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마라톤도 안 뛰어본 애는 어쩌다 러닝크루 리더를 맡았나
2020년 3월, COVID-19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고 대학 수업은 부랴부랴 원격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줌과 구글 밋, 시스코 웹엑스 같은 소프트웨어와 친해져야 했으며 같이 웃고 떠들고 밤을 지새우던 동아리 형들과 친구들은 각자의 본가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때 우리 집은 20년간 살던 분당에서 용인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주변에 대학 친구도 동네 친구도 없어졌다.
2020년 5월, 친구의 소개로 00runners라는 러닝크루에 들어간다. 경희대학교 ROTC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이 크루는 ‘띠런 크루’로, 2000년생 용띠 친구들이 모여있는 크루였다. 크루의 파운더이자 리더를 맡은 기재는 러닝을 정말 좋아하고 책임감이 있는 친구였다. 그리고 늘 앞에 나서기보다는 묵묵히 크루를 챙겼다. 코로나가 심해졌을 땐 크루 활동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지만, 20년 5월 40명으로 시작한 크루는 22년 3월 회원모집을 조기 마감하며 80명으로 늘어났다.
22년에는 채림이가 기재의 뒤를 이어 크루 리더를 맡았다. 그녀는 특유의 엄청난 에너지로(채림이를 실제로 아는 사람은 절대 반박 못할거다..) 모든 크루 멤버들을 서로 친하게 만들었고, 체육대회, 런트립, 연말결산 등 네트워킹 행사를 활발히 열었다. 나는 이때 인턴 디자이너로 처음 사회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회원 모집 웹사이트 제작만 돕고 거의 활동하지 못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할 정도로 일에 몰입하려 했다.
2023년은 00년생 용띠 친구들에게 삶의 전환점이 되는 해이다. 19년에 입학한 어떤 친구들은 대학 4년을 마치고 졸업하고 사회인으로서의 발걸음을 내딛기도 하고, 기재를 포함한 ROTC 친구들은 학사장교로 임관하여 앞으로 2년간은 러닝크루 활동을 못하게 되기도 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채림이가 후임 리더를 구한다는 연락을 받고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집단
가운데 하얀색 옷 입은 애가 나다
중학교 시절 나는 밴드부원이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응원단장이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호흡을 맞추며 에너지를 내뿜는 걸 좋아하는 청소년이었다.
중학교 시절, 점심시간만 되면 우리는 학교 꼭대기층의 음악실에 가서 온 창문을 열어젖히고는 기타 앰프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 드럼이 찢어질 것처럼 크게 쳤다.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모든 친구들이 들을 수 있게! 고등학교에서도 그런 일관성을 유지했다. 멋진 공연을 위해 매 점심시간 마다 응원단실로 가서 음악을 틀고 연습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호흡을 맞춰 훈련해서 이뤄내는 ‘스포츠 팀’이 우울할 뻔 했던 내 중고등학교 생활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내 팀과 함께 도전할 가슴 떨리는 챌린지가 필요하다.
어른들에게도 스포츠 팀은 필요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크로스핏 박스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헬스장에 다니는 것보다 크로스핏을 다니는 것을 더 좋아한다. 헬스장은 운영시간 중 아무때나 혼자 가서 운동하고 오면 되지만, 크로스핏은 정해진 시간표에 맞추어 클래스가 열리고, 사람들과 함께 여러 운동이 결합된 미션(WOD: Workout Of Day 라고 부른다)을 수행한다. 헬스장에서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은 1시간 30분 정도 하는 것에 반해 크로스핏은 워밍업 시간을 제외하면 대략 20분 안에 본 운동이 끝난다. 짧은 시간 안에 에너지를 쏟아내면 같이 미션을 해낸 사람들끼리는 전우애 같은 유대감이 생긴다.
이런 유대감을 코로나 이후에는 00runners에서 느꼈다. 음악을 크게 틀고 함께 들으며 뛰는데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그래서 러닝크루 초기 브랜딩도 맡고, 포토도 맡고,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나는 커뮤니티의 구성 요소 중 Activity, Culture, Identity 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러닝크루는 함께 모여 뛴다는 명확한 Activity가 있고 함께 음악을 듣는다거나 서로를 존중하고 챙겨준다거나 하는 Culture가 있다. 좋은 Identity는 멤버들이 소속감을 가지게 하며 커뮤니티에 소속되었다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도움을 준다.
내가 소속된 커뮤니티로 나를 설명하기
중학생 때 읽은 책에서 서양 사람들은 처음 본 사람에게 인사를 할 때 ‘OOO입니다. OO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고, 동양 사람들은 ‘OO회사의 OOO입니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만큼 동양 사람들은 소속된 공동체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사회가 다원화되고 개인의 주체성이 강조되면서 소속된 집단보다 본인을 먼저 드러내는 케이스가 많아졌다. 직장이나 대학교 집단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사라진 것도 맞다.
더 이상 ‘OO에 다녀요’로 나를 설명할 수 없게 된 시대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의 리더가 되어 발전시키기로 했다. 스타트업에서 오퍼레이터로 일하면서 회원수가 100명 넘는 Z세대 러닝크루 리더.. 뭔가 멋지잖아?🤣 나의 정체성을 위해서 크루의 문화, 활동, 아이덴티티도 같이 키워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내가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것이나 커뮤니티에 대한 인사이트 등 얻어갈 수 있는 것이 많다고 판단했다.
이제 회원모집 기간이 지나고 정규 활동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명확한 목표와 나름의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 목표는 1) 건강한 몸 만들기와 2) 건강한 네트워크 만들기이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마음도 건강하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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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00년생이에요
오~ 러닝크루 가입해 주세요 https://00runners.xyz/
저도 00년생이에요 러닝크루 들어가려고 다시 새벽마다 30분씩 조깅 중입니다 :)
와~~ 역시, 그 넘치는 에너지를 어떻게 하시나 했더니 러닝크루까지..! Z세대의 선두주자 답습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크루도 디스콰이엇도 재밌게 해볼게요!!
멋져요 종한님~ ㅎㅎ
태완님이 제일 멋져요 ㅎㅎ 같이 러닝해요!
나이 마이너스 해주는 솔루션은 어디 없을까요? 저도 넘 들어가고 싶네요 ㅎㅎ
게스트로 놀러오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