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집] #0226 넌 돈을 벌고 싶니?
룸메이트였던 친구와 나누는 실없는 소리를 정리해둔 대화집입니다. 일부 각색되었습니다.
- Q : 룸메이트 친구. 예술가 기질이 다분하다.
- T : 애플펜슬보다 블랙윙을 좋아하는 본인. 생각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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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넌 돈을 벌고 싶니?
T : 지금 당장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건 내 목표가 아님.
Q : 그렇다면 너의 목표는?
T : 지금은 임계점을 돌파해보는 게 목표임. 내가 여태 살면서 한 일 중에 끝장을 다해서 한 일이 있는가? 정말 죽을만큼 최선을 다해본 경험이 있는가? 했을 때 아직까진 없는 듯. 해봤자 게임? 라면을 끓이는 게 목표인데, 라면을 끓일정도로 물이 끓지 못하면 그건 내가 80도까지 올렸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없는 거잖아. 기획을 해보는 경험 자체는 대학생 때로 만족하고, 지금은 기획한 걸 정말로 실행해서 비즈니스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해당 비즈니스를 내가 운영해보거나 내가 성장시킬 수 있는지? 이게 더 중요하다고 봐
Q : 그것이 달성되었다는 판단 기준은?
T : (지속 가능한)비즈니스는 구라를 안침. (또는 못침) 제품이나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마케팅으로 지표가 성장하고 만족하는 사람이 나오면 굴러가기 시작하는거니까.
Q : 결국에는 판단 기준은 타인, 시장에게서 나오는 거네
T : 응.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역량을 어떻게 가시화 하느냐 이게 중요한 것 같음. 농구를 잘한다라는 말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농구를 해서 농구 점수를 잘 내는 사람이거나, 농구를 해서 상대방이 점수를 넣지 못하게 블락을 잘하는 사람이거나 그래야할 거 아냐.
Q : 너가 ‘살면서 끝장을 다해서 한 일이 있는가’에 대해 달성을 하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거야?
T :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는거지. 할 수 있다. 해내본 경험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내적 동기에 영향을 많이 끼친다봐. 사람들이 운동을 하라는 이유도 점점 가시화되는 영역이라 생각하거든. 달리기의 경우 점점 페이스가 좋아질 것이고, 웨이트는 몸이 점점 좋아지거나 전에는 들지 못했던 무게를 쉽게 들어올리겠지.
Q : 지금까지 네가 해온 것들과는 다른 차원의 것들이라는 것일까?
T : 응 그럴 것 같음. 변화가 생기는 거니까. 나는 왜 사람들이 자꾸만 더 나아지고, 성장하길 바라는가 이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내가 일을 하면서 든 생각이 내가 하는 일의 발전이 없다면 도태되는 일밖에 남지 않겠군 싶었음. 도태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스스로 삶의 재미를 잃을 것 같더라.
Q : 어떤 일이든 너의 임계점을 돌파하기만 한다면 달성되는 건가?
T : 응 그게 정말 중요해. 결국 삶의 이유와 존재 근거를 찾는 일임. 나는 늘 죽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거라 생각해. 삶의 이유가 사라지면 난 살아내지 못할 것 같아. 위태로운 상태가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헤엄치는거지.
Q: 너 스스로 내린 결정인가?
T : 응, 오늘 출근길에도 했던 생각임. 1번 질문은 쓰고나니까 칸트주의 같군 했음. 왜 50대에 논어를 찾고, 장자를 찾고, 니체를 찾는지. 그리고 그 책은 왜 기획되고 왜 팔리는 지 기차타기 전에 서점 둘러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음.
Q : 그 이유는?
T : 확답은 할 수 없지만, 삶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시기가 50대 같더라. 퇴직을 앞둔 나이. 근데 노후 대비는 탄탄하지 않은 채로. 자식이 있다면 자식은 이미 출가외인이 된 경우가 많겠지. 50대가 되고나서는 새로운 인연을 만들거나 관계를 확장해나가는 게 쉽지 않을 것이고, 많은 생각이 본인 자신에게 향할 것 같더라.
Q : 결국은 혼자라는 것이지.
T: 응. 개인에게는 주어진 삶의 무게가 있는데, 이건 가벼워지지 않고 계속 짊어지고 가야해. 죽지 않아야할 이유랄까. 살아내야하는 이유.
Q : 그래야만, 죽음은 가장 값진 선물이 될 수 있지.
T : 응. 사실 되게 좋은 결말이잖아? 끝이 언제 올지는 모르는 거지만, 내 삶의 끝이 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으니까. 애초에 영생같은 건 꿈꾼 적도 없지만.
Q : 뭐가 올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잘 채워가는 삶이 되었으면 해. 너와의 대화는 유재하의 <내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과 닮았달까.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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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화형 콘텐츠 정말 값지네요. 저도 지금 임계점을 넘어볼려는 시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 기획은 대학생 때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에도 공감해요 ㅋㅋ
종한님과의 대화 콘텐츠를 만들면 더 기깔난 콘텐츠가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ㅎ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룸메이트 친구가 있으시다니 부럽습니다 :)
커피챗으로도 할 수 있는 대화랍니다(?)
정말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게 대단합니다ㅎ 보통은 '진지한 척 그만하고 밥이나 먹어'라고 하니까요ㅎ 사실, '의미'는 누군가가 기획한거죠. 그거 나이든, 타인이든. 하지만, 삶의 관점에서 의미라는건 굉장히 중요해요.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이런 행위도 결국엔 누구나하니까 '따라'하거나, '뒤쳐지지'않기 위해하거나,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한건데, 이를 유지하기위해서는 '이유. 즉, 의미'가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전통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결혼의 유지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출산과 양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꼭 해야만한다는 얘기는 아니구요. 이를 통해, '비가역적인 결정'에 따른 '나의 삶의 의미'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즉, 결혼부터 출산까지는 타성에 젖어 홀린듯이 할 수 있지만, '양육'의 단계에서는 제대로된 '각성'이 필요하다는 말이죠. (보통 다들 그렇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그 각성은 비가역적인 현실이 된, '결혼과 양육' 중, 특히, 양육에 많이 쏠리게 됩니다. 이제 '양육'이 '내 삶의 가장 큰 의미이자 이유'가 되죠. 그렇게 인생의 30대중후반~50대초반을 보내고, 자녀가 장성해서 성인이되면 갑자기 '삶의 의미'가 흔들리게 됩니다. 사회에서의 역할과 지위의 변화도 급물살을 타는 시점이기도하고, 내가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온 이유 (양육)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 희미해진거죠. 자식은 여전히 신경쓰이겠지만 이젠 알아서 살아갈 나이이니 '내 삶의 이유'로 남기엔 이젠 그 연결고리가 좀 낡아버린 겁니다. 그래서 인생의 40대 후반~50대에 다다르면 그동안 굳게 믿고 살아온 '의미와 가치' 흔들리고 재정립을 해야하는 순간이 오는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만약 가능하다면 20~30대에 '자신 만의 인생의 의미'를 정하는게 좋다는 겁니다. 이 의미는 결혼에도, 이직에도, 사회적 독립에도, 또 양육에도, 양육의 독립에도 흔들리지않는 '나만의 의미'를 말합니다. 즉, 죽는 그날까지 유지하거나 달성해야하는 '나를 살아가게하는 이유' 말이죠. 이야기가 길어졌네요ㅎㅎ 너무 좋은 주제로 토론하신 걸 보고 저도 급발진을.. 암튼, 월요일입니다. 저 역시, '제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자면, 미리 정하고 그 의미를 계속해서 수정해나가거나 발전시켜나가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일종의 레이달리오가 말하는 원칙과도 비슷할 수 있겠네요 :) 저는 이런 장문의 피드백을 받을 때가 기분이 좋네요.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또 좋은 대화와 글, 기대하겠습니다!
나만의 원칙, 장기적인 비전,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이 떠오르네요. 태완님과 도윤님 글 읽으면서 잠시 잊고 있던 가치들을 생각하게 됐어요, 감사합니다.
태완님 메이커로그가 Must Reads #129에 선정되었어요! https://stib.ee/eeD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