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우리나라가 원래 탱크가 매일 지나다니는 곳인줄 알았다 >
나는 91년도 파주 시골에서 태어난 시골 촌놈이다.
파주가 무슨 시골이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우리집은 아직도 파주시 법원읍 가야리라는 몇 안되는 ‘리’이며, 명학산 초입에 있는 우리집 옆에는 어릴적에 넓은 포도밭이 있었다.
서울보다 개성이 더 가까워 20분이면 임진강을 넘어 북한이 보이는 통일 전망대를 갈 수 있었다. 초등학교 소풍을 DMZ에 있는 땅굴을 보러 갔고, 종종 산넘어에서 북한 특유의 선전투로 말하는 아주머니의 대남방송이 들렸고, 누나가 어릴적엔 삐라도 줏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집 주변에 1사단이 있어 군부대가 많았고, 그중에서도 탱크부대가 많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때까지도 밥먹다 땅이 지진이 난것처럼 덜덜덜 떨리면, 몇분 뒤, 레토나 하나가 지나가고, 어마어마하게 큰 K1 탱크 열대, 물자를 잔뜩 실은 두돈반 트럭, 그리고 뒤를 이어 얼굴을 쌔까맣게 칠해놓고 행군하는 군인 형들이 지나갔다. 우리 식당에 군인 아저씨들이 항상 있었고, 1사단 출신의 전두환 전대통령 아저씨도 우리집에 와서 100만원 넘게 먹고 간 적이 있다. 그때는 잔고가 많으셨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일요일 마다 다같이 아침을 먹고 뒷산에 절을 지나, 산꼭대기에서 야호를 외치고, 약수터에서 약숫물을 먹고 돌아오는 행사가 있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도 걸어서 1시간씩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에 학교 끝나면 오는 길에 목장의 소들의 구수한 똥냄새를 맡으며 음메 소리, 논에 있는 개구리의 개굴소리가 차소리보다 익숙하였다. 집에 도착해서는 집앞 포도밭에 몰래 들어가 포도를 따먹거나, 할머니가 키우시던 닭장의 닭들, 비 온 뒤엔 물웅덩이의 소금쟁이를 관찰하며 놀았고, 겨울엔 할머니랑 동네 배추밭을 돌며 우거지를 줏으러 다녔다.
한번은 너무 심심해서 식당 뒤에 놀러오던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아서 눈도 막 뜬 작은 고양이 4마리를 집에 데려와 유리장 안에서 키워보기도 하고, 부모님께 겨우겨우 졸라서 골든리트리버도 한마리 분양을 받았는데, 시골이라 마당에 묶어놓고 짬밥만 먹이다가 결국 똥만 쌀줄 아는 똥개가 되어버린 안타까운 기억도 있다.
봄엔 우리 마당에 큰 목련이 하얗게 피었었고, 여름엔 비가 한번 엄청 몰아쳐서 앞에 계곡에 물이 넘쳐 군인 형들이 초록색 모레주머니를 쌓아 수해피해 복구를 해주러 온 적도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여있는 우리 동네에서 가을은 어딜 봐도 화려한 색들의 잔치였고, 겨울엔 뒷산에 가장 경사진 곳을 찾아 포대자루 하나 갖고 조심히 올라가서 쭉 내려오면 스키장이 되고, 집앞 논에 물을 넣어 얼리면 썰매장이 되었다.
한번은 우리 뒷산에 작은 산불이나서 묘목을 심는 행사를 하였다. 그때 이회창 전국무총리 아저씨가 와서 인사하고 사진찍은 기억이 난다. 겨우 초등학생정도도 안되었을 나이였던 것 같은데, 나도 삽을 들고 가서 땅을 파고, 소나무 묘목 몇 그루를 심은적이 있다. 그 나무들은 지금 이미 20년이 넘어 또 다시 우리집 뒷산에 큰 숲을 이루었다.
그때 부터 나는 조경가가 될 운명이지 않았을까?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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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재밌네요 ㅎㅎㅎ 이후에 조경가가 되신 과정도 궁금합니다 !!
정록님!! 다음 편도 연재해 주세요 ㅎㅎ
글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파주에서 군 복무해서... 제목 한줄에 이끌려 들어왔어요... 대단하십니다 ㅋㅋ
소설 읽는 기분이 드네요!!! 다음 글 또 읽고 싶습니다 ㅎㅎ
와, eo에서 ir하신거 보고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 서사도 너무 좋네요! 이게 찐 메이커스로그.. 공유 감사합니다
나무룩을 입으시는 대표님의 패션센스가, 조경가가 될 운명에서부터 비롯된걸까요
탄탄한 스토리와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앞으로의 여정도 기대됩니다 화이팅!
너무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유니콘 하우스 나오셨을떄부터 응원하고 있어요 루트릭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