 혼자 고민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며, 그래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당연한거고,
우리는 당신을 멋지게 볼 것이며, 공감하고, 응원할 것이며,
그런 좋은 마음을 가져야 결국 나에게도 좋은 기회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과 공감대 하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디스콰이엇에 계신 대부분의 메이커, 투자자, 고객 분들도 위의 전제를 이해하고 계실거라 생각한다.
그 공감대가 수면 위로 충분히 올라오지 않았을 뿐.
왜 우리는 실명을 공개한채로 가볍게 글을 쓰기 어려울까.
약한 모습을 드러내거나, 고충을 토로할 수 없을까.
가볍게 떠오른 실없는 소리를 할 수 없을까.
어쩌면 위 공감대가 충분히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포용은 공감대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맺으며
나는 퇴사를 하고 많이 허우적거렸다. (사실은 지금도 계속)
게임회사의 경력을 살려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 진심 어린 존중이 부족했다.
그래서 스타트업 면접이 아니라 스타트업 공부를 먼저 했다. 존중을 배우기 위해서.
스타트업에 대한 공부를 하고, DDP에 가서 피칭을 들어보고, 사업기획 스터디에서 초기 스타트업 대표님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겸손하고 깊은 생각, 진중한 모습에 감동받았다.
피칭할 땐 반짝반짝 세상을 구할듯이 빛나지만, 스터디에서는 피곤함에 절어있는 동일인물을 본다.
사람의 삶은 원래 양면적이다.
내 이력서엔 멋지게 일한 모습만 담아두었지만, 내 일기장에는 일하면서 힘들었던 고충이 잔뜩 적혀있다.
이력을 어필하려면 링크드인을 가고, 고충만 토로하려면 익명 카톡방을 간다. 공부를 하려면 미디어나 블로그를 간다. 책을 읽는다. 하지만 그 곳이 메이커의 삶을 대표하진 못한다. 반쪽짜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스콰이엇은 메이커 삶의 몇 %를 담아내고 싶은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디스콰이엇이 커피챗같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각자의 또렷한 목표의식이 있어도 서로 경계하지 않는 곳.
내 생각을 누군가 나쁘게 보진 않을까 의심하지 않는 곳.
내 비즈니스적인 의도가 왜곡되지 않는 곳.
서로 허접한 순간도 나눌 수 있고, 솔직하게 이런저런 얘기하는 곳.
그러면서 성장하는 곳.
커피챗은 실은 명확한 목적이 있다.
그것이 네트워킹이든, 고객인터뷰이든, 채용이든, 투자이든, 자문 또는 조언이든.
그 목적을 분명히 드러내는지, 아니면 상호동의 하에 희미하게 희석시키는지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목적을 나쁘게 보지 않고,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 배경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규칙으로 정해버린다.
그렇게 커피챗은 양쪽이 느낄 수 있는 부담스러움의 감정을 손쉽게 덮어버린다.
문화라는 규칙으로 정해버렸기 때문이다.
디스콰이엇도 그런 것들을 덮어버리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디스콰이엇에서 글을 쓰는 게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메이커로서의 삶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일수도 있겠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지내면서도, 계속 반짝여보여야 하는 삶이라서.
규칙을 정하면 어떨까요?
자, 이제 디스콰이엇에 들어왔으니 우리 터놓고 이야기하는겁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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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 Hong
동한님 글은 재밌어요! 그리고 이렇게 이어서 글을 써주신게, 너무 감사하고 또 저도 만나뵙고 싶어지네요 ㅎㅎ "개인적으로 나는 디스콰이엇이 커피챗같은 곳이었으면 좋겠다.각자의 또렷한 목표의식이 있어도 서로 경계하지 않는 곳.내 생각을 누군가 나쁘게 보진 않을까 의심하지 않는 곳.내 비즈니스적인 의도가 왜곡되지 않는 곳.서로 허접한 순간도 나눌 수 있고, 솔직하게 이런저런 얘기하는 곳.그러면서 성장하는 곳." 저도 그렇습니다! 디스콰이엇이 사람들에게 편안한 곳이었으면 좋겠고, 위축되지 않고 부드럽게 대화하셨으면 좋겠어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한님! 디스콰이엇은 지금도 너무나 훌륭한 커뮤니티같아요. 커피챗스러운 문화도 있구요 ㅎㅎ 편하실 때 커피챗주셔요 :)
"어쩌면,디스콰이엇에서 글을 쓰는 게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메이커로서의 삶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일수도 있겠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지내면서도, 계속 반짝여보여야 하는 삶이라서." 🥺🥺
오늘도 고단하게 반짝이시는 메이커분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
이 문장 너무 빛나네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