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도 없고, 나이도 없다.
스타트업 근무 2주차, 갑자기 붕뜬 느낌을 받았다. 갈길을 잃은 느낌이랄까.
당연히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그러나 언제나 직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처음 한 주는 그저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새로워 재미있었다.
그러나 둘째 주가 되면서 나의 포지션, 내가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것, 나아갈 방향들이 갑자기 모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이 회사에 필요한 존재인가,
나는 과연 이 회사에 대체 불가능한 존재인가,
나는 과연 이 회사에 가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원래 일을 해오던 팀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잘 해내는 것 같은데,
나는 그만큼의 역량발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받는 돈의 최소 3배에서 5배 이상의 가치를 창출해야 나는 쓸만한 직원 아닌가,
거기에 비해서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가 내 스스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불안함으로 이틀에 한번씩 자거나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내가 맡은 포지션에서 필요한 것들을 서치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인 피드백을 구했다. 혹시나 내가 무엇을 놓쳤을까, 실수한 것은 없을까 싶어서 였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의 커피챗을 통해 또 배우게 된 것들이 있다.
1) 스타트업 씬에서는 직원이 없다. 개개인 모두가 슈퍼맨이다.
직책은 단지 포지션을 뜻할 뿐이다. 스타트업 업계에 갑을은 없어 보인다. 적어도 우리 회사는 그렇다.
나는 이제까지 관료적 회사에 너무 적응되어 모든 것에 결재와 허락을 구하려 했던 것 아닌가란 반성을 하게됐다.
직원의 관점으로 일들을 접근하니 안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낮은 자세가 팀원들의 업무 집중을 방해했고, 나 또한 눈치가 보여 힘들었다.
내 파트는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런 나를 믿고 팀원들은 나에게 맡긴 것이다.
그러니 내 파트에서 만큼은 내가 팀원들을 리드해 나아가야 한다.
2) 모든 것은 설득의 연속이다.
내가 얼마나 수동적인 직원 마인드를 지녀왔는지 알게 됐다.
팀원이 안된다고 하면 안되는구나 생각하며 안되는 것, 거절 당한 것은 그냥 포기했다.
그래서 내가 구상한 것에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방황한 부분들을 발견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니 '팀원 한명도 설득 못하면, 고객들은 어떻게 설득할 거야?'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얻고 싶은 해답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 해답을 구해야 한다.
고객을 설득할 수 없는 제품은 실패하듯 내가 설득할 수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많은 부분에서 내가 얼마나 팀원을 의지하거나 수동적으로 행동했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3)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업계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대단한 능력자들을 많이 만났다.
엄청나게 어린 나이에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솔직히 나의 학력과 나이가 비교되어 주눅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진짜 명문대 대학원 들어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만난 이미 성과를 증명하고 있는 창업가들은 가장 어린사람이 고2부터 많게는 40대까지 다양했다.
각자의 전문성과 비전을 가지고 이 업계에 뛰어들었고 제품의 PMF를 찾아냈다.
고등학생 창업가들의 피칭을 들었을 때, 정말로 날카롭고 똑똑하게 가설 검증에 접근했으며
모든 질문에 능숙하게 대응할 정도로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들은 대학교에 가지 않고도 모든 과정을 해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이는 전혀 고려 요소가 아니라는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막연한 가능성을 날카롭고 뾰족하게 만들어 세상에 녹여내는 '실천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내가 8년 동안 BM만 부여잡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던 이유도
내가 만들어 놓은 선입견을 깨지 못해 실천하지 않은 것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4) 모든 단계에서 가설 검증은 필수
스타트업을 위한 여러 교육을 들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
바로, 모든 것은 가설 검증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과생들에게는 익숙할 수 있으나 문과생들과 예체능 전공자들에게는 생소할 것이다.
나는 사업 초기 단계의 BM과 MVP만 가설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제품을 구성하는 여러 디자인적 요소들과 브랜딩, 마케팅 분야에 있어
'창조의 영역에 정답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해오던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즈니스를 위한 창조라면 모든 것은 가설 검증방식으로 방향성을 체크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그저 기획하여 창조할 생각을 했지, 케이스를 수집하여 공통점을 파악하고, 거기에서 차별화를 구상하는 동시에,
고객 인터뷰를 통해 벤치마킹 하는 것들에 대한 검증을 기반으로 창조를 해야하는 것을 간과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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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가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ㅎㅎ
이번에 저희도 채용을 진행하면서 걱정했던 부분들을 딱 말씀해주셨네요. 그 모호함을 없애는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회사에 합류한다는 것은 연애와 같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만큼 팀원이 비전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느냐와 팀내 HR 시스템과 문화, 팀원의 역할에 대한 숙련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회사에 합류하는건 연애와 같다, 이거 되게 저도 똑같이 느껴져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제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하고 비슷하게 느끼고 계신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하고 그러네요,,!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시다니 저도 너무 반갑습니다:) 서로 화이팅해요!
제가 구직자였을 때에는 채용자 마음에 들고싶어서 노력했는데, 채용자가 되고나니 구직자의 마음에 들고싶어서 고민하게 되더라구요! 생각해보면 뭔가 고백하기 전 두근두근하는 마음같은게 수윤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연애와 같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
굉장히 솔직하고 담백한 글이네요.
솔직한게 때로는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지금 제 위치가 어딘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ㅎㅎ 피드백 받기도 좋구요!
팀원 한명도 설득 못하면, 고객들은 어떻게 설득할 거야 이부분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멋진 회사네요!! ㅎㅎ
감사합니다ㅎㅎ
처음 스타트업에 합류해서 트라이아웃 기간에 큰 충격과 자괴감(?)을 경험했던 오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응원감사합니다! 열심히 나아가보겠습니다.🙌